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조셉이 내는 4할의 힘은 전날과 차원이 달랐다.
단 1할의 차이지만, 비율로 치면 약 33퍼센트나 증가된 위력.
칼리아 최고의 검객이 본인 힘의 절반 가까이 쓰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칼 같네.’
조셉은 생긴 대로 아주 우직한 녀석이었다.
내가 제시한 4할의 힘을 칼같이 지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 방금 전, 너무 강했나? 사부님이 제시한 4할을 살짝 웃돈다!
마음의 소리를 들어 보면, 거의 강박증적인 수준이다.
파앗!
파아앗!
수라마혈검 특유의 패도적인 검격이 나를 짓눌러 왔다.
녀석의 검을 한 번 한 번 받아 낼 때마다 내공이 쭉쭉 빨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오늘은 절대 선천진기를 사용하는 일이 없어야만 한다.
부캐라는 이유로 생명력을 함부로 쓰는 것은 내 발전에 독이 되는 일.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오늘의 수련은 내 힘으로 끌고 가야만 할 것이다.
파앗!
파아앗!
조셉의 공격은 갈수록 매서워졌고, 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녀석의 빈틈을 기다렸다.
어설픈 반격을 했다가는 카운터를 맞기 십상.
분명 빈틈은 온다.
칼리아 인들의 평가와는 달리 조셉은 소드마스터에 훨씬 못 미치는 경지이니까.
그리고 나의 기다림은 결실을 맺었다.
‘지금이다.’
타아악!
나는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라, 조셉의 의표를 찔렀다.
쭈욱 뻗은 검은 조셉의 왼쪽 어깨를 향했다.
한참을 공격에만 몰두하던 녀석이었기에, 갑작스러운 역습은 효과가 배가 되었다.
스으윽!
검날은 조셉의 옷깃을 베어 냈다.
베어진 옷깃은 선혈로 붉게 물들었다.
조셉이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녀석에게도 위험천만했던 상황.
대련을 끝마치기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반격을 하려던 조셉이 멈칫하며 자세를 고쳐 잡고는 고개를 숙였다.
나로선 간담이 서늘하다.
방금 전 조셉이 내뿜었던 기세는…… 4할을 많이 웃돈다.
너도 순간 화가 났었구나.
“오늘도 많이 배웠습니다. 사부님.”
하지만 녀석은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나에 대한 감사에 살짝 민망한 마음마저 든다.
녀석은 정말로 내가 본인보다 훨씬 강하다고 믿고 있다.
단 일말의 의심도 없이.
조셉에게 무림인이란 거의 신앙의 대상이나 다름없었다.
마치 지금의 나는 장풍을 쏘는 사이비 교주가 된 느낌이다.
“오늘은 무엇을 배웠느냐?”
“이번에 사부님께서는 싸우면서 점점 강해지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혹시 오늘은 힘을 숨긴 상대를 만났을 경우를 대비시켜 준 것이 아니십니까?”
본인이 그걸 배웠다는데 내가 굳이 덧붙일 이유는 없다.
마음에 쏙 드는 대답이다.
“……그래. 아주 잘 짚었다.”
“만약, 사부님께서 대련을 멈추지 않고 더 진행하셨더라면 저는 더 크게 다쳤을 것입니다. 대련 도중에 방심을 했던 저의 불찰입니다.”
미안하지만 그 반대다.
더 했더라면 내가 험한 꼴을 볼 뻔했다.
마지막 회심의 일격은 정말로 내 힘을 쥐어짜 낸 것이니까.
“깨달은 바가 있는 것 같으니 기특하구나.”
“오늘의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사실, 내 의도는 아니지만 조셉이 아주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대련 내내 조셉이 펼쳐 내는 수라마혈검은 나에게 실시간으로 깨달음을 주었다.
<지혜의 시간>은 언제나 발동되고 있는 것이니까.
고로 나는 점점 더 강해졌다.
검을 운용하는 이치에 조금 더 눈을 떴고, 상대의 수를 조금 더 능숙하게 읽게 되었다.
내가 펼친 마지막 일격 또한 대련 전이었다면 결코 성공시키지 못할 일이다.
