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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12화 (112/292)

112화

며칠이 지났지만 레나는 여전히 김세용을 투자자로 오해하고 있었다.

비록 말은 놓고 있지만, 그녀는 상냥함과 정중함으로 완전무장하였으며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 이건 신이 주신 기회야! 내가 김세용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들켜선 안 돼!

그녀는 머리 손질과 의상에도 점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찰랑거리는 금발에선 기분 좋은 향기가 났으며, 드레스와 하이힐은 항상 풀 장착 상태를 유지했다.

심지어 이는 마법 연구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

팔랑거리는 스커트를 살짝 걷어 올리며, 마령석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그녀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 참 신기해. 생긴 거랑은 다르게 어마어마한 큰손이라니!

만약 김세용이 조금만 더 잘생겼다면, 레나는 마음을 달리 먹었을지도 모른다.

다행이다.

막장 로맨스는 안 봐도 될 거 같으니.

어쨌든 지금 그녀의 목표는 김세용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는 것.

다행히 레나의 오해가 풀릴 일은 없을 것 같다.

김세용에 대한 그녀의 확신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으니까.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기다리던 좋은 소식이 있었다.

우리가 공략하고자 하는 마교에 대한 정보가 공략집을 통해 전해진 것.

- 위치: 라힌 마을

- 규모: 49명

- 지도자: 발레론

- 이곳은 현존하는 마교의 12지파 중 가장 규모가 작은 곳이며, 발레론이 운영하는 대장간을 중심으로 49명의 마교인들은 은밀하게 마을 주민들과 섞여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꼬리를 밟히지 않기 위해 활동을 완전히 중지한 상태입니다.

‘12지파?’

뜻밖의 좋은 정보를 얻었다.

이는 칼리아 곳곳에 11개의 마교 세력이 더 존재한다는 것.

물론 우리가 공략하려는 곳이 마교의 풀 전력일 거라고는 애당초 생각하지도 않았다.

마교와의 전면전은 분명 14층의 클라이맥스일 것이다.

‘수준이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49명이면 그렇게 부담되는 전력은 아니겠지.’

물론 섬멸전으로 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들은 혈마와 조셉 클로드의 후예들.

혈마로부터 은혜를 입었으니 그 후예들에게 갚을 생각이었다.

일단은 레나가 발생시킨 퀘스트부터 수정할 필요가 있겠다.

“세용아. 작전 개시다.”

“형이 말했던 그거?”

“그래. 작전명은 퀘스트 바꿔치기.”

“그런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난 그냥 마교랑 한 판 떠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크크크.”

“새끼가 내가 한 얘기를 귓등으로 들었나.”

“알았어! 농담이야 농담! 그러면 나는 뭘 하면 되는 건데?”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뭐?”

“레나의 뇌내 망상이 다 알아서 할 거야. 그냥 넌 내 옆에서 근엄한 표정만 짓고 있으면 돼. 괜히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고.”

“아, 이러면 곤란한데.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그냥 있으라고?”

“어. 그거 아주 중요한 역할이야.”

김세용은 내 말에 살짝 빈정이 상했지만, 결국 잘 어르고 타일러서 레나의 연구실로 데려다 놓았다.

마법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레나의 뒷모습에 김세용은 바로 넋을 잃은 모습이었다.

본래도 미인인데, 이렇게 한껏 꾸미고 왔으니 세용이 녀석이 침을 흘릴 만도 했다.

그런 면에서 나 자신이 좀 신기하긴 하다.

레나를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들지 않으니까.

사실 이게 레나를 대할 때만이 아니긴 하다.

“어, 미안. 온 줄도 모르고 있었어! 지금 가장 중요한 작업을 하고 있었거든.”

레나는 나와 김세용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정확히는 김세용 쪽이다.

- 와, 씨! 이렇게 예뻤어?

김세용은 심장 폭격을 당한 후 그대로 얼어 버렸다.

차라리 이 편이 낫다.

말이 많아지면 실수를 하는 법이니까.

“원정 준비는 이제 다 끝났습니다. 대원 모집도 이제 그만 완료할까 하고요.”

“벌써 완료한다고? 아직 많이 모이지 않은 거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서른 명 정도는 되는데요 뭐.”

“뭐? 최소 백 명은 모아서 갈 생각이었잖아!”

