소설리스트

나만 보는 탑 공략집-162화 (162/292)

162화

세상은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하기 마련이다.

흙수저는 여간해서는 금수저를 이길 수 없고, 누군가는 설렁설렁 공부하면서도 일류대를 가기도 하며, 삼시 세끼 폭식을 하면서도 살이 찌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

또 타고난 외모 하나로 인생을 편하게 사는 이도 있다.

억울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타고나는 것은 바뀌지 않으니까.

그리고 지금 여기 이곳. 27층은 외모 지상주의가 판치는 아주 더러운 곳이었다.

퍼어어억!

[호감도가 하락하였습니다.]

[호감도: -7]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김세용을 때릴 때마다 호감도가 쭉쭉 빠지고 있다.

“와 씨! 호영이 형! 진짜 세긴 하네! 진짜 한 대도 못 때리겠어! 이게 말이 돼?”

결계 안에 남은 도전자는 단둘. 나와 김세용뿐이었다.

그나저나 녀석은 정말로 날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세용이가 새롭게 얻은 스킬인 불주먹. 위협적이긴 했으나 우리의 격차를 좁힐 정도는 아니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녀석은 내가 초반에 탈락시킨 붉은 머리 수준에도 많이 미치지 못한다.

지금 내가 유일하게 신경 쓰고 있는 것은 호감도.

27층의 군주가 김세용을 엄청나게 총애하는 모양인데, 이놈을 탈락시킬 경우 내 호감도가 어느 정도로 추락할지 계산이 서지 않았다.

“세용아, 너 진짜 얼굴 천재구나.”

“갑자기 뭔 소리야!”

“있어, 그런 게.”

김세용은 모른다.

27층에서 누리고 있는 모든 특혜가 본인의 외모 때문이라는 것을.

새롭게 얻은 권능과 녀석을 두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버프들. 모두 본인의 의지나 노력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냥 얻은 것이다.

얼굴 천재라는 이유로 말이다.

“세용아, 이제 끝내자. 들어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내가 김세용을 피니시 시키는 걸 주저했기에 생각보다 싸움은 길어지고 있었다.

결심이 섰으니 이제는 끝내야 할 때.

또다시 김세용의 불주먹이 날아온다.

속사포처럼 쏘아지는 주먹질의 향연.

속도나 파워 모두 나무랄 데가 없다.

‘그래도 다행이야.’

김세용이 외모 때문에 받은 특혜. 내가 극복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면 억울할 뻔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타아악!

날아오는 주먹 연사를 피해 접근한 후, 녀석의 뒷목을 쳤다.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히게 힘 조절을 했다.

충격은 최소화하면서 딱 기절시킬 만큼의 타격.

27층의 군주가 이런 나의 눈물겨운 노력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었다.

쿠웅-

김세용이 나무토막처럼 쓰러지며 결계 밖으로 튕겨 나갔다.

시험의 종료가 결정된 순간이었다.

관중들의 함성이 쏟아졌지만, 그런 건 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내게 부여될 호감도 페널티.

[호감도가 하락하였습니다.]

[호감도: -27]

‘다행이군.’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상당히 선방한 셈.

제나가 내게 경고했던 수치인 -51까지 내려가는 일은 없었다.

* * *

71명.

이번 시험에 응시한 약 800여 명의 도전자 중 정식 헌터 자격을 얻은 사람들의 수였다.

합격자가 공표되자마자, 각 길드에서 파견된 스카우터들은 저마다 영입 타깃으로 삼은 신규 헌터들을 향해 뜨거운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물론 현재 최고의 핫 플레이스는 바로 내 주변이었다.

“그믐달 길드입니다! 근처 최고급 요릿집에 예약을 잡아 놓았으니, 식사라도 하시면서 대화할 기회를…….”

“달빛의 유령에서 나왔습니다! 최상의 룸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웅크린 하늘 길드입니다!”

“바람 길드에서 온 수석 스카우터 루지라고 합니다!”

나를 영입하고자 나온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거대 길드 출신이라는 것.

정확하게는 5대 길드라 불리는 곳이었다.

내 주변을 서성거리기만 하다가 돌아간 잔챙이들만 벌써 여럿.

그들은 대형 길드의 위세에 밀려 감히 내게 명함을 내밀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5대 헌터 길드에 가입하십시오.]

[남은 시간: 1일 10시간 3분 12초]

이번 시험에서 우승을 하는 순간, 사실상 퀘스트는 이미 완료한 셈이다.

“거참! 다들 너무하네! 나라고 나! 이번 시험 준우승자 김세용! 나한테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거야?”

내 옆에 있던 김세용이 참다못해 급기야 짜증을 냈다.

타고난 관종이다 보니 나에게만 쏠린 관심에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미련한 자식.’

