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다들 얼른 뛰어! 결계가 굳어 버리기 전에 탈출해야 해!”
팀장 야렌의 다급한 외침.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람들은 갱도 밖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으며, 알람은 여전히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 2급 게이트 발생! 2급 게이트 발생!
- 신속히 대피하십시오!
‘2급 게이트라…….’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재난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서둘러 사람들을 따라 달렸다.
물론 티그나노그의 룬을 인벤토리에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차라리 잘됐군.’
광물을 빼돌릴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는데, 어쩌면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릴 것도 같았다.
이곳 사람들이 말하는 게이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신참! 거기서 뭐 해! 빨리 뛰어!”
팀장 야렌이 잠시 달음질을 멈추고는 나를 챙기고 나섰다.
그는 내가 쉽게 오르막을 오를 수 있도록 손을 내밀었다.
굳이 필요 없는 도움의 손길이지만 거부하진 않았다.
“고맙습니다. 팀장님.”
그의 거친 손이 나를 끌어당겼다.
“이 은혜 잊지 마.”
“네. 그러죠.”
“만약 오늘 살아남는다면 내 밑으로 들어오는 거야. 알지?”
“……그건 좀.”
“일단 서둘러!”
우리 둘은 가장 후위에서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몇 걸음 달리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야렌의 거친 호흡 소리가 들려온다.
말로는 서두르라고 하는데 정작 자신은 그러지 못한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이 거친 갱도를 오래 달리는 게 쉽지 않은 것.
이미 팀원들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이봐 신참!”
“네.”
“그냥 날 앞질러서 어여 가! 서두르면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결계 말입니까?”
“그래, 알람이 울린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아직 결계가 말랑말랑할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큰소리쳐 놓고서 혼자 낙오하시게요?”
“낙오는 무슨! 뜀박질 좀 못한다고 내 몸 하나 건사 못할까 봐서? 어여 가! 결계 닫히기 전에!”
“말하지 말고 빨리 뛰기나 해요.”
“에잇! 시부럴!”
뛰는 폼을 보아하니, 역시 몸이 마음 같지 않은가 보다.
그래서 생각해 낸 비장의 한수.
캥!
캥수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 이게 뭐야!!”
야렌은 캥수를 보더니 놀라서 거의 자빠질 뻔했다.
“탄광에 사는 동물인가 봅니다!”
“말도 안 돼! 내 수십 년 탄광 짬밥에 이런 게 있단 얘기는 듣도 보도 못했어!”
나는 뒷걸음질을 치는 야렌을 들어 올려 캥수의 등에 태웠다.
“시…… 신참!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타고 가시죠. 딱 봐도 탈 수 있게 생겼잖아요?”
휘익-
나 역시 캥수의 등에 함께 올라탔다.
“출발!”
캥!
“신참! 돌았어?”
내 명령에 캥수는 좁은 갱도를 종종걸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길이 협소하다 보니 덩치 큰 캥수가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했지만, 다른 팀원들의 꽁무니를 쫓을 정도는 되었다.
“혹시 겁나세요?”
“겁나긴 개뿔!”
하지만 염소처럼 떨려 오는 목소리.
한껏 경직된 자세에 등에는 식은땀도 흥건했다.
“그런데 팀장님, 2급 게이트가 그렇게 위험한 겁니까?”
“말해 뭐 해! 오우거급 몬스터가 쏟아져 나올 텐데.”
“그렇군요.”
게이트라는 게 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앞에 붙는 2급이라는 건 몬스터 종의 위험도나 규모 같은 것들을 의미할 테고, 결계의 의미도 대충은 짐작이 된다.
‘그리고 오우거면…….’
탑에서도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상위종의 몬스터.
[호감도: -11]
어쩌면 이게 문제일지도 모른다.
호감도가 낮아질수록 생존이 힘들어질 거라 했으니까.
이곳에 2급 게이트가 나타난 것도 아마 나 때문일지도 모른다.
“팀장님, 긴장 푸세요. 요 녀석이 설마 오우거만큼 위험하겠어요?”
캥!
“긴장 안 했대도!”
