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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01화 (101/292)

101화

카일 협곡 1일 차.

혈마가 남긴 수라마혈검의 첫 장에 나온 기본 초식을 익혔다.

아직 뒷부분을 본 것은 아니지만 벌써부터 느낌이 왔다.

‘무영추혼검만큼이나 난해하다!’

상승의 검술이기에 당연한 일.

아무리 기본 초식이라고는 하지만 상당 시간 수련을 해야 겨우 흉내나 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이라면 지금 <지혜의 시간>이 발동되고 있다는 점.

평소였다면 난해하다는 것 자체를 발견하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을 것이다.

슈욱!

슈욱!

슈우욱!

나는 비급에 기록된 대로 기본 초식 3획을 허공에 그었다.

얼핏 보기엔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석 삼자.

하지만 이 단순한 3개의 직선이 수라마혈검의 뼈대가 된다.

놀랍게도 나는 단 이백여 번의 시도 만에 이 기본 초식의 묘리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사부님! 대단하십니다!”

조셉은 바로 나의 심득을 알아차렸다.

녀석도 이미 한번 가 본 길이기에, 더욱 경악했을 것이다.

“놀랄 것 없다. 내가 본래 익힌 검술은 수라마혈검보다 훨씬 더 상승의 무공이니까.”

“정말입니까?”

“그래. 혈마라는 자도 무림에서 당대를 풍미한 고수이기는 하나, 내가 모신 사부는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금제일인이다.”

“놀랍습니다! 제 사부님의 사부님이 그토록 위대하신 분이라니! 제가 사조님의 존함이라도 알 수 있겠습니까?”

“천마! 이름보다는 별호를 기억하도록 하여라.”

“천마!”

나는 일부러 조셉에게 나와 내 무공에 대한 환상을 심어 주었다.

지금 비록 녀석의 사부 노릇을 하고 있지만, 녀석과 제대로 겨룬다면 몇 합 만에 처절하게 패할 터.

일종의 방어기제인 셈이다.

내가 지더라도 지는 게 아닌 것으로.

“조셉아.”

“네. 사부님.”

“나와 겨루어 보자.”

“제가 사부님과 말입니까?”

“대련만큼 좋은 수련 방법은 없다.”

“그래도 어느 정도 수준이 맞아야.”

“나는 오늘 익힌 기본 초식을 위주로 검술을 펼칠 것이다. 그러니 수준 차를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역시 아둔한 녀석.

아무리 내가 MSG를 쳤다지만, 나를 천상계의 초인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오늘 대련에선 네 힘의 삼 할만 쓰도록 조절하여라. 내가 너의 페이스에 맞춰 갈 테니.”

“알겠습니다. 사부님.”

혹시라도 이 미련한 녀석이 본인의 힘을 한껏 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너라.”

“네!”

조셉이 검을 꼬옥 쥐고는 긴장한 모습을 보인다.

나는 무명보를 밟으며 전력을 다해 녀석의 빈틈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휘익!

하지만 닿지 않았다.

조셉이 고작 이 정도 습격에 당할 리는 만무한 일.

녀석은 바로 방어 태세를 취하며 나의 일검을 흘려보냈다.

뭔가 불안하다.

첫날부터 험한 꼴을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휘이이익!

그리고 바로 조셉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 * *

대련이 끝난 후, 조셉은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예를 갖췄다.

“많이 배웠습니다. 사부님.”

“……그래. 수고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르침을 받은 것은 오히려 나였다.

같은 수라마혈검이지만 완숙도에서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27년의 세월이니까.’

조셉은 대련 내내 삼 할의 제약을 지키기 위해 상승 초식은 거의 사용하지 않은 채 기본기로만 날 상대했다.

그럼에도 시종일관 몰아붙였던 것은 이 녀석.

녀석의 깊이 있는 초식 운용은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나저나 죽겠네.’

오늘 나는 이 녀석과의 대련을 겨우겨우 버텨 냈다.

내 백이십 퍼센트의 전력을 다해서.

사실 지금 내 몸이 말이 아니다.

