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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56화 (156/292)

156화

타아앙-

오직 나만 들을 수 있는 총성.

총구를 떠난 마력의 탄환은 창문의 유리를 그대로 녹여 버리며, 전방의 시야를 훤히 개방했다.

물론 창을 소멸시킨 후에도 탄환의 추진력은 여전히 매서웠으며, 오크의 머리통을 뚫어 버리기에 충분한 힘이었다.

“진입!”

내 지시에 따라 우리는 일시에 오크의 성 4층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여기까지는 매우 성공적이다.

취…… 이…… 이…… 이…….

내가 쏜 총에 맞은 오크는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내며 꿈틀거리더니 결국 움직임을 멈추었다.

‘첫 살인.’

저것은 괴물이 아닌 명백한 플레이어다.

포식자의 특성을 얻은 이후 처음으로 저지른 PK.

살생은 가급적 피하자는 입장이지만, 이런 순간까지 머뭇거릴 수는 없었다.

상대는 괴물의 탈을 쓰고 있었기에, 나는 정보를 볼 수 없었고 힘을 조절하기 위한 여유는 부리지 않았다.

설령 페널티를 받아야 할지라도 말이다.

[금단의 살인이 발생하였습니다.]

[플레이어 이호영에게 페널티를 부과합니다.]

첫 페널티.

살짝 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극도로 재수가 없으면 스탯 포인트 200이 증발해 버리니까.

[201면체의 랜덤 주사위가 돌아갑니다.]

지금 믿는 구석은 오직 니케뿐이다.

[0이 나왔습니다.]

[0포인트의 스탯이 랜덤으로 소멸합니다.]

역시!

니케의 반지가 괜히 신화급 아이템인 것이 아니다.

특히 이런 랜덤의 상황에선 극도로 강한 면모를 보여 주니,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다.

취이이이이!

우리가 4층으로 진입하여 난장을 피우자, 이곳에 있던 오크 떼들이 일제히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아주 쉽게 추측할 수 있다.

3층에 있는 동료들에게 서둘러 올라오라는 의미일 터.

‘미안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야.’

마법사인 이문학 이문성 형제에게 지시를 내려놓은 것이 있다.

4층으로 향하는 양 끝 계단 통로 주변에 광역 결계를 펼쳐 놓기.

결계 자체가 마력을 상당히 잡아먹는 고위 마법인지라 쓸 만한 방어력을 구축하는 건 이들 수준에서 불가능하지만, 소리를 차단하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뭐, 모기 소리 정도로는 들리겠지만.’

이 정도면 시간을 벌어 놓기에는 충분하다.

미니맵 상으로 보면 오크 전력의 80퍼센트는 현재 3층에 있으며, 20퍼센트 정도가 4층에 있는 상황.

그리고 조병국은 이미 3층과 2층을 와리가리 하며 어그로를 제대로 끌고 있는 모양이었다.

미치도록 민첩한 데다가 직업도 궁수이니, 여간해서는 잡힐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2층에서 제대로 맞은 탄환은 예방 주사인 셈.

시나리오대로 완벽하게 일이 진행되고 있으니, 애초에 목표했던 전원 생존은 달성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나이스! 이호영 씨!”

서준호가 오크의 목을 베어 내며 내 작전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확실히 괴물의 탈을 쓰고 있으니 PK에서 오는 거부감이 희석된다.

[남은 시간: 44분]

우리뿐만 아니라 저쪽 편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빠르게 미션을 수행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은 4층 어딘가에 존재할 오크 문양의 깃발.

미니맵을 보며 어디에 있을지 대충 찍어 놓은 곳이 있다.

“저는 가 볼 곳이 있으니, 다들 여기를 부탁합니다.”

“야, 이호영! 작전 명령은 내려 주고 가야지!”

“남소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남소현이 내게 명령을 내려 달라니, 아주 어이가 없다.

나는 4층의 한쪽 구석을 향해 서둘러 달려갔다.

타아앙-

나를 저지하기 위해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오크의 허벅지에 탄환을 박았다.

쓰러진 오크의 몸을 그대로 뛰어넘으며 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나만이라도 살생은 최소화해 볼 생각이다.

타아앙-

타아앙-

계속해서 밀려오는 오크들.

역시 저곳에 깃발이 있긴 한가 보다.