드디어 갱도의 끝이 보인다.
그럼, 오랜만에 몬스터 사냥이나 좀 해 봐야겠다.
* * *
야렌은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그의 바람과 달리 광산에 펼쳐진 돔 형태의 결계는 이미 견고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
그리고 허공 위에 펼쳐진 푸른빛의 균열은 이곳 사람들이 말하는 일명 게이트임을 알 수 있었다.
“젠장! 이제 다 틀렸어! 이런 촌구석까지 헌터들이 출동하려면 적어도 두어 시간은 더 걸릴 텐데!”
야렌이 말하는 헌터란 아마도 몬스터를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일 터.
그래도 균열 밖에서 안쪽으로 진입하는 것은 가능한가 보다.
“그럼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없다고요?”
“그래!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를 모조리 정리하지 않는 한.”
야렌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간단하네요.”
“뭐?”
“정리하면 된다면서요?”
“하아!”
야렌은 날 미친놈 보듯 바라보았다.
이미 탄광 주변은 아수라장.
사람들은 이미 굳어진 결계를 두드리며 아우성을 쳤다.
우리와 같은 갱도에서 채굴을 하던 팀원들은 여전히 결계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 세계의 문외한인 내가 봐도 소용없는 일이란 걸 알 수 있다.
결계 밖으로 무사히 빠져나간 사람들은 이 안의 사람들을 보며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동정이나 연민의 느낌은 아니다.
놀랍게도 뭔가 잔뜩 짜증이라도 난 느낌?
저들은 대부분 탄광 관리자들이니, 이번 게이트로 발생할 손실을 계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몬스터를 다 정리하면 결계가 열릴 테고, 반대로 우리가 전부 정리당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죠?”
“세 살 먹은 어린 애도 아니고, 그걸 정말로 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세 살은커녕, 아직 이 세계관 속에서 세 시간도 채 보내지 않았으니까.
“……네.”
“이 결계 안의 공간은 허허벌판으로 변해 버리겠지. 당연히 광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고.”
“그렇군요.”
결계 바깥쪽 사람들이 지은 표정의 의미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자네 혹시, 죽기 전에 속 시원히 털어놓고 싶은 비밀이라도 있나?”
“팀장님은 있나 봅니다?”
“그래 있지. 사실 나는 고자라네.”
“네?”
“태생부터 고자였어. 남들에겐 여자 깨나 후리고 다닌 척을 했지만 말일세.”
깜빡이고 켜지 않고 들어온 야렌의 고자 고백에 적잖이 당황스럽다.
“이렇게 밝히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군. 신참 자네는 비밀 같은 거 없는가?”
“……없는데요.”
“비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무덤까지 가져가지 말고 어디 한번 말해 보게.”
야렌이 날 재촉했지만, 말해 줄 생각은 없다.
오늘 여기서 죽을 생각 역시 없으니까.
구오오오오!
그리고 마침내 허공에 일렁이는 푸른빛의 게이트는 결계 안으로 무언가를 뱉어 내기 시작했다.
“오우거야 오우거!!”
2급 게이트에서는 오우거급이 나온다더니 정말로 오우거가 등장했다.
그것도 무려 여섯 마리.
거기에 수십 마리의 코볼트 떼가 소란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게이트에서 튀어나왔다.
“이제 다 끝났어! 인간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 놈들이니, 도망쳐 봐야 소용도 없겠지. 신참 자네는 어쩔 셈인가?”
이미 내 손엔 총이 들려져 있었다.
마침 이곳은 지대가 높아 시야 확보에도 아주 유리하다.
“겁나시면 다시 갱도 안으로 들어가 계셔도 됩니다.”
“소용없다니까, 그나저나 자네! 손에 들고 있는 그건 뭐지?”
이곳 세계관엔 총이 존재하지 않는 모양.
“보시면 압니다.”
일단은 오우거가 우선이었다.
오우거가 쓰러지고 나면 다들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몰려올 테니까.
타아아앙!
마력의 탄환은 한 오우거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손맛이 좋은 것이 크리티컬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다.
파아악!
