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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80화 (80/292)

80화

“만약 못 뱉어 내겠다면?”

오두호의 제안에 최정혁이 귀를 후비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전쟁이지.”

그 말에 오두호 뒤에 있던 2구역 출신들이 일제히 검을 치켜들었다.

명령만 떨어진다면 정말로 전쟁에 돌입할 것만 같은 분위기다.

1구역의 두 명과 2구역 일곱 명의 싸움.

내게 배팅을 하라고 한다면 역시 1구역 쪽이다.

최정혁뿐만 아니라 그의 마누라 오민아의 전력도 보통은 아니니까.

그녀 역시 프로 게이머. 스탯 역시 최정혁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수준이다.

“근데 그거 알아? 지금 너네 되게 웃겨.”

최정혁은 이런 분위기 속에도 여전히 여유롭게 한 발 더 다가갔다.

확실히 난 놈이다.

단순히 전투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멘탈 자체가 단단한 게 느껴졌다.

최정혁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너희들은 지금 내가 얻은 현상금에만 관심이 있는 거잖아! 죽은 동료들을 위한 복수?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안 그래?”

그 말에 캥수가 살며시 입을 가리며 킥킥댔다.

“그렇게 보인다면 할 수 없지만, 나로선 그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이곳은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 종말의 탑이며, 죽은 동료들이 남긴 것은 우리 팀이 수습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니까.”

“와. 소름! 무슨 이런 개 같은 논리가 다 있어! 네 말대로 여긴 종말의 탑이고, 나는 탑이 제시한 새로운 규칙대로 움직였을 뿐이야. 그런데 네놈이 내가 얻은 현상금을 강탈해 가겠다고? 차라리 뒤에 있는 네 동료들이 더 의리 있어 보여. 적어도 너처럼 계산적이진 않으니까.”

솔직히 이 부분에선 최정혁의 말에 동감하는 바였다.

복수를 하려거든 현상금이 아닌 최정혁과 오민아의 목을 노려야지,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당연히 오두호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놀라운 건 오두호의 동료들은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이고 있다는 것.

그의 말에 이들은 아무런 토를 달지도 않았다.

“그래서 결국 우리와 전쟁을 치르겠다는 말이로군. 그렇다면 끝까지 가 보는 수밖에.”

결국 오두호의 손짓에 뒤에 있던 동료들이 일제히 진을 만들었다.

놀라울 정도로 일사분란한 움직임.

그럴 만도 했다.

내 눈에 보이는 오두호의 직업은 ‘장군’이니까.

아마 이들이 펼치는 합동 공격은 단순히 플레이어 숫자의 합이 아닐 것이다.

‘상당한 시너지를 발휘하겠지.’

그리 강하지 않은 전력으로 이토록 많은 인원이 생존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건 바로 오두호가 가진 ‘통솔’의 힘일 것이다.

“잠깐!!”

오두호의 세력이 공격을 하려는 순간 최정혁이 급하게 외쳤다.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이지만, 무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냐?”

“뱉어 낼게. 내가 먹은 현상금.”

예상도 못한 반응이었다.

11층에서 먹은 걸 모두 순순히 뱉어 내겠다니.

솔직히, 오두호 세력의 기세가 대단하다 해도, 여전히 나는 최정혁 쪽에 베팅을 할 마음이었다.

그가 손서연과 싸울 때 보여 준 모습은 그만큼 인상적이었다.

분명 최정혁 본인도 겁을 먹었을 리 없을 터.

여기서 물러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게 정말이냐?”

“그래. 그런데 조건이 있다.”

“들어 보고 판단하지. 만약 개수작을 부리는 것이라면 바로 전쟁이란 것만 알아 두도록.”

“뭐, 별로 어려운 조건도 아니야. 내가 원하는 건…….”

최정혁의 제안은 아주 황당한 것이었다.

이 협상에 복수 프레임은 씌우지 말라는 것.

“왜나면 너무 역겹거든.”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협상이 아주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는 것이다.

오두호는 그 제안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고, 최정혁이 뱉은 현상금들을 자신의 동료들과 정확히 배분하여 나누어 가졌다.

최정혁도 최정혁이지만 이 오두호라는 놈의 캐릭터도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순순히 현상금을 뱉은 이유가 궁금하진 않아?”

“사실 난 그게 아까부터 궁금했어.”

