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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06화 (106/292)

106화

다시 돌아온 레나의 마탑.

레나는 머리빗으로 본인의 머릿결을 정리하고 있었다.

거울을 보며 한 올 한 올 머리를 다듬고 있는데, 그녀는 자신의 미모에 한껏 도취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사실 그녀의 찰랑거리는 금발은 헤어 모델을 해도 될 만큼 매혹적이긴 하다.

잘 갖춰 입은 드레스는 중세 유럽의 귀족을 연상시켰고.

문제는 마탑의 정리 상태가 개판이라는 것.

그녀는 본인의 몸을 치장하는 것만큼 마탑의 정리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온갖 종류의 도서와 마법 재료들은 실험실에 너저분하게 어질러져 있었고, 책장에는 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었다.

정리해 주고 싶은 욕구가 들끓었으나 일단은 참았다.

레나가 일곱 살 어린 애도 아니고.

“왔어?”

레나는 돌아온 나를 거울로 힐끔 쳐다보았다.

“일단 계약서부터 쓰시죠.”

“계약서? 무슨 계약서?”

“견습 용병 계약서지, 뭐겠습니까?”

“뭐? 누구 맘대로!”

레나는 고개를 홱 돌리며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테스트를 통과했을 거란 가능성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그녀를 향해 C급 마령석 3개와 수정 구슬을 던졌다.

“받아요!”

“야! 이게 뭐 하는 짓이…….”

레나의 손짓에 마령석과 수정 구슬이 레나의 코앞에 멈춰 섰다.

그녀는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마령석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정말 C급이잖아! 이게 정말로 네가 구해 온 거라고?”

“확인해 봐요. 수정 구슬로.”

“너 사기 친 거면 혼난다?”

그 말에 어이가 없어서 손사래를 쳤고, 레나는 의심의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므네뫼!”

그녀가 주문을 외치자 수정 구슬은 즉각적으로 이 마령석의 소유자를 확인시켜 주었다.

의심의 여지 없는 확실한 증거다.

“정말로 네가 구울을 잡았다고?”

“방금 확인하셨다시피.”

나는 레나를 향해 걸어갔다.

이럴 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주는 게 클리셰다.

“말도 안 돼! 아무리 T의 추천서를 받았다지만, 너 같은 애송이가!”

“그럼 다른 마탑으로 갈까요?”

“가긴 어딜 가!”

레나는 바로 나의 손목을 낚아챘다.

- 대박! 얘 뭐 하는 놈이지?

나는 바로 레나와 견습 용병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 조건을 가지고 피곤하게 밀당을 하는 일은 없었다.

어차피 내게 중요한 건 돈이 아니니 업계 표준이면 족하다.

독소조항도 없으니 이 정도면 크게 나무랄 게 없는 계약서.

“그런데, 너 정말 마법 속성이 뭔지 얘기 안 할 거야? 사실 말이 안 되잖아! 용병의 정보도 못 물어보는 마탑주가 세상에 어디 있냐?”

“저 아직 서명 안 했어요. 자꾸 이러시면 마음 바뀔 수도 있습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진짜 더러워서 원!”

“말 나온 김에 이것도 계약 내용에 넣죠. 갑(甲) 레나는 을(乙) 이호영이 원하지 않는 개인 정보를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다.”

“와! 지금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이냐?”

나는 손가락으로 레나를 가리켰지만, 당연히 내가 갑이다.

이 상황에서 아쉬울 거 전혀 없는 사람은 나니까.

그리고 잠시 후면 난 슈퍼 갑이 될 것이다.

나는 레나에게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제안을 할 생각이다.

“세상에 너같이 버르장머리 없이 구는 용병은 없을 거야!”

레나는 투덜대면서도 계약서에 내가 제안한 내용을 추가해 넣었다.

그녀로서는 빨리 계약을 마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이제 다 됐네요.”

“아직 네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레나의 마탑에 들어온 걸 환영해.”

그녀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레나의 마탑에 입탑하였습니다. 앞으로 그녀가 당신에게 제안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14층을 클리어하십시오.]

