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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94화 (94/292)

94화

[NPC 한스가 당신에게 깊은 호감을 느낍니다.]

이런 식의 표현은 좀 부담스러운데.

어쨌든 내가 앙헬과 대결을 펼친 일은 한스에게 두 가지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하나는 금전적인 이득.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에게 판돈을 걸었는데,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대박이었다.

유의미한 금액을 나에게 베팅한 사람은 한스가 유일했으니까.

또 하나는 이 투기장이 이호영이라는 슈퍼 루키를 얻은 것이었다.

내가 꺾은 앙헬만 하더라도 투기장에서는 꽤 유망주 대접을 받던 검투사였는데, 훨씬 더 듣보잡인 내가 등장하여 파란을 일으켰으니 이곳을 찾던 이들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직 자네를 바라보는 시각은 반반이더군. 운빨이었다는 평가도 있어.”

내가 경기를 너무 빨리 끝내 버린 탓이기도 하다.

앙헬을 자빠뜨린 뒤, 곧바로 녀석의 중요 부위 밑바닥에 검을 꽂아 버리며 항복을 받아 냈으니까.

“실력을 보여 준 시간이 부족했던 거군요. 좀 더 데리고 놀다 끝낼 걸 그랬어요.”

“그 말 진심인가?”

“왜요? 제가 못할 거 같아서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 대결의 승부가 순전히 자네의 실력이라고 하기엔 앙헬의 실수가 너무 결정적이었으니까 말이야.”

한스는 여전히 내 실력을 믿지 못했다.

내가 앙헬을 넘어뜨린 것도 요행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고.

“다음 시합 땐 저에게 베팅을 안 할 수도 있겠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그건 상대가 누군지에 따라 다르겠지.”

“다음 시합이나 빨리 잡아 주세요. 저는 당장 내일이라도 뛸 수 있으니까.”

13층에서도 최정혁은 치타처럼 앞서 나가고 있었기에 나는 서둘러야만 했다.

마침 투기장이라는 좋은 스팟을 발견했으니, 여기서 명성 팍팍 올려야겠다.

어쩌면 여기서 필요한 200을 다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전송된 공략집은 나의 그럴싸한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투기장에서 획득할 수 있는 명성 수치는 100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적절히 계획을 세워 13층을 클리어하시길 바랍니다.]

한 군데 죽치면서 날로 먹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메시지였다.

그럼에도 필요 명성의 절반 정도는 허용해 준다는 건 감사할 일.

명성이 100 정도만 되면 어느 집회소를 가든지 퀘스트를 받는 데에 무리는 없을 것이다.

“아참. 다음 상대는 가급적 거물급으로 좀 잡아 주세요.”

“서두를 필요 있나? 자네가 정말 진짜배기라면 상품 가치를 서서히 높여도 될 거 같은데.”

물론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

어차피 여기선 명성을 얻는 데에 한계가 있으니 적당히 먹고 빠져야 한다.

최소한의 싸움만으로 명성 100을 채우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무조건 거물을 잡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스는 내 상품성에 금이 갈까 봐 걱정을 하고 있었다.

“제가 질까 봐요?”

“뭐 그런 것도 있지.”

역시 다음 판에서는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 *

다음 날.

나는 요겐하임산에서 얻은 금강석의 상당 부분을 현금으로 바꾸었다.

상당히 많은 양이었지만, 이 부분은 한스가 알아서 잘 처리해 주었다.

그는 투기장 바닥에서 잔뼈가 굵다 보니 이런 쪽으로는 인맥이 상당히 넓었다.

적당히 사례비를 찔러 주니 금의 출처는 묻지도 않고 바로 돈으로 만들어 온 것.

아주 기특한 NPC였다.

- 도대체 어느 가문 출신이기에! 이호영이라는 이름은 본명이 맞는 걸까? 생각해 보니 너무 괴상한 이름이잖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었고, 그걸 마음속으로만 간직한다는 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역시 눈치가 빠른 녀석이다.

그리고 한스에게 두 가지 부탁을 더 해 두었다.

