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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82화 (82/292)

82화

장검 한 자루가 인간의 전투력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정확한 수치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문제지만, 불가능하던 걸 가능하게 해 주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이를테면 평범한 성인 남자가 UFC 헤비급 챔피언을 이길 가능성을 만들어 주며, 운이 좋다면 맹수까지 사냥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발견한 장검 한 자루는 지금 우리에게도 딱 그 정도의 기대감을 갖게 만들어 주었다.

“스킬 하나 없는 비루한 캐릭터지만, 검 하나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죠.”

“네. 이번에도 이호영 씨가 한 건 해 줬네요.”

현재의 게임 캐릭터는 직업도 스킬도 없으며 능력치도 상당히 너프 되어 있지만, 검이라는 아이템의 존재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 있게 오크 전사를 상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야, 최정혁. 네가 볼 땐 전원 생존 가능하겠어?”

내 물음에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 수련할 때 베짱이처럼 놀지만 않았으면 아마도? 뭐, 나처럼 컨트롤이 타고났으면 놀아도 상관없겠지만 말이야.”

그동안 우리가 해 왔던 모든 수련들은 이번 게임 미션에서 <컨트롤>이라는 능력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이 망할 놈의 탑은 우리에게 수련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는데, 그게 이번 게임 미션에선 너무 결정적인 요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세용이도 생각보다 잘하네요.”

권법가였던 김세용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조금은 낯설었지만, 이번 게임 미션에서 기존의 직업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스킬 없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오히려 검투사였던 서준호보다도 더 능숙했다.

김세용은 새로운 캐릭터에 적응하는 능력도, 그것을 움직이는 컨트롤도 충분히 상위권이다.

[퀘스트가 클리어되었습니다.]

결국 김세용은 오크 전사 2마리를 여유 있게 사냥한 후 로비로 복귀했다.

“이거 완전 신세계네! 무슨 게임이 이렇게 실감 나!”

녀석은 생사를 건 게임을 마치고도 속 편한 소리를 했다.

사실 세용이는 맨주먹으로 상대했어도 이번 퀘스트를 클리어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기존에 사용하던 주먹 스킬을 사용할 순 없겠지만, 전투 감각 쪽으로는 확실히 타고난 구석이 있는 놈이다.

“세용아, 그런 거 말고 제대로 된 후기나 말해 봐.”

“어……. 게임이 시작되면 말이야…….”

데이터는 점점 축적되며, 뒤 순서 플레이어들이 참고할 만한 것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 * *

[모의 게임이 종료되었습니다.]

말이 모의 게임이지, 탑은 12층이 시작되기 전에 상당수 플레이어들을 걸러 낼 계획이었던 것 같다.

순정 상태의 게임 캐릭터로 오크 전사 2마리를 사냥하는 것은 너무 고난도의 미션이었으니까.

우리 구역은 16명 중 15명이 생존하였지만, 로비의 분위기는 초비상 상태였다.

수련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으니 한 시라도 낭비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최정혁의 말에 따르면 이번 게임 미션은 12층부터 15층까지 연이어 계속된다고 했으니, 긴장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호영, 사인해 줄까?”

물론 예외는 있었다.

지금 수련에 영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플레이어가 있었으니까.

최정혁.

이 녀석은 꽤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벌써 사인 요청만 다섯 번째.

그냥 해 달라고 할까도 싶었지만, 도저히 내키지 않아 이번에도 거절했다.

“괜찮아. 사양할게.”

“아니, 해 줄 테니까 받아. 대신 조건이 있어.”

정말 징글징글한 녀석이다.

“뭔데. 조건이?”

“나랑 진실게임 하는 거.”

“미친놈.”

“아니다. 됐고 그냥 솔직하게 말해 줘. 너 도대체 직업이 뭐냐?”

“이미 예전에 소개는 끝났잖아. 검투사라고.”

“그럼 네가 데리고 다니는 펫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겸업으로 조련사도 하고 있어.”

