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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50화 (150/292)

150화

그동안 마왕 라덴과 몇 차례 거래를 하였지만, 내 영혼은 여전히 순결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영혼 정화 작업에 돈이 꽤 들어가긴 했지만 말이다.

‘정말로 눈치를 못 채고 있는 걸까?’

라덴이 나와 거래를 하는 목적은 내 영혼을 서서히 잠식하여, 나를 그녀의 소유로 만들기 위함.

하지만 나의 영혼은 한 치의 오염 없이 온전히 나만의 소유였다.

마왕과의 거래로 영혼이 오염될 때마다, 나는 엘릭서로 치유를 했고 그녀와 나의 관계는 언제나 원상 복구되곤 했다.

‘아무리 봐도 불공정 거래인데.’

그럼에도 이에 대해 일언반구조차 없는 건 그녀가 모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단 의미였다.

그렇다면, 그녀의 묵인이라 여겼던 내 가설이 어쩌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 뭐야? 오늘은 쿨하게 영혼을 팔겠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야!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던데, 너 혹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 그리고 너 이 새끼, 쿨하게 대답해 놓고 설마 쥐꼬리만큼만 팔겠다는 건 아니지?

내가 고개를 젓자,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상기되었다.

-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한데!

“그럼 그냥 들어가시던가요.”

- 내가 미쳤냐? 오늘 같은 대목을 놓치게. 그나저나 저 여자애는 뭐냐?

신주아. 그녀의 양날 도끼에 악마종의 대가리들이 쩌억 쩌억 갈라진다.

기합 소리는커녕 숨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몬스터를 도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미션의 제 파트너요. 생각보다 잘 치네요?”

- 그런 걸 물어보는 게 아니잖아 인마! 쟤 뭔가 이상한 기운을 풍기고 있어! 신기(神氣)라고 해야 하나?

그걸 단번에 알아채다니. 역시 마왕은 마왕이다.

- 어쨌든, 영혼 이번엔 얼마나 팔 거냐?

이전처럼 눈곱만큼 팔진 않을 것이다.

되도록 많은 마왕의 권능을 얻어 내 힘을 뽐내 볼 생각.

질투 작전이 얼마나 먹혀들어 갈진 모르겠지만, 그 존재가 날 편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신경 쓰일 정도의 그림은 만들어 낼 작정이다.

“마지막 거래의 열 배만큼 팔겠습니다.”

- 너…… 드디어 맛 들였구나!

“맛 좀 더 들여 보게 값이나 후하게 쳐주세요.”

내 말에 라덴의 웃음소리만이 들려왔다.

거래는 보통 이런 식이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의사를 표하면, 취소는 불가하며 그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또한 라덴이 거래를 가지고 장난질을 하는 경우는 없다.

내가 열 배라고 말했으면, 그녀는 정확하게 열 배만을 취할 것이다.

- 거래 완료.

내 몸 안에는 거대한 에테르의 힘이 깃들었다.

부탁한 대로 라덴이 값을 후하게 쳐준 모양이다.

내 몸 안에 마냥 담아 두고 있기엔 부담스러울 정도의 힘.

나는 손가락 끝에 에테르의 기운을 살짝 실었다.

흑색의 기운은 방아쇠를 타고 올라가 마력의 탄환에 고스란히 심어진다.

흩어지며 손실되는 힘은 전혀 없다.

완벽하게 응축된 이 힘은 탄환을 타고 날아가 거대한 에너지로 폭발할 것이다.

타아아앙-

여느 때와 다름없는 총성이 공간을 진동시킨다.

도끼질을 하며 악마종을 도륙하고 있던 신주아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무언가 달라진 기운을 감지한 것이다.

‘진짜 감 하나는 끝내주네.’

퍼어엉!

날아간 탄환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악마종의 대가리에 박혀 폭발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마왕의 힘이라 할 수 없다.

탄환에 실린 에테르는 추진력을 증폭하여 신비로운 궤적을 만들어 냈다.

