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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42화 (142/292)

142화

플레이어도 결국은 사람이다.

제아무리 탑에서 닳고 닳았다 할지라도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공포는 변하지 않는다.

천막 안으로 몰래 들어온 세 남자.

이들은 아마도 극한의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허업!”

귀신을 보았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천막 안에 우두커니 서 있는 캥수를 보고 이들은 기겁을 했다.

고요하던 야영지에 울려 퍼진 짤막한 비명 소리.

감각이 예민한 플레이어들은 바로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눈을 번쩍 떴다.

예상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섯 명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상황까지도 생각했는데, 지금 이곳엔 단 세 명.

‘안채윤은 없군.’

한밤중의 은밀한 암살이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캥수는 미리 일러 둔 지시를 이행했다.

퍼억!

퍼억!

퍼어억!!

캥수의 전광석화 같은 주먹질이 세 명의 안면을 차례로 강타했다.

온전한 정신이 아닌 상황에서 핵펀치를 허용했으니, 버텨 낼 리가 없다.

“캥수야.”

“캥!”

“마무리는 내가.”

나를 암살하러 온 이들에게 관용을 베풀 생각은 없었다.

내 손으로 깔끔하게 처리할 생각이다.

“……사 ……살려 줘!”

날 죽이러 온 이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스으으윽-

엘리시온은 단 세 번 흔들렸다.

신음성이 울려 퍼진 것도 단 세 번.

천막 안쪽에는 선혈이 튀었다.

나는 곧바로 이들의 시체를 끌고 천막 밖으로 나왔다.

이미 사람들은 천막 쪽으로 몰려든 상태.

“이…… 이호영 씨!”

“도대체 방금 전 무슨 일이!”

“지금 바로 설명해 드리죠.”

안채윤. 녀석도 이곳에 있다. 물론 아주 안 좋은 표정으로.

나는 사람들에게 방금 전 일어난 일의 전말을 밝혔다.

양쪽 그룹 모두 나름대로의 충격을 받았지만 더 놀란 쪽은 당연히 안채윤이다.

사건의 처음과 끝을 완벽하게 알고 있으니까.

- 이미 다 알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가?

-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혼자서 어떻게 세 명을?!

안채윤의 복잡한 머릿속에 내게로 전해진다.

나는 녀석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이 녀석들이 날 암살하려 왔더군. 어떻게 생각해?”

“그걸 왜 나에게 묻지?”

의외로 녀석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왜냐고? 이 세 명은 네 장기말이잖아.”

“듣기 거북한 이야기를 하는군.”

“좋아, 그럼 친구로 정정하지. 방금 네 친구들이 나를 죽이러 왔다가 도리어 당하고 말았어. 네 생각은 어때?”

잠시 이어진 침묵.

안채윤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좋은 녀석들이었지. 왜 널 죽이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슬퍼하는군.”

“탑에서 지내다 보니 무던해진 거라고 해 두지. 우리 모두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중이니까.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 혼자서 셋을 어떻게 죽인 거지?”

미친놈.

지금 이놈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는 없었다.

“약했으니까.”

“……하긴. 그렇지.”

진짜 미친놈.

그리고 잠시 후 녀석의 행동은 나를 더욱 더 소름 돋게 만들었다.

안채윤은 죽은 세 동료를 향해 걸어가 땅에 무릎을 대고는 이들의 심장에 손을 얹었다.

언뜻 보기엔 애도의 모습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완전 다르다.

‘포식을 하고 있군.’

그것도 아주 태연한 얼굴로.

죽은 동료가 남긴 것을 양분 삼아 녀석은 강해지고 있었다.

안채윤의 상태창에 변화가 생긴다.

골드가 대폭 늘어나며, 스탯이 미세하게 오른다.

스킬창에 변화가 없는 건, 생전에 이미 포식했기 때문.

녀석의 포식 의식은 그리 길진 않았다.

“복수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복수? 왜지?”

“나는 네 친구들을 죽였으니까.”

“그래. 내 친구들이었지. 하지만…… 암살은 나쁜 거니까.”