심지어 총을 맞은 오크들은 상처 난 허벅지를 부여잡고 나를 쫓고 있다.

‘물약을 쓴다 해도 총상의 고통이 상당할 텐데!’

놀라우면서도 소름 돋는 광경이었다.

플레이어가 아닌 한낱 몬스터였다면 절대로 발휘할 수 없는 정신력.

당연하게도 저들의 입장에서는 처절하게 방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빌어먹을 탑!’

우리는 서로 괴물의 탈 뒤에 숨겨진 진짜 얼굴도 모르며, 당연히 원한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연민과 감정에 젖어 있을 여유는 없었다.

타앙!

타앙!

날 뒤쫓던 오크들은 또다시 반대쪽 다리를 맞고선 고꾸라졌다.

등 뒤에선 처절하게 울부짖는 오크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결국 도착하게 된 4층의 맨 오른쪽 끄트머리.

언뜻 봐선 알 수 없는 은밀한 공간이 있었으며, 그곳엔 두 마리의 오크가 무언가를 지키고 있었다.

취이이익!

취이이익!

필사의 항전을 다짐한 오크들의 집념이 괴성을 통해서도 느껴진다.

안타깝지만 내가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타아앙!

한 손으로는 방아쇠를 당겼으며,

쑤우욱!

다른 한 손으로는 엘리시온을 오크의 가슴팍에 찔러 넣었다.

치명적인 급소는 일부러 피했다.

쿠우웅!

쓰러진 오크들의 등 뒤에는 예상대로 깃발이 꽂혀 있었다.

함정도 속임수도 아닌 명백한 오크 문양의 깃발!

이번 26층의 끝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타아아앙-

그리고 갑자기 울린 총성.

내가 쏜 것이 아니다.

‘뒤?’

몸을 틀어, 반사적으로 엘리시온을 들어 올렸다.

챙!

탄환은 엘리시온을 스치며 복부를 향해 날아온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고통.

이마저도 방어하지 못했다면 훨씬 더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총 쏘는 오크!’

이번 미션의 최대 난관.

3층에 있던 이 녀석이 결계를 깨고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제 3층에 있는 오크 떼들이 이곳으로 밀려올 터.

서둘러 이번 미션을 끝내야만 했다.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총구는 마구 불을 뿜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아낌없이 연사를 갈겼다.

마력도, 물약들도 실시간으로 쭉쭉 달아간다.

‘채이설이라도 데려올 걸 그랬나!’

하지만 여전히 유리한 것은 내 쪽이다.

나는 뒷걸음질을 치며 깃발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으니까.

다급해진 녀석은 총을 갈기며 나를 향해 달려온다.

취이이이익!

이렇게 접근해 주면 내 입장에선 고맙다.

내 오른손엔 총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엘리시온이 들려 있다.

‘무영추혼검!’

내 영혼의 검술이 펼쳐졌다.

아주 간결하게.

쑤욱!

나는 달려드는 녀석의 가슴에 엘리시온을 찔러 넣었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한 치의 오차 없이 내가 노린 그곳에서는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

취이이이익!

가슴을 관통당한 오크는 처절한 신음성을 토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손서연!’

또다시 떠오른 그 얼굴.

정말로 이 녀석이 손서연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 마력을 폭발시키며 검을 찔러 넣었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녀석은 죽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지체 없이 등 뒤의 깃발을 잡아 이번 26층을 끝내 주는 것.

나는 뒷걸음을 치며 손을 뻗었다.

촤악!

손아귀에 깃발이 감기며 메시지가 들려왔다.

[오크 문양의 깃발을 획득하였습니다.]

[26층을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30,400 골드를 받습니다.]

일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생존에 성공하였으니까.

게다가 보상 골드를 넉넉하게 챙기며 엘릭서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영혼 치유 좀 하자.’

26층이 종료되며 배경이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상대방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

[수성에 실패한 구역에는 재앙이 내려집니다.]

재앙.

쉬워 보이는 단어는 아니다.

그저 건투를 빌 뿐이다.

이 녀석이 손서연이든, 아니든.

바닥에 쓰러진 오크들의 모습이 더없이 처량해 보인다.

그리고 그 순간,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하나 더 있었다.

[차원의 틈새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입장료: 72,400 골드]

‘어?’

이 메시지는 분명 제나가 보낸 것.

