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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43화 (143/292)

143화

간밤에 셋.

그리고 방금 전에 둘.

안채윤의 똘마니 다섯 명 모두가 내 손에 죽었다.

엘리시온에서는 성민혁을 베어 낸 피가 뚝뚝 떨어진다.

처음이었다.

미션과는 아무 상관없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여 보는 건.

애초의 계획은 이런 게 아니었다.

쥐 죽은 듯이 지내다가 본래의 구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탑에서 조용히 지낼 팔자는 아닌가 보다.

남의 구역에서 이렇게 깽판을 놓게 될 줄이야.

“타고난 살인마로군.”

안채윤이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너한테 들을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살다 살다 별 이야기를 다 듣는다.

그것도 이런 사이코패스에게 살인마 소리를 듣다니.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탑에서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없어.”

씨익.

안채윤이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녀석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못 믿겠거든, 살성의 눈으로 나를 관찰해 보든가. 아, 이미 확인해 봤으려나?”

놀랍다.

녀석의 입에서 살성이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심지어 이 녀석은 살성도 아닌데?’

그럼에도 타인의 살인 행적을 볼 수 있는 살성의 눈까지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살성이라는 건 명백한 오해.

괜히 떠보는 게 아니라 녀석은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사실이군. 탑에서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없다는 말.”

일단은 녀석의 장단에 맞춰 보기로 했다.

분명 이 말을 꺼낸 의도가 있을 테니까.

“내가 가진 특성이 많이 까다롭거든. 죽은 플레이어의 능력을 흡수할 순 있는데 또 직접 죽일 수가 없어. 참 더럽게 불편한 설정이지.”

포식자. 이름만 들으면 다 때려죽일 것 같은 어감인데, 이런 제약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래서 네 옆에는 항상 손에 피를 묻혀 줄 장기말이 필요했던 것이로군.”

“맞아. 그런데 네놈이 다 죽여 버리는 바람에 훨씬 더 불편하게 돼 버렸어. 그러니 내가 지금 짜증이 날까 안 날까?”

안채윤 이 녀석. 우리 둘만 남게 되니 갑자기 말이 많아진 느낌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꺼내려고 이런 빌드업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쨌든 이호영 너는 역시 살성이었어. 심증으론 99% 확신하고 있었지만 말이야.”

“심증을 가졌던 이유는?”

“레벨을 초월하는 말도 안 되는 능력치에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냉철함. 그리고 무엇보다 풍기는 분위기가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많이 달라. 마치 탑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것처럼 여유가 넘치거든. 이 모든 것들이 널 살성이라고 말해 주고 있지.”

“……그렇군.”

황당하지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걸 모르고 있군. 내가 살성인 걸 알았으니 이제 네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말이야.”

“아니, 넌 날 못 죽여.”

또다시 확신에 가득 찬 말투.

나는 즉시 녀석의 목을 향해 엘리시온을 겨눴다.

왜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이제 그 대답을 들을 차례다.

“왜냐면 말이야. 난 이제 살성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거든.”

“뭐?”

“얼마 전 나에게 살성 제안이 들어 왔어.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는데 들어 보니까 꽤 괜찮은 특성이더군.”

어떤 생각 하나가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면 내가 거절한 오퍼가 이 녀석에게로 갔는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호영 너를 보고 나서 마음을 굳힐 수 있었지. 포식자의 특성을 버리고 살성이 되기로 말이야.”

“그 좋은 특성을 버린다고?”

“포식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직접 살인을 할 수가 없으니까.”

살성과는 상극의 제약이니 납득이 된다.

두 개의 특성이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것.

스르르르.

안채윤. 이 녀석의 상태창에는 갑자기 변화가 생긴다.

살성 제안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사라져 버린 포식자의 특성. 그리고 이 녀석은 정말로 살성이 되어 버렸다.

“자, 나도 이제 살성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 이렇게 좋은 게 생겨 버렸군!”

안채윤의 손에 들려진 것은 총.

