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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78화 (78/292)

78화

켁켁 거리며 신음하던 김세용은 어느 순간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이건 연기다.

지금도 녀석의 맥박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뛰고 있으니까.

일부러 느슨하게 목을 조이고 있는데, 살짝만 더 힘을 준다면 이놈의 찐 비명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살짝 장난 좀 쳐 볼까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절묘한 타이밍에 탑의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일곱 번째 PK가 발생하였습니다.]

‘손서연의 짓이로군.’

나는 ‘11층을 굽어보는 자’ 스킬을 통해 손서연 쪽을 살폈다.

그녀의 총구에선 여전히 마나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나왔고, 4구역의 애송이 하나는 눈에 초점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역시 손서연의 짓이었다.

PK 알림이 뜬 후 김세용의 목을 조이고 있던 팔을 풀었더니 녀석은 털썩 쓰러져 버렸다.

바닥에 머리를 박는 순간 김세용의 입에서 살짝 신음성이 새어 나왔지만, 그냥 모른 척해 두었다.

‘그러니까 왜 말을 안 들어서.’

연기력은 별로였지만 이 녀석의 판단력만큼은 높이 살 만했다.

죽은 척을 하며 반격할 기회를 잡을 만도 한데, 김세용은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승산이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녀석으로선 지금은 무조건 납작 엎드려야 할 때.

내가 정말로 1구역의 플레이어였다면 김세용 녀석의 숨통은 지금쯤 끊어져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지금 1구역의 플레이어는…….’

미니맵을 보니 두 사람 모두 위치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어?

심지어 한 명은 4구역의 플레이어와 접선 중이다.

나는 재빨리 다시 스킬을 가동하여 그쪽을 확대하여 보았다.

이번엔 부부 중에서도 남편 쪽.

PK 직전의 상황이었다.

“사…… 살려 주세요!”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서 있었다.

4구역의 애송이는 치명상을 입은 옆구리를 붙잡고는 애원했다.

생각보다 11층이 빨리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도 PK가 벌어진다면, 남은 4구역의 플레이어는 단 한 명뿐일 테니까.

위치상으로 마지막 한 명의 처리는 내가 하면 딱일 것 같다.

“그래, 살려 줄게.”

1구역의 플레이어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말요?”

그 말을 믿다니, 정말 순진한 녀석이다.

지금 이 애송이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작전은 기습.

물론 확률은 0.1퍼센트 미만이겠지만 말이다.

“살려 준다니깐. 그러니까 잠깐 잠 좀 자고 있어.”

타악!

말이 끝나기 무섭게 1구역의 플레이어는 애송이의 뒷목을 쳤다.

녀석은 나무토막처럼 맥없이 쓰려졌다.

‘정말로 살려 주려고?’

분명 저 공격은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었으며, 실제로 죽지도 않았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 녀석은 11층을 싱겁게 끝내는 걸 거부하는 게 확실했다.

플레이어 한 명 한 명을 죽일 때마다 현상금이 들어오고 있으니, 최대한 많은 PK를 하고자 할 터.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그는 쓰러진 애송이를 어깨에 짊어지고는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이렇게 된다면 작전 변경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4구역을 빠르게 정리하여 11층을 클리어하겠다는 계획이 틀어져 버렸으니까.

‘손서연을 다시 만나야겠군.’

나는 미니맵을 켜고 손서연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전히 쥐 죽은 듯 쓰러져 있는 김세용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 * *

2구역 플레이어 두 명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1구역의 부부 플레이어 둘이서 각각 한 명씩 처리를 한 것.

다행히 우리 동료들은 나의 텔레파시대로 한 장소로 거의 집결한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고 마냥 안전한 상황만은 아니었다.

1구역의 두 플레이어는 우리 동료들이 다구리를 놓는다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까.

그런데 사실 현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은 바로 나였다.

지금 나는 11층에서 가장 적극적인 현상금 사냥꾼이었기에.

[10번째 PK가 발생하였습니다.]

벌써 내 손으로 네 명을 죽였다.

당연히 킬 수는 단독 1위.

PK가 계속될수록 점점 더 나는 살인에 무감각해지고 있었다.

