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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73화 (73/292)

73화

사부의 말에 장내의 분위기는 싸하게 얼어붙었다.

천마신교 내에서 천마의 말은 곧 절대 명제이자 법.

원로 격인 장로들조차 사부의 한마디에 모두 각 잡힌 모습을 하였다.

“아주 지랄들을 하는군.”

사부는 태무정과 편종호를 번갈아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사부도 참 못 말린다.

생도들이 보는 앞에서 지금 두 장로에게 개쪽을 주려 하고 있으니까.

“이봐 편 장로. 우리 신교의 절대 원칙이 뭔가? 자네가 처음 입교했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던 건데 알고 있는가?”

“……그야 강자생존 아닙니까?”

“그래. 과연 내 사제다워. 벽에 똥칠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바로 대답하는군.”

“지…… 지존!”

“왜? 내 표현이 거슬리는가?”

“아닙니다!”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면 모를까, 누가 강자이고 누가 약자인지는 이미 밝혀진 일이야. 그거 가지고 이렇게 지저분하게 굴 셈인가?”

“하지만, 생도 개인을 위해 시험 일자를 변경하는 것은 천마지로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고작 그것 때문에 강자생존이라는 신교의 대원칙을 개무시하시겠다?”

“아닙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지존.”

사부의 위압감 넘치는 포스에 편종호는 더는 대꾸하지 못하였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며 사부의 말에 절대복종하는 모습.

이 또한 강자생존의 원칙을 처절하게 따르는 일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태 장로.”

“네. 지존.”

“천마지로를 주관하는 총책임자가 누구인가?”

“저입니다.”

“그래. 바로 자네야. 천마지로에 있어서만큼은 태 장로 자네의 말이 곧 원칙이란 말이지. 그런데 왜 편 장로 앞에서 설설 기는가? 편 장로가 자네 사형이라서?”

“제가 언제 설설 기었다고 그러시는지요.”

“그냥 딱 봐도 설설 기었어. 천마지로 중엔 그 누구도 자네의 원칙을 거역할 수는 없네. 물론 나는 빼고 말이야. 어쨌든 자네의 사형이라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왜 똑바로 맺고 끊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구느냐 이걸세.”

“……그렇게 보였다면 제 불찰입니다.”

“그래. 자네 불찰이지.”

탑에서 단둘이 있을 땐 몰랐는데, 사부가 군기 하나는 제대로 잡는 거 같았다.

장로들을 상대로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사부밖에 없을 것이다.

지위상으로도, 항렬상으로도 장로들 위에 있는 것은 사부가 유일하니까.

“그리고 신교의 모든 제자들에게 공표할 사실이 하나 있으니까 다들 잘 들어.”

연단 위에 올라선 사부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존이라는 호칭에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그는 신에 가까운 느낌을 주기도 했다.

내가 사부 하나는 잘 모시고 있는 셈이다.

“지금 천마지로에 참여하고 있는 이호영 저놈 말이야.”

사부가 나의 이름을 거론하자 모두의 시선에 내게로 집중되었다.

수많은 눈동자들이 나와 눈빛을 교차하고 있다.

사부.

설마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저놈이 바로 내가 천마의 후예로 거둬들인 제자일세.”

* * *

교주전.

이곳엔 단 두 사람만이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하나는 사부.

다른 하나는 바로 나였다.

“왜 밝히신 겁니까? 전 이제 이곳을 떠날 몸인데.”

“그럼, 내가 내 제자를 제자라고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이냐?”

“불러올 파장이 너무 크지 않습니까. 사라질 저의 행방에 관심을 가질 사람도 많을 테고요.”

“너로 인해서 후계자 승계 문제가 더 재밌어지겠지. 다른 후보자들은 보이지 않는 경쟁자와 경쟁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사부는 본인의 생각에 스스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드디어 나는 사부의 제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 인정이 실질적으로는 아무 효과가 없을지라도 내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그나저나 아쉽네요. 이 천마신교를 물려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탑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만, 모든 여정이 다 끝나고 나면 혹시 무림으로 올 생각이 있느냐?”