내가 가진 내공만으로는 괴물 같은 제자 녀석을 상대할 수 없었기에, 생명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선천진기의 일부를 사용했다.

현재의 내 몸이 본캐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다.

일반 내공과 달리 선천진기는 내공심법을 운용하더라도 보충되는 법이 없으니까.

덕분에 지금은 오장육부가 너덜너덜해진 느낌이다.

“사부님께서는 오늘 저에게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놈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게 무엇이냐?”

“신묘한 보법을 가진 상대와 싸울 때, 수라마혈검을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를 제게 경험시켜 주신 것 아닙니까?”

생각지도 못한 발견.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그렇다.”

이 녀석.

내 무명보에 감명을 받아 멋대로 해석을 해 버렸다.

사실 이 무명보도 사부가 창안한 천마신교 최고의 보법.

공격에도 요긴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상대로부터 피해 다닐 때에도 최고다.

이것이 없었더라면, 오늘 정말로 험한 꼴을 볼 뻔했다.

“사부님! 정말로 앞으로 일주일간 매일 대련을 하는 것입니까?”

이 녀석은 지금 진심으로 흥분한 상태였다.

아무런 적수 없이 혼자 하는 수련에 그동안 많이 무료했을 테니까.

나는 녀석을 보고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대련에서 훨씬 많은 것을 얻는 것은 내 쪽이다.

<지혜의 시간>은 대결이 끝난 후 나 홀로 복기를 와중에도 아주 활발하게 발동되고 있었다.

눈을 감으니 조셉의 검술이 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현된다.

나와 녀석의 차이가 확실하게 대비된다.

초식 자체의 깊이에서도 차이가 나지만, 더 큰 차이는 초식과 초식 사이의 여백에서 드러난다.

검술의 클래스는 이 비어 있는 시간을 어떻게 운용하는지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조셉은 이 부분을 기가 막히게 잘하고 있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두 번, 세 번 반복하여 오늘의 대결을 복기하여 보았다.

깨달았다고 생각한 것이 결국 깨달은 것이 아니었다.

오늘 밤 할 일이 많다.

대결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 * *

카일 협곡 2일 차.

하루를 보내고 나니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더 아쉽게만 느껴졌다.

<지혜의 시간>이 발동되는 기간을 단 일주일.

물론 그 이상 이곳에 머무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탑 클리어를 위해서 더 지체하는 것은 곤란한 일이었다.

최정혁과의 내기도 걸려 있었고.

수라마혈검은 크게 상, 중, 하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오늘은 조금 무리해서 상권 전체를 독파해 버렸다.

내 옆에서 지켜보던 조셉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이상한 감탄사를 연신 내뱉었다.

“왜?”

“혹시 그림만 보면서 넘기시는 겁니까?”

“지금 내가 그래 보여?”

“솔직히 그렇습니다. 이해를 하면서 책장을 넘긴다고 하기에는.”

“조셉아.”

“네 사부님.”

“무림인은 말이다…….”

나는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이놈은 무림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으니 프레임을 짜기에 아주 좋았다.

무림인은 만능이라는.

“놀랍습니다!”

“무림인이 괜히 무림인이 아니다.”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사실 저는 아직도 상권을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27년을 수련하고도 수라마혈검이 3성 경지에 머물러 있는 것.

물론 이조차도 대단한 수준인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말이다.

“내가 너의 이해를 돕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조셉은 바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 제자이긴 하지만 검술에 대한 녀석의 열망만큼은 존경할 만하다.

‘문제는 내가 상권을 다 이해했느냐는 건데.’

사실 이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한 상태로 상권을 덮었다.

문제는 몸으로 체득할 때도 그것이 유효하냐는 것.

머릿속으로 이해했다고 느낀 것이 알고 보면 수박 겉핥기였던 경우가 많아 직접 해 봐야 알 것 같았다.

남은 엿새 동안 상권만 제대로 해 놓아도 나로서는 대성공이다.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좋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타이밍인데.

지혜의 시간에, 공략집에 우주의 기운이 나를 가르치려고 발버둥을 치는 느낌이다.

