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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08화 (108/292)

108화

죽은 자들의 숲.

중급 마굴답게 이곳은 지난번 구울을 때려잡은 곳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마굴의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숲,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진짜 다르긴 다르네?”

마굴 경험이 몇 차례 있는 최정혁도 많이 놀란 모양이다.

그러고는 녀석은 벌린 입을 급히 다물었다.

- 내가 너무 촌티를 냈나?

옆에 있는 나를 의식하고 있었던 것.

참 피곤하게도 산다.

이제부터는 이 녀석과의 2인용 퀘스트인데, 협동 플레이가 잘될지는 모르겠다.

이놈은 과실을 독식하려는 마음이 너무 강하니까.

레나가 우리에게 요구한 것은 사(死)자의 원혼 4개.

현재 우리의 정보창에는 (0/4)로 표시되어 있으니, 아마 그 이상은 획득할 수 없도록 시스템이 세팅되어 있을 것이다.

최정혁도 그 부분을 바로 통찰한 듯싶었다.

“둘씩 나눠 가질래? 아니면 한 사람한테 몰아줄까?”

내게 의견을 구하고는 있지만 분명 답정너일 것이다.

“만약 내가 나눠 갖자고 한다면?”

“그럼 다시 한번 더 물어보겠지.”

그럴 줄 알았다.

이놈의 마음속에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었던 것.

나도 굳이 거부할 마음은 없다.

“알겠어. 몰빵으로 가. 됐냐?”

“어. 좀 더 활약하는 쪽이 전부 다 갖기.”

최정혁은 이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렇게 애매하게 정해 놔서 되겠어?”

생각이 짧은 건지, 아니면 나를 압도할 자신이 있는 건지.

“애매할 일을 없게 해야지.”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역시 독특한 녀석.

나를 과도하게 의식하고 초조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감이 넘친다.

‘어쩌면, 자신감을 세뇌하고 있는 것인지도.’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오민아가 내게 해 준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이놈은 확실히 정신이 좀 아픈 녀석이니까.

“그나저나 우리 말고도 더 있는 거 같은데?”

숲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기척이 점점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인원은 대략 열 명쯤.

“나도 느끼고 있어.”

최정혁과의 경쟁뿐만 아니라, 한 가지 더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마굴 리셋.

다른 사람이 이 마굴의 최상위 몬스터들을 모두 죽여 버리면, 그 순간 일정 기간 마굴은 사라져 버린다.

그런 면에서 운이 좋지는 않다.

칼리아의 널리고 널린 마굴에 경쟁자가 있다는 건 달가운 일이 아니니까.

“서둘러야겠어.”

“이호영, 그 전에 뭐 하나만 물어보자.”

“뭐를?”

“너 정말 힘법사냐?”

12층의 초반부 때 우리 플레이어들은 서로의 마법 속성을 서로 공개한 적이 있다.

이 녀석은 그때 내가 힘법사라고 얼버무린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어. 맞아.”

사실 이 질문의 의도는 잘 알고 있다.

레나가 최정혁에게 내 마법 속성을 알아 오라고 몰래 시킨 걸 ‘마음의 소리’로 알게 되었으니까.

아마 최정혁은 레나에게 힘법사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레나는 세상에 그런 게 어딨냐며 다시 알아 오라 했을 테고.

마침 잘된 일이다.

오늘이 지나면 레나도 내 속성에 관한 관심을 끄게 될 테니까.

나는 인벤토리에서 이번에 쓸 무기를 꺼내 들었다.

최정혁은 내 무기를 보고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 혹시 빠루야?”

“어. 빠루 맞아.”

놀랍게도 칼리아에 빠루가 존재했다.

지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더 신기했다.

“설마, 너 지금까지 그걸로 몬스터를 사냥해 온 거야?”

“어, 이게 손에 잘 맞더라고.”

칼리아에서 검이 금지된 것은 이미 수백 년 전의 일.

유사시엔 엘리시온을 꺼낼 수도 있겠지만, 당분간 검을 대체할 무기가 필요했다.

힘법사의 콘셉트를 따르자면 해머나 도끼류가 더 어울리겠지만, 검술을 최대한 적용하려면 좀 더 얇은 것이 필요했다.

마침 내 눈에 띄었던 것이 빠루.

