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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68화 (68/292)

68화

조무건은 집요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단순한 녀석이었다.

요 며칠 캥수에 대해 계속 추궁을 하는데, 내가 뻔뻔하게 발뺌을 하니까 결국엔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었다.

“생각을 좀 해 보라고! 허공에서 갑자기 괴물이 튀어나온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 그건 그렇지만!”

“그러니까 술 좀 작작 마실 것이지, 덜떨어진 놈처럼 헛것이나 보고.”

“근데 그 괴물 자체는 헛것이 아니었다! 내 두 눈으로 분명히 봤으니까!”

“말했잖아. 나도 봤다고. 내가 검으로 위협을 하니까 놀라서 바로 도망가 버리고 말았지만.”

“하아! 분명, 그 괴물은 공간을 찢으면서 나온 거 같았는데!”

“뭐? 공간을 찢어? 하여간 술만 마시면 꼭 이런 놈들이 있어요!”

“알겠다. 알겠다고!”

조무건은 투덜거리면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캥수도 그냥 환영을 본 것이라고 우길 걸 그랬다.

어쩌면 믿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이놈은 진탕 취해 있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이제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적사문의 관할하에 있는 마을에 도착하게 된 것.

조무건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였다.

애당초 녀석은 나를 적사문 근처로 호송하는 역할만 맡았는데, 어쩌다 보니 나의 암살 파트너가 되어 버렸다.

고맙게도 조무건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 녀석을 상대로 매일 예행 연습을 하며 나의 계획은 더욱 정교해졌고, 그 과정에서 깨닫는 점도 있었다.

10층을 시작한 이후 아마 나보다 더 큰 성장을 한 플레이어는 없을 것이다.

“암살 실행은 이틀 뒤 밤인가?”

“그래.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넌 정말 또라이 같은 자식이야.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여기까지 와 버리다니.”

“왜? 그렇게 걱정되면 암살하는 것까지 함께하든가.”

“미쳤구나? 그러다 걸리기라도 하면 우리 둘 다 평생 탄광행이다.”

이것이 바로 천마신교의 무서운 점이다

제아무리 출신 성분이 우월한 조무건이라 해도 신교의 규칙에 어긋났다가는 얄짤도 없다는 것.

조무건은 이쯤에서 돌려보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내 암살 성공이나 빌어.”

“당연하지! 꼭 죽여라! 두 번 죽여야 한다!”

“너무 그러니까 티 나잖아, 인마.”

“……그랬군.”

혹시 몰라 닭다리는 최후의 패로 남겨 두었다.

내가 매호평을 죽인 후 십만대산으로 돌아가 해 주는 것으로.

조무건이 정말로 나의 안위를 걱정하는지 아니면 치느님 영접을 기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날 격려해 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자, 이거.”

“무엇이냐, 이게?”

조무건은 내가 내민 보따리에 의문을 표했다.

“돌아가는 길에 요깃거리나 하라고.”

이렇게 최후의 패를 벌써 내밀어 버리다니, 나는 참 마음이 약한 것이 문제다.

그리고 이 약한 마음으로 이틀 뒤에 누군가를 죽여야만 한다.

* * *

일단은 저잣거리부터 돌 생각이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비슷하지만 그래도 내가 거사를 치르게 될 마을의 분위기 정도는 익혀 두고 싶었다.

운이 좋다면 매호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

국밥 한 그릇이 간절했다.

그동안 조무건을 살살 달래느라 너무 양념치킨만 먹어 댔더니, 이젠 닭만 봐도 질릴 지경이었다.

고기국밥이든 나물국밥이든 뜨끈한 국물에 밥 한 공기 말아 먹으면 그게 행복일 것 같았다.

적사문이 관할하는 이곳은 인근에서 규모가 가장 큰 마을.

길게 늘어선 저잣거리에 사람들이 우글우글대는 것을 보니 마침 장날임이 틀림없었다.

온갖 군상들의 떠드는 소리가 절대 청각을 타고 내 귀를 간지럽혔다. 그런데.

‘어?’

뭔가 익숙한 목소리.

온갖 사운드가 믹스 된 가운데서도 유난히 내 청각을 자극하는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주변에 다른 플레이어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곧바로 울린 알림 메시지는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려 주었다.