캥!

내 옆에 있는 캥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그렇다 쳐. 그럼 너 쓰리잡이지?”

“나한테서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건데?”

“프로 게이머! 솔직히 너 프로 게이머이기도 하잖아. 아니란 말은 하지 마.”

“아니야.”

“그럼 도저히 설명이 안 돼. 레벨이랑 능력치가 매치 안 되는 것도 그렇고, 모의 게임에서 낡은 장검은 도대체 어떻게 발견한 건데?”

“왠지 될 거 같았으니까. 난 항상 운이 좋은 편이기도 하고.”

사실 이런 오해는 처음이 아니다.

이미 손서연으로부터는 대살성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고 있으니까.

거기에 프로 게이머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음흉한 자식. 내가 언젠가는 밝혀내고야 만다.”

“그러시던지.”

“오늘 사인은 안 해 줄 거야.”

이젠 오기로라도 받기가 싫어졌다.

이 탑을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절대로 받지 않을 것이다.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그 순간 아주 중요한 정보가 내게 도착했다.

이번 게임 미션에서 수련과 컨트롤보다 더 중요한 정보.

바로 캐릭터 생성에 관한 것이었다.

* * *

캥!

캥!

캥수는 아주 신이 나 있었다.

그동안 녀석의 스파링 상대는 줄곧 김세용이었는데, 드디어 새로운 파트너가 생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더 강하고 정교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파트너.

타악!

최정혁은 정확한 컨트롤로 캥수의 안면을 강타했다.

주먹을 내뻗는 자세만 놓고 보면 김세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엉성했지만, 신기하게도 정타의 비율은 더 높았다.

이래서 프로 게이머라는 직업이 사기적이다.

검을 들든지, 창을 쓰든지, 아니면 활을 쏘든지 무슨 무기를 쓰든지 간에 이미 일정 이상의 수준은 보장이 되었다.

컨트롤이 너무 사기적이니까.

그 대가로 스탯에 페널티가 있는 듯한데, 프로 게이머의 신들린 컨트롤은 이 부분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김세용의 <돌주먹> 같은 파워 넘치는 스킬을 발휘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최정혁은 정타를 계속해서 꽂아 넣으며 캥수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캥!

캥!

물론 캥수는 맞으면서도 기뻐하고 있었다.

이렇게 색다른 상대를 만나 스파링을 하는 건 이 녀석의 향상심을 제대로 자극하는 일이니까.

캐애애애앵!

결국 캥수가 바닥에 쓰러지며, 스파링은 끝이 났다.

최근엔 김세용과 붙어도 크게 밀리지 않는 캥수였는데, 역시 최정혁을 상대로는 역부족이었다.

최정혁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내며 캥수에게 물었다.

“말해 봐. 네 주인 프로 게이머지? 솔직히 말하면 스파링 매일 해 줄게.”

도리도리.

캥수는 바닥에 뻗은 채로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스파링의 유혹을 참아 내다니 역시 내 펫이다.

최정혁이랑 싸우는 동안 그렇게 신나 했으면서.

이 둘의 모습에 김세용은 심기가 불편했는지 투덜대며 다가왔다.

“캥수야, 이놈이랑은 때려치워. 앞으로도 형이 계속 상대해 줄 테니까.”

……캐앵!?

“캥수 너 뭐야! 대답이 뭐 그래? 설마 나보다 이놈이랑 싸우는 게 더 재밌는 거야?”

캐…… 캐…….

결국 캥수는 대답을 회피했다.

그리고 절묘한 타이밍에 전달된 탑의 메시지.

[12층 미션을 시작합니다.]

[마법의 대륙 칼리아로 이동합니다.]

드디어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 * *

[직업을 생성합니다.]

[11층 최다 킬의 특전으로 마법 속성 선택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12층부터 진행된다는 게임이 도대체 어떤 종류의 것인지 너무 궁금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탑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게임.

