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총소리.
비록 미약하게 들렸지만, 방금 전의 그것은 분명 총소리였다.
“아무 소리도 못 들으셨다고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호영 씨는 무언가 들은 건가요?”
“네. 좀 더 확인해 볼 필요는 있지만.”
확실히 이상했다.
절대 감각으로 인해 내 청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밝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청력의 차이로 들리고 말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미니맵을 주시해 보기로 했다.
방금 전 울린 그 총성의 진원지를 찾아야 했으니까.
방어하는 입장에서 총을 가지고 있다는 건 매우 유리한 조건.
반대로 말하면 우리에겐 성가신 난관이 될 거란 의미다.
만약 상대편에 저격수가 있다면 그놈부터 찾아 족쳐야 한다.
‘역시!’
미니맵을 주시하다 보니 의심이 가는 곳이 한 군데 있었다.
2층의 중앙. 그곳에는 3층으로 올라가는 유일한 계단이 있다.
그리고 그 계단의 위에서 고고히 움직이지 않은 채 서 있는 하나의 붉은 점.
만약 저격수가 존재한다면 저곳일 공산이 크다.
[캥수 소환이 불가합니다.]
아쉽다.
이번 판엔 캥수를 써먹을 수 없다니.
‘그런데 저놈은 혹시 살성인가?’
총이 살성 전용의 무기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 두 명의 저격수는 모두 살성.
그 점도 염두에 두어야만 했다.
“이호영 씨! 바로 2층으로 올라갈까요?”
“네, 아마도 1층의 오크들은 반대쪽 일행이 이미 정리했을 테니, 후방 쪽은 신경 쓰지 맙시다.”
“1층을 너무 수월하게 지나가니까 불안한데요?”
“적당한 불안감, 아주 좋습니다. 긴장들 하세요. 2층부턴 쉽지 않을 수 있으니.”
나는 선두에서 계단을 오르며 미니맵을 계속 주시했다.
2층의 반대쪽 끝엔 여러 개의 점들이 뭉쳐 있다.
반대편 성문으로 진입한 또 다른 일행이 오크떼와 난전을 벌이고 있는 것.
그리고 그 순간.
타아앙-
또 한 번의 총성을 들었다.
사운드는 미약하지만, 분명 2층에서 발생한 소리였다.
‘이번에도 나만 들은 건가?’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걸 보면 역시 그런 듯했다.
미니맵 상으로 볼 수 있는 난전의 양상은 여전했다.
이것 또한 이상한 일이다.
남소현 일행의 전력은 상당한 수준. 그럼에도 앞으로 전혀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무언가 고전의 요소가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방금 들린 총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이호영 씨, 저기!”
2층으로 올라오니 반대편 끝에서 오크들과 대치 중인 남소현 일행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절대 시각]을 펼쳐, 100여 미터의 거리를 줌으로 당겨왔다.
고전하고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다.
힘겨워하는 얼굴 표정에 상처로 얼룩진 옷가지들.
“빨리 가서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잠시만요.”
나는 한쪽 팔로 서준호를 제지하며, 잠시 이동을 멈추었다.
중앙 계단 부근의 붉은 점.
지금은 벽에 가려져 보이지 않으나 분명 저곳에도 오크가 있다.
공략집이 내게 조심하라고 경고한 ‘위험한 오크’.
99퍼센트의 확률로 바로 저곳에 있는 놈이다.
“이호영 씨, 갑자기 왜…….”
“찝찝한 부분이 있으니 확인만 해 보고 가죠?”
“……역시 뭔가 있는 건가요?”
“아마도요.”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2층의 중앙 계단.
잠시 후, 그곳에서 벽 너머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성안에 존재하는 다른 오크들과 전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크기.
녀석은 산책하듯이 걸어 나와 여유롭게 남소현 일행 쪽을 바라보았으며, 천천히 한쪽 팔을 뻗었다. 그리고는.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이번엔 다섯 발의 총성.
그리고는 다시 벽 너머로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방금 뭐였죠?”
“잘 안 보이지만 무슨 일이 벌어진 거 같은데!”
역시, 나 외에는 아무도 총성을 듣지 못한다.
그건 반대편 일행들도 마찬가지.
“호영 씨! 방금 전 저쪽에서 뭔가 번쩍이지 않았나요?”
