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현재 생존해 있는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마법 스킬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마법의 대륙 칼리아, 그곳에서 공평하게 스킬 하나를 부여받았으니까.
당시에 내가 얻었던 마법 스킬은 [마음]
[마음]은 그 이후 내게 가장 요긴한 스킬 중 하나가 되었다.
내가 의식적으로 발동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오직 나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무이한 스킬.
만족도는 더할 나위 없이 최고였지만, 스킬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
‘스킬은 다다익선이니까.’
그런 이유로 23층 참가의 대가로 이문성에게 스킬을 요구했다.
직업이 마법사이다 보니 녀석이 가진 마법 스킬은 거의 백화점 수준.
얼마 전 얻은 포식자의 특성 때문에 가능한 제안이었다.
이문성은 흔쾌히 내게 스킬을 이전해 주었다.
형을 구할 수만 있다면 영혼도 팔아넘길 기세니, 스킬 하나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하나로만 끝내지 않을 것이다.
“지금 네 형을 발견한 것 같아.”
“그게 정말이야?!”
그동안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아 온 이문성.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의심을 거두었다.
내가 한 말을 믿고 싶은 것이다.
“형을 찾고 싶으면 스킬부터 넘겨.”
이미 이문성에게 받은 스킬은 [화염]
가장 흔한 마법 스킬이지만 불이 가진 범용성을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아이스 실드]를 받아 낼 생각이다.
“만약 네 말이 거짓말이면?”
“눈 뜨고 코 베인 거지 뭐겠냐?”
“죽여 버릴 거야. 만약 그런 것이었다면.”
이문성은 눈에서 레이저를 쏘아 낼 기세.
“무서워서 농담도 못 하겠네. 빙결 스킬 있지? 이번엔 그걸로 부탁해.”
“망할 자식!”
이문성은 내게 또 한 번 마법 스킬을 이전했다.
덕분에 내 스킬창은 또다시 풍성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문성의 스킬창이 빈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내게 스킬을 이전하며 본인의 숙련도가 훅 깎여 버린 것.
“자, 그럼 이제 이문학을 구하러 가 볼까?”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나는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미친놈아! 저 좀비 떼 중에 우리 형도 있다면서!”
“어, 있지.”
타아앙-
타아앙-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총질을 이어 갔다.
저격 스킬이 있는 한 오발은 없다.
숙련도에 따라 파괴력의 차이만 있을 뿐.
타아앙-
손맛이 꽤 좋다.
“도대체 무슨 짓이야!”
“도플갱어 걸러 내기.”
타아앙-
총성은 총 스물네 번이 울리고 나서야 멈췄다.
탄환 하나에 좀비의 대가리 하나씩이 어김없이 터져 나갔다.
그리고 남겨진 좀비 하나.
겉으로 보기엔 일반 좀비들과 다름이 없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의 냄새를 은은하게 풍기는, 아직은 불완전한 좀비.
“네 형이야.”
케에에엑!
좀비는 우리를 향해 돌진했다.
“……저게 ……형이라고?”
괴물과 다름없는 형체.
거기에 지극히 괴물적인 괴성.
하지만 이문성은 내 말을 여과 없이 수용했다.
“너를 믿겠다. 그리고 만약 네 말이 거짓이라면 우린 함께 죽게 될 거야.”
비장한 녀석의 표정에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후우.”
한 번의 심호흡.
그리고 이문성은 달려오는 좀비를 온몸으로 껴안았다.
‘보통내기는 아니군.’
만약 내 말이 틀렸으면 어쩌려고.
이미 죽음마저 각오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말이다.
스르르르.
변화는 바로 감지되었다.
이문성과 뒤엉킨 좀비의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얼굴은 점차 혈색을 되찾았으며, 따뜻한 온기가 발산되는 것이 느껴진다.
[이문학이 플레이어로 복귀합니다.]
그리고 메시지창은 쐐기를 박았다.
“혀어어어엉!!”
이문성은 두 팔로 이문학을 끌어안으며 소리를 질렀다.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두 형제가 재회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주변의 좀비들을 정리해 주는 것.
재생력 하나는 더럽게 좋다.
