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사막의 환경은 혹독했으나, 21층은 그 외의 모든 것들이 무난한 일상이었다.
안채윤이 죽은 날 우리는 전갈 고기 파티를 벌였고, 다음 날에는 새로운 오아시스를 찾아 떠났다.
별다른 고난은 없었다.
나는 21층의 미니맵을 볼 수 있었기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했고, 다른 플레이어들은 군말 없이 내 말을 따랐다.
가는 도중에 몬스터가 있으면 처치했으며, 물과 전갈 고기를 비축하며 우리는 생존을 이어 나갔다.
‘아주 쉽군.’
[일주일이 경과되었습니다.]
[미션을 클리어하였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물론 긍정적인 것들이었다.
나에게는 포식의 특성과 저격 스킬이 새롭게 주어졌으며, 이 구역의 원주민들은 독재자의 죽음으로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이제는 선택의 시간.
[현재의 구역에 머무르시겠습니까?]
내 파견 기간은 25층까지. 그리고 매 층마다 나는 머무를지 떠날지를 선택할 수 있다.
여기서의 대답? 물론 No였다.
이곳에 머무르는 한, 조용히 지낼 순 없을 테니까.
‘조용히 지내고 싶다.’
‘쥐 죽은 듯이 있다가 바람처럼 사라지고 싶다.’
새로운 구역에 가서는 이 두 가지만 유념할 것이다.
반드시.
* * *
새로운 배경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탑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4개의 구역이 통합됩니다.]
‘통합?’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종말의 탑.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생존자와 사망자로 나뉘게 되며, 때로는 소수의 생존자끼리 새로운 구역을 이루곤 한다.
새롭게 형성된 로비.
인원은 나를 포함하여 총 여섯. 그리고 놀랍게도 이 중엔 아는 얼굴이 있었다.
‘살성 남소현!’
물론 그녀는 나를 모른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나는 인피면구를 쓰고 있었으니까.
“구역 통합?”
모두가 서로를 낯선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이방인.
조용히 지내고 싶었던 나에게는 좋은 조건이었다.
나만 주목을 받는 상황이 아니니까.
“여기 모인 사람들은 다들 동료를 잃고 혼자만 남겨진 건가?”
조병국의 말에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제외하면 4개의 구역이 통합되어 5명이 모였다.
이 중 둘은 쌍둥이였으니 실질적으로 한 구역당 한 명인 셈.
우리는 간단히 자기소개를 마쳤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 4개 구역이 통합됐다고 했는데, 딱 봐도 한 명이 더 많잖아.”
“그러고 보니 이상하군. 혹시 탑의 메시지에 오류가 있었나? 5개 구역이라고 해야 될 거 같은데 말이야.”
“아니, 오류가 있을 리가 없어!”
“그럼 혹시 이 중에 마피아가 있는 건가?”
마피아라는 말에 살짝 움찔하는 남소현.
물론 그걸 눈치챈 것은 나 외에는 없었다.
사실 나도 마음의 목소리를 들은 것뿐이니까.
하지만, 이 중에서 굳이 마피아를 꼽자면 남소현이 아닌 바로 나다.
‘임시로 파견을 나온 건 나뿐일 테니까.’
모두가 이 문제를 가지고 한참을 떠들었다.
별것도 아닌 숫자 놀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탑에서 생존하다 보니 과대망상의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게 당연한 일이긴 한데,
‘그래도 좀 과하군.’
처음 만난 사이끼리 무려 한 시간이나 넘게 이 이야기만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파견자라는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다.
사실 내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곳에 모인 멤버 구성이 조금 독특하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 모였다.
살성 남소현은 그렇다 치고.
‘절대 민첩!’
내가 감각 스탯에서 최초의 업적을 이뤄 절대 감각을 얻은 것처럼 이곳에 비슷한 플레이어가 또 있었다.
궁수 조병국. 오히려 남소현보다 이 녀석을 더 조심해야 할지도 모른다.
초월적인 민첩 스탯에 원거리 공격의 조합은 너무 위험하니까.
쌍둥이 플레이어 이문학, 이문성도 뭔가 심상치 않았다.
이 둘은 직업이 마법사다. 칼리아에서 단순히 마법 스킬을 하나 얻어 온 것이 아닌 순수 혈통 마법사.