1구역: 2명 생존

2구역: 7명 생존 (-4)

3구역: 7명 생존

4구역: 1명 생존 (-6)

이제 4구역에 남은 플레이어는 단 한 명.

물론 그 한 명은 1구역의 플레이어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기에, 나 혼자 바로 접근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쉬운 길이 있는데 어렵게 돌아갈 이유는 없다.

“손서연!”

나는 손서연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이제 인피면구는 벗어 놓은 상태.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내 눈을 잠시 응시했다.

아마도 살성의 눈으로 나의 살인 행적을 관찰하려는 것일 터.

“지금 눈싸움하는 거야?”

“엉뚱한 짓을 하며 돌아다녔나 보군?”

역시.

인피면구의 효과로 나의 PK 모습을 볼 수 없을 테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손서연 넌?”

“두 명째 해치웠다.”

“페이스가 나쁘진 않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나는 1구역 플레이어들의 상황을 전했다.

그들의 무위가 생각보다 강하며, 11층을 끝낼 수 있음에도 이제야 본격적인 사냥을 시작했다는 것을.

“기특한 놈들이군.”

역시 손서연.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예상했다.

그녀는 11층이 바로 끝나지 않은 사실에 안도했을 뿐, 그들을 위험 세력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 누구라도 이길 수 있다는 살성만의 자신감.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얘도 한 번은 된통 당할 필요가 있었다.

“계속 사냥을 진행하다 보면 언젠간 우리와도 만나게 될 거야. 게다가 우리가 이길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도 없어.”

“그래서 네 결론은 겁먹었다는 거로군.”

얘기가 이렇게 되나?

“그건 아니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겠지. 두 부부가 합류하기 전에 한쪽을 해치우면 일이 훨씬 더 수월해질 거 같은데, 네 생각은?”

손서연이 수락할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만약 거부한다면 나 혼자라도 가야겠지.

내겐 최종병기 캥수가 있으니, 설령 내가 밀리는 상황이 오더라도 승산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그래서 누구를 먼저 칠 생각인데?”

이런 기특한 녀석.

10층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손서연과 사생결단을 내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 쪽.”

남편이 부인보다 강하거나 혹은 약해서가 아니었다.

정신을 잃은 4구역의 플레이어와 함께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나는 손서연에게 싸움을 맡긴 후, 적당히 기회를 봐서 11층을 클리어할 계획이었다.

손서연에게 욕은 좀 먹을지도 모르겠지만 명분은 만들면 그만이다.

“좋다. 네 계획을 받아들이지. 그 대신 조건이 있다.”

“말해 봐.”

“일단은 나 혼자서 녀석을 처리해 볼 생각이다. 이호영 넌 내가 위험해지기 전까진 절대 움직여선 안 된다.”

내가 원하는 그림이 절묘하게 그려지고 있다.

“왜? 내가 현상금을 나눠 먹을까 봐 불안하냐?”

그렇게 살짝 아쉬운 티 정도는 내주었다.

그리고 마무리는 못 이기는 척.

“제안을 한 내가 양보를 해야지 어쩌겠냐.”

협상은 아주 쉽게 이루어졌다.

이젠 11층을 끝내러 가자.

* * *

1구역의 플레이어 최정혁.

아까부터 궁금했던 이 녀석의 베일이 드디어 벗겨졌다.

내 시야에 들어온 순간 현자의 상태창을 통해 인물 정보의 열람이 가능해지며, 최정혁의 진면목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충격적인 단어 하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프로 게이머?’

탑 내에 이런 직업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창을 들고 다녔기에 막연하게 창기사가 아닐까 예상했지만, 전혀 예상외의 결과였다.

평범한 레벨에 평범한 스탯.

하지만 내가 본 최정혁의 강함은 숫자로 표현되는 것을 아득히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아마도 스킬 때문이겠지.’

스킬창에 등록되어 있는 <신들린 컨트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최정혁의 창술 컨트롤은 확실히 신들린 수준이었다.

화려하거나 특별한 기교는 섞여 있지 않았으나, 간결하면서도 효율적인 베기와 찌르기가 인상적이었다.

게임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탑 내에서 프로 게이머는 어쩌면 최강의 직업.

‘그리고 탑에서의 직업이 프로 게이머라는 것은…….’