퍼어엉-

퍼어엉-

퍼어엉-

퍼어엉-

암흑의 미로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악마종의 대가리는 마치 도미노처럼 터져 가며, 24층의 공간을 밝혀 갔다.

분명 쏘아 낸 것은 단발.

심지어 내 몸 속에서는 여전히 에테르가 넘쳐 출렁거린다.

지금 이걸 몇 번은 더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게 마왕의 힘!’

경이적이었다.

정석적으로 성장한다면, 얼마나 더 수련을 해야 이런 파괴력을 낼 수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타아앙-

나는 다시 또 방아쇠를 당겼다.

에테르를 계속해서 몸속에 담아 두기엔 부담이 컸다.

이건 아껴 둘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퍼어엉-

퍼어엉-

퍼어엉-

또다시 시작된 불꽃놀이.

전방에 나가 있던 신주아도 넋 놓고 이 장면을 바라만 보았다.

라덴의 말대로 한번 맛 들이면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탐스러운 능력이다.

그만큼 내 영혼의 오염 또한 농도가 진해졌을 터.

이 위험한 도박이 성공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타아앙-

타아앙-

결국 나는 모든 에테르를 몸 밖으로 분출시켰다.

탄광 속 다이너마이트처럼 에테르의 폭파 향연은 24층의 암흑 미로를 수놓았고, 그 결과로

[모든 악마종이 궤멸되었습니다.]

24층의 미션은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선택의 시간.

[이 구역에 머무시겠습니까?]

여전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확신할 수 없지만 말이다.

* * *

다시 돌아온 로비.

당연히 이곳엔 나와 신주아 둘뿐이었다.

묘한 침묵이 흐른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얼굴을 한번 바라보고는 우리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를 한 걸음 벌려 놓았다.

본래도 과묵한 성격이지만, 그녀가 지키고 있는 이 침묵은 더없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할 말이 없진 않을 텐데.’

신주아는 말도 안 되는 무력을 눈앞에서 본 유일한 목격자.

탑은 넓고 별의별 놈이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방금 내가 보여 준 모습은 24층의 현시점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광경이라 단언할 수 있다.

그녀는 무언가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하다못해 내 칭찬이라도 한마디는 해 줘야지.’

결국 답답한 쪽이 우물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도끼질은 잘 봤어.”

“네.”

“전생에 나무꾼인 줄.”

그녀는 내 썩은 드립에 미간만 살짝 찌푸리고 말 뿐이었다.

“할 말 없어?”

“……당신 분위기가 변했어요.”

결국 물꼬는 터졌다.

“어떻게?”

“콕 찝어서 말할 순 없지만, 무언가 타락한 느낌입니다.”

이건 뭐 예언가가 아니라 거의 신 내린 무당 수준이다.

오염된 영혼을 느낄 수 있다니.

빨리 엘릭서를 대량으로 들어부어야 할 것 같다.

이번에는 돈 좀 깨지게 생겼네.

“가격이 매겨졌습니다.”

“뭐? 무슨 가격이…….”

“당신이 내게 물어봤던 그것 말입니다. 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저도 혼란스럽군요. 그래서 고민을 했습니다. 당신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언제부터 그런 건데!”

“처음 불꽃놀이가 끝났을 때.”

놀라웠다.

이렇게 반응이 바로 올 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박을 걸어 봤지만, 정말로 이게 될 거라곤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야! 그 정보의 가격!”

“……31만 4천 골드입니다.”

“미친 가격이군.”

“생각보다 싸다고 생각합니다.”

“어, 그래서 미쳤다고 한 거야.”

“구입하시겠습니까?”

현시점에서 30만이 넘는 골드를 소지하고 있는 플레이어가 몇 명이나 될까?

내가 살성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이 정도는 우스웠겠지만, 현재의 나는 아니다.

26만 7천 골드.

24층 클리어 보상을 받은 것까지 해서도 이게 내가 가진 전부였다.

정말 미친 가격이다.

절묘하게 구입할 수 없게끔 책정된 금액.

하지만 어찌어찌 수를 내 본다면 또 가능할 것 같은 금액.