“저는 제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지요.”

“천마신교를 준다고 해도?”

“지구의 밥 한 공기가 더 소중합니다.”

“에라이 미친놈! 나도 단단히 미쳤지. 이런 놈을 천마의 후예로 받아들이다니.”

“이번에도 사부가 선택한 일입니다. 예전의 선택은 기억 못 하시겠지만.”

참 독특한 경험이긴 했다.

한 인물과 두 번의 사제 인연을 맺게 되다니.

“탑으로 돌아가기 전에 더 배우고 싶은 게 있느냐? 어쩌면 이번이 우리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그냥 사부와 술이나 한 잔 더 마시겠습니다.”

“미친놈. 이게 어느 수준의 기연인지 설마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물론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훗날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부에게 배울 수 있는 무공은 앞으로의 내 성장과 수련 방향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줄지도 모르는 것들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사부와 사제의 정을 나누는 것이면 족했다.

이미 얼큰하게 취해 버렸기에 내린 결정일지도 모른다.

“그럼 술이나 한 잔 따라라.”

“네, 사부.”

그렇게 사부의 잔을 수없이 채웠다.

[탑 10층 미션이 종료되었습니다.]

[생존자는 탑으로 귀환합니다.]

길고 길었던 여정이었다.

어쩌면 피의 날일 수도 있었던 이번 10층.

많은 것을 얻었고 후회 없이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사부와의 만남은 이게 마지막이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언젠간 또 탑에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계속해서 탑을 오르며 생존해 나갈 수 있다면.

“또 보자꾸나.”

“네 사부님.”

* * *

오랜만에 돌아온 탑의 로비.

예상은 했지만 일곱 명 전원 생존이었다.

“다들 수고 많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가볍게 포옹하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본격적인 무림 대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에 돌아왔기에 우리 모두는 무사할 수 있었다.

무림으로 소환된 시기가 조금만 뒤틀렸었더라면 우리는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

“다들 좋아 보이는군요.”

“치열하기만 했던 탑보다는 훨씬 평화로웠으니까요.”

상태창을 스캔해 보니 모두가 가파른 성장세를 거두었다.

무림 소환과 동시에 내공심법을 비롯한 기본적인 무공을 자동으로 습득하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무림에서 획득한 무공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수련을 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내공심법의 연마는 우리의 마력을 증진시켜 줄 것이며,

검술, 창술, 궁술 등의 무공은 스킬의 숙련도를 한층 높여 줄 것이다.

여타 체력, 근력, 민첩, 감각 등에 대한 스탯 역시 두말할 것도 없다.

[플레이어 전원은 이제 더 이상 골드를 소모하여 스탯을 올릴 수 없습니다.]

[스탯의 증가는 오로지 레벨업 및 수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탑의 알림음이 한 번 더 못을 박았다.

이제부터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오직 사냥과 수련이라고.

어차피 나에게는 필요 없는 정보이기도 하였다.

골드를 부어 도달할 수 있는 한계 스탯에는 오래전에 도달해 버렸으니까.

[무림에서 얻은 무공 역시 골드를 통해서는 숙련도를 올릴 수 없습니다.]

이 또한 이미 알고 있던 정보.

무림에 가기 전부터 이미 무영추혼검을 익히고 있었기에 알아본 적이 있었다.

“날로 먹지 말라는 거군요.”

골드의 사용처는 이제 아이템 구입으로만 제한되어 버렸다.

사실 당분간 골드를 쓸 일은 없을 것 같다.

불굴의 검은 현시점에서도 사기급인 무기였으며, 무림에서 보상으로 얻은 천잠의 역시 다른 방어구들을 압도하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이제부터 골드는 차곡차곡 적립하여 결정적인 한 방을 터뜨리면 될 일이다.

“아! 그나저나 난 무림이 좋았는데!”

탑에 귀환한 후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김세용이었다.

김세용은 적사문의 신입 무사 중 최고 기대주였기에.