녀석은 탑으로부터 손서연과 같은 권능을 부여 받았다.

“운이 좋군. 안채윤.”

“그래. 나도 알고 있어. 총은 낮은 확률로 뜬다고 하던데, 이럴 줄 알았으면 살성 제안을 바로 받아들일 걸 그랬어.”

“하지만 운이 없군. 안채윤.”

“뭐?”

“좋은 걸 받자마자 죽게 됐으니까.”

스르르르.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안채윤의 등 뒤에 나타난 캥수.

녀석은 총을 얻었다는 사실에 도취되어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그리고 그 대가는 아주 클 것이다.

퍼어어어억!

캥수의 핵펀치가 안채윤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허어업!”

이어서 캥수는 연타로 안채윤의 등허리를 내리찍었다.

퍼어어억!

물론 이 정도로는 살성이 된 녀석에게 치명타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뜻밖의 수확 하나.

캥수의 불의타에 안채윤은 총을 놓치고 말았다.

토옥-

캥수는 그걸 앞발로 차서 나에게 건넸다.

“나이스 캥수.”

“캥!”

그리고 나의 엘리시온은 이미 안채윤의 목젖에 닿아 있었다.

녀석의 눈빛이 살짝 떨린다.

탑에서 항상 군림만 해 온 녀석일 테니,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로 날 죽이겠다고? 같은 살성끼리?”

“안 된다는 제약은 없으니까.”

나는 엘리시온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살기를 느낀 안채윤의 목소리는 더욱 다급해졌다.

“기다려! 재밌는 얘기 하나가 있거든!”

보통 이럴 때 하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죽음을 회피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일 터.

안채윤은 급박하게 말을 이어 갔다.

“내가 살성이 되면서 잃은 포식자의 권능 말이야. 그거 완전히 없어졌을까?”

“관심 없어.”

“아니. 관심을 가져야 해. 날 죽이면 포식자의 권능이 너에게로 옮겨 갈 테니까!”

“개소리.”

안채윤은 능글맞은 웃음을 흘렸다.

“과연 개소리일까? 그럼 정말로 날 죽여 보든가! 만약 네가 직접 살인을 할 수 없는 살성이 되면 아주 볼 만하겠지?”

안채윤은 황급히 말을 끝내고는 비열한 표정을 지었다.

저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런데.

……진실이면 좋겠다.

“그럼 널 죽여서 확인해 봐야겠군.”

“뭐? 이런 개또라이 같은!”

엘리시온이 호쾌한 호선을 그었다.

* * *

탑에서 살인을 할 수 없다는 제약은 아주 치명적이다.

때론 미션의 클리어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을 정도로.

‘그럼에도 안채윤이 살아남았다는 건, 주변의 장기말을 잘 활용했다는 것이겠지.’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안채윤을 죽이기로 했다.

나에겐 안채윤의 장기말을 대신해 줄 존재가 있다.

훨씬 더 믿음직하며, 능력 있는.

“캥!”

어차피 막타만 캥수가 치면 되는 것이니까.

[포식의 권능이 새로운 숙주를 발견하였습니다.]

[새로운 숙주에겐 특성 흡수를 거부할 권한이 없습니다.]

안채윤의 말은 진실이었나 보다.

‘그럼, 정말로 내가 새로운 포식자가 되는 것인가?’

[포식자 특성을 획득하였습니다.]

[포식 스킬의 권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상대의 동의를 얻어 타 플레이어의 골드 혹은 스킬을 포식할 수 있다.

2. 죽은 자의 골드, 스탯, 스킬을 랜덤으로 포식할 수 있다.

※ 단, 포식자가 직접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 랜덤으로 0~200 사이의 스탯을 잃는다.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안채윤이 직접 살인을 꺼렸던 이유.

최악의 상황에 너무 많은 것을 잃을까 두려워했던 것이다.

‘나와는 상관도 없는 일이군.’

행운을 대폭 늘려 주는 니케의 반지가 있는 한, 랜덤의 상황에선 극도로 좋은 결과만 나올 테니까.