채이설이 제대로 봤다.
발사된 탄환은 독특한 형식으로 구현되었다.
‘마치 에너지파의 느낌?’
조금 더 가까이서 본다면 ‘마법 쓰는 오크’처럼 보일 지도 모른다.
어쨌든 괴물 녀석이 발사한 탄환은 한 치의 빗나감 없이 다섯 명 모두에게 명중했고, 남소현 일행은 난전 중이었던 오크 무리에 밀려 결국 1층으로 후퇴했다.
상대의 전력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
‘저 다섯 명이 밀린다고?’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살성 남소현조차 저 다섯 중에선 돋보이는 실력이 아닐 정도니까.
물론 저 ‘총 쏘는 오크’의 전력이 결정적이다.
중앙 계단을 홀로 지키며 원거리 공격으로 아군을 엄호하는 방식.
역시 저놈을 먼저 치우지 않고선 3층으로 진입하는 일은 요원할 것이다.
“후우.”
나는 심호흡을 한번 내쉰 후 중앙 계단을 향하는 벽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호영이 형, 도대체 뭘 하려고…….”
곡사.
차원의 틈새에서 선물로 받은 새로운 스킬.
궤적이 휘어지는 대신 명중은 장담할 수 없지만, 현재 꺼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임은 분명했다.
총 쏘는 오크의 시선을 내가 묶어 놓을 수만 있다면, 양쪽에서 중앙을 향해 진입하는 일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타아앙-
총구는 불을 뿜었고, 마력의 탄환이 호쾌한 직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탄환은 눈 깜짝할 새에 2층의 중앙까지 도달했고, 궤적을 비트는 일은 이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져야만 한다.
휘이익!
‘과연 녀석의 눈엔 이게 뭐로 보일까?’
우리가 본 것과 마찬가지로 오크가 쏘아 낸 에너지파?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
처음 시도해 본 곡사의 궤적은 아름답게 휘어져 날아갔다.
취익!
오크의 신음소리가 절대 청각을 타고 들어온다.
눈으로 볼 순 없지만 명중이 확실했다.
더군다나 무방비 상태에서 당했을 공산이 크니 충격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호영이 형!”
“이호영 씨! 제가 방금 눈으로 본 게…….”
“네. 휘어져 들어간 거 맞아요. 그리고 괴물 녀석은 곧…….”
우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취이이익!
괴성에서 분노가 느껴진다.
많이 당황도 했을 것이다.
놈에게도 지금 내 모습은 몬스터로 보일 테니까.
타아앙-
다시 총성이 울리며 탄환, 아니 에너지파가 날아온다.
피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복부로 박혀드는 이 느낌.
오랜만이다.
손서연에게 처음 당했던 그때의 충격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호영 씨!”
채이설이 즉시 치유 스킬을 전개하자, 고통은 희석되며 정신이 또렷해진다.
“고마워요.”
취이익!
취이이이익!
상대편에서도 새로운 지시가 내려온 모양.
2층에 있던 나머지 오크 무리들은 둘로 갈라져 그 절반이 우리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이제 한쪽으로 병력을 집중할 수 없게 되었으니, 우리 입장에선 해 볼 만해진 것.
남소현 일행도 다시 반대편에서 2층으로 진입해 들어왔다.
타아아앙!
타아아앙!
동시에 울린 총성.
우린 서로 한 발씩을 교환하며, 다시 피통을 깎아 먹었다.
취이익!
그리고 우리 쪽에서도 드디어 난전이 시작되었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다시 총구를 겨누었다.
물론 내 유일한 타깃은 저 멀리 ‘총 쏘는 오크’. 저쪽에서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녀석 입장에선 괴물을 상대로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테니까.
‘멸망전 한번 가 보자.’
내가 일대일로 저놈만 견제할 수 있다면, 남소현 쪽이든 우리 쪽이든 중앙을 향해 돌파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저 녀석의 상태창을 보면서 상대하면 더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다.
* * *
타아앙-
타아앙-
계속해서 울려 퍼진 총성.
이런 식의 멸망전은 자원 싸움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아주 돈지랄을 하나 보군.’
내 피통을 보전하는 것은 채이설이지만, 저쪽은 그렇지 못하다.