현실에서도 비슷한 일을 했을 확률이 높다.

나는 검도장에서 목검 몇 번 휘두른 이유로 검투사가 되었으니, 이 녀석도 게임 폐인이었거나 아니면 정말로 프로 게이머였을지도 모른다.

일단 한번 떠봐야겠다.

“혹시, 프로 게이머 최정혁?”

이것이 녀석을 만난 후 나의 첫 한마디였다.

나와 손서연의 등장에 화색이 돌았던 최정혁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놀랍군.”

“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정말로 프로 게이머 출신이라니.

물론 톱 티어는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나도 알아봤을 테고, 최정혁의 반응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팬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응원하는 입장이었지.”

“사인해 줄까?”

“그건 사양할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나는 손가락으로 손서연을 가리켰다.

벌써 손서연은 총을 빼 든 상태.

성격도 참 급한 녀석이다.

총구는 이미 최정혁을 향해 있었다.

“나랑 싸우려고? 그나저나 총이라니, 참 신기한 일이네.”

최정혁은 손서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창을 든 모습을 보니 확실히 여유가 있다.

일단 나는 손서연과 약속한 대로 뒷짐을 졌다.

두 사람의 대결보다 내게 더 중요한 것은 4구역의 꼬맹이.

‘거리가 좀 멀긴 한데…….’

녀석은 저 뒤편에 쓰러진 채로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기회를 봐서 저 녀석의 등에 검을 꽂을 생각이다.

그럼 바로 11층은 종료될 테니까.

물론 최다 PK에 대한 보상도 내 차지다.

“그런데 둘이 같이 안 덤비고 아가씨만 싸우려고? 어쨌든 잘됐네. 저 친구한테는 따로 사인을 해 주고 싶었거든.”

타아앙!

최정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총성이 울렸다.

바로 그의 입에서는 짧은 신음성이 새어 나왔다.

역시 이 정도 근거리에서 손서연이 내뿜는 마나의 탄환은 살인적인 충격을 준다.

하지만 최정혁이 마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꿰뚫는 통찰력!’

이 또한 최정혁의 전용 특성이었다.

게임 세계관 속에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 아마도 손서연의 총이 가진 위력과 특성을 본능적으로 캐치해 낸 것이 분명했다.

탄환의 충격이 크겠지만 그는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혀 손서연을 향해 창을 뻗었다.

‘신들린 컨트롤?!’

거리상으로는 어렵겠다 싶었지만, 그의 창끝은 절묘하게 손서연의 손등을 터치했다.

종이 한 장 정도만 모자랐어도 결코 닿지 않았을 공격.

하지만 이것이 성공하며 최정혁이 발산한 마나는 창을 타고 손서연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흐읍!”

신음성을 내는 쪽은 이번엔 손서연이었다.

타악!

결국 손서연은 총을 떨어뜨렸다.

손서연은 총을 포기하고는 몸을 재빨리 뒤로 뺐다.

좋은 선택이었다.

여기서 쓸데없이 총에 집착했다가는 바로 목이 날아갈 것이다.

“총 말이야. 더럽게 아프네.”

이로써 승산은 최정혁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다.

사실 손서연으로선 불운이었다.

아무리 신컨이라 해도 방금 한 걸 또 하라고 하면 못할 것이다.

프로 게이머도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 중 하나일 뿐, 전능한 존재일 리는 없다.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내가 만약 이 아가씨를 죽이면 다음엔 당신이 나에게 덤비는 건가?”

최정혁은 싸움 도중에도 여유를 부리며 내게 질문을 해 왔다.

“그건 왜?”

“사인은 꼭 해 주고 싶어서.”

“팬 아니라고 했잖아!”

강한 건 인정하지만, 좀 질리는 스타일이었다.

“혹시 나한테 덤빌 생각이었다면 포기해. 그럼 특별히 살려는 드릴 테니까.”

살려 주겠다니 고맙긴 한데, 이렇게 나오니까 갑자기 쓸데없는 호승심이 피어올랐다.

이 녀석의 꿰뚫는 통찰력도 한계가 있는 건 확실하다.

내가 손서연보다 훨씬 더 위험인물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니까.

- 7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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