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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09화 (109/292)

109화

모래 안개가 피어오르며, 눈앞의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다.

지금 공기 중에 부유하고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로 보면 보잘것없는 흙과 모래일 뿐이지만, 이 많은 양을 컨트롤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능력.

역시 최정혁이다.

솨솨솨솨!

그의 손짓에 모래 안개는 모래 폭풍이 되어 데스나이트를 휘어 감쌌다.

우리를 향해 돌격하던 데스나이트는 순간 멈칫했다.

푸른 안광이 닫히며, 한낱 뼈다귀가 되고 만 것.

녀석은 일시적 전투불능 상태가 되어 버렸다.

‘놀랍군.’

내가 더욱 인상적으로 본 것은 모래 폭풍 뒤에 교묘히 감춰 놓은 회심의 한 수였다.

사과만 한 돌덩이 하나가 바로 데스나이트를 향해 날아갔다.

콰아악!

칼 같은 제구력.

돌덩이로 명치를 맞은 데스나이트가 격하게 주춤했다.

최정혁의 입술이 살짝 실룩거린다.

지금까지 그의 설계대로 완벽하게 진행되었으니까.

나 역시 박수를 보내 주려 했었다.

충격을 받은 데스나이트가 광폭화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촥! 촥! 촥! 촥!

해골 녀석은 다시 푸른 안광을 번뜩이며, 미친 속도로 달려왔다.

이는 최정혁도, 나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높은 항마력으로 유명한 데스나이트가 물리적 내구력 또한 이토록 뛰어날 줄은 몰랐으니까.

관절 구조가 어떻게 이뤄졌기에 한낱 뼈다귀가 이런 폭발력을 낼 수 있는 것인지 그저 놀랍기만 했다.

솨솨솨솨!

또다시 펼쳐진 최정혁의 모래 공격.

하지만 방금 전의 것에 비해 위력은 확연히 떨어진다.

‘급조된 공격이니 어쩔 수 없겠지.’

임기응변은 훌륭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충분히 마력을 불어 놓지 못한 것이다.

해골 녀석은 한 손에 장검을 든 채로 모래 바람을 뚫어 내며 최정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법사의 최대 취약점은 근접 전투.

원거리에서 마법 공격을 퍼부을 때엔 더없이 위력적이지만, 상대에게 거리를 허용하는 순간 상당히 위험해진다.

마법사의 신체 능력은 그리 뛰어나지 못하니까.

콰아아아악!

데스나이트가 휘두른 장검에 최정혁이 밀려났다.

다행히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마법 완드로 간신히 방어는 해낸 모양이다.

‘그나마 최정혁이니 망정이지.’

웬만한 플레이어였다면 방금 전 해골의 일격에 바로 비명횡사했을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당황할 만도 한데 최정혁은 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프로 게이머 시절 수없이 다져진 위기 대응이 이럴 때 빛을 발한다.

하지만 그 순간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장검을 들고 있는 데스나이트의 모습을 보니 절로 호승심이 피어오르기도 했고.

콰직!!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빠루로 데스나이트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겉보기엔 그냥 무식하게 휘두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라마혈검의 초식 일부.

보법, 내공심법, 검법의 삼위일체가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진 일격필살이었다.

나름 상당한 마력을 소모하기도 했다.

스르르.

순간 뼈다귀들이 일시에 허물어지며 데스나이트의 푸른 눈도 힘을 잃고 말았다.

[사자의 원혼을 획득하였습니다. (1/4)]

운이 좋았다.

첫 번째 놈으로부터 바로 사자의 원혼을 획득하다니.

또한 최정혁과의 승부에서도 한발 앞서 나가게 되었다.

꺼벙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정혁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싱긋 웃었다.

“땡큐. 이호영.”

애써 쿨한 척하고는 있지만, 녀석의 초조함이 느껴졌다.

“어! 1대 0.”

일부러 신경전을 걸어 봤다.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이호영! 앞으로 쓸데없는 오지랖은 사양이야. 솔직히 위험은 1도 느껴지지 않았어.”

이번엔 쿨내가 좀 떨어지는 걸 보니 역시 많이 초조한가 보다.

“그래?”

