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보는 탑 공략집-140화 (140/292)

140화

“내가 세금으로 받는 것은 스킬이야.”

포식자 안채윤.

녀석은 바로 본심을 드러냈다.

“스킬도 거래가 가능했던가? 골드 외에는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가능해. 나 혼자만. 그리고 오직 나만 받을 수 있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직접 들으니 또 놀랍다.

다른 사람의 스킬을 포식할 수 있다니.

“부러운 능력이군. 그래서 세금을 징수하는 방식은?”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골드를 거래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죽어서 나에게 스킬을 남겨 주는 것.”

그러면서 안채윤은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두 번째 방법을 이야기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굳이 알 필요도 없는 방법을 알려 주며 공포감을 조성하려는 목적이다.

“가급적 첫 번째 방법을 추천하고 싶어.”

웃으며 말하지만 상당히 위협적인 말투였다.

“아 참! 스킬을 완전히 빼앗기는 건 아니니까 걱정할 건 없고.”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듯한 뻔뻔함까지.

“완전히 빼앗기는 게 아니라는 건, 적당히는 빼앗긴다는 뜻이겠군.”

“예리하네. 세금이 괜히 세금이겠어?”

“그럼 복지 혜택은?”

“당연히 있지. 세금도 받았는데 그냥 꿀꺽하고 나 몰라라 할 순 없는 거잖아? 내가 그렇게 뻔뻔한 놈은 아니라고.”

안채윤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어 갔다.

“안전을 보장해 주지. 다른 플레이어들이 널 건드리지 못하도록 말이야.”

물론 다른 플레이어라는 건, 안채윤 이 녀석의 똘마니일 것이다.

협박하는 방식이 아주 제대로다.

궁금증은 해소되었으니, 이 녀석과는 더 할 말이 없어졌다.

나는 어깨에 올려놓은 녀석의 손을 가볍게 포개어 내렸다.

“……세금은 거절할게. 복지 혜택이 좀 약해서 말이야.”

안채윤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후회하지 않겠어?”

“솔직히 자신은 없어.”

“뭐?”

“후회할 자신이 없다고.”

내 말에 똘마니 녀석들이 내뿜는 살기가 강해졌다.

물론 이 자리에서 날 어떻게 하진 않을 것이다.

그 정도 무대뽀였으면, 한재구보다 이 녀석들이 먼저 움직였을 테니까.

당분간 뒤통수를 조심해야 할 것 같다.

* * *

‘이런 대접은 오랜만이네.’

학창 시절 당해 본 적도 없는 집단 따돌림을 탑에서 경험하게 되었다.

이 구역의 누구도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

내가 먼저 말을 걸어도 다들 슬금슬금 자리를 뜨기 바빴다.

다들 안채윤 일당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나와 말을 섞었다가 불똥이라도 튈까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이후 굳이 사람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덕분에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런 환경도 나쁘진 않았다.

여기선 나 하나만 신경 쓰면 되니까.

본래의 구역에선 일종의 책임 의식이 항상 있었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동료들을 보호하는 입장이었고 그들을 캐리하였으며 조언을 해 주곤 했다.

누구보다 바빴고, 가장 많이 고민하였으며, 가장 치열한 생활을 해 왔지만, 이곳은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아직은 로비 생활이 전부일 뿐이지만, 파견이라기보다는 휴가를 온 느낌이었다.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이미 취득한 정보를 나누기 위한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21층의 배경은 사막입니다. 극한의 갈증과 모래바람에 맞서 일주일간 생존을 해야 하니 미리 준비하십시오. 사막에선 상점창이 막힐 예정입니다.]

[등장 몬스터: 독 전갈류]

이 정도 배경이면 내 입장에선 나쁘지 않다.

21층에서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주요 요인은 독과 물.

만독불침 특성이 있기에 독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미니맵이 있으니 오아시스의 위치도 금세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물을 미리 준비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상점창에서는 물이나 음식 등을 팔진 않는다.

보통 상황에선 플레이어들이 배고픔이나 갈증 등을 느끼지 않으니까.

그래도 물을 대용할 수 있는 것들은 많다.

이를 테면 치유 계통의 물약들.

수분 보충용으로 구입하는 것이니 저렴이들을 잘 찾아보면, 지출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숲의 요정의 E급 물약을 10통 구입하였습니다.]