녀석은 나를 향해 썩은 미소를 보인 후 돌아섰다.

* * *

네 개의 태양이 다시 하늘에 떠올랐다.

지난밤의 일로 인해, 이 구역의 멤버 구성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방관자인 나를 빼고 본다면 안채윤의 그룹은 셋, 나머지 그룹은 여섯.

6 대 6의 균형이 깨지고 인원 상의 균형추는 한쪽으로 확 기울어져 버린 것이다.

‘궁금하군.’

‘과연 권력의 균형에도 변화가 생겼는지.’

그 해답은 오래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적색 전갈이 대거 출현하였습니다. 위치는 1번 태양 방향으로 3킬로미터. 독을 품지 않은 식용 몬스터이니, 서둘러 사냥하십시오.]

모두에게 전달된 전체 메시지.

수분 부족도 문제였지만, 허기를 해결하는 것 역시 21층의 난관 중 하나였다.

이 혹독한 환경 속에 식량으로 쓸 만한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일상적으로는 막혀 있던 식욕의 욕구가 오랜만에 개방되었으나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필 유일한 고기도 전갈.’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갈조차도 감사해질 것이다.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21층이지만, 다들 허기를 강하게 느끼고 있으니까.

“사냥은 너희들에게 맡기겠다.”

안채윤은 사람들을 향해 짧고 굵게 선언했다.

“어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은 너희들이다. 혜택을 누렸으니 봉사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혹시 불만이 있으면 지금 말하도록 해라.”

무려 세 명이 이탈하였으나, 안채윤의 스탠스에는 조금의 변함도 없었다.

도리어 눈빛이나 말투는 더욱 매서워졌다.

지배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이 새끼들이, 빨리 안 움직여? 지금 채윤이가 말하는 거 못 들었어?”

“죽으려고 환장을 한 거라면 지금 당장 말해!”

두 명의 똘마니들이 위협하자, 이들은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비록 숫자상의 우위가 있었으나 안채윤에 대한 공포는 뿌리 깊었다.

‘너무 오랫동안 지배를 당해 왔어.’

그동안 많은 것을 빼앗겼을 것이다.

그로 인해 플레이어로서의 성장도 더뎠을 것이고, 이제 저항하기엔 힘의 격차가 많이 벌어져 버린 것도 사실이다.

숫자의 우위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결국 여섯 명 전원은 탑이 일러 준 방향으로 사냥을 떠나기 시작했다.

“넌?”

안채윤과 눈이 마주쳤다.

“말했잖아. 난 너희와 운명 공동체가 아니라고. 너희들끼리 무슨 짓을 하든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

“위선적인 녀석이군.”

“왜지?”

“결국 너도 저 여섯이 사냥해 온 것에 숟가락을 얹겠다는 거니까. 어때, 내 말이 틀렸나?”

당연히 틀렸다.

숟가락을 얹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마침 허기도 돌고 하니, 직접 보여 주는 수밖에.

나는 어제 인벤토리에 넣어 둔 살코기를 꺼냈다.

초대형 전갈인 [오아시스의 파수꾼]의 엑기스를 도려낸 것.

거대한 몸체에 비해 먹을 수 있는 부분이 많지는 않았으나, 며칠의 식량으로는 충분했다.

맛이 어떨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이걸로 대답이 될 거 같은데.”

“……그것은?”

“뭐긴 뭐겠냐. 전갈 고기지.”

내가 눈앞에서 고개를 흔들어 대자 놈들은 멍한 표정들로 바라본다.

나는 녀석들을 뒤로한 채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내부엔 발화 장치가 있었으니 적당히 조리할 여건은 되었다.

밤사이에 꺼진 불을 다시 피웠다.

살코기를 얇게 썬 후 어제 오아시스 주변에서 채취한 나뭇가지에 끼웠다.

모양새만 놓고 본다면 여느 꼬치와 다름이 없었다.

이제 불판 위에 올려놓고 익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소스가 없는 것이 좀 아쉽군.’

지이이익-

시간이 지나자 살코기는 노릇노릇 익어 가며 구수한 향을 풍겼다.