[절벽에 새겨져 있는 검흔을 참고하십시오. 절벽의 위치는…….]

놓칠 뻔했던 사실이었다.

조셉이 내게 인간 교보재라면, 검흔은 혈마가 남긴 심득의 정수.

비급을 본 이후의 검흔은 내게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지금 내겐 우주의 기운이 몰려 있는 상태니까.

“조셉아, 잠깐 혼자서 수련 좀 하고 있거라.”

“네. 사부님.”

나는 공략집이 안내한 곳으로 홀로 향했다.

절벽 곳곳에 무수히 나 있는 검흔들.

새삼 가슴이 웅장해진다.

마치 혈마가 내 앞에서 검을 휘두르는 장면이 그려지는 것만 같다.

휘이익!

휘이이익!

나는 허공에 검을 휘두르며, 내 머릿속에 검흔을 만들어 냈다.

상상 속 혈마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 하며 두 검흔을 비교해 보았다.

‘다르다.’

당연한 일이다.

혈마는 무림을 풍미했던 절세의 고수.

단순히 내공의 차이가 아닌 본질적인 다름이 느껴진다.

초식의 숙련도는 말할 것도 없고 검에 마력을 두르는 기의 운용부터, 기본적인 호흡, 발끝에서 손끝까지 이어지는 미세한 움직임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

다행인 것은 <지혜의 시간>이 이러한 디테일까지도 캐치해 내면서 수련 기간의 엄청난 단축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휘이익!

휘이이익!

나는 검을 고쳐 잡고는 다시 절벽의 검흔을 흉내 냈다.

그리고선 바로 탄식했다.

‘이게 아니야.’

내가 얻은 심득을 비웃듯이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검흔은 여전히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사부의 꾸짖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 쓰레기 같은 녀석!

빌어먹을 환청 같으니라고.

절정의 무공을 수련한 지 이제 겨우 이틀 차다.

27년을 매달린 조셉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헤매는 게 너무 당연한 일.

하지만 사부가 어디 그런 걸 따지는 사람인가.

그는 여전히 내 상상 속에서 나를 비웃었고, 힐난했으며, 꾸짖었다.

‘젠장.’

하지만, 상상 속의 사부는 왜 또 다른 검술을 익히느냐고 비난하지 않았다.

날 배신자라고 몰기보다는 오히려 나의 수련을 독려했다.

- 미련한 제자 녀석아! 검의 궁극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 그것이 무영추혼검이든, 수라마혈검이든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어쩌면 네가 수라마혈검을 익히는 것이 무영추혼검의 막힌 부분을 뚫어 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환청이 이렇게 길게 들리다니!

혹시 이 주변 어딘가에 사부가 있는 거 아니야?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잠시 한 뒤 나는 다시 검을 잡았다.

그리고는 허공에 무수히 많은 직선을 그려 냈다.

약 이백여 번의 시도.

결국 부끄럽지 않은 수준의 검흔을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 냈다.

‘일단 이 파트는 여기까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나는 다시 공략집을 열람하여 다음 단계를 알려 줄 검흔의 위치를 찾아 나섰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다.

* * *

“조셉아.”

“네. 사부님.”

“오늘도 대련 한판 해야겠지?”

내 말에 조셉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내가 절벽 쪽으로 사라진 후 한참 만에 돌아왔으니, 어쩌면 오늘 대련을 건너뛸까 불안했던 모양이다.

마치 매일매일 김세용과의 스파링을 기다리는 캥수의 느낌.

심지어 이 녀석은 지천명의 나이인데도 참 해맑다.

“사부님. 오늘도 제힘의 3할만을 사용하는 것입니까?”

어제는 전력을 다하지 못하여 좀이 쑤신 모양이었다.

“오늘은 4할이다.”

“좋습니다!”

내겐 크나큰 도전.

오늘은 두 가지 목표가 있다.

하나는 그 어떤 경우에도 선천진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

다음으로는 어제의 대련과 동일한 양상을 유지하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바로, 들어오너라.”

이제는 나의 성장을 실전에서 확인해 볼 시간이다.

- 10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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