회복 효과는 거의 없지만 대용량으로 때려 박는 아이템이 이럴 땐 고효율이다.

‘통 크기가 진짜 장난이 아니네.’

고작 1,000 골드로 식수 문제 고민은 끝.

[F급 화염 방호 고글을 구입하였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모래 바람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테니 이 정도면 됐다.

가격도 고작 200 골드.

[케레스의 E급 쉘터를 구입하였습니다.]

이건 거의 캠핑용 텐트.

방어 기능은 없지만 사막에서의 안락한 수면을 위해 구입했다.

어차피 불침번은 캥수가 서면 될 테니까.

또 필요한 게 뭐가 있을까.

어차피 차고 넘치는 게 골드니, 과하게 준비를 하는 것도 부담은 되지 않는다.

* * *

[일주일간 생존하십시오.]

배경이 바뀌고 나를 포함한 열세 명의 플레이어들은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져 버렸다.

작렬하는 네 개의 태양. 사막의 모래가 끊임없이 뿜어내는 열기는 이곳에서 마주한 첫 번째 난관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탑의 전체 메시지.

[오아시스는 1번 태양 방향으로 3킬로미터 혹은 4번 태양 방향으로 6킬로미터 부근에 존재합니다.]

“미친 거 아니야? 알려 줄 거면 제대로 알려 줘야지!”

“둘 중에 하나는 거짓이라는 거 맞지?”

모든 플레이어들은 시작부터 혼란에 빠졌다.

“일단 포션이라도 사서 마셔야겠어.”

“오오! 좋은 생각!”

하지만 절망이 찾아오기까지는 단 1초면 충분했다.

“뭐야! 상점창이 닫혀 있어!”

“정말이잖아! 이런 미친!”

이제 선택의 여지는 오아시스를 직접 찾아 나서는 것.

안채윤은 즉시 무리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나는 1번 태양 쪽으로 향할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나를 따라와도 좋고, 다른 쪽을 향하여도 좋다. 단, 먼저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그룹은 먼저 마법으로 신호를 보내도록!”

말을 마친 녀석은 하늘을 향하여 화염 기둥을 쏘아 올렸다.

이것이 녀석이 제안한 신호의 방식.

이 구역 플레이어들 역시 칼리아의 미션을 통과했으니 마법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안채윤 저 녀석.’

저놈은 심지어 빙결 마법 스킬도 갖고 있었다.

공격용 얼음을 식수로 전환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믿을 구석이 하나는 있었던 것.

1번 태양으로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오아시스가 있을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찌 되었든 그곳이 거리가 두 배는 가까우니까.

자연스럽게 그룹은 둘로 나뉘었다.

안채윤의 패거리와 나머지로.

‘다들 저 녀석을 부담스러워하고 있군.’

누구도 쉽사리 안채윤 쪽으로 붙지 못한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

[미니맵을 작동합니다.]

오아시스는 4번 태양 쪽에 있으니까 말이다.

* * *

푹푹 발이 빠지는 모래사막.

비록 우리 모두는 플레이어지만, 오아시스까지의 6킬로미터는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지형도 지형이지만, 간간이 등장하는 전갈형 몬스터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비록 만독불침이 있다 해도 몬스터에게 물리는 경험은 유쾌할 리가 없으니 나 역시 항시 절대 감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기 이호영 씨.”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은.

‘신민준. 궁사 타입의 플레이어.’

안채윤의 무리와 헤어지고 나니 눈치 볼 일이 없어진 것이다.

“왜요?”

“……그거 혹시 물입니까?”

말을 걸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거대한 물통을 들고 목으로 들이붓는 내 모습은 세상에서 제일 호화로워 보였을 테니까.

“물은 아니고 포션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거 혹시 저희에게도 조금만 나눠 주ㅅ…….”

“안 됩니다.”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지금 잠시 같은 구역에 있다뿐이지, 사실 남남이나 마찬가지.

도리어 그동안 나를 슬슬 피했던 것을 생각하면 내가 호의를 베풀 이유는 없었다.

“공짜로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값은 치르겠습니다.”

“저도요!”

“한 모금만 주시면 100골드 지불하겠습니다!”

나를 제외한 여섯 명의 플레이어들.

이들은 갑자기 봇물 터지듯 내게 간청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호영 씨를 외면한 것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우리 구역에서 안채윤의 눈 밖에 나면 살아남기가 힘들어지니까요!”