그럼에도 12층이 특별하게 <게임 미션>으로 명명될 정도라면, 결이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결국 마법이었군.’

직업의 구분 없이 모두가 마법사인 세계.

12층은 그러한 마법의 대륙이었다.

[마법 속성을 선택하십시오.]

이는 우리 구역에서 오직 나에게만 주어진 기회였다.

나머지 동료들에겐 모두 랜덤으로 마법 특성이 주어질 것이다.

1. 화염

2. 빙결

3. 염동력

4. 바람

...속성으로 제시된 선택지는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이미 공략집이 내게 선택지의 정답을 제시해 준 상태였으니까.

“마음!”

내가 고른 것은 <마음>이었다.

이는 나머지 선택지들과는 성질 자체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유일하게 비전투용 마법 속성인 데다가, 그 어떤 정령과도 계약을 맺을 수 없는 것도 다르다.

사실, 이 부분은 너무 큰 핸디캡이었다.

12층부터 15층까지 사용할 게임 캐릭터는 본래 육체와 비교한다면 모든 스펙이 상당히 너프 되어 있었기에, 공격 마법은 생존의 필수 조건.

하지만 이 선택을 하는 데에 고민 없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전설 등급의 가치라고 했던가?”

15층까지의 게임 미션을 모두 클리어하고 나면 모든 플레이어는 이때 선택한 마법 속성을 스킬에 추가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마음>이라는 속성은 마법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높은 스킬이라고 하였다.

스킬명 그대로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

당장의 전투만 생각한다면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멀리 내다볼 필요가 있었다.

[모든 플레이어의 캐릭터 생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마법의 대륙 칼리아에서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게임 미션의 모든 여정은 15층에서 종료됩니다.]

암전 현상이 사라지고 세상에 빛이 찾아왔을 때, 우리 구역의 열다섯 명은 모두 생소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각기 종류가 다르긴 하지만 로브를 걸치고 있는 모습은 정말로 마법사를 연상시켰다.

“다들 어떤 속성을 부여받았는지 공유 좀 해 봅시다.”

“좋습니다!”

속성을 공개하는 데에는 굳이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김세용의 손에서는 주먹 크기의 불꽃이 생성되었으며.

채이설이 손을 허공에 내저을 땐 얼음 알갱이의 기운이 느껴졌다.

본인들이 해 놓고도 다들 어린아이처럼 신기해하는 모습이었다.

“이건 뭔가 부캐를 키우는 느낌인데요?”

최정혁이 얻은 것은 염동력이었다.

녀석은 손으로 바닥의 모래를 빨아들이며 자신의 마법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호영 씨는 뭡니까?”

안세창이 물었다.

다들 저마다 자신이 얻은 걸 시범 가동하고 있는데, 나 혼자만 가만히 있으니 이상해 보이는 게 틀림없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된다.

‘난감하네.’

내가 얻은 속성은 밝히기가 어려운 성질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염탐하는 것이니까.

“……저는 물리 마법을 얻었습니다.”

“물리 마법이요? 그런 것도 있습니까?”

“네. 힘이 좀 더 강해진 느낌이랄까요?”

“오오! 역시!”

이것 외에는 둘러댈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여러 마음의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호영이 형의 물리 마법은 내가 얻었어야 했는데!

역시 김세용다운 반응.

- 역시 이호영 씨는 운이 좋은 건가?

서준호 역시 나를 부러워하고 있다.

다들 내 말에 대해선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물리 마법이라는 개드립을 이런 식으로 받아들일 줄이야.

그런데 모든 사람의 마음이 읽히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내가 의식적으로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냥 들려올 뿐이다.

간헐적으로. 이따금씩.

그리고 대체적으로는 나에 대한 마음인 경우들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 이번 미션이 기회야. 저놈부터 죽여야 해.

갑자기 새카만 적의로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감각과 신경이 곤두선다.

오두호.

그 순간 나는 이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 8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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