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나와 검으로 대련을 하겠다고?’
남소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총잡이 주제에 검투사인 자신을 검으로 상대해 주겠다니.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는데, 대화가 진행될수록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눈앞의 남자가 강하다는 것까지는 인정한다.
그 역시 본인과 같은 살성이니까.
‘그래, 약할 리가 없지.’
어쩌면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까지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이호영은 이곳 구역이 통합된 이후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해 왔다.
그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검술로 자신과 대련을 하겠다니.
심지어 세합을 먼저 양보하겠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들어와 남소현.”
저 여유만만한 태도.
이해할 수 없지만 마침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복수의 기회였으니까.
죄목은…… 무안을 주며 자신을 거절한 일.
적당히 상처를 내는 수준으로 혼쭐을 내줄 생각이었다.
휘이이익!
남소현은 가볍게 검을 뻗어 나갔다.
자운심검의 묘미는 부드러운 듯 호쾌한 찌르기 동작에 있다.
언뜻 보기엔 나비의 날갯짓처럼 여유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어느 순간 검 끝은 맹렬한 독사가 되어 날아든다.
지금 남소현이 노리는 곳은 이호영의 오른쪽 어깨.
그곳에 검을 찔러 넣어 검을 든 한쪽 팔을 무력화시킬 생각이었다.
‘이건 절대 못 피하지.’
이 정도 거리에서 행해진 기습 공격을 온전히 피해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
심지어 상대가 검의 문외한이라면, 검의 궤적 자체를 눈으로 좇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타악.
놀랍게도 이호영의 낡은 장검은 날카롭게 찔러 오는 남소현의 검 끝을 절묘하게 쳐 낸다.
어깨를 향했던 검의 궤적은 완전히 어그러져 버렸다.
“두합 남았어.”
씨익.
이호영은 남소현을 바라보며 거만한 미소를 보였다.
순간 남소현의 머릿속엔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이걸 쳐 냈다고?’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절묘한 방어였다.
심지어 검과 검이 부딪히는 순간, 저 낡은 장검에서 전해지는 마력의 파동은 꽤 익숙한 느낌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불현듯 머릿속엔 별호 하나가 떠올랐다.
‘천마!’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도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이 말도 안 되는 의식의 흐름은 착각임이 분명했다.
‘이호영 저 녀석이 방금 전 천마를 언급했기 때문이야!’
이호영이 어떻게 천마를 아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검을 쳐 낸 일합은 우연이거나 요행임이 틀림없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그런 생각으로 남소현은 두 번째 검을 펼쳤다.
이번에는 검에 마력을 한껏 실었다.
살초가 되어 버릴 수도 있지만, 지금은 저 거만한 미소를 치워 버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휘이이익!
타깃은 처음과 동일하다.
오른쪽 어깨.
원 포인트에 마력을 폭발시켜 피 분수를 만들어 낼 생각이다.
첫합과 달리 지금은 방심도 하고 있지 않으니, 실패는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타아아악!
검을 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강력한 반동.
어깨까지 찌릿한 느낌.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바보냐?”
이호영의 그 말을 멍하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똑같은 공격을 고집했다는 건 바보이거나, 아니면 바보이거나. 어쨌든 결론은 바보라는 거네. 이제 마지막 한합 남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두 번이나 막아 냈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의미.
탑에서 지내 온 모든 시간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나쁜 새끼!!”
마지막 일합은 분노의 일격이다.
남소현은 온몸의 모든 마력을 끌어올려 검날에 실었다.
콰카카캉!
검기가 폭발하며 이호영을 덮친다.
하지만 그의 낡은 장검은 허공을 화폭 삼아 호쾌한 직선들을 마구 그려내며 검기를 흩어 버린다.
파바바밧!
그리고, 순간 남소현은 환영을 본 것만 같았다.
마치 이호영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강력한 마력을 머금은 검날의 움직임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스으윽.