혈마의 수라마혈검과 궁합이 나쁘지 않을 거 같지 않았다.

수라마혈검의 패도적인 특성은 예리함보다는 힘으로 찍어 누르는 스타일이니까.

“어이가 없네. 너 정말로 힘법사라고?”

내가 생각해도 이런 게 존재할 리가 없지만, 그럴수록 더 뻔뻔해져야 한다.

“최정혁, 촌티 좀 그만 내. 칼리아에 밝혀진 마법 속성 종류만 수백이고, 히든 속성까지 생각하면 얼마가 될지 모르는데, 그딴 수준 낮은 질문을 자꾸 할래?”

촌티라는 말에 최정혁이 움찔했다.

- 이 자식은 정말 알 수가 없는 놈이야! 뭐, 두고 보면 알겠지.

“일단 그건 그렇다 쳐도 빠루는 좀…….”

사실 나도 궁금하다.

이 무식한 공구로 펼치는 수라마혈검은 어떤 모습일지.

* * *

콰악-

내 공격의 마무리는 빠루의 꼬챙이 부분을 외눈 코볼트의 머리통에 박아 넣는 것.

피가 분수처럼 튀며 외눈 코볼트 한 마리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으며 생을 다했다.

최정혁은 그런 나의 전투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아, 진짜 야만적이네! 너랑 다니기 쪽팔리단 말이야.”

실제로 숲에 있던 다른 용병들의 이목은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마법 문명이 찬란한 현 칼리아에서 나 같은 전투 스타일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 뭐, 저딴 새끼가 다 있지?

- 마법사도 아닌 거 같은데 이렇게 마굴에 들어와도 되는 거야?

- 저런 무기를 쓰는 마법사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이들 역시 최정혁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다행히 나를 검투사로 오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투박한 빠루를 들고 설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최정혁, 그렇게 넋 놓고 있어도 되겠어? 이번 퀘스트 보상 몰빵 하기로 했는데.”

“어차피 코볼트는 잔챙이야. 사자의 혼을 드랍 하는 일도 없을 테고.”

“그래서 잔챙이는 야만적인 나에게 다 맡기시겠다?”

“묻어가는 입장에서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이 마굴, 원래는 나 혼자 오기로 돼 있었던 건데.”

“알겠어. 그럼 잔챙이는 야만적으로 처리하는 걸로.”

사실 조금의 불만도 없었다.

약한 코볼트를 상대로 빠루 사용의 숙련도를 높이는 건 내게도 필요한 일이니까.

콰아아악!

또다시 꼬챙이에 찍힌 코볼트가 그대로 죽어 버렸다.

고맙게도 이번엔 E급 마령석 하나를 드랍 한다.

이것도 나름 소소한 재미.

그리고 수라마혈검과 빠루의 케미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수라마혈빠루라고 해도 좋을 만큼.

“너, 아무리 봐도 야만적이야.”

“힘법사니까.”

세뇌는 점점 더 먹혀들어 가고 있었다.

눈으로 보는 게 있으니,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가 다른 속성의 마법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나도 이제 몸이 근질근질한데?”

드디어 최정혁도 몸을 풀기 시작했다.

녀석의 마법 속성은 염동력.

우웅!

우우웅!

최정혁이 주변의 지물들에 마력을 불어넣자 온갖 것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주를 이루는 것들은 바닥에 있던 돌멩이들.

최정혁의 손짓 한 방에 돌무더기가 코볼트를 향해 날아간다.

마력이 실려 있으니 이것은 그냥 단순한 돌이 아니다.

콰악!

콰아악!

코볼트의 갑옷을 뚫어 내고 몸에 박히기에도 충분한 위력.

놀랍다.

못 본 사이에 이 녀석 마법의 수준이 이토록 높아졌다니.

“어때?”

“뭐, 우아하네.”

인정할 건 깨끗이 인정한다.

내 공격 스타일보다는 훨씬 더 고급지다는 것을.

하지만 전투에 예술 점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콰아아악!

또다시 내 빠루에 머리통이 터져 나가는 외눈 코볼트.

이 스타일, 갈수록 만족스러워진다.

콰아아악!

또한, 전투에선 가장 효율적인 것이 가장 예술적인 법.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내 예술 점수는 10점 만점에 10점이다.