타아앙-
타아앙-
총성 속에서 두 사람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 * *
“감흥을 깨서 미안한데 말이야…….”
분위기가 좀 그랬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자원봉사를 하려고 내가 지금 23층에 도전하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문학, 너에게 받기로 한 것이 있어.”
23층을 시작할 때 착수금으로 마법 스킬 하나를 받았다.
다음으로, 이문학을 발견할 때 중간 정산으로 또 마법 스킬 하나.
그리고, 이문학이 플레이어로 복귀했을 때에도 마법 스킬 하나를 받기로 합의했다. 이때는 이문성이 아닌 이문학에게로 받기로, 물론 당사자의 동의는 없었지만 말이다.
“형을 살리려면 어쩔 수 없었어. 괜찮지?”
머리를 긁적이는 동생, 형은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목숨값치곤 싸네.”
“그렇지? 형?”
다행히 두 형제는 배 째라 식으로 나오진 않았다.
“화염과 빙결을 네 동생에게서 얻었어. 그리고 다음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염동력이었다.
마법 스킬 중 숙달이 가장 까다로운 것 중 하나이지만, 일정 수준 이상까지만 끌어올리면 활용 범위가 상당한 스킬이니까.
[염동력을 획득하였습니다.]
이로써 23층에서만 세 개째.
하지만 아직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서둘러 가자! 탈출 포털이 있는 곳으로.”
스킬을 쥐어짤 수 있는 마지막 관문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 * *
“이호영, 저놈은 도대체 정체가 뭐길래!”
홀로그램을 통해 23층의 상황을 지켜보던 조병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전이 가능하다고 알려진 것은 골드가 유일.
스킬을 주고받는다는 개념은 상상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당혹스럽기는 남소현도 마찬가지.
‘나랑 똑같은 살성인데 너무 불공평해!’
기본적인 무기만 해도 그랬다.
검술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총은 편의성 면에서 너무 우월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검과 비교해서 살상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여기까진 그러려니 하겠는데.’
타인의 스킬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라니, 이것은 너무 사기적이었다.
탐나는 게 있으면 바로 협박을 해서 빼앗아 오면 되는 것이니까.
이호영의 스킬창이 얼마나 화려할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일.
그러고 보니 22층을 가장 빠르게 클리어할 수 있었던 이유도 스킬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받은 살성 제안이 혜자인 줄 알았는데!’
결코 아니었다.
탑은 결코 공평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은 장소였기에, 이호영의 특별한 능력을 보자 샘이 났다.
그러다 문득 한강혁이 했던 질문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 너 혹시 대살성에 대해 알고 있냐?
그땐 그게 무엇인지 몰랐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뭔가 실마리를 찾은 느낌.
어쩌면 이호영이 대살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본인과 같은 살성인데도 너무 많은 특혜를 누리고 있었으니까.
“신주아, 너 혹시 뭔가 알고 있었던 거야?”
“구체적으로 물어봐 주세요. 저한테 독심술까지 있는 건 아니니까요.”
퉁명스러운 신주아의 말투에 남소현은 기가 찼지만, 괜히 기 싸움을 하면서 힘을 빼고 싶진 않았다.
“아까 전에 네가 그랬었잖아. 호구 잡힌 것은 이호영이 아니라 이문성일지도 모른다고. 너무 딱 맞아떨어졌는데, 뭔가 설명이 필요한 거 같지 않아?”
“그냥 그럴 거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게 다예요. 말씀드린 대로 이것과 관련해서는 어떤 계시도 받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결국 말하기 싫다 이거지?”
“그렇게 해석하시면 저도 더 드릴 말씀은 없고요.”
냉랭함이 느껴지는 로비의 분위기를 환기시킨 것은 조병국이었다.
“저길 봐 봐! 홀로그램 말이야!”
드디어 탈출 포털에 다다른 세 사람.
문제는 포털 주변에 어마어마한 좀비 떼들이 몰려 있다는 것이었다.
“와, 진짜 징글징글하네. 도대체 몇 겹으로 벽을 세운 거야!”
“그래도 뚫어 낼 수 있겠지?”
“글쎄!”
