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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90화 (90/292)

90화

[스페셜 퀘스트를 수락하였습니다.]

[성공 시 명성 128 획득]

역시, 내가 맡은 의뢰는 보통 퀘스트가 아니었다.

정확하게 명성 99를 달성한 플레이어들에게만 공개되는 히든 피스일 터.

도리아산 때보다도 난도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2인 파티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단, 퀘스트 완료 시 명성 획득이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보상이 아닌, 명성만 나눠 갖는 것이라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내게 필요한 보상은 단 1.

저 정도의 넘치는 명성을 굳이 나 혼자 먹을 필요는 없다.

“어? 호영이 형!”

그때 집회소로 들어온 것은 김세용이었다.

녀석은 황소만 한 몸집을 이끌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피지컬이 저놈 정도쯤 되면 거의 몬스터나 다름없다.

휘익!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살짝 틀었다.

이 녀석이 혹시라도 나를 안을지도 모르니까.

“퀘스트 새로 받으려고 왔냐?”

김세용은 빈 공간에 양손을 쭉 뻗으며 허우적댔다.

쓸데없는 스킨십은 사양이다.

“어! 그런데 형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한 방에 명성이 99라니!”

“뭐, 운이 좋았지.”

“하여간 그놈의 운! 그럼 이제 쉬운 거 하나 맡은 다음에 13층으로 넘어가는 거야?”

“아니, 여기서 크게 한탕 더 하고 가려고.”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다.

내 파티원으로서 과연 이놈이 도움이 될지를.

“그런데 굳이 여기서 한탕 해 먹을 필요가 있어?”

“잡설은 말고, 지금 결정해. 낄지 말지.”

비록 탑에서의 모든 능력을 잃었지만, 김세용은 여전히 좋은 선택지였다.

적응력도 뛰어나고, 고기 방패로써도 딱이니까.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 형 버스를 타고 가는 건데.”

버스라고 생각해 준다면, 그렇게 착각하도록 내버려 둬야겠다.

“그래서 콜이냐?”

“콜!”

그럴 줄 알았다.

현재 김세용의 명성은 56.

이번 퀘스트를 완료하면 나와 함께 13층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떠나기 전에 이놈 밥이라도 든든히 먹여야겠다.

* * *

요겐하임 광산.

한때는 황금의 바다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폐광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광산 주위에 설치된 노천 시설들은 오래전부터 방치되어 을씨년스러움을 자아냈고, 주변에서는 그 어떤 생명체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매장된 황금이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이 아니다.

흑마법사 덴바가 이 일대를 장악한 후 광산이 생기를 잃은 것.

황금을 채굴하러 왔다가 목숨을 잃은 수많은 광부에 대한 끔찍한 소문이 그 이유였다.

“이쯤이 좋겠군.”

나는 아까 구입한 곡괭이 한 자루를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그걸로 도대체 뭘 하려고?”

“뭐긴 뭐겠어. 흑마법사를 불러내려는 의식이지.”

내 말에 녀석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곡괭이로?”

“어.”

나는 그 곡괭이를 김세용에게 건넸다.

“이걸 왜 날 주는 건데?”

“여기저기 잘 파 봐. 혹시 알아? 금맥이라도 발견할지.”

“도대체 이게 흑마법사를 불러내는 거랑 무슨 상관이길래!”

당연히 상관이 있다.

소문을 들어 보니 덴바라는 흑마법사 녀석은 이 광산의 모든 부산물을 자신의 소유로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누군가가 이곳에 와서 광석 하나라도 가져가는 걸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으니까.

김세용이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광석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 녀석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나보고 탄광 노가다 하라고? 그럼 형은?”

“주변을 정찰해야지. 그놈이 언제 올 줄 알고.”

“와! 씨! 그럼 나 데려온 게 이런 이유였던 거야?”

물론 이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세용은 흑마법사와의 전투 시에도 아주 큰 역할을 할 예정이니까.

아까 점심밥을 배불리 먹인 이유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잔말 말고 빨리 시작이나 해.”

꼭 황금이 아니라도 상관은 없다.