넘치는 마력에 마법 속성도 다양해 이놈들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무슨 짓을 할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중에 가장 독특해 보이는 플레이어는 따로 있었다.
예언가 신주아.
지금까지 말이 많지 않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방금, 계시 하나를 받았습니다.”
“뭐야! 당신이 정말 예언가라고? 뻥 아니었어?”
남소현의 격한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신주아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제 말을 믿든 믿지 않든 그건 여러분들의 자유입니다. 단, 제가 받은 계시는 공짜가 아니니 선택을 하시면 됩니다.”
“사기꾼! 얌전하게 생겨서 어디 사기를 치고 있어!”
남소현이 짜증을 내며 신주아의 목에 검을 들이밀며 말을 이어 갔다.
“그럼 어디 한번 이것도 예언해 봐. 지금 넌 내 검에 죽을까? 아니면 안 죽을까?”
두 여자의 대립에 이곳 분위기는 순간 냉랭한 공기만이 감돌았다.
남소현이라면 정말로 이 자리에서 신주아의 목을 벨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그녀는 살인을 해야 살 수 있는 살성이니까.
“예언까지는 아니지만, 죽지 않는다에 걸어 보지요.”
신주아는 자신의 목젖을 찌르고 있는 검날에도 차분하게 대답했다.
“뭐?”
그리고 그 순간.
아슬아슬하게 신주아의 목에 닿아 있던 검이 멀어지기 시작한다.
남소현의 의지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어떤 새끼야!”
이문학과 이문성.
두 쌍둥이가 동시에 염동력을 펼치며 남소현의 검을 떼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초면에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그냥 안 믿으면 그만인 것을!”
놀랍게도 쌍둥이의 입술은 한 몸처럼 동시에 움직였다.
그리고 거기에 조병국이 한마디 거들었다.
“질투를 하는 거겠지. 신주아가 본인보다 예쁘니까.”
“뭐라고?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
남소현이 바로 노발대발했다.
하지만 화를 내면서도 이곳을 뒤엎어 버리지는 않았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 모인 플레이들 모두가 한 가닥씩은 하는 수준이란 걸.
“그런데 무엇에 대한 계시지? 방금 전 받았다는 그거.”
조병국의 질문에 신주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22층에 대한 정보입니다.”
“오오! 대단한데? 가격은? 공짜가 아니라면서!”
“……1만 2천 골드입니다.”
상상보다 높은 가격에 다들 표정이 굳는다.
“뭐? 1만 2천 골드? 웬만하면 사 주려고 했는데 너무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조병국이 낸 마음의 목소리.
- 이거 진짜 꽃뱀 아니야?
“구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요하지는 않으니까요.”
“어차피 난 안 살 거지만 장사를 그렇게 하면 안 되지. 가격이란 게 적어도 상식선은 지켜야 하는 거 아니야?”
누구도 신주아로부터 정보를 구입할 마음은 없어 보였다.
조병국은 물론이거니와, 그녀에게 호감을 보인 쌍둥이 형제 역시 냉랭한 반응.
그래서 내가 좀 난감했다.
비싸긴 하지만 확인해 볼 것이 있었으니까.
‘내게 공략집이 전송된 것과 동시에 일어난 일이란 말이지.’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겠지만, 타이밍이 절묘했다.
어쩌면 같은 정보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정보의 제공 주체도 동일 존재일지도 모르며, 항상 의문이었던 실버 고블린의 정체에도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다면 과감히 질러 볼 필요가 있다.
“내가 구입할게. 1만 2천 골드라고 했나?”
“네. 저에게 골드를 이전하는 즉시 저도 정보를 이전해 드리는 방식입니다.”
“사기는 아니지?”
“……네.”
나의 거래 의사에 다들 화들짝 놀란 표정이다.
마음의 목소리들도 빗발치기 시작한다.
- 저 새끼 호구 아니야?
- 호구야 호구! 신주아가 아무리 어리고 예쁘다고 해도 그 큰 금액을!
본의 아니게 이상한 이미지로 찍혀 버리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내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일단 사기는 아닌 모양이군.’
그녀에게 골드를 이전하자마자, 정말로 메시지 창 하나가 내게로 전송되었다.
[22층의 테마는 ‘죽지 않는 자들의 도시’입니다. 당신은 불사의 좀비 떼를 피해 제한 시간 내에 황금 깃발 5개를 획득해야 합니다. 참고로 좀비에게 당한 상처는 오직 엘릭서로만 치유할 수 있습니다.]