한번 연결고리가 만들어졌으니, 또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했지만 이렇게 바로일 줄은 몰랐다.

그나저나 입장료 금액이 미쳤다.

정확하게 내 전 재산으로 책정하다니.

이제는 엘릭서를 살 수 있나 싶었는데 가볍게 무산되었다.

나는 한숨 한번 푹 내쉬고는 차원의 틈새로 이동했다.

* * *

“구역질 나!”

제나는 나를 보자마자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 나한테서 냄새가 난다고?”

“그렇다니깐! 오염된 영혼에서 냄새가 안 날 리가 없잖아, 이 멍청아.”

제나는 인간이 아니라더니, 오감이 아닌 다른 종류의 감각을 가진 듯했다.

절대 감각을 가진 내가 맡지 못하는 냄새가 있을 리도 없으니.

“야, 이호영! 그러니깐 내가 너 영혼 치유 좀 하라고 했지!”

그럴 생각이었다.

이런 식으로 내 전 재산을 가져가지 않았더라면.

100골드도 남김없이 절묘하게 다 털어 간 걸 보면 분명 알면서도 저러는 것.

생각해 보니 살짝 화가 나려고 한다.

해맑은 소녀의 모습으로 날 농락하다니.

“이런 식으로 놀리면 꿀밤 한 대 쥐어박을지도 몰라.”

나이상으로는 내 할머니의 할머니뻘이라는데, 어린아이를 대하는 말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제나의 비주얼 자체가 어린아이니까.

“날 쥐어박는다고? 푸핫!”

“왜? 못 할까 봐?”

“당연히 못 하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

말투가 얄미워서 정말로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었다.

“야 이호영! 네가 날 쥐어박을 수 있으면, 쿨하게 입장료 돌려준다.”

“너한테 그럴 권한은 있고?”

“비록 내가 그분의 대리인이긴 하지만, 이 정도 재량은 있거든.”

“콜!”

안 할 이유가 없다.

제나가 평범하지 않으리라는 건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다.

‘이 녀석의 격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식은 죽 먹기겠지만, 인간이 아니어서인지 영 읽을 수가 없다.

“그럼 간다!”

휘이이익!

일단은 꿀밤 수준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내리찍었다.

‘혹시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그게 아니면 잠시 시간을 멈춘다거나.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퍼어어억!

전력으로 휘두른 내 주먹은 정확히 제나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순간 뇌정지가 오는 느낌.

제나는 맞은 머리를 부여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너, 진짜 미친놈 아니야?”

이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순간 나는 아동학대범이 되고 말았다.

비록 제나가 진짜 어린아이는 아니지만 격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미안!”

“어이없어! 지구에선 사람 죽이려고 꿀밤을 때리나 보지?”

“당연히 피할 줄 알았지.”

“이걸 어떻게 피해!”

“내가 널 때릴 수 없을 거라며!”

“이 나쁜 놈아! 그분께서 입장료를 돌려주라고 명하셔서, 일부러 건수를 잡은 건데 호의를 이딴 식으로 갚는다고?”

“그럼 곱게 돌려줬으면 됐을 것을.”

“이 재미없는 놈!”

제나는 손으로 연신 정수리를 문질렀다.

[72,400 골드가 전송되었습니다.]

[좋냐?]

좋긴 한데 유구무언이다.

따지고 보면 잘못한 것도 아닌데 큰 죄를 지은 느낌.

“그런데, 날 차원의 틈새로 호출한 이유는 뭐야?”

“안 알려 줘!”

단단히 삐친 모양이다.

[나쁜 놈!]

이젠 등을 돌리며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해삼!]

[말미잘!]

[멍게 같은 놈!]

...[바보!]

[멍청이!]

[똥개 같은 놈!]

그렇게 제나는 메시지로 한참을 날 비난했다.

그리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27층부터는 아주 중요해질 거야. 네가 이곳에 다시 오게 된 이유지.”

“……어떤 식으로 중요하다는 건데?”

“이 탑을 떠받치고 있는 열두 개의 기둥. 내가 그 말을 했던 거 기억하지?”

“어. 그중 하나가 네가 모시는 분이라고 했었고.”

“생존자들은 이제 그분들의 영역을 차례로 경험하게 될 거야.”

추가 설명을 더 들어 봐야겠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이야기임은 분명해 보였다.

- 157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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