이번엔 내가 앞으로 나서서 대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진즉 물어보고 싶었다.

최정혁이 오두호의 세력이 전쟁을 벌인다 해도 절대 질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사실 11층에서 현상금 자체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사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거든.”

“그러니깐 그게 뭐냐고.”

“최다 킬(Kill) 타이틀. 아쉽게도 놓쳐 버렸지만.”

물론 그 타이틀은 내가 차지했다.

4구역의 플레이어들은 내가 대부분 정리했으니까.

공략집은 분명 보상이 있을 거라고 했는데, 아직 이 시점에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최정혁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같은 구역이 됐으니까 이제 모두에게 정보를 공개하지. 12층 미션은 <게임>이야. 그리고 최다 킬 타이틀이 있으면 아주 유리한 위치에서 게임을 시작할 수 있지.”

이미 내게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그 게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최정혁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걸 보면 아주 중요하긴 한가 보다.

“그런데 최다 킬 타이틀은 누가 먹은 거지? 설마 너희 커플 중에 한 명이 먹은 거야?”

최정혁이 나와 손서연을 가리켰다.

미친놈.

최다 킬을 내가 먹은 건 맞지만, 나랑 손서연이 커플이라니.

자다가도 소름 돋을 막말을 하고 있다.

* * *

최정혁은 자신이 프로 게이머라는 것을 밝히며 우리에게 12층에 대한 정보를 풀어놓았다.

이 탑의 모든 프로 게이머들은 미리 알고 있다는 말과 함께.

“사실 이 게임 미션이 12층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야. 15층까지 네 층이 연이어서 이어져 있을 예정이거든.”

“그러니깐 그 게임이라는 게 도대체 뭔데?”

“다들 게임 해 봤으면서 묻긴 뭘 물어? 이 탑에서 게임 장르가 뭐겠어? 캐릭터 생성하고 퀘스트 받고 몬스터 사냥하고 뭐 그런 거지.”

“캐릭터를 생성한다고?”

“그래. 사실 이거 때문에 내가 11층에서 최다 킬을 먹으려고 했던 거라니깐! 11층의 활약이 캐릭터를 생성할 때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니까 말이야.”

지금 최정혁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12층부터 진행될 게임 미션에선 지금까지 우리들이 쌓아 온 능력치들이 모두 무시된다는 의미였다.

새로운 캐릭터를 생성한 후 연이어 4층을 돌파해 나가야 하며, 15층이 끝날 때까지 우리의 본래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차피 나랑 마누라는 프로 게이머라서 캐릭터 빨을 덜 받겠지만 너희들은 어떨지 모르겠군.”

최정혁은 여전히 자신만만한 표정.

어쨌든 좋은 정보를 미리 알게 되었다.

나는 최다 킬 타이틀을 얻었으니 캐릭터 생성에서도 유리할 것이다.

“그런데 너희 부부. 나이도 어린데 벌써 결혼을 한 거야?”

이건 내 사적인 호기심이었다.

아무리 봐도 최정혁과 오민아는 20대 초반 많이 봐 줘야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사실, 결혼은 이 탑 안에서 했어. 어차피 세상도 멸망했는데 죽기 전에 이것저것 다 해 봐야 하지 않겠어?”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알고 보니 더 특이한 녀석이었다.

탑 안에서 프로포즈를 했고 하객에, 주례에, 심지어 축가까지 있는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너희 둘은 결혼할 생각 없어?”

최정혁은 이번에도 나와 손서연을 가리켰다.

그 말에 손서연은 정지화면처럼 굳어 버렸고, 나는 소름이 돋아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잠시 후 손서연은 인벤토리에서 총을 꺼냈다.

“한 번만 더 개소리하면 진짜로 죽여 버린다.”

“너희 둘 그런 관계 아니었어?”

최정혁이 장난스럽게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손서연의 말대로 너무 개소리였기에 해명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정말로 총을 쏘더라도 말리지 않을 생각이다.

그리고 그 순간 김세용이 최정혁에게 다가갔다.

“야, 너!”

“나?”

“그래, 아까부터 거슬렸는데 나이도 어린 새끼가 호영이 형한테 계속 그딴 식으로 할 거야?”

오늘 여러 번 닭살이 돋는다.

“설마, 형이라고 부르라는 거냐?”