[진행률: 0/1000]

드디어 정보창이 생성되었다.

이제 레나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내게 임무를 부여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재량이니까.

아마 임무의 중요도나 난이도에 따라 진행률이 달라질 것이다.

이미 최정혁의 진행률은 21/1000

녀석은 역시 치타처럼 앞서 나가고 있었다.

“마탑주님. 그리고 한 가지 더 드릴 말씀이.”

이젠 내가 이 마탑의 지분을 좀 가져야겠다.

그녀가 제안할 퀘스트를 내 입맛에 맞게 바꿔야 할 테니까.

“뭐야? 그런 목소리로 말하니깐 겁나잖아”

“좋은 얘깁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아는 형님 중에 마탑에 투자를 원하는 분이 계셔서요. 마침 테스트를 마친 후 그분을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그 얘기 진짜였어?”

아까와는 상당히 다른 반응.

이제 내 말이 마냥 허언으로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눈으로 직접 보여 주는 것.

나는 인벤토리에서 조그마한 골드바 하나를 꺼냈다.

“형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이걸 보고는 레나의 눈이 바로 휘둥그레진다.

“그거 진짜 금이야?”

내가 레나에게 골드바 하나를 건네자 그녀는 바로 이빨로 살짝 깨물었다.

찬란한 마법의 시대에도 이게 가장 확실한 금 감정법인가 보다.

“와! 대박! 진짜 순금이잖아!”

“돈 가지고 장난치는 분은 아닙니다.”

“도대체 누군데? 혹시 나도 알 만한 사람 아니야?”

정답.

그분은 지금 바로 앞에 있으니까.

“신원은 밝힐 수 없고요.”

“신원 확인도 없이 투자 계약은 어떻게?”

“저를 대리인으로 지목하셨습니다.”

“너를? 그나저나 도대체 투자 조건이 뭔데?”

이쯤 되면 거의 넘어왔다.

레나의 눈은 이미 반 뒤집힌 상태.

나는 그녀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 * *

나는 레나에게 투자 조건으로 몇 가지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마탑의 지분 일부.

과하게 요구하지는 않았다.

지분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제시한 것일 뿐, 내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내가 상당히 양보를 했음에도 레나는 주판을 굴리는 척을 하며, 밀당을 시도했다.

사실 이 부분에선 레나가 어설픈 모습을 보였다.

딱 봐도 사회생활 안 해 보고 마법 연구만 한 티가 풀풀 난다.

“자꾸 이러시면 없던 일로 할 생각입니다.”

“야! 너어! 뭐가 이렇게 깐깐해!”

“마탑주님, 생각을 해 보세요. 이 마탑에 연구원이라고는 마탑주님 한 명에, 용병은 꼴랑 두 명. 이런 곳에 투자한다는 거 자체가 기적 아닙니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투자자가 내 가능성을 본 것이겠지!”

“어쨌든 이 이상은 양보 못 합니다.”

“알았어! 그럼 그다음 조건!”

두 번째 조건은 이 마탑의 운영에 일부 참여할 권리를 갖는 것이었다.

사실, 이 조건이 이번 투자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레나가 내게 부여하는 임무는 곧 14층의 퀘스트.

나는 그것을 컨트롤할 필요가 있었다.

지난 12, 13층이 순한 맛이었으니 이번 14층을 생각하면 싸한 기분이 드는 게 당연한 일.

“꼴랑 금붙이 몇 개 내놓고, 내 마탑을 좌지우지하시겠다고?”

“꼴랑이 아닐 텐데요?”

마탑은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

돌아가는 꼴을 봐선 지금 레나의 재정 상황이 좋을 리가 없다.

마음의 소리만 들어 봐도 알 수 있다.

레나는 지금까지 부모 등골을 꽤나 빨아먹었다.

나는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골드바 몇 개를 더 꺼냈다.

“너, 그건 또 뭐야?”

“2차 투자는 1차의 10배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구멍가게 같은 마탑에 이런 금액이 들어가는 게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지금 레나는 금 앞에서 이성적 사고를 잃은 상태.