‘역시!’
오우거의 머리통이 피를 튀며 터져 나갔다.
제아무리 상위종 몬스터라 해도 머리가 터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트롤처럼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결계 안의 사람들, 결계 밖의 사람들, 그리고 모든 몬스터들의 시선까지도 총성의 진원지를 향했다.
바로 내가 서 있는 이곳.
“시…… 신참!”
“이제부턴 원샷 원킬은 좀 어려워요. 저놈들도 대비를 할 테니까.”
나는 입이 떡 벌어진 야렌을 보며 씨익 웃어 주었다.
코볼트 떼는 성나게 울부짖으며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고, 남은 다섯 마리의 오우거 역시 나를 주시했다.
타아앙!
타아앙!
이번에도 타깃은 오우거.
손에 들고 있는 방패를 들어 머리를 보호하는 모습이다.
“신참! 코볼트가 몰려오고 있다고!”
야렌의 목소리가 다급해진다.
“알고 있어요.”
타아앙!
가슴에 탄환을 맞은 오우거 한 마리가 그대로 땅에 고꾸라진다.
“신참! 코볼트가 코앞이야!”
타아아앙!
나는 쓰러진 오우거에게 확인사살용으로 한 발을 박아 넣고는 엘리시온을 꺼냈다.
“팀장님의 비밀은 꼭 지켜 드릴게요.”
스으으으윽!
허공에 그려 낸 기다란 직선에 피 분수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 * *
몬스터를 정리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버렸다는 것.
게다가 총을 사용한 것도 문제였다.
‘이곳 세계관에는 없는 물건이니까.’
성가신 상황에 빠지는 것은 질색이었기에 바로 자리를 떴다.
균열이 생긴 이후에 이곳 탄광은 어차피 아수라장이었기에, 나는 캥수를 타고 거침없이 달렸다.
물론 야렌과 함께였다.
오늘 저녁밥과 술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야렌으로부터 이곳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아 둘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남은 시간: ???]
[호감도: -3]
호감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여전히 마이너스 수치이니 불호라는 의미.
그래도 활약을 펼치면 호감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적절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제나가 당부한 것도 있으니 너무 높아도 곤란하다.
캥수를 타고 한창 달리고 있을 무렵,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개인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5대 헌터 길드에 가입하십시오.]
[성공 시: 호감도 +20]
[실패 시: 호감도 -40]
[제한 시간: 4일]
5대 헌터 길드?
그건 오늘 밤 야렌을 통해 알아보면 될 일이고, 실패 시 얻게 될 페널티가 상당히 크다.
마이너스 11일 때 상대한 오우거는 할 만했지만, 호감도가 확 내려갔을 때는 어떨지 자신할 수 없다.
‘제나가 절대로 -51은 찍지 말라고 경고했을 정도니까.’
이곳 27층에선 그냥 버티고 생존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오산이었다.
일단 퀘스트는 달성해 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캥수를 타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제넷 광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어느 마을의 주점.
이동하는 내내 야렌은 별말이 없었기에 살짝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다.
역시 이럴 땐 술이 특효다.
“게이트도 정리됐고, 무사히 현장도 빠져나왔어요. 그러니 표정 좀 피셔도 될 거 같은데요 팀장님.”
그러면서 나는 야렌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그는 바로 한 잔을 들이켜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신참, 자네는 정체가 뭔가?”
캥수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머리가 복잡했을 것이다.
오늘 희한한 일들이 참 많이 있었다.
광산에 처음 들어온 신참이 희귀 광물을 발견한 것 하며, 뜬금없이 광산에는 2급 게이트가 발생했고, 결계 안에서 죽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다니.
“제 정체는…… 이제는 예상하고 계시겠지만, 광부는 아닙니다.”
“그럼 혹시 헌터?”
“정확히 헌터라는 게 뭔가요?”
“허허! 날 놀리는 것도 아니고!”
“놀리는 것일 리가 있겠습니까?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게 맞습니다.”
“참나!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원!”
퀘스트를 하기 전에 일단 헌터라는 것에 대해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그 5대 길드라는 것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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