어느새 그 낡은 장검의 끝은 남소현의 목젖에 닿아 있다.
“기분이 어때?”
“……족 같아.”
“이해해. 내가 봐도 쓰레기 같은 검술인데 본인은 오죽하겠어.”
쓰레기.
남소현 자신을 잠깐 가르친 천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너 뭐 하는 놈인데! 너 정체가 뭐야!”
그냥 평범한 총잡이가 아니다.
그리고 이호영은 그저 씨익 웃을 뿐이었다.
“너 정말…… 대살성?”
“노 코멘트.”
“맞잖아! 포식의 능력도 그렇고, 방금 전의 그 검술도 말이 안 돼! 똑같은 살성끼리 이렇게 다르다고?”
“흥분하지 마. 남소현.”
“흥분을 안 하게 생겼어? 이딴 식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탑이 어디 있어!”
“탑은 원래 불공평한 곳이야. 다른 누군가는 너를 보며 똑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지.”
“그냥 족 같아!”
“어린애처럼 굴지 마. 그리고 내가 너를 은밀히 부른 건, 말했잖아. 네 검술의 보완할 점을 알려 주기 위해서라고.”
“……내게 검술을 지도해 주겠다?”
“그래. 그 대신 조건이 있어.”
이호영이 전에 없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 조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받아들여야 한다.
……라고 남소현은 생각했다.
* * *
마왕과의 거래로 더럽혀진 영혼.
찝찝하긴 하지만, 지금은 이대로 두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겐 엘릭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까.
“남소현과 함께 사라지더니, 결국 골드를 구해 오셨군요.”
“어, 누가 바가지를 씌운 덕에 고생 좀 했어. 거래 조건은 아직 유효하지?”
“골드만 있다면요.”
31만 4천 골드.
결국 나는 모든 골드를 점쟁이 여인에게 다 털어 넣었다.
설령 사기를 당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되돌릴 길은 없다.
이미 거래는 이루어졌으니까.
골드가 빠져나가는 동시에 메시지창이 팝업으로 떠오른다.
그동안 내가 원했던 정보, 종말의 시작 전부터 내게 공략집을 보내온 존재의 정체.
그 단서의 발견을 위해 나는 메시지창을 읽어 나갔다.
“차원의 틈새?”
“네. 그곳에서 무엇을 얻어 낼지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 있어요. 당신에게 이런 형식으로 계시가 보내진 것 역시 그분의 뜻이겠지요.”
결국 진실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탑에서 마주한 그 어떤 인연이나 기연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이제 곧 시작될 탑의 25층. 그 끝자락에서 나에게만 보이게 될 차원의 틈새.
그 언약의 땅에 나는 발을 들이게 될 것이다.
‘바로 코앞이군.’
긴장되거나 설레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무덤덤하다.
그 순간, 조병국이 외쳤다.
“돌아왔어!”
포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문학, 이문성 형제.
그들이 마침내 24층을 클리어하며 로비로 귀환했다.
[25층이 시작됩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미지의 25층.
하지만 내 마음은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 있었다.
* * *
“같이 가. 이호영!”
25층이 시작된 이후 남소현은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미션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이 팔려 있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알려 줬잖아. 아직도 이해가 안 돼?”
“야, 어떻게 한 번에 이해를 해. 그럴 거면 골드나 돌려주든가!”
남소현을 통해 살성에 대한 환상이 조금은 깨져 버렸다.
살성의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것.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엄청난 재능 보정을 받았을 텐데.’
탑의 특혜를 받으며 미치도록 빠르게 성장을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오래도록 손서연을 관찰하며 내린 결론이었는데, 남소현은 전혀 다른 결을 보여 주고 있었다.
“혹시 쓰레기 소리 많이 들어 보지 않았냐?”
“어, 맞아. 천마한테. 그런데 넌 천마를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인연이 있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언제까지 따라다닐 셈이야?”