어쩌면 녀석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냥 내버려 두었어도 최정혁은 알아서 데스나이트를 처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정혁이 몬스터를 사냥할 때까지 내가 기다려 줘야 할 이유는 없다.

끝낼 수 있을 때엔 누구든지 끝낼 수 있으며, 그 기회가 나에게 찾아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살리는 것 자체가 능력.

최정혁도 방금 전 나의 활약으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 빠루 한 방에 머리뼈가 으스러졌어! 도대체 힘법사가 뭔데!

물론 힘법사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설령 있다 해도 지금 나만큼의 파괴력은 절대 내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은 사부가 내게 내려 준 은총.

‘사부가 내게서 검술 스킬을 떼어낸 것이 신의 한수였지.’

스킬은 탑의 게임 시스템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

그럼에도 나는 가장 중요한 스킬을 포기했고, 그 이후에는 순도 100퍼센트의 수련을 할 수 있었다.

이는 다른 플레이어들의 수련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들이 하는 수련의 기반은 어디까지나 스킬. 스킬을 잃으면 그 동안의 수련이 모두 無로 돌아가지만, 오직 나만은 예외다.

내 머릿속에 심득이 남아 있는 이상 무엇이든 재현해 낼 수 있으며, 그것은 이번 부캐 미션에서 여실히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나는 검투사의 모든 스킬을 잃어버린 마법사이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검투사이기도 하다.

빠직!

이번엔 내가 휘두른 빠루에 데스나이트의 쇄골이 그대로 으스러졌다.

고통을 느낄 수 없는 녀석이지만, 밸런스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빠직!

이번엔 척추.

해골뿐인 몸뚱이니 다칠 중추신경도 없겠지만, 움직임은 급격하게 둔화되었다.

빠직!

마무리는 역시 두개골.

[사자의 원혼을 획득하였습니다. (2/4)]

“운이…… 계속 좋네.”

벌써 두 개째.

최정혁의 어색한 미소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호영, 너도 느끼고 있겠지만 여기에 데스나이트는 엄청 많아.”

“그래서?”

“어쩌면 사자의 원혼을 아주 많이 획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단 얘기야. 고작 두 개 얻고서 기고만장해졌을까 봐.”

최정혁답지 않게 판단력이 완전히 흐려졌다.

칼리아 원주민이라면 모를까, 플레이어인 우리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딱 봐도 게임 시스템상 획득 가능하도록 세팅된 개수는 네 개.

“정혁아.”

“왜?”

“갑자기 말이 많구나.”

최정혁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마굴에서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 젠장!

12층의 부캐 미션이 시작된 이후, 오늘 처음으로 최정혁을 넘어섰다.

그리고 다시는 역전을 허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오민아가 내게 당부한 것도 있으니까.

앞으로는 나한테 지는 게 아주 당연해질 거다. 숨 쉬는 것만큼이나.

* * *

소문은 언제나 발보다 빠르다.

우리가 레나의 마탑으로 복귀하기도 전에 소문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너희 둘,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정확히는 둘이 아니라 나 혼자.

소문이 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야만 전사처럼 연장을 들고 설치는 마법사라니.

거기에 마굴 리셋도 해 버렸다.

레나가 요구했던 사자의 원혼 4개를 획득한 이후에도 나와 최정혁은 데스나이트의 씨를 말려 버렸다.

최정혁은 미련 때문에, 나는 마굴 리셋을 하기 위해서.

하급 마굴 같은 경우엔 작업장으로 쓰기 위해 리셋을 시키는 경우가 드물지만, 중급 마굴쯤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한번 리셋된 중급 마굴은 점점 난이도가 높아져 버리기 때문에, 어느 마탑에서 했는지 소문이 나게 된다.

“왜요? 벌써 소문이 났습니까?”

나는 시치미를 뗐다.

“소문이 안 날 리가 없잖아! 그나저나, 너 정말 힘법사야?”

“최정혁! 니가 얘기했냐?”

이 기특한 녀석.

그래도 적당히 빡친 표정을 해 둘 필요가 있었다.

“왜? 얘기하면 안 되는 거였어?”

아니, 돼.

“이렇게 입이 싼 놈인 줄은 몰랐는데, 실망이군.”