‘시간이 문제로군.’

25층을 클리어하는 순간 나는 본래의 구역으로 돌아가게 된다.

결국 내가 무언가 해 볼 수 있는 시간은 지금부터 25층 미션이 시작되기 전.

부족분은 3만 7천 골드, 이는 심지어 엘릭서로 영혼 치유마저 미뤄야 한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신주아, 돈 좀 꿔 주지 않을래?”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 한다.

“싫습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할인은 없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참았다.

신주아의 단호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안 팔면 안 팔았지 깎아 줄 일은 없을 것이다.

* * *

잠시 후, 로비로 돌아온 것은 남소현과 조병국이었다.

여전히 남소현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둘이 같은 팀이 되었을 때부터 짜증을 냈는데, 미션을 수행하는 내내 마음이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조병국 이 멍청아! 우리가 1등일 거라면서!”

“……그러게. 이게 말이 안 되는데.”

녀석은 먼저 로비에 와 있는 우리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대체 뭔 짓을 했길래 우리보다 빨리 온 거지?”

사실 놀란 것은 나였다.

내가 마왕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이보다 훨씬 뒤처졌을 것이 분명하니까.

역시 절대 민첩이라는 능력이 보통은 아니다.

남소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여전히 나에게 삐쳐 있었다.

파티를 구성할 때 내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충격을 받은 것.

‘그놈의 살성이 뭐라고.’

남소현은 쓸데없이 살성에 과한 유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 모두에게 전송된 전체 메시지.

[모든 플레이어가 미션을 마치는 대로 25층이 바로 시작될 예정입니다.]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이문학과 이문성 형제의 능력도 결코 만만치는 않다.

조만간 그 둘은 로비로 복귀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어렵게 잡은 기회가 날아가 버리게 된다.

결국, 내가 골드를 얻어 낼 구석이라곤 남소현과 조병국.

이 둘뿐이라는 것이다.

남소현. 잔여 골드 129,200

조병국. 잔여 골드 38,000

어느 쪽을 공략해야 할지는 명확했다.

훨씬 더 많은 골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살성에 대한 유대감이 강한 플레이어.

“남소현. 잠깐 할 말이 있어.”

그녀를 은밀히 불렀다.

일단 나에 대한 안 좋은 감정부터 다시 되돌리는 것이 우선.

“배신자.”

“배신한 적 없어.”

“아니, 명백한 배신이야. 어떻게 같은 살…….”

“알았어. 거기까지만.”

목소리도 큰 것이, 이러다가 대대적으로 광고까지 할 판이다.

“개자식.”

“사과의 의미로 아주 큰 거 하나 주려고 하는데.”

“됐으니까 꺼져.”

“너의 자운심검. 그거 천마에게 배운 건가?”

“뭐?”

운을 띄우자마자 걸려들 줄 알았다.

“그걸 네가 어떻게!”

이미 두 번이나 널 만났으니까.

그중에 한 번은 피의 날에 치고받고 싸우기도 했었고.

물론 한강혁의 신분으로 말이다.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정말 중요한 것은 너의 검술에는 보완해야 할 점이 너무 잘 보인다는 것.”

“미친 거 아니야? 총잡이 주제에 니가 검술에 대해서 뭘 안다고”

“천마 정도는 아니지만, 검이라면 내가 좀 알지.”

나는 남소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무슨 꿍꿍이야?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뭐? 내 앞에서 검이라면 좀 안다고?”

시간이 없다.

바로 보여 주는 수밖에.

챙!

인벤토리에서 오랜 만에 낡은 장검을 꺼내 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엘리시온을 자랑하고 싶지만, 기억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뭘 하려는 거야?”

“증명.”

“미친 놈. 설마 나랑 대련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빙고.”

“아무리 대련이라 해도 그딴 식으로 객기 부리다가 골로 가는 수가 있어!”

“세 합 양보하지. 들어와 봐.”

미안하지만 우리 사이엔 격의 차이라는 것이 있다.

지금 그걸 느끼게 해 줄 생각이다.

- 15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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