녀석의 말과 달리 준우승 타이틀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녀석도 스카우터들에게 강렬할 인상을 심어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본인이 이렇게 안달 날 이유가 없었다.

그냥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러브콜이 쏟아질 텐데, 그걸 못 참고 본인 스스로 제 몸값을 깎아 먹고 있는 것이다.

“아아! 당연히 김세용 헌터님도 저희의 영입 대상이지요! 두 분을 함께 모실 수 있다면 저희로선 더할 나위 없는 영광입니다!”

“진작 그렇게 나오셨어야지! 흐흐흐.”

바람 길드 스카우터의 말에 김세용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다른 길드들의 스탠스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일단 원 픽은 바로 나. 그리고 김세용은 꿩 대신 닭 정도는 된다고 평가하는 듯했다.

‘그런데 붉은 늑대들은…….’

정작 내가 관심 있는 쪽에선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있었다.

이번 기수의 예상 1위라던 붉은 머리 녀석을 키우고 있다더니, 겨우 그놈 하나만 영입하고 끝내는 것이라면 실망이다.

‘내가 너무 심하게 팼나?’

어쩌면 역효과가 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그들이 애지중지 키우던 유망주를 그런 식으로 박살 내 버렸으니 내게 악감정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붉은 늑대들은 나와는 인연이 없는 것으로.

애당초 내가 이곳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광산에서 만난 야렌의 ‘죽일 놈들’ 발언 때문이었는데, 따지고 보면 호기심 이상의 감정까지는 아니었으니 다른 곳으로 가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퀘스트의 조건은 5대 길드 중 하나에 가입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최고급 요리도 좋고 최상의 룸서비스도 다 좋은데, 제가 좀 바쁜 관계로 여기 이 자리에서 들어 봅시다. 영입 조건 말입니다.”

“여기 이렇게 서서요?”

“왜요? 안 됩니까?”

“아…… 안 될 건 없지만…….”

갑자기 김세용은 날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이놈에겐 좀 미안하지만 그런 것들에는 별 관심이 생기지 않을뿐더러 하나하나 따로 만나 보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퀘스트를 달성하기 위해선 내일까지 계약서에 사인을 해야 하니까.

그리고 다들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조건을 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자, 피차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이 자리에서 얘기해 보세요. 가장 마음이 가는 쪽으로 내일 직접 계약하러 갈 테니 말이죠.”

다들 내 말에 서로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아무래도 영입 조건은 민감한 사인일 테니까.

“저희 쪽에선 주급 7만 헤스와 함께 아름다운 앙느강 뷰를 자랑하는 최고급 빌라를…….”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곳은 그믐달 길드였다.

한번 물꼬가 트이는 것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다들 술술이었다.

“저희 웅크린 하늘에서는 주급 7만 5천 헤스를 보장하겠습니다. 또한 저희 길드에서 자체 제작한 최상급의 장비를 풀 세팅으로…….”

“달빛의 유령은 주급으로 7만 5천 헤스와 함께…….”

“바람 길드입니다. 저희는 주급 9만 헤스까지 맞춰 드리겠습니다! 방금 윗선으로부터 지시가 내려온 바에 따르면…….”

“그믐달 길드입니다. 주급 조건을 정정하여 저희도 9만 헤스까지는…….”

마치 분위기는 경매장을 연상시켰다.

시간이 갈수록 내 몸값은 올라가고 있는데, 사실 그들이 제시하는 조건 중엔 나에게 쓸모없는 것들도 많았다.

내가 이곳 27층에 영원히 머무는 것은 아니니까.

주급의 형식보다는 조건을 낮춰서라도 일시불로 받는 것이 내게 유리하며, 고급 거주 시설보다는 다음 층으로 계속 챙겨 갈 수 있는 아이템이 훨씬 유익하다.

또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김세용과 내가 동반으로 길드에 가입하는 것.

녀석은 27층 군주의 총애를 온몸으로 받고 있으니, 이놈과 함께 다닌다면 내가 겪을 난관도 한층 줄어들 테니 말이다.

나는 스카우트들에게 그러한 나의 뜻을 피력했다.

“영입 조건으로, 마력 회복 속도를 50퍼센트 증가시켜 주는 ‘파이스의 반지’를 드리죠.”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

탑에서 가장 중요한 정량적 능력치는 단연 마력이다.

검술의 상위 초식들은 보통 마력을 먹는 하마이며, 홍염의 불도깨비 역시 연사로 탄환을 갈길 때마다 마력을 쭉쭉 빨아 간다.

‘마력 회복템은 처음 보는군.’

탑을 27층까지 등반하며 처음 접하는 특성의 아이템.

놓칠 수 없는 제안이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갑자기 영입 전쟁에 끼어든 뉴 페이스라는 것이다.