“인근 마탑에서 협조를 안 하니 별수 없죠. 그냥 무소속 용병들만 데려가는 수밖에.”

사실 공략집상으로 상대의 인원을 파악했으니, 이쯤에서 모집을 완료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 명이면 부족하긴 해도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춘 셈.

어차피 승부는 나와 그쪽 지도자인 발레론이 낼 생각이니, 쪽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자금도 여유 있는데 그렇게 서두를 필요 있어? 주변 마탑 쪽에 협조 요청 한 번 더 보낼 테니까 좀만 더 기다려 봐. 이 나쁜 놈들! 이런 식으로 나 몰라라 한다고?”

나쁜 놈들이라.

김세용이 옆에 있으니 상당히 순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레나 성격이면 쌍욕을 박고도 남았을 텐데.

“마탑주님. 괜히 힘 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가겠다고 결정한 순간부터 어차피 이렇게 될 운명이었으니까.”

“야! 그러니까 왜 그런 미친 짓을 해서! 이게 다 너 때문에…….”

“레나의 마탑을 칼리아 최고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갑자기 말 돌리지 말고!”

“말 돌리는 게 아니라, 이번 임무를 계기로 레나의 마탑은 칼리아 전역에서 아주 유명해질 겁니다.”

내가 강한 자신감을 보이자 레나는 그게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 으휴! 이 녀석은 망상을 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니깐!

“괜히 바람 넣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좀 더 기다려 봐. 서른 명만 데리고 가는 건 너무 위험하니까.”

“네. 그러죠.”

물론 아무 소득도 없을 것이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지만.

“더 할 말 있어?”

“네. 투자자 형님께서 제게 요청하신 게 있어서, 지금 그 얘기 좀 드리려고요.”

레나의 시선은 바로 김세용 쪽으로 돌아갔다.

- 바로 옆에 있으면서, 아주 날 놀리네.

“그분께서 우리 마탑에 요청을?”

“네. 이번 마교 원정에 관한 겁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형님께선 마교 잔당을 생포해 오길 바라고 계십니다.”

“생포? 마교임이 확인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여야지, 왜 살려 둬?”

“마교를 뿌리째 뽑으려면 몸통을 발견해야 하니까요. 고문을 하든 심문을 하든 일단 살아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 불가능해. 수백 년간 그런 시도를 한 번도 안 해 봤겠어? 그놈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입을 열지 않아. 마교와 관련해서는 발견 즉시 사살하는 게 룰이야.”

“투자자 형님께서는 그 부분에 대해 나름 복안이 있으셔서 말입니다. 우리 마탑이 이번 원정에서 마교 잔당을 생포해 오는 조건으로 2차 투자를 결정하신답니다. 1차의 10배 규모로요.”

“뭐?”

레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미 1차 투자만 해도 레나가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해 준 금액.

그것의 10배라는 건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칼리아 중심부에 있는 웬만한 마탑들조차 엄두도 내지 못하는.

“그 말 진짜야?”

“이게 다 투자자 형님께서 레나 마탑주님의 가능성을 보고 판단하신 일입니다. 이런 변방에서 썩을 분이 아니시라며.”

레나는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애써 김세용의 시선을 외면했다.

- 이 사람이 내 마탑에 괜히 용병으로 들어온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내 가능성을 보았다고?

사실 마냥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은 아니다.

레나는 능력 있는 마법사이자 연구가이니까.

지원만 뒷받침된다면 언제든지 날아오를 수 있는 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호영아, 이게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라서 말이야.”

“갑작스럽지 않습니다.”

- 하긴, 김세용은 날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레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생포라……. 말 나온 김에 내 솔직한 심정을 얘기할게. 이번 원정은 사실 무모하다고 생각해. 그러면서도 내가 강행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글쎄요?”

“두 가지 이유가 있어. 먼저 첫 번째 이유. 위험을 감지하면 바로 발 빼라는 명령을 출정 전에 내릴 생각이었어. 망신 좀 당하면 어때? 어차피 우리 등을 떠민 마탑 연합 놈들이 잘못한 거지.”

레나의 마음을 읽고 있었기에 알고 있던 바였다.

그녀는 사실상 이번 원정을 어렵다고 보고 있었던 것.