결국 골드를 소모하며 물약을 들이붓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적당히 하다가 후퇴할 만도 한데, 아직은 그럴 마음이 없는 모양.
심지어 가끔씩은 남소현 쪽으로 탄환을 발사하는 여유마저 부렸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싸움에 한 가지 유혹이 느껴진다.
‘라덴.’
에테르를 사용할 수 있다면 단번에 전세를 뒤집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내 영혼은 상당 부분 오염이 되어 있으며 아직 치유를 하지 못한 상태.
여기서 또 마왕과 거래를 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큰일이니 그 생각은 접어 두기로 했다
‘정말 위급한 상황이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래도 채이설 덕분에 자원의 소모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설 씨, 이제 치유 스킬 몇 번 안 남았죠?”
“이제 한 세 번쯤이요?”
채이설의 마력은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치유의 우산 속에서 저 녀석과 일대일을 벌일 수 없다는 의미.
‘일단 저놈은 살성이야.’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넘치는 마력의 양이 설명되지 않는다.
채이설과 마찬가지로 내 마력 역시 상당히 소모된 상태, 하지만 저쪽은 여전히 여력이 있어 보인다.
“이설 씨. 이제 마력은 아껴 두세요.”
“어떻게 하시려고요?”
“남소현이 드디어 오크 떼를 정리한 모양입니다.”
멸망전을 벌인 보람이 있었다.
이제 총 쏘는 오크도 내 쪽에만 신경을 쓸 수 없게 된 것.
조병국이 절대 민첩으로 빠르게 거리를 좁혀 간다.
녀석도 궁수인 만큼 사정거리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확실히 빠르군.’
주력은 거의 캥수 수준.
피융-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조병국이 활시위를 당기며 문제의 오크를 공격해 나갔다.
문제는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총의 위력도 배가 된다는 것.
타아앙-
제아무리 절대 민첩이 있다 해도 저 정도 거리에서 날아오는 탄환에는 속수무책일 것이다.
더욱이 전력으로 달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허어업!”
결국 조병국은 자리에서 고꾸라지고 말았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꼴.
게다가, 민첩성은 놀랍지만 내구성이 약한 것이 흠이다.
하지만 마냥 뻘짓만은 아니었다.
덕분에 저 오크는 잠깐의 시간 동안 내게 뒤를 노출했으며, 그것은 다시없을 기회가 되었다.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아아앙!
* * *
2층의 상황은 바로 종료되었다.
바닥에 쓰러져 누워 있는 오크 떼들.
일부는 죽었으며, 일부는 치명상을 입었다.
‘실제로는 플레이어들.’
일부가 치명상을 입은 것은 내가 마지막 순간 손속에 정을 두었기 때문이다.
포식자의 특성을 얻게 되며, PK가 더 꺼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포식자는 특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살인을 하는 순간 페널티를 받게 되니까.
‘내가 직접 살인을 하면, 랜덤으로 0~200사이의 스탯 포인트를 잃는다고 했었지.’
물론 니케의 반지는 랜덤으로 부여되는 페널티를 최소화해 주겠지만, 그래도 피할 수 있는 위험을 부담할 필요는 없다.
나는 죽은 오크들의 심장 위에 손을 얹었다.
어쩌면 몬스터로 인식되어 포식이 불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된다!’
이들의 본질은 플레이어였으니, 포식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내 상태창에는 골드와 스탯 포인트가 차곡차곡 쌓인다.
플레이어들이 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이들이 남긴 것을 버리고 갈 이유는 없었다.
“호영 씨, 그런데 그 마법 쏘는 오크, 아직 살아 있을까요?”
채이설이 물었다.
그놈 때문에 우리 둘, 고생 꽤나 했다.
“살아 있을 겁니다.”
미니맵으로 확인한 바로는 녀석은 현재 3층으로 도주한 상황.
“……그렇군요. 호영 씨가 정말 고생하셨는데.”
문득 나 자신에게 의문을 던지게 된다.
‘왜 그랬을까?’
마지막 순간, 나는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을 살짝 비틀었다.
살인 페널티를 피하려고?
어쩌면 그런 이유로 본능적인 판단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전력을 다한다 해도 죽일 수 있을지 장담할 순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떠오른 얼굴이 하나 있었다.
‘손서연.’
알 수 없었다.
왜 마지막 순간에 그랬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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