“뒈지기 싫으면 알아서 잘 판단해.”

김세용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다.

그러고 보면 이것도 선택적 발작이다.

정작 더 오랫동안 나에게 반말을 하고 있는 손서연에겐 찍소리도 못하면서.

“여긴 사회가 아니라 탑이야. 강함이 증명되지 않은 사람한테는 그렇게 부를 생각 전혀 없어.”

그러면서 최정혁은 나를 보며 히죽 웃었다.

“사인은 해 줄 수 있지만.”

* * *

최정혁이 던진 한마디가 새롭게 만들어진 우리 구역에 반향을 일으켰다.

그가 나의 강함에 대해 의구심을 표현했기에 기존의 동료들이 해명에 나선 것.

“이호영 씨를 레벨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정말로 운이 좋은 겁니다. 왜냐고요? 이제부터 이호영 버스가 뭔지 알게 될 테니까요.”

“그냥 이호영 씨만 믿고 가세요. 탑 등반이 쉬워집니다.”

부끄러움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다들 왜 이러는 건지.

최정혁은 이런 내 동료들의 반응이 재밌는 것인지 연신 킥킥댔다.

“이건 뭐 사이비 교주도 아니고. 당신 생각은 어때?”

참 난감한 문제였다.

내 동료들의 반응을 옹호해 줄 수도,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

그 순간 탑의 메시지가 모두에게 전송되었다.

[12층의 미션을 미리 공개하겠습니다.]

[12층의 미션은 게임입니다.]

역시 최정혁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의 말대로 15층까지도 게임일 거라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가올 미션 적응을 위해 대기 시간 동안 모의 게임을 진행합니다.]

“모의 게임?”

“이 로비에서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거지?”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메시지에 웅성댔고, 탑의 메시지가 끝난 후 로비 중앙에는 홀로그램 화면이 생성되었다.

화면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게임의 인터페이스 그 자체였다.

“진짜 신기한데요? 대기 시간 동안 게임이나 하면서 보내면 되겠어요!”

누군가가 맘 편한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것은 분명 단순한 게임이 아닐 것이다.

이 망할 탑은 모두가 방심하고 있는 순간엔 어김없이 뒤통수를 치곤했으니 조심해야 한다.

[지금부터 한 사람씩 차례대로 게임을 진행하겠습니다.]

[모의 게임인 관계로 캐릭터는 생성하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해 보겠습니다”

2구역 출신의 김영준이 첫 순서를 자원했다.

사회 있을 적에 게임 좀 해 본 모양. 하지만 이 탑에서도 그 실력이 발휘될지는 모르겠다.

김영준이 홀로그램 앞에 서자 화면 배경이 바뀌며, 게임이 시작되었다.

[김영준 플레이어. 게임을 시작합니다.]

순간 김영준의 몸이 사라졌다.

이미 게임 속 가상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홀로그램의 화면 배경은 우리가 탑에서 흔히 접했던 숲속 길.

김영준은 그 길을 걷고 있었다.

[퀘스트: 오크 전사 2마리를 사냥하십시오.]

모의 게임답게 아주 단순한 퀘스트였다.

우리 모두의 시선은 화면 속 김영준에게로 고정되었고, 우리는 숨을 죽인 채 그저 그의 퀘스트 수행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느새 최정혁은 내 옆에 다가와 있었다.

“다들 당신 칭찬을 많이 하던데, 게임도 자신 있어?”

“글쎄? 아직은 어떤 게임인지 감이 안 와서 말이야.”

최정혁은 나의 심심한 반응에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보다 퀘스트 수행을 빨리하면 형이라고 불러 주지.”

결국 형이라고 부르지 않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가 프로 게이머인 최정혁보다 게임 미션을 더 잘하기는 힘들 테니까.

물론 정식 게임에 들어가고 나서 캐릭터를 생성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11층 최다 킬 보상에 니케의 반지가 가진 효과까지 더해지면, 레전더리 급의 캐릭터가 뜰지도 모른다.

“모의 게임 말고 본 게임에서 승부를 보는 건 어때? 거기서 내가 너보다 못하다면, 반대로 널 형이라고 불러 주지.”

“혹시 미친 거 아니야? 나야 당연히 콜이지.”

합의는 아주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홀로그램 속에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퍼어어엉!

김영준의 머리가 터져 나간 것이다.

- 8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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