퀘스트 달성 조건은 5대 길드 가입이니까 말이다.

“어디서 오셨죠? 갑자기 들어온 뜬금없는 제안이라.”

게다가 분위기도 다른 스카우터들과는 살짝 다르다.

영업직이 아닌, 칼잡이 특유의 피 냄새가 느껴진다.

“붉은 늑대들에서 나왔습니다.”

그자는 나를 보며 씨익 웃으며 자신의 팔목을 드러냈다.

늑대 문양의 문신.

붉은색이었다.

* * *

“형,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은 거야?”

“왜? 마음 바꾸게? 지금이라도 가고 싶은 곳 있으면 가든가. 안 말릴게.”

“아니,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나한테 끌려다니는 게 싫은 거라면 네 길은 네가 알아서 결정해. 어차피 어제 조건은 다 들어 봤으니까.”

[5대 헌터 길드에 가입하십시오.]

[남은 시간: 8시간 1분 43초]

김세용은 계약을 하러 가는 내내 투덜거렸다.

그리고 지금은 붉은 늑대들 길드의 사옥 앞.

나는 녀석에게 마지막 기회를 줄 생각이다.

사실 김세용의 불만도 조금은 이해가 간다.

27층을 시작하자마자 호감도 폭발에, 홀로 권능마저 부여받았으며, 전투 모드일 때에는 버프 효과까지.

이곳에서만큼은 본인이 주인공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나로 인해 산산이 깨져 버렸고, 길드 가입도 나와 함께하는 모양새가 부록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내 탑 팔자에 가긴 어딜 가겠어. 그냥 형이나 따라가야지.”

“후회 안 해?”

“그냥 하소연 한번 해 본 거야! 안 간다고.”

“잘 생각했다.”

사실 호구 계약을 안 당하려면 나랑 함께하는 쪽이 낫다.

이놈은 말로만 거칠지 영 허당이니까.

게다가 자유도 높은 27층의 미션에서 이놈을 혼자 두었다가는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니 내가 옆에서 항상 컨트롤하는 쪽이 안전할 것이다.

아무리 녀석이 얼굴 천재라는 이유로 군주의 총애를 받는다지만, 최소한의 안전핀은 필요한 법이다.

우리는 사옥에 들어서는 순간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엘리베이터로 안내되었다.

“오늘 계약은 마스터께서 직접 진행하신다고 합니다.”

딱 봐도 비서인 여인은 사옥의 탑층 버튼을 누르며 상냥하게 안내했다.

“이 길드에선 보통 마스터가 신입 계약까지 챙깁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제가 마스터를 모신 이래로 이런 경우는 처음이니까요.”

“그럼, 오늘은 왜 그런다고 생각하세요?”

내 질문에 비서는 싱긋 웃는다.

“글쎄요. 아주 비싼 계약이니까?”

“그렇습니까?”

마나석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탑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두 개의 문이 나타난다.

하나는 마스터의 집무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서재였다.

“마스터께서는 지금 잠시 회의 중이시니 서재에서 잠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서재. 그곳엔 우리 외에 한 사람이 더 기다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처음 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붉은 머리?’

우린 서로 눈이 마주쳤다.

하긴, 녀석이 이곳에 있는 것이 의외의 일은 아니다.

이 길드에서 야심차게 키운 유망주라고 하며, 녀석도 어제 시험에서 합격을 했으니까.

‘나한테 좀 험하게 맞기는 했지만, 실력으로 따지면 두 번째는 확실했지.’

나를 바라보는 놈의 눈빛에선 독기가 흘렀다.

왠지 김세용이 사고를 칠 것 같았기에 서둘러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냥 입 다물고 있으라고 말이다.

기다리는 동안 서재에 앉아 조용히 준비된 차를 마셨다.

김세용은 이곳의 다과가 입에 맞았는지 우걱우걱 씹으며 만족하는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마스터란 작자의 회의가 늦어지며 이곳에서의 침묵의 시간은 더 길어졌다.

그리고 오랜 적막을 깨뜨린 것은 붉은 머리.

“착각하지 마라.”

날 두고 하는 이야기인 거 같은데, 참 뜬금없다.

“착각?”

“네가 나보다 강할 거란 착각. 어제는 시험 규칙에 따라 맨주먹으로 싸웠을 뿐이니까.”

결국 그런 이야기였다.

뭐라도 들고 싸웠으면 본인이 졌을 리가 없을 거란 레퍼토리.

예를 들어 자신의 장기는 검술이라던가 말이다.

“맨주먹이 아니었으면?”

“나는 여섯 살에 처음 검을 잡은 이후, 평생을 검과 함께 살아왔다.”

마음을 읽은 것도 아닌데, 내 예상은 한 치의 빗나감도 없었다.

- 163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