콰아아악!

피가 솟구쳐 오른다.

[E급 마령석을 획득하였습니다.]

마령석 드랍은 일종의 축포.

사람들은 점점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야만 전사를 연상시키는 내 전투 방식에, 처음에는 기겁을 하다가도 이제는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내가 관종은 아니지만, 이런 열렬한 눈빛 응원을 외면할 수는 없는 법.

케엑!

케엑!

이번에는 코볼트 두 마리가 동시에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머리 위에서 빠루를 빙글빙글 돌리며 각을 쟀다.

‘마력 장전 완료.’

이번엔 빠루의 중심부 쪽을 잡았다.

그리고는 무명보를 밟으며 코볼트 두 마리의 중앙을 파고든 후.

콰아악!

콰아악!

투 샷 투 킬.

빠루의 전설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주변의 코볼트를 정리한 후, 질문 공세가 시작되었다.

이 숲에 있던 또 다른 열 명의 용병들.

그들은 마치 나를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 바라보았다.

내 옆의 최정혁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진심으로 날 창피해하는 것이다.

“무슨 뜻이죠?”

일단은 시치미를 뗐다.

“아무리 봐도 마법사 같지는 않은데.”

“마굴에 마법사가 아닌 사람도 들어올 수 있습니까?”

“그, 그거야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당신은…….”

“마법사 맞습니다. 레나의 마탑에서 온 용병이고요.”

“레나의 마탑? 처음 들어 보는데요?”

“신생이니까요. 아직은 규모도 작고.”

나는 의도적으로 출신 마탑을 밝혔다.

이제부터 레나의 마탑은 좀 더 유명해질 필요가 있다.

또한 좀 더 커져야 하며, 좀 더 영향력을 갖춰야만 한다.

칼리아의 마탑 연합은 <마교>로 불리는 조셉의 후예들을 소탕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나는 그것을 저지시킬 계획이니까.

“당신들 표정을 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요. 내가 코볼트를 때려잡은 이 무기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한 거 아닙니까?”

“솔직히 그렇습니다. 딱 봐도 그게 마법봉의 종류는 아닌 거 같고…….”

역시, 우아한 마법사들이신지라 공사판에서나 쓰는 빠루를 알 리가 없다.

“이 무기의 이름은…… 비밀입니다.”

“네?”

“여기까지만 합시다. 우리들 서로 바쁜 몸 아닙니까? 마굴에 들어왔으면, 몬스터나 잡아야죠.”

“당신! 말해 줄 것처럼 하더니만 비밀이라니!”

“가자, 최정혁.”

딱 이 정도쯤 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레나의 마탑이라는 것도 밝혔고, 오늘 내가 마굴 리셋을 해 버리면 어느 정도 소문은 날 터.

이제는 사자의 원혼을 수집하는 일만 남았다.

이미 빠루 숙련도는 충분하다.

* * *

죽은 자들의 숲, 이 마굴을 방문하는 용병들은 좀처럼 숲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는 접근하지 않는다.

이 마굴의 주인은 데스나이트.

몬스터라 부르기도 애매한 이 해골 병사는 대부분의 마법사들과 극악의 상성을 갖고 있기에 웬만해서는 상대하기 꺼리기 때문이다.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정보에 따르면, 데스나이트는 불에도, 물에도, 바람에도, 얼음에도 강력한 저항성을 지닌다.

한마디로 마법 속성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메이저 마법들로는 처리하기 곤란하다는 것.

최정혁도 이에 대해 알고 있었다.

혼자서 이 마굴을 공략할 계획을 갖고 있었기에 철저하게 조사를 한 것이다.

“이제 슬슬, 묘지가 나올 때가 됐는데.”

숲의 끝으로 접근할수록 점점 배경은 어두워졌으며, 정말로 묘지가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덜컹.

덜컹.

저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이 소리의 주인은 데스나이트.

이 숲의 끝이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그나저나, 이 녀석이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었군.’

최정혁은 염동력이라는 희귀 속성의 마법을 각성했으며, 이는 데스나이트를 상대로 좋은 상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나.

내가 볼 때 뼈다귀들을 상대로는 연장만 한 것이 없다.

아마도 내 생각이 맞을 것이다.

- 10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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