‘오늘도 이만하면 만족스러운 하루였군.’
카일 협곡에서의 이틀은 그렇게 지나갔다.
* * *
카일 협곡 3일 차.
눈을 뜨자마자 수라마혈검의 초식들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내가 이 검술을 익힌 것은 단 이틀.
당연히 내 상상 속에서도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장면들이 펼쳐진다.
몸으로 직접 펼치는 것은 이보다 더할 터.
누군가 실제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 나에게 보여 준다면 훨씬 더 꼴사나울 것이다.
‘계획했던 일주일로 될까?’
나는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혈마가 남긴 이 절세 무공을 단 일주일 만에 깨닫는 것은 불가능한 일.
하지만 상관없다.
사실 이 수라마혈검은 검의 궁극으로 가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
나에겐 이미 무영추혼검이 있다.
‘물론 이 역시 가야 할 길이 구만리지만.’
수라마혈검을 통해 검술에 대한 이해를 한 푼이라도 높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내 상상 속의 사부가 말한 것처럼, 이 두 가지 검술을 익히는 것은 서로의 막힌 부분을 뚫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무영추혼검이 정체되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
현재의 수련이 돌파구가 되어 주길 바랄 뿐이다.
무의 궁극은 결국 하나로 통하는 것이니까.
그런 마음으로 오늘은 수라마혈검의 중편을 펼쳤다.
이 비급을 보고 있으면 저작자인 혈마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완벽주의자 혹은 결벽증 환자.
1에서 10까지는 가는 과정을 거의 100단계로 쪼개어 깨알같이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 무공이 난해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혈마가 달아 놓은 주석에는 내 사부와 정반대의 성향이 엿보였다.
아마 사부가 이 비급을 썼다면 분량이 2할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그냥 답답해하고 마는 성격이니까.
어쨌든 혈마의 세심한 서술 덕분에, 나는 난해하기만 한 수라마혈검의 중편을 순조롭게 읽어 나가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조셉은 내가 기거하고 있는 동굴 안으로 들어와 앉아 있다.
나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녀석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조셉아.”
“네, 사부님.”
“왔으면 기척 좀 하거라.”
“사부님께서 탐독하시는 모습을 보니 차마 방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탐독이라고 표현하는구나. 어제는 그림만 보면서 넘기는 게 아니냐고 묻더니.”
“아. 그게. 사부님의 책장 넘기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만. 어제는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이제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무림인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지난 이틀의 대련이 녀석에게도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조셉이 27년간 수련한 수라마혈검을 나는 단 이틀 만에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래. 무림인은 그런 존재다.”
오늘도 세뇌 작업은 잊지 않았다.
덕분에 조셉의 신앙심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오늘부터는 내가 본격적으로 조셉을 가르치는 입장이 될 테니까.
“수라마혈검을 삼(三)성까지 연성했다 했느냐?”
“네. 그렇습니다.”
“그럼 중편부터 막히는 구간이 많았겠구나.”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내가 잠시 절벽에 다녀온 뒤 해결해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감격에 겨웠는지 녀석은 목소리가 살짝 떨려 왔다.
칼잡이들에게 성장이 정체된 것만큼 고통스러운 건 없는 법.
그동안 녀석은 수천수만 번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부님께서는 정말 그 검흔만을 가지고도 심득을 얻으실 수 있는 것입니까?”
“또 잊었구나. 내가 무림인이라는 것을.”
“아아!”
무림인.
조셉을 납득시키는 만능의 단어였다.
[공략집을 열람합니다.]
나는 절벽으로 이동하여, 필요한 검흔을 찾아 수련을 시작했다.
오늘 시작한 중편은 어제까지의 상편보다 난이도가 열 배쯤은 되는 느낌이었다.
비급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검흔을 따라가며 초식을 재현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사실 무영추혼검을 익히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막혀 있는 구간도 수라마혈검으로 치자면 딱 이쯤이었으니까.
나는 두 개의 검술을 번갈아 가며 허공에 펼쳤다.
무림 전체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1, 2위를 다툴만한 궁극의 무공.
그것이 내 한 몸에서 동시에 발휘되어 나온다는 감격 따윈 잠시 접어 두어야 할 것 같다.