알고 보니 막타를 캥수에게 맡길 필요성조차 적어진 셈이다.

세 구의 시체가 눈에 들어 왔다.

안채윤, 안태영, 성민혁.

먼저 성민혁부터.

나는 안채윤이 했던 것처럼 심장에 손을 얹었다.

[근력 2를 획득하였습니다.]

고작 1에 그쳤던 안채윤의 경우와 비교한다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운이 좋군.’

다음은 안태영.

이거 왠지 포식자라기보다는 시체만 찾아다니는 하이에나가 된 느낌이다.

[12,300 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역시 랜덤의 상황에선 니케의 반지가 쭉쭉 빨아들인다.

상당량의 골드가 나왔으니 만족할 만한 결과.

마지막으로 안채윤.

이 녀석은 그야말로 스킬 뷔페 식당이다.

스킬창이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이번엔 스킬 하나 가져왔으면 좋겠는데.’

[저격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뭐?”

바닥에 너부러져 있는 안채윤의 총 한 구가 태양빛에 반짝거렸다.

* * *

식량을 구하러 갔던 6명의 플레이어들이 돌아왔다.

전갈 사냥이 마냥 쉽진 않았을 것이다.

작열하는 태양빛에 익숙하지 않은 사막 지형만으로도 이미 커다란 제약.

그럼에도 그들은 살아남았으며, 인벤토리에는 식량을 가득 채워 왔다.

그동안 안채윤에게 착취당하였던 걸 감안하면, 놀라운 능력이다.

‘정상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웠을 텐데.’

그리고 이제 앞으로는 더 잘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죽은 겁니까?”

“세 명 모두 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이호영 당신이……?”

“네. 모두 제가 죽였습니다.”

6명의 플레이어들은 일시에 주먹을 꼭 쥐었다.

그동안 참아 온 울분이 느껴진다.

“감사합니다! 이호영 씨!”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갚겠습니다! 너무 큰 은혜를 입었으니까!”

이런 반응. 당황스럽다.

정말 조용히 있다가 갈 생각이었는데.

“안채윤을 죽인 건, 여러분들도 진즉 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네?”

“안채윤이 처음 마수를 드러냈을 때, 겁먹지 않고 지금처럼 힘을 합쳤다면 해 볼 만했을 겁니다. 내 생각엔, 당신들과 안채윤 패거리들은 큰 차이도 없었을 테니까.”

“……정말 그랬을까요?”

그들의 반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겁먹고 착취를 받아들인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난 겁니다.”

내 말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이곳은 아포칼립스의 탑. 포식자에게 꼬리를 보이는 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은 바가 있다면 만회의 여지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이호영 씨, 당신 말씀이 맞습니다. 안채윤의 아우라에 우리 모두 겁을 먹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 보세요.”

“이제부터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당신을 상대로 텃세를 부릴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럴 능력도 되지 않고요. 당신이 하는 말이라면 앞으로 무엇이든…….”

“사양할게요.”

“네?”

“어차피 전 당신들의 구역을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독재자도 사라졌는데, 이제는 스스로 헤쳐 나가야죠.”

내가 곧 떠날 거란 말에 이들의 표정에선 아쉬움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사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곳을 떠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25층을 클리어하게 되면 나는 본래의 구역으로 복귀하게 될 거라는 것.

괜히 이들에게 의존심을 심어 줄 이유는 없다.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21층을 클리어한 이후, 당신은 이곳에 남을지 다른 구역으로 이동할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유익한 정보였다.

‘여기 남아 있는 한 조용히 지내다가 돌아가는 건 어렵겠지.’

그렇다면 이미 결론은 정해졌다.

25층까지의 파견 기간만이라도 조용히 살고 싶다.

21층은 글렀으니, 새로운 곳에 가면 절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묻어 가는 생활을 할 것이다.

부디 그곳은 평화로운 곳이길 바랄 뿐이다.

- 14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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