철광석이나 구리 정도면 족하다.

우리가 발을 내디디고 있는 이곳은 게임 세계관인 만큼 광산에서 부산물을 캐내기가 그리 어렵진 않을 것이다.

- 그런데, 진짜 금이라도 발견하면 흑마법사가 아니라 호영이 형이 털어 가는 거 아니야?

이 와중에도 김세용은 금 욕심을 부렸다.

그래도 이놈이 내 욕은 하지 않아 다행이다.

“세용아.”

“왜!”

“그냥 너 다 가져.”

“뭐?

“금광이라도 발견하면 네가 다 가지라고. 나는 손 하나 안 댈 테니까.”

“정말? 믿어도 돼?”

나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갑자기 김세용의 의욕이 폭발하였다.

곡괭이질을 하는 스피드가 점점 빨라진다.

동기 부여만 된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놈이다.

콰악! 콰악!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김세용은 여기저기를 많이도 헤집어 놓았다.

확실히 이놈이 힘을 쓰는 일에는 타고났다.

곡괭이질을 할 때마다 녀석의 상체 근육은 가뭄에 땅 갈라지듯 수많은 선들의 향연을 뽐내었다.

빠악!

의욕이 과했는지 곡괭이의 헤드가 부러져 버렸다.

상관없다.

인벤토리에 여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세용아, 쉬엄쉬엄 좀 해.”

“어! 여기만 좀 더 파 보고.”

이런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데려오길 잘했군.’

확실히 내가 사람 보는 눈은 틀리지 않았다.

김세용의 적응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고, 그는 이미 숙련된 광부의 포스를 뽐내고 있었다.

“형! 여기! 여기!”

그리고 녀석은 내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환호성을 질렀다.

* * *

금맥은 아니지만, 김세용은 나름 한 건을 해내고야 말았다.

이 녀석이 발견한 것은 휘은석.

은의 함량이 높은 광석으로 이곳 세계관에서도 은의 가치는 괜찮은 편이었기에, 김세용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형! 약속 안 잊었지? 이거 다 내 거야!”

녀석은 자신의 인벤토리에 휘은석을 욱여넣은 후 다시 곡괭이를 집어 들었다.

콰악! 콰악!

이 근처에선 다량의 휘은석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기에 김세용은 바짝 달아 있었다.

안타깝지만, 김세용의 인벤토리가 휘은석으로 가득 찰 일은 없을 것 같다.

흑마법사 덴바 녀석이 벌써 움직이기 시작한 거 같으니까.

“세용아! 아래!”

스멀스멀.

땅 밑에서는 손가락 길이 정도의 지렁이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단일 개체로선 위협적이지 않겠지만, 떼거리로 움직이는 충격적인 비주얼은 소름 돋을 정도였다.

“와 씨! 이게 뭐야!”

김세용의 곡괭이질로 나온 것은 녀석이 기대하는 광물이 아닌 으깨진 지렁이들의 시체였다.

놀랍다.

비록 미물이긴 하나 이토록 많은 생명체를 다룰 수 있는 흑마법사의 능력이.

탁!

탁!

우리 발밑의 지렁이들은 몸을 꿈틀거리더니 공중으로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이게 보통 지렁이일 리가 없다.

이놈들은 일시에 몸에서 정체 모를 액체를 뿜어냈다.

지독한 악취가 주위에 진동했다.

화르르르!

김세용이 몸에서 불꽃을 일으켜 주변의 지렁이들을 소멸시켰다.

물론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우리 발밑은 여전히 흙 반, 지렁이 반이다.

“형!! 나 몸에 노란 액체가 잔뜩 묻었어!”

이 녀석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호들갑을 떨었다.

사실 나보다는 이놈이 집중포화를 맞긴 했다.

어쩌면 광산의 부산물을 탐해서일지도 모른다.

“안 죽어! 이걸로는!”

“확실해?”

역시 가장 염려스러운 가능성은 독(毒).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비록 본캐처럼 내게 만독불침의 특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독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부분에 대한 염려는 놓았다.

관건은 과연 이것이 무엇이냐는 것.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 좀 보내 주지.