하나는 조셉의 행방을 찾아줄 것.

또 다른 하나는 마정석을 잘 다룰 수 있는 대장장이를 물색해 줄 것이었다.

12층에서 보상으로 받은 마정석을 엘리시온을 강화하는 데 쓸 생각이었는데 마정석이 워낙 진귀한 물건인 데다가 강화라는 작업이 쉽지 않기 때문에 웬만한 대장장이로는 성에 차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스는 돈만 주면 무엇이든 수행하는 만능 NPC였다.

이러다 보니 누가 NPC고 누가 플레이어인지 헷갈릴 지경.

내 앞에 꽤 유명하다는 대장장이를 바로 대령한 것이다.

“절 찾으신 것이 공자님이십니까?”

5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털보.

나를 공자라고 불렀기에 자연스럽게 하대하기로 했다.

“어. 여기 이거 가능하겠어?”

나는 인벤토리에서 엘리시온과 마정석을 나란히 꺼내 놓았다.

털보는 휘둥그레진 얼굴로 나와 엘리시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왜? 뭐 잘못된 거 있어?”

“아…… 아닙니다!”

-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검인데.

털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마정석을 집어 들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나도 그러려니 했다.

대장장이는 숱한 검들을 만지는 직업이니까.

“최상급의 마정석이로군요. 엄청난 마력을 머금은 녀석인데, 강화 도중에 검이 이 힘을 버텨 줄지 모르겠습니다.”

“버텨 줄 거야. 네가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엘리시온은 어디에 내놓더라도 손색없는 명검.

본캐로 쓰던 불굴의 검과 비교해도 성능이 뒤떨어지지 않으니 등급으로 치면 유니크급 정도는 될 것이다.

털보는 엘리시온의 칼날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는 마치 아기를 다루듯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날 전체를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데, 이 의식은 생각보다 오래 진행되었다.

“명검입니다.”

당연한 이야기.

“그리고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쌍둥이 검이로군요.”

“뭐?”

“똑같은 검을 가진 위대하신 분이 제게 의뢰를 맡긴 일이 있습니다. 대장장이는 한 번 만져 본 검의 감촉은 절대 잊지 않습니다.”

쌍둥이 검이라.

사실 쌍둥이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평행세계 속의 또 다른 엘리시온일 테니까.

‘그렇다면 설마?’

일련의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클로드 가문의 보검인 엘리시온.

그리고 털보 녀석이 위대한 분이라고 표현을 했다면, 그 인물은 십중팔구…….

“혹시 조셉 클로드냐?”

“저는 절대 고객의 정보를 발설하지 않습니다.”

털보는 아주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 설마 이 공자도 위대하신 조셉 클로드 경과 같은 가문의 인물?

하지만 대답은 바로 들을 수 있었다.

같은 검을 들고 있으니 그렇게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털보 녀석을 잘 구슬리면 조셉의 행방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객의 정보를 발설하지 않는다? 아주 좋은 태도로군.”

분명 나에 대한 것도 떠벌리고 다니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털보의 작업장으로 따라나섰다.

작업 과정을 지켜보며 이야기를 좀 더 나눠 보고 싶었으니까.

특히 제자 놈에 관해서 물어볼 것이 많았다.

* * *

털보 녀석은 첫인상처럼 아주 진중한 인물이었다.

조셉에 대한 이야기를 몇 차례 떠봤지만 넘어오는 법이 없었다.

가끔씩 녀석이 내는 마음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 궁금증을 해소하곤 했는데 이조차 완전하진 않았다.

이 스킬은 내가 원하는 모든 걸 들을 수 있는 능력은 아니었으니까.

“이제 아주 중요한 순간만 남았습니다.”

“나보고 입 다물고 있으라는 말이군.”

“그렇게 표현하려 한 건 아니지만 의미는 맞습니다.”

털보는 이제 엘리시온과 마정석을 결합하려 하고 있었다.

2중, 3중으로 체크하며 사전 작업은 완료가 되었으니 이제 마지막 한 단계만 남은 상황.