‘김세용?’

분명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세용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김세용은 10층을 시작할 때에 [사파]로 배정이 되었었다.

그리고 이곳은 사파의 주요 문파인 적사문이 있는 마을.

목소리를 따라서 접근을 하니, 더욱더 분명해졌다.

퍼어어어어억!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군중들의 감탄 소리가 이어졌다.

“도대체 이게 몇 명째야!”

“적사문의 신입 중에 저런 녀석이 있었어?”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사람들이 언급하고 있는 적사문의 신입은 다름 아닌 김세용.

녀석은 위풍당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거리며 외쳤다.

“다음!”

메시지에 따르면 저 녀석은 지금 미션을 수행 중.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았다.

김세용의 반대편에 있는 무리들은 주춤거리며 조금씩 뒷걸음질을 쳤다.

“뭐야! 벌써 겁들 먹은 거냐? 우리 구역에 겁도 없이 기어들어 온 패기는 어디 가고?”

세용이 놈. 너무 몰입하고 있다.

저렇게까지 적사문에 소속감을 가질 것은 없는데.

“다…… 다음에 다시 오겠다!”

결국 김세용과 상대하던 패거리는 물러나고 말았다.

녀석도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무림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상태창을 보아하니 나름 적지 않은 성취를 거두었다.

마력이 많이 오른 걸 보니 심법도 준수한 것 같고, 기본 스탯들도 고르게 향상되어 있었다.

- 세용아. 5시 방향 20미터.

보는 눈이 많이 일단 텔레파시로 나의 위치를 알렸다.

암살을 하러 왔으니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곤란한 일.

“호영이 형!”

그런 시도가 무색하게 놈은 단순하게 반응했지만 말이다.

- 멍청아! 나 쳐다보지 마! 괜히 텔레파시를 보냈겠냐?

* * *

김세용은 적사문의 촉망받는 신입 무사가 되어 있었다.

오늘 그가 수행했던 역할은 저잣거리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군소 세력 하나를 정리한 것.

“좋아 보인다. 세용아?”

“형! 나 아무래도 무림 체질인 거 같아. 그 지긋지긋한 탑으로 돌아가느니 여기 눌러살고 싶을 정도야. 크크크.”

“안타깝지만 머지않았어. 이제 곧 돌아가게 되겠지.”

“아놔! 형이 그런 말을 하면 꼭 그렇게 되던데. 그나저나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야? 형은 마교 소속이잖아!”

“무슨 일이겠냐? 당연히 나도 미션 수행하러 왔지.”

“미션?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사파 구역까지 들어온 거야?”

“사람 하나 죽이러.”

“죽여야 되는 게 혹시 우리 쪽 사람이야?”

“어. 매호평이라고.”

“뭐?”

김세용은 내 말에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적사문 소속인 녀석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곳 문주의 적장자인 매호평이 얼마나 고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는지.

“미쳤어? 아무리 형이라도 그건 말도 안 돼!”

“나 못 믿어?”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야! 아무리 암살이라 해도 레벨 자체가 너무 다르다고!”

녀석의 반응을 보아하니 매호평이 진짜 강하긴 강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상위 심법인 화명신공을 익혔으며, 요즘 그 귀하디귀하다는 영약도 하나 먹었고, 내 무영추혼검을 더 매끄럽게 해 줄 무명보까지 얻었으니 그야말로 괄목상대한 발전이 있었다.

어쨌든 여기서 김세용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생각보다 쉽게 매호평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세용아, 너 나한테 협조 좀 해야겠다.”

“같이 싸우자는 거면 난 못해.”

“인마,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일단 매호평이 요즘 자주 가는 기루가 어디냐? 그놈 술과 여자 없이는 못 산다던데.”

“그런 것까지 알고 왔어?”

김세용의 말에 따르면, 놈이 요즘에 매일 가는 곳은 운월관.

“거기 세향이라는 여자애가 있는데, 매호평이 완전 푹 빠져 있는 교육 기생이야.”

“교육 기생이면 아직 어린애 아니야?”

“맞아. 이제 겨우 열여섯이니까.”

열여섯이라니, 미친놈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구였다면 아직 중학교에 다니고 있을 나이.