내 반응에 최정혁은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은근하면서도 내가 알아볼 수 있도록.

일종의 정신승리 같은 것이다.

이번 퀘스트의 과실을 내가 독식했기 때문에, 녀석에겐 이런 거라도 필요했다.

좀 잔인하지만, 이럴 땐 가볍게 눌러 줄 필요가 있다.

“마탑주님. 여기 사자의 원혼 네 개.”

“혼자서?”

“뭐, 최정혁도 수고는 많이 했어요. 성과급이라도 좀 챙겨 주세요.”

“어, 당연하지!”

최정혁의 주먹이 미세하게 떨렸다.

부들부들 떨리려는 걸 애써 참고 있는 것.

[14층 진행률이 상승하였습니다.]

드디어 숫자상으로도 처음으로 최정혁을 넘어섰다.

내가 116/1000

최정혁이 98/1000

역시 중급 마굴이다 보니 포인트가 꽤 크다.

- 망할! 이놈이 힘법사라는 걸 미리 알았는데도 대책을 세우지 못했어! 내 불찰이야!

첫 역전에 멘탈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민아는 말했었다.

이 녀석은 프로 게이머 때도 한번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게임 전체를 망쳐 버렸다고.

이 부분은 내가 잘 잡아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마냥 마음에 드는 녀석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료니까.

레나는 싱글벙글이었다.

마탑을 설립한 이래로 요즘 들어서야 그럴듯한 성과를 내고 있었으니까.

“이호영! 요 일대에선 너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돌고 있어. 갑자기 튀어나온 네 정체가 뭔지, 그리고 네가 가진 마법 속성이 무엇인지 말이야.”

“중급 마탑 하나 돌고 왔을 뿐인데, 별게 다 이슈가 되는군요.”

“심지어, 근처 공구 상점에선 빠루가 전부 품절이야! 오늘 아침부터는 없어서 못 판다던데, 이거 니 작품 맞지?”

이건 예상치 못했던 현상.

“어차피 힘법사인 것도 들켰으니, 보여 드리죠. 뭐.”

나는 인벤토리에서 빠루를 꺼내 레나 앞에서 빙빙 돌렸다.

그 모습을 본 레나는 잘 정돈된 금발을 매만지며 킥킥거렸다.

“아, 완전 웃겨! 빠루에 숨겨진 권능이라도 있나 찾고 있을 덜떨어진 인간들이 있다는 거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사재기라도 해 놓는 건데.”

“굳이 그런 거 아니더라도 기회는 많아요. 어차피 좋은 투자처도 얻으셨잖아요?”

“이 복덩이 같은 녀석! 그리고 좋은 소식 하나가 있어.”

“뭡니까?”

“23구역 마탑 연합에서 드디어 우리를 껴 준대! 나 이런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는데, 완전 경사지?”

내 의도대로 되고 있었다.

레나의 마탑은 좀 더 성장해야만 한다.

내가 14층 전체의 판을 짜야 하니까.

“오오! 축하드려요!”

“그리고 마침 마탑 연합 미팅이 곧 있는데, 거기에 마탑주가 대표 용병 하나씩만 데리고 오라네?”

그 말에 나와 최정혁은 동시에 외쳤다.

“저요!”

경쟁률은 2 대 1.

레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 마탑주 할 맛 난다! 요샌 일도 잘 풀리고 용병들도 이렇게 적극적이니까 말이야. 히히.”

“마탑주님! 찬물도 순서가 있는 거 아닌가요? 제가 여기서 구른 짬밥이라는 게 있는데 당연히 제가 대표 용병이죠! 그리고 개국공신은 절대 홀대하는 거 아닙니다.”

“어. 그래! 그 말도 맞지.”

레나는 최정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나도 수긍했다.

최정혁이 마탑 선택에서 이곳을 고른 건 일종의 영웅 심리.

실제로도 레나의 마탑을 하드캐리하고 있었으니, 그가 대표 용병이 되어야 옳다.

나 없이 최정혁 혼자만 있었다면 말이다.

“마탑주님. 잠깐 저 좀 보시죠?”

나는 레나의 옆으로 다가갔다.

- 110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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