놀랍다.
공략집이 보내 준 메시지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문구들.
내 눈은 저절로 신주아를 향했다.
‘설마 나와 똑같은 능력?’
잠깐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녀가 계시라고 표현하는 메시지만 나의 공략집과 일치할 뿐, 그녀의 상태창은 분명 나와는 달랐다.
어쨌든 이로써 확실해진 사실.
그녀에게 계시를 내리는 존재를 내가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봐, 이호영! 그 표정은 뭐야? 혹시 대단한 걸 알아내기라도 한 거야? 둘만 알지 말고 우리랑 공유하는 게 어때?”
“미안하지만 발설이 금지되어 있어. 말하려고 해도 입이 떨어지지가 않거든.”
“쳇, 설마 호구 당한 건 아니지?”
“그건 알아서 판단하고.”
“에이! 호구 당한 거 맞구만! 어떤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거 없이도 우리는 탑을 잘 등반해 왔잖아?”
조병국의 말에 쌍둥이가 맞장구를 쳤다.
“어차피 될놈될이야. 그렇게 호구 잡히면서 정보를 얻어도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사는 법이지.”
“맞아. 그런 의미로 이호영 말고 이호구 어때?”
이놈들이 마음으로만 하던 호구 소리를 직접 내뱉기 시작했다.
이곳에선 좀 조용히 지내고 싶은데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22층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22층 죽지 않는 자들의 도시로 이동하겠습니다.]
* * *
로비에서 좀 더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신주아와 단둘이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이 모습이 다른 녀석들에겐 또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만,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본인에게 계시를 내리는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지.
그 존재와 소통은 할 수 있는 것인지.
혹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는 것인지.
아쉽지만 그 질문은 잠시 미뤄야 할 것 같다.
우리 여섯 명은 정체 모를 시가지 한가운데에 떨어졌으며 사방팔방은 수만 마리는 되어 보이는 좀비 떼로 가득했으니까.
퀘에에에엑!
퀘에에엑!
좀비들의 괴상한 울음소리가 도시 전체를 진동시키는 것만 같았다.
[각자 황금 깃발 5개를 획득하십시오.]
[남은 시간: 2시간]
“미친! 이거 영화에서 보던 그 좀비들이야?”
“영화에서는 대가리를 터뜨리면 죽어 버리던데!”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미리 획득한 정보에 따르면 좀비는 불사의 존재.
무력 수준도 영화의 상위 버전일 것이다.
‘이놈들도 곧 알게 되겠지만.’
“야, 이호구! 정보 샀잖아! 황금 깃발을 얻으라던데, 이거 도대체 어디서 얻는 거야?”
이놈들은 정작 계시를 받은 신주아를 놔두고 나에게만 정보를 묻는다.
정말로 내가 호구처럼 보여서 그러는 것인지.
그리고 황금 깃발에 대한 정보는 구입한 것이 아니다.
그저 어디에 있는지 보일 뿐이다.
나에게는 미니맵이 있으니까.
물론 호구처럼 알려 줄 생각은 없다.
“일단 각자도생하고, 로비에서 다시 만나지?”
나는 서둘러 앞으로 달려 나갔다.
황금 깃발이 있는 가장 가까운 장소는 GX25 편의점.
마침 좀비의 행렬이 엷은 곳이기도 하다.
퀘에에엑!
퀘에에에엑!
날 향해 좀비들이 달려들기 시작한다.
나는 바로 인벤토리에서 엘리시온을 꺼내 들었다.
서걱!
서거걱!
깔끔하게 녀석들을 절단했지만 역시 소용없는 일.
잘린 몸뚱이는 곧바로 붙어 버리고 말았다.
죽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몸체의 재생까지 딜레이를 주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럴 땐 총만 한 것이 없다.
몸체를 뚫어 낸 탄환은 장기 구석구석을 헤집어 놓을 테니까.
스르르르.
즉시 소환해 낸 두 자루의 총.
하나는 며칠 전 안채윤에게서, 하나는 오래전 살성 체험을 했을 때 얻은 것이다.
저격 스킬을 얻은 기념으로 바로 개시.
타아앙!
타아앙!
양손에서 느껴지는 손맛.
사부는 욕할지 모르겠지만, 무영추혼검만큼이나 짜릿했다.
- 145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