“그 말 진짜야?”

나는 여유를 한껏 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갑은 무조건 나다.

- 1차 투자의 10배면 도대체 얼마야!

결국 협상의 페이스는 내가 조절할 수 있었고, 나는 원하는 바를 가볍게 이루어 냈다.

결과적으로 마탑 선택에서 여기를 고른 것은 최선이란 생각이 든다.

“마지막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또 뭔데!”

“마탑의 청결 상태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

“뭐?”

“투자하신다는 형님이 결벽증이 있으셔서 말입니다.”

“야! 그 투자자 코빼기도 안 보이고 널 대리인으로 내세웠는데, 마탑의 청결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데!”

“어쨌든 저는 투자자 형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했을 뿐입니다. 싫으시면 무르셔도 좋습니다.”

“내가 진짜 더럽고 치사해서! 그거 말고는 더 없어?”

“네. 끝입니다.”

레나는 또다시 서둘러서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그리고는 내가 꺼내 놓은 골드바를 바로 챙겨 넣었다.

“이젠 무를 수도 없는 거 알지?”

“네. 그럼 이제 시작하셔야죠.”

“시작? 뭘?”

“청소요.”

“내일부터 사람 구해서 할 거야. 어차피 주머니도 두둑해졌으니까.”

레나는 흥얼거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갑작스럽게 돈벼락을 맞았으니 신날 것이다.

미안하지만 내 돈 가지고 하는 편한 꼴은 못 보겠다.

“사람 쓰는 건 마탑주님 자유긴 한데, 투자자 형님께서 외부인을 들이는 걸 좀 싫어하셔서 말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네요?”

“아놔! 그 인간은 왜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진상을 부리는 건데!”

레나는 짜증을 내며 마탑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청소 도구를 꺼냈다.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지, 비닐은 개봉되지도 않은 상태.

“야! 너도 빗자루 들어!”

“제가 왜요?”

계약서에 없는 내용까지 이행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 * *

“아! 청소도 마법으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레나는 투덜대며 2시간째 마탑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가끔씩 영혼 없는 리액션이나 해 주며, 레나의 책장에 꽂혀 있던 책 한 권을 탐독 중이었다.

제목은 『칼리아의 마법史』.

13층과 14층 사이 간극인 500년의 세월이 궁금했다.

공략집을 통해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공백을 메워 줄 디테일을 알고 싶었다.

‘흥미롭네.’

이 책은 내가 원했던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칼리아의 마법이 어떻게 태동을 했는지부터 현재의 찬란한 마법 문명이 어떻게 일구어졌는지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이 마법史라지만 너무 마법에 관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것.

문득 칼리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검투사들에 대한 소식도 궁금해졌다.

레나에게 물어보면 대충은 알 수 있을지도.

“저기, 마탑주님! 혹시 검투사들에 대해서 좀 아십니까?”

내 질문에 레나는 빗자루를 갑자기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던진 말은 상당히 의외의 것.

“검투사? 그 버러지들은 왜?”

버러지라니.

나도 모르게 발끈할 뻔했다.

내가 경험한 12층과 13층에서의 검투사는 대접받지 못했던 존재들.

하지만 위대한 검투사 조셉 클루드의 등장으로 조금은 바뀌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 제가 조셉 클루드에 대한 일화를 감명 깊게 읽어서 말입니다.”

“조셉 클루드? 그놈, 칼리아 비극의 원흉이잖아! 그런 놈의 일화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너 뭔가 사상이 수상해!”

레나는 갑자기 나를 한껏 경계하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지금 레나의 반응만 놓고 보면 ‘저는 이완용을 존경합니다.’ 정도의 발언인 듯한데.

‘도대체 뭔데!’

뭔가 정보가 필요했다.

그래야 지금 상황을 수습하든지 말든지 하지.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빨리 좀 보내 주지.

서둘러 확인해 봐야겠다.

도대체 500년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 죽겠으니까.

- 107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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