지금까지의 털보가 보여 준 이미지를 보면 절대 실패할 것 같지는 않다.

스르르르.

마정석은 영롱한 빛을 내며 엘리시온 안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이제 성공의 여부는 몇 초 내에 결정이 된다.

나는 숨을 멈추며 털보의 손을 바라만 보았다.

“성공했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좋은 결과입니다.”

[강화가 성공하였습니다.]

털보는 처음으로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엘리시온을 건넸다.

손잡이를 잡는 순간 느낌이 왔다.

‘보물 등급이다!’

흥분이 밀려왔다.

엘리시온에 봉인된 이 마력이라면 나의 부족한 부분까지도 보충할 수 있을 정도.

욕심이 생긴다.

이 아이템이 부디 본캐로 이전될 수 있기를.

“그때도 성공을 했겠지? 이것과 쌍둥이인 놈 말이야. 설마 이런 것도 발설 금지냐?”

“아닙니다! 그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지요. 그때의 경험 덕분에 더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제자 놈 것보다 내 것이 더 낫다고 하니, 유치하지만 묘한 쾌감이 있었다.

“그런데 그 검의 주인 말이다. 어디로 간 것이냐?”

이것은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어차피 털보가 본인 입으로 이야기해 줄 리는 없고, 마음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이게 랜덤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이 녀석이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구체적으로 생각해야만 하니, 생각보다 조건은 까다로운 셈이다.

“아시겠지만 이 또한 역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 그러고 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가신다고 했던 곳이 카힐 협곡이었던가? 거기서 수련을 하신다고 했던 거 같은데.

기왕이면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 되었든 단서는 얻었다.

카힐 협곡.

서울에서 김 서방 찾는 정도의 난이도는 아닐 것이다.

* * *

나는 한스에게 의뢰 사항 한 가지를 변경했다.

“조셉 클로드의 행방 말입니다. 카힐 협곡 쪽으로 수색망을 좁혀서 찾아봐 주세요. 자금은 얼마든지 댈 수 있으니까요.”

“카일 협곡? 규모는 알고 하는 소리인가?”

“커 봤자 협곡인데요, 뭐. 제가 범위도 좁혀 드렸으니 속도를 더 내주세요.”

“참 대단한 친구야. 알겠네. 그리고 좋은 소식 한 가지와 나쁜 소식 한 가지가 있어.”

“좋은 소식은 제 다음 대전 상대가 정해진 것이로군요.”

“그래. 바로 내일이라네.”

“그럼 나쁜 소식은?”

“대전 상대가 스턴이라는 것. 아주 지랄 맞은 놈이지.”

“어떻게 말입니까?”

“싸우는 방식이 많이 과한 녀석이지. 이기는 게 목표라기보다 상대를 죽이겠다는 느낌? 실제로 스턴과 싸우다 죽은 검투사들이 적지 않아. 팔 한 짝 잘리는 건 예삿일이고.”

“강한가요?”

“내가 나쁜 소식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좋은 소식 하나에, 더 좋은 소식 하나인 셈.

강한 만큼 내게 더 많은 명성을 안겨 줄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정말 할 텐가?”

“합니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내일 대결에서 스턴을 꺾으십시오.]

[성공 시: 명성 37 획득]

역시 앙헬보다는 훨씬 강한 상대임이 분명했다.

이 녀석을 발판으로 다음번에는 진짜 대어를 낚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투기장에 자네를 찾으러 온 사람이 하나 있었어.”

“저를요?”

“그래. 고향 사람이라고 하던데.”

내가 있는 곳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탑 출신의 플레이어일 터.

현재 13층에 와 있는 플레이어는 나를 포함해 4명이다.

최정혁, 오민아, 김세용, 그리고 나까지.

누구일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혹시 누구라고 이름은 밝히던가요?”

“이름은 밝히지 않았는데, 여자였어.”

여자?

김세용인 줄 알았는데 완전 예상 밖의 일이다.

오민아가 날 찾을 이유가 없을 텐데.

13층에 왔으면 남편 먼저 찾을 것이지, 왜 나에게 왔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9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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