문제는 플레이어로 복귀한 이문학의 현재 몸 상태가 최악이라는 것.
1인분의 몫은커녕, 짐 덩어리일 뿐이었다.
본래의 능력이었다면 동생과의 합동 마법으로 이 일대에 광역 스킬을 시전 하였겠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을 전혀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이호영은 두 형제를 향해 선언했다.
- 갑자기 [바람] 스킬을 갖고 싶어졌어.
“와, 저 새끼 진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남소현의 질투심이 폭발했다.
‘똑같은 살성인데!’
갑자기 자신이 탑으로부터 받은 것들이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홀로그램 속의 이호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타아앙-
타아앙-
총성이 빗발쳤다.
이호영은 후방에서 두 형제를 엄호했고, 이문성은 최전방에서 형의 방패막이가 되어 좀비 벽들을 돌파해 나가기 시작했다.
* * *
로비로 돌아갈 수 있는 탈출 포털.
그곳에서 나는 또 다시 선택의 질문을 받게 되었다.
[이 구역에 머무르시겠습니까?]
이곳에서 조용하게 살고자 했던 계획은 이미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스킵할 수도 있었던 23층에 참여했고, 포식 스킬을 들켜 버렸으며, 내 능력의 많은 부분을 보여 주게 되었다.
로비로 돌아가게 되면 귀찮은 질문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구역을 옮길 수 없는 이유. 바로 신주아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탈출 포털을 통과했고, 다섯 명의 플레이어들이 기다리는 로비에 도착했다.
그래도 당장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다.
죽을 고비에서 돌아온 이문학.
그는 모두에게 자신의 건재를 즐겁게 알렸다.
“난 멀쩡해. 잠시 좀비가 되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지.”
다행히 속 좁은 타입은 아니었다.
이곳의 플레이어들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질 만도 한데 이문학은 나름 쿨하게 넘기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호영, 고맙다.”
이문학에 이어 이문성 역시 같은 뜻을 전했다.
두 형제가 나에게 내준 마법 스킬의 수는 합산하여 넷.
하지만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것이다.
나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했으며, 이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았을 뿐이다.
그걸 두 형제가 인정하고 감사의 뜻을 표하니,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를 귀찮음이 상당 부분 사라지게 된 것이다.
‘나름 괜찮은 녀석들이군.’
마법 스킬 네 개를 받았으면 내 입장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였으니 이쯤에서 추가로 호의를 베풀어 볼 생각이었다.
“너희 둘. 오염된 피부부터 치료해야겠어.”
특히 이문학의 상태가 심각했다.
좀비 그 자체가 되어 봤던 몸이니 오염 수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걸 치료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어?”
“확실하진 않지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나는 그렇게 대답을 하며 신주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로부터 반응은 즉각적으로 왔다.
“계시를 받은 정보는 발설 금지입니다. 괜한 짓을 했다간 화를 당할지도 몰라요.”
엘릭서를 통해 오염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그녀가 받은 계시의 일부분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플레이어에게 발설하지 않을 수 있었던 좋은 핑계였다.
‘하지만 이쯤에서 실험을 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겠지.’
가설을 하나 세워 보았다.
나는 그녀로부터 골드를 지불하며 계시의 정보를 받았지만, 사실 공략집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정보였으니 발설에 아무런 제약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발설하진 않을 거야. 방법은 알려 주지 않고 은밀하게 치료만 할 생각이니까.”
“그조차도 위험할지 모릅니다.”
“위험하다 한들 설마 죽기야 하겠어?”
“저는 분명 말렸습니다. 결과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가설일 뿐이니까.
그런데 정말로 위험한 일이라면 공략집은 이 타이밍에 뭔가 액션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심지어 그 위험의 주체는, 신주아에게 [계시]를 내리는 자, 다시 말해 내게 [공략집]을 보내는 존재이니 말이다.
“두 사람, 잠깐 나랑 치료 좀 하러 가자.”
“괜찮겠어? 신주아는 분명…….”
“아니, 문제없을 거야.”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것은 일종의 시위이자 내가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내게 공략집을 전하는 존재에게, 베일을 한 꺼풀이라도 벗어 달라는 아우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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