[지혜의 시간이 대폭 활성화됩니다.]
뭔가 깨달음이 올 것 같았으니까.
신선한 경험이었다.
서로 다른 두 접근 방법은 서로의 막힌 부분을 훌륭하게 보완해 주었다.
막혀 있던 한 곳이 뚫리니 다른 한 곳 역시 자연스럽게 뚫렸다.
서로 대등한 검술이었기에, 나쁘지 않은 수련 방법이었다.
물론 <지혜의 시간>의 역할이 가장 크긴 하겠지만.
또다시 사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 조금 더 쓸 만한 쓰레기가 되어 가고 있구나!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오늘도 한 단계를 도약한 느낌이다.
카일 협곡에서의 3일 차.
이날 나는 4할의 힘을 발휘한 조셉을 상대로 대등한 대결을 펼쳤다.
* * *
카일 협곡에서의 4일 차.
나는 다시 수라마혈검의 상편으로 돌아와 비급의 내용을 한 번 더 짚어 보았다.
혹시라도 이 단계에서 놓치는 부분이 생기면, 다음 단계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헤매게 된다.
나는 글자 하나하나와 행간의 여백까지도 놓치지 않도록 꼼꼼히 정독하였다.
오늘이 지나면 상편을 다시 보는 일은 없을 테니까.
“사부님!”
“지금 비급을 읽고 있는 중이다.”
“왔으면 기척이라도 내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어? 이젠 내가 많이 편해진 모양이구나?”
일부러 까칠하게 굴어 봤다.
이럴 때 조셉이 어떻게 나오나 반응이 궁금했으니까.
“죄송합니다. 사부님.”
조셉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마치 큰 죄라도 지은 듯한 표정.
역시 재미없는 녀석이다.
“고개 좀 들어라. 네가 날 편하게 대한 것 같아 반갑다는 의미였다.”
“그렇습니까?”
조셉의 얼굴에는 바로 화색이 돌았다.
천성이 노잼인 녀석이다.
빨리 여길 뜨든지 해야지.
“나에게 할 말이 있는 거 아니었어?”
“네! 어제 제 검술을 봐주신 거 말입니다,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는 알겠지만 어떻게 바꿔 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부님의 시범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시범이라니, 녀석이 아주 무서운 말을 한다.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건 훈수질 정도이다.
이제는 내가 조셉보다 수라마혈검을 더 잘 이해하는 부분도 있으니까.
“조셉아.”
“네, 사부님.”
“단순히 나의 시범을 보기만 하는 것은 그 이미지 속에 널 가두는 일이다. 하지만 네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고 하니 보여 주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단, 너만의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도록 완벽한 이미지를 보여 주진 않을 것이다.”
이 녀석과 재회한 이후 내 안의 사기꾼을 발견한 느낌이다.
이토록 뻔뻔할 수가 있다니.
조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세심한 케어에 감동마저 받은 것 같다.
그리고 오늘 나는 조셉과의 대결에서 5할의 힘을 제안했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대등한 승부를 펼쳐 냈다.
* * *
카일 협곡의 5일 차.
수라마혈검의 상편과 중편을 보고 나니 마지막 하편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하지만 오늘은 일단 패스.
아직은 중편 쪽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다.
나는 새벽 일찍부터 검흔이 새겨진 절벽으로 이동했다.
비급의 모든 동작들이 새겨져 있는 거대한 절벽의 절경.
이것을 동이 트는 시점에 보니 느낌이 색달랐다.
‘대단하다!’
이 절벽은 검으로 그린 한 폭의 그림이자, 한 권의 비급 그 자체였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수라마혈검의 모든 동작을 검흔으로 남겼을까?’
비급의 보조 자료로 사용하기엔 상당히 불친절하다.
검흔이 일목요연하게 나 있지도 않을뿐더러, 혈마가 남긴 서찰에는 검흔에 대한 일언반구의 언급조차 없으니까.
그렇다고 수련의 흔적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부자연스럽다.
아무런 의도 없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지만,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음에도 의문을 그냥 덮어 두기엔 내 상상력이 아깝다.
‘다시 한번 순서대로 따라가 보자.’
어쩌면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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