“골드 뽕 뽑을 때까지. 애프터서비스도 해 준다며?”
그게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로비에서 적당히 이론적으로 가르쳐 준 뒤, 25층에서 실전 지도 몇 번으로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25층의 무대는 남소현을 가르치기에 적당한 환경이었다.
21일이라는 넉넉한 시간 제한에, 미션의 내용도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12종의 지정 몬스터를 모두 찾아내 사냥하는 것.
나는 남소현이 적당히 미션을 끝내고 로비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 홀로 여기서 21일을 모두 보내며 25층의 끝자락에서 계시로 받은 [차원의 틈새]로 이동할 계획.
하지만 경기도 오산이었다.
25층 미션이 시작된 지도 벌써 보름.
남소현은 아직도 내 옆에서 버티고 있었다.
“다른 녀석들은 다 미션 끝내고 로비로 돌아간 거 알지?”
“어.”
“이렇게 맘 놓고 있다가 미션 클리어에 실패하는 수가 있어.”
“그러는 넌?”
“나? 나야 마음만 먹으면 금방이지.”
나는 하늘 위로 총구를 향하였다.
상공 위를 유유히 날아다니는 거대한 불독수리.
이미 12종 중 11종을 사냥했고, 남은 것은 저 녀석뿐이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25층은 즉시 클리어.
단지 언약의 장소로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한 번만 더 가르쳐 줘 봐.”
“그 한 번이 벌써 몇 번째인지 혹시 세 보진 않았지?”
“이 치사한 새끼.”
“잘 봐.”
사실 내가 사부만큼 검술의 경지가 높지는 않지만 가르치는 것만큼은 한 수 위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결코 경험도 부족하지 않다.
칼리아에서는 여러 인연들을 만나 제자로 삼기도 했으며, 조셉의 경우는 최고의 검투사로 키워 내기도 했다.
휘이이익!
남소현의 자운심검을 흉내 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 역시 사부가 창안한 검법.
무영추혼검의 열화판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무영추혼검의 난해한 부분을 모두 제거하면 상당히 비슷해지니까.
“씨! 볼 때마다 진짜 말이 안 나와. 이게 내 검술을 따라 한 것도 모자라 부족한 걸 보완해 낸 거라고?”
“어때? 차이가 느껴져?”
“이상해, 천마가 가르친 건 이렇지 않았는데.”
따악!
나는 검집으로 남소현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아아악!”
죄목은 사부의 가르침을 왜곡해서 기억하고 있는 것.
“헛소리하지 말고, 보여 준 대로 해 봐.”
나도 이제 오기가 생긴다.
목표는 사흘 안에 남소현을 로비로 보내는 것.
이제부턴 칼리아에서 행했던 교육 방식을 재현할 생각이다.
따악!
본래 무공은 맞으면서 배우는 게 가장 빠른 법이다.
* * *
[미션 진행률: 11/12]
[남은 시간: 5초]
25층의 10초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상공의 하늘이 노랗게 변해 가기 시작했다.
두 개의 태양이 하나로 합쳐지며, 대지를 집어삼킬 듯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계시에서 묘사한 그대로군.’
25층 미션의 실패자에게 내려지는 불의 심판.
몇 초 후면 내가 발을 내디디고 있는 이 땅은 화염으로 물들 것이다.
[남은 시간: 4초]
나는 방아쇠에 손을 얹었다.
타깃은 상공의 불독수리.
이곳을 곧 집어삼킬 노랗게 변한 하늘 속에서도 녀석은 유유히 우아한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타아아앙-
총성이 울리며 총구가 불을 뿜는다.
녀석이 마력의 탄환을 버텨 내는 반전 엔딩 따위는 없다.
[미션 진행률: 12/12]
[25층을 클리어하였습니다.]
계시에서 말한 차원의 틈새.
하늘이 열리며, 내가 서 있는 곳에 푸른 광명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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