생각보다 좋은 냄새가 천막의 공간을 가득 채워 나갔다.

아마 고기 냄새는 밖으로도 새어 나갔을 것이다.

절대 감각을 통해 들을 수 있다.

꼴깍-

녀석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

나는 꼬치를 들고 다시 천막 밖으로 나갔다.

놈들의 시선이 내 손의 움직임을 따라 이동한다.

“혹시 원한다면 팔 의향도 있다.”

“…….”

녀석들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시 또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을 뿐.

그리고 안채윤의 마음이 들려왔다.

- 지금 죽여야 하나?

나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겠지만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테니까.

- 아무래도 놈들이 돌아오기 전에 끝내는 것이 좋겠어.

결국 마음을 굳힌 모양.

나는 손에 든 꼬치를 입으로 베어 물었다.

육즙이 터지며 몰캉몰캉한 살점이 입 안에서 녹는다.

“맛있어!”

놀리려고 한 말이 아닌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진심.

전갈의 이미지만 머릿속에서 지운다면 생전 처음 맛보는 별미에 감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대조적으로 안채윤의 미간은 찌푸려진다.

- 죽이더라도 최대한 고통스럽게!

살인 충동 지수가 높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면 트리거를 내가 당겨 줄 수도 있다.

쉽게 날 공격할 수 있도록.

“어젯밤 너희들이 마법으로 만들어 내던 물. 그것과의 교환도 고려해 보지.”

“그 전갈꼬치와 말이냐?”

“어.”

내 제안에 안채윤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받아들이지.”

“내 조건은 꼬치 하나당 빙결 마법 한 번.”

“그 정도면 합리적이군.”

녀석들은 지체 없이 작업에 돌입했다.

휘이이잉-

안채윤이 펼친 빙결 마법을 윤태영이 검으로 받아 내며 검날에 물방울을 만들어 냈다.

상당히 능숙한 솜씨.

“환상의 호흡이군.”

나는 박수를 치며 안채윤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내가 건넨 꼬치를 잽싸게 낚아챘다.

“자, 그럼 이제 내가 받을 차례.”

그 순간 안채윤은 윤태영에게 눈짓을 보낸다.

둘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었는지는 너무 자명한 것.

윤태영은 나를 향해 검을 들어 올렸고, 나는 모른 척 천천히 다가갔다.

또오옥.

물 한 방울이 모래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 아까운 물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태영의 검이 나의 목을 향해 날아온다.

역시 트리거를 당겨 준 보람이 있다.

타아악!

나는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녀석의 검을 피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엘리시온을 꺼내 녀석의 목을 향해 올려 치는 데까지는 찰나의 시간만이 걸렸다.

안태영은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한 채 쓰러졌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 상황에서 안채윤이 어떻게 나올지.

나는 재빨리 일어나 옷을 툭툭 털며 물었다.

“지금 이 상황. 어떻게 생각해?”

이쯤 되면 알았을 것이다.

내가 이 구역에 온 첫날 한재구를 눕힌 것은 별 대단한 일이 아니었으며,

지난 밤 나의 천막에 고작 세 명으로 기습을 해 온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이었는지를.

방금 전 윤태영의 기습 또한 마찬가지.

이미 예상했다고는 하나 그걸 감안해도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태영이는 어젯밤 죽은 세 친구들과 각별한 사이였다.”

“그래서 단독으로 복수를 한 것이다?”

“……유감이군.”

이쯤 되니 헛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동료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 이 녀석은 마치 정해진 대본을 읽는 것처럼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시 또 녀석의 포식 의식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안채윤은 윤태영의 심장에 손을 얹었다.

스으으윽-

그 순간 나의 엘리시온은 공중에서 호선을 그려 냈다.

이번에 쓰러진 것은 안채윤의 마지막 똘마니인 성민혁.

결국 나는 안채윤을 혼자로 만들어 주었다.

“궁금해서 말이야. 내가 이렇게 하면 과연 넌 어떻게 나올지.”

나는 조용히 안채윤의 대답을 기다렸다.

- 14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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