“한 모금만 파시지요! 저는 200골드까지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한 통에 100골드짜리 포션이 갑자기 한 모금에 200골드로 훌쩍 뛰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의 푼돈에 눈이 돌아가는 단계는 한참 지났다.

400만 골드의 살성 제안도 거절한 나니까.

“한 모금씩은 안 팝니다.”

“……그럼 어떻게 파실 계획입니까?”

이들의 눈빛이 갑자기 초롱초롱해진다.

“한 통에 2만 골드. 총 세 통까지만 팔겠습니다.”

“……2만 골드요?”

황당한 표정.

하지만 내가 괜히 이런 값을 매긴 것이 아니었다.

상태창을 보아하니, 이들의 지불 능력은 충분하다.

나야 안 팔아도 그만.

안채윤이 골드까지는 손대지 않은 모양이니, 잔고를 탈탈 털면 두 명당 한 통씩은 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곧 오아시스가 나오는 것은 비밀이다.

* * *

200배의 폭리.

사실 이런 시나리오는 계산에 없던 것이었다.

본래는 내가 다 마시려고 열 통이나 구입해 두었다.

당초 내 예상보다 오아시스가 가까웠을 뿐이고, 이들이 절박하게 물을 원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긴 내가 눈앞에서 그렇게 마셔 대고 있었으니까.’

이들은 갈증을 해소하는 데에 두당 만 골드를 태워 버렸다.

보아하니 물통도 이제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들에게도 남은 것은 있다.

바로 빈 물통.

분명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짓궂은 탑이 오아시스를 그냥 남겨 둘 리가 없기에.

“이호영 씨, 정말 부자 되시겠군요.”

살짝 비꼬는 말투.

갈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고 나니 이제는 내가 좀 원망스럽긴 한가 보다.

“고맙습니다.”

나는 가볍게 응수하며 계속해서 길을 앞장섰다.

내가 길잡이를 하고 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나만 고글을 쓰고 있었기에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모래 바람에서도 시야 확보에 유리했던 것.

물론 미니맵을 켜고 있기에 이들이 나를 따르는 것은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호영 씨, 지금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4번 태양의 방향에서 조금 벗어난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벗어나고 있는 거.”

“뭐라고요? 아니 왜 본인 마음대로!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신민준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태양의 위치가 변하고 있으니까요. 탑이 처음으로 방향을 제시해 줬을 때랑 지금은 당연히 다릅니다.”

태양의 일주 운동.

초등학생 수준의 상식이지만, 사실 내가 그것을 고려해서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드넓게 펼쳐진 사막에서 내가 가장 의지해야 할 것은 미니맵.

나는 오직 미니맵이 가리키는 오아시스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사방팔방이 모두 똑같은 사막에서 그걸 인지했을 리가 없잖아!”

“정 못 믿겠으면 날 따라오지 않으면 됩니다.”

다른 곳도 아닌 혹독한 사막의 환경.

이곳에서 길을 잘못 드는 것은 치명적인 체력 손실을 유발한다.

더군다나 만약 이쪽 방향에 오아시스가 없다면, 그 박탈감은 더욱 클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모래 바닥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몬스텁니다. 꽤 큰 놈인가 보군요.”

“말도 안 돼! 지금 몬스터가 지면을 흔들고 있는 거라고요?”

“네. 그러니 다들 뒤로 물러서시죠.”

아직 땅 속에서 나오지 않고 있지만, 절대 감각을 통해 녀석이 머금고 있는 마력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상대한 조무래기들과는 격 자체가 다른 녀석이다.

나는 그곳으로 다가가 엘리시온을 치켜들었다.

치잉!

엘리시온에 마력을 가득 불어넣자 네 개의 태양이 검 끝에 영롱한 섬광을 만들어 낸다.

콰아아악!

나는 곧바로 모래 바닥을 향해 엘리시온을 쑤셔 넣었다.

검 끝에서 뿜어져 나가는 검기의 향연.

몬스터의 등껍질이 박살 나는 소리가 들린다.

쿠오오오!

내 몸이 공중으로 부유하기 시작했다.

발밑 아래 숨어 있던 녀석이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오아시스의 파수꾼]

녀석은 격하게 몸을 흔들더니 이내 털썩 쓰러져 버렸다.

“이제 거의 다 왔나 보군요. 오아시스 말입니다.”

거대 전갈의 등껍질에 올라서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이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141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