나는 인벤토리에서 빠루를 꺼내 들었다.

이것은 내가 가진 가능성의 상징이 되어 버린 아이템이니까.

“그럼, 출전을 강행하는 두 번째 이유는 뭡니까?”

“바로 너.”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은근히 사람 다룰 줄 아시는데요?”

“착각하지 마. 첫 번째 이유가 훨씬 크니까.”

“그래서 마교 잔당 생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해 봐. 할 수 있으면. 그런데 정말 이 조건으로 두 번째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거지?”

“물론이죠.”

순간 레나는 김세용과 눈이 마주쳤고, 김세용은 레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저놈이 또 쓸데없는 짓을 한다.

[퀘스트의 성공 조건이 추가되었습니다.]

어쨌든 이제 내가 할 일이 명확해진 것이다.

* * *

“원정 계획서라…….”

레나는 내가 작성한 계획서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문제 있습니까?”

“아니,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정말 세용이도 가는 거야? 정말로 본인이 가겠대?”

“당연하죠. 그 녀석도 우리 마탑의 큰 전력인데.”

“그야 그렇지만.”

레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당연히 마지막에 가서는 취소할 줄 알았는데!

그녀로선 이상한 일이다.

분명 김세용은 마탑의 정탐을 위해 용병 계약을 했을 것이며, 이렇게 위험한 원정길에 동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 아무리 생각해도 얻을 게 없는 거 같은데!

김세용 같은 거부가 고작 특별 수당 챙기겠다고 원정에 참여할 리도 없고.

그렇다고 단순히 경험 쌓기 용으로는 너무 위험 부담이 크다.

그렇다면 결론은 단 하나.

마교에 대한 증오심밖에 남지 않는다.

- 멋져! 역시 사람은 외모로만 판단해선 안 된다니까! 이 사람의 진짜 정체는 과연 뭘까?

레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불안한 건 김세용에 대한 레나의 인식에 변화가 생긴 점.

김세용이 멋지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그럼 계획서대로 사흘 뒤에 원정 떠나겠습니다.”

“너희들이 다 떠나고 나면 마탑이 아주 휑하겠네. 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익숙한 일이었지만.”

“조용히 연구하실 수 있으니 좋은 거죠. 요즘 한창 정신도 없으시던데.”

“사실 연구는 이미 완성됐어. 이번 원정대에 시험 가동하려고 무리해서 서둘렀거든. 히히.”

이건 미처 몰랐던 사실.

사실 레나의 연구 진행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근시일 내에는 완성될 거 같지 않았으니까.

“정말 이번 원정대에 사용한다고요?”

“어. 안 그래도 빈약한 원정대인데 힘이라도 좀 보태야지. 한번 볼래?”

레나의 연구에는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지만, 완성이 되었다고 하니 흥미가 동했다.

레나를 따라 연구실에 들어가 봤지만, 평소와는 다를 바 없는 모습.

“어디에 있는 건데요?”

“여기.”

잠시 후 레나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온 것은 검정색 캡슐.

“이름은 케레스의 쉘터라고 붙여 봤어.”

“쉘터…….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데요?”

“설명을 듣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빠를 거야. 한번 볼래?”

타악!

레나가 캡슐을 터뜨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돔 모양의 결계가 만들어지며, 나와 레나를 둘러싸 버린 것.

“할 수 있다면 깨뜨려 봐도 좋아.”

레나의 자신감은 확실한 근거가 있었다.

빠루로 발휘하는 수라마혈검으로는 아무런 흠집조차 내지 못했으니까.

인벤토리에서 잠자고 있는 엘리시온을 꺼낸다 해도 같은 결과일 것이다.

“지속 시간은요?”

“이건 시험용이라 대략 1분이면 끝나. 결계 크기도 많이 작고.”

“그럼 진짜 쉘터의 성능은…….”

“5분. 크기는 대략 이 실험실 정도?”

케레스의 쉘터.

방어 목적으로 만들어진 소모성 아이템이지만, 레나가 방금 설명한 스펙이라면 다른 용도로도 사용이 가능할 것 같다.

“잘 쓸게요. 마침 좋은 생각이 나서.”

“정말?”

레나는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신이 든다.

레나에게 충분한 시간과 자금만 투입된다면 정말 엄청난 것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는.

- 11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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