“왜? 간만에 네 세상이라서 살맛 났냐?”

“당연히 살맛 났지. 저잣거리에만 나가도 다들 날 최고라 치켜세워 주는 데 기분이 안 좋겠어?”

“가능했다면, 무림에 말뚝도 박았을 놈이네 이거.”

“크크크. 형도 무림에서 장난 아니지 않았나? 난 진짜 매호평이 그렇게 죽어 버릴 줄은 몰랐는데.”

“내가 죽을 줄 알았다 이거냐?”

“어. 솔직히.”

“의리 없는 새끼. 그렇게 생각했으면 바로 말렸어야지.”

“크크크. 어쨌든 다 살아서 돌아왔잖아?”

그리고 그 순간, 손서연의 뜬금 발언이 있었다.

“의리 없는 새끼는 이호영 바로 너다.”

그녀가 이렇게 전면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동안 손서연은 줄곧 아웃사이더로만 존재했으니까.

“손서연. 뜬금없이 뭐냐?”

“너, 천마의 제자였다면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냐?”

뭔가 했더니 결국 이거였다.

사부의 선언을 코앞에서 들었던 그녀로선 납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똑같이 무림에 처음 갔는데 갑자기 내가 천마의 제자라니.

손서연의 고자질에 다들 어안이 벙벙한 반응이었다.

“천마요?”

“혹시 천마신교의 그 천마 말입니까?”

“무림 제일검이라고 불리는 그 천마요?”

다들 무림에 다녀왔으니 천마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무림에서 그 두 글자가 지니는 절대적인 의미까지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맞아요. 제 사부는 천마였습니다. 천마신교의 절대 지존.”

“미쳤다! 와! 호영이 형 뭐야? 탑한테 무슨 뇌물을 먹였길래 천마의 제자가 되는 거지? 무림에서 진짜 살맛 났던 건 내가 아니라 따로 있었네!”

김세용은 나를 보며 배신감 어린 눈빛을 지었다.

다들 무림 미션을 통해 쓸 만한 무공 하나씩은 익히고 왔겠지만 그래 봤자 삼류 무공.

나름 잘나갔던 김세용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니 나에 대한 부러움이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운이 좀 좋았습니다.”

“매번 이호영 씨는 운이 좋군요.”

“뭐, 그렇죠.”

나는 멋쩍게 웃어 주었다.

사실 앞으로도 운은 계속 좋을 예정이니, 이 정도 시선은 받을 일이 많을 것이다.

확실한 건 10층을 마치고 나서 나와 다른 플레이어 간의 격차는 훨씬 더 벌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해질 것이다.

똑같은 시간을 수련하더라도 이미 익히고 있는 무공의 질 자체가 다르니까 말이다.

[11층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48시간이 남았습니다.]

[다들 수련에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갈수록 탑은 노골적으로 우리에게 수련을 강요했다.

탑의 정상에는 우리를 관음하고 있는 변태 놈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를 굴리고 또 굴리며 희희낙락하고 있을 그런 놈.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겠습니까?”

다들 투덜대면서도 군말 없이 수련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이젠 다들 독종들만 남아 있다.

그게 아니면 이 빌어먹을 탑이 우리를 독하게 만들고 있거나.

“호영이 형! 나 오랜만에 캥수랑 스파링 좀 해 보자.”

“캥수가 이젠 좀 많이 컸는데 자신 있냐?”

“형? 장난해? 나, 적사문의 최고 기대주!”

최고 기대주고 뭐고, 캥수는 정말 많이 성장했다.

캥수의 영약 흡수율은 소름 돋을 정도였으니까.

“그럼 한번, 해 보든가.”

캥수야 말로 이 스파링을 기다려 왔는지 모른다.

캥!

캥!

캥수는 세상 신난 표정을 지으며 내 소환에 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현자의 상태창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공략집: 11층 미션을 위해 인피면구의 사용법을 숙지해 놓으십시오. 인피면구의 기능은 탑 시스템에 맞게 변형되어 있습니다.]

- 7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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