더욱더 가관인 건 세향이라는 기생을 기루에 넣은 게 매호평의 설계였다는 것이다.

세향의 아버지가 교묘하게 적사문으로부터 고율의 빚을 지게 만든 것.

“적사문이 운영하고 있는 건 고리대금업뿐만이 아니야. 은밀하게 돌리고 있는 도박판만 해도 열 개가 넘고, 인근에 있는 기루도 다 적사문 관할이야.”

“어쨌든 그 셋이 다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군.”

“맞아!”

“세향이라는 기생도 그런 식으로 운월관으로 들어가게 된 거라 이거지?”

“어.”

“너는 그 쓰레기 밑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거고?”

“어? 갑자기 얘기가 왜 그런 식으로!”

“어쨌든 그 매호평이라는 놈. 죽어도 싼 놈인 것은 분명하군.”

“그거야 그렇지. 더럽게 세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 * *

어두컴컴한 가을밤.

비는 주룩주룩 내렸다.

예기치 못한 기상 상태에 살짝 걱정도 했다.

혹시 날씨 때문에 매호평이 집에 처박혀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세향아! 내 너를 보고 싶어서 오늘도 왔다. 와하하하.”

하지만 쓸데없는 기우.

이놈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루 출입만큼은 개근하는 녀석이었다.

매호평은 오늘도 어김없이 운월관을 찾았으며, 오늘 밤 역시 세향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였다.

‘드디어 디데이.’

이미 준비는 완료되어 있었다.

지난 이틀 동안 운월관을 방문하여 지형지물들을 빠짐없이 눈에 익혀 두었으며, 매호평이 이동하게 될 동선도 미리 체크해 두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세향의 역할.

이 여자아이가 내 말대로 잘 실행하느냐에 따라 오늘 암살의 난이도가 결정될 예정이었다.

- 내일 제가 뭘 하면 되는 건가요?

- 세향 씨가 해야 할 건 그저 용기를 내는 일입니다. 심호흡 한 번 하고 매호평이 마실 술에 이거 한 방울을 미리 섞어 놓으세요.

- 이것은 혹시 독인가요?

- 네. 맛도 냄새도 없으며, 반응도 바로 오지 않는 독입니다.

- 위험하진 않을까요? 무공의 고수들은 먹는 순간 바로 알아챌 수 있다고 하던데.

- 안심해도 됩니다. 이건 그리 독성이 강하지는 않으니까. 그저 취기를 몰아내는 데 좀 더 시간이 걸리게 하는 정도입니다.

어젯밤 세향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내가 건넨 은설독을 받아 들었다.

매호평을 상대로 독성이 강한 일반적인 독은 사용할 수 없었다.

성공만 한다면 효과는 확실하겠지만, 그 전에 바로 알아챌 테니까.

매호평이라면 바로 내공을 일으켜 취기와 독성을 동시에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 정말로 매호평을 죽여 주실 수 있는 건가요?

- 약속드리죠. 저는 내일 밤 매호평을 반드시 죽일 겁니다. 세향 씨 당신이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 일은 좀 더 쉬워질 테고요.

- ……그럼 하겠습니다.

매호평을 죽여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무림이라는 낯선 차원의 소녀일 뿐이지만, 왠지 지켜 주고 싶었다.

세향에게 은설독을 부탁한 건, 암살의 편의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 스스로도 무언가를 하도록 하기 위함.

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력하게 당하기만 한 소녀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비를 맞으며, 매호평이 이동하게 될 길목에서 은신을 했다.

절대 청각을 일으켜 매호평이 있는 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주시했다.

매호평의 음탕함과 소녀의 어색한 억지웃음은 내내 대비되었다.

그렇게 매호평을 기다린 시간만 한 시진. 그리고.

‘드디어.’

매호평이 밖으로 나왔다.

세향이 정말로 용기를 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얼큰하게 취한 채로 술 냄새를 풍기는 매호평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뒷간으로 향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비틀비틀거리는 발걸음은 더없이 천박하게만 느껴졌다.

모든 상황은 완벽했다.

조무건과 연습했던 그때와 절묘하게 판박이.

주룩주룩 비까지 내리고 있어, 암살을 하기엔 더없이 좋은 분위기였다.

- 6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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