[요겐하임 광산의 지렁이는 몸속의 배설물을 내보낼 때 점프를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또한 이 지렁이는 빛이 나는 광석을 아주 좋아합니다.]

썩을.

결국, 이 노란 물질이 똥이라는 얘기였다.

이 지독한 악취도 이제 이해가 되었다.

“형! 우리 정말 괜찮을까?”

물론 괜찮다.

이것은 일종의 정신 공격일 뿐이다.

흑마법사 녀석이 지렁이의 폭력적인 개체 수를 활용해 우리의 멘탈을 흔들어 놓으려는 것.

지렁이의 배설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 괜찮아. 근데 세용아, 너 인벤토리에서 휘은석 좀 꺼내 봐.”

“갑자기 그건 왜! 지금 이 와중에 뺏으려는 건 아니지?”

“빨리!”

내가 다그치자 김세용은 바로 휘은석을 꺼내 들었다.

지렁이들이 바로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이 제대로 흥분한 것이 분명했다.

“그거 머리 위로 좀 올려 봐!”

김세용은 영문도 모른 채 내 말을 잘도 들었다.

이게 바로 학습의 효과다.

지금껏 내가 하는 말은 항상 옳았으니까.

태양 빛을 받은 휘은석은 영롱한 빛을 더욱더 찬란하게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지렁이들은 더욱더 발광을 했다.

흑마법사의 통제를 조금씩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제 곧 노란 세례가 펼쳐질 것 같은 강한 예감.

이미 카운트다운은 시작되었다.

탁! 탁! 탁! 탁!

지렁이들은 미친 듯이 점프를 하기 시작했다.

타깃은 확실했다.

지렁이들이 도약을 한 곳은 김세용의 손.

정확히는 휘은석이었다.

“이 미친놈들아!!!”

수만 지렁이들의 질풍 같은 대시에 김세용은 화염 방사를 펼쳐 내었다.

방금 전보다 위력은 훨씬 더 강해졌다.

역시 사람은 위기 시에 한계 이상의 힘을 발휘하곤 한다.

화르르르!

화르르르르!

“이 썩을 놈들아!!”

김세용의 주변에는 배설물로 만들어진 노란 안개가 펼쳐졌고, 김세용은 몸을 360도로 회전하며 주변을 화염 불꽃으로 정리하였다.

보면 볼수록 놀라웠다.

이제 김세용의 마법 이해도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을지도 모른다.

“씨! 뭐 이런 게 다 있어!”

“……잘했어.”

노란 액체를 뒤집어쓴 김세용을 향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칭찬 한마디였다.

“아오 씨! 무슨 냄새가 이따위야!”

사실, 똥물을 뒤집어쓰고도 이 정도면 양호한 것이다.

세용이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비밀로 해 두어야겠지만.

“세용아, 우리 좀 떨어져서 걸을까?”

“젠장! 이거 끝나고 나면 바로 목욕이나 하러 가야겠어.”

나도 네가 꼭 그래 주길 바란다.

그나저나, 흑마법사 덴바 녀석은 아직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요겐하임 광산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맛보기였을 뿐이지만 흑마법을 직접 겪어 보니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이런 놈을 죽여야 한다고?’

분명 물리적인 힘은 별 볼 일 없겠지만, 녀석은 꽤 많은 소환수를 부릴 줄 아는 능력자였다.

방금 전에는 아무런 공격 능력도 없는 지렁이였지만, 다음번에 상대해야 할 놈들은 분명 다를 것이다.

“호영이 형! 근데 아까 전에 지렁이 유인한 거, 어떻게 알아낸 거야?”

“휘은석 주변에 서식하는 놈들이니 그걸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 빛이 반사되는 건 신세계일 테고.”

“진짜 천재 아니야? 역시 형 버스를 타길 잘했어!”

지금 누가 누굴 태운 건지, 이놈은 제대로 인식도 못 하는 모양이다.

나야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긴 하지만.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하자. 세용아?”

“어. 형!”

역시 이놈을 데려오길 잘했다.

- 9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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