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확실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치킨은 무림에서도 통한다는 것.
이 도도한 조무건 녀석이 양념치킨 앞에서 백기를 들고 내게 투항을 했다.
미끼로 던진 치킨 조각 하나에 눈이 거의 뒤집어진 것이다.
“하루 세 번 나와 암살 연습.”
“알았다고!”
“또한 매 연습마다 새롭게 반응해라. 내가 최대한 많은 변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알았다고!”
“그리고 항상 네 최대치로 임해야 한다. 그래 봤자 실제 매호평에는 훨씬 못 미치겠지만.”
“알았다고! 그러니깐 이젠!”
“자, 여기.”
나는 녀석에게 닭가슴살을 내밀었다.
내 개인적 선호도로는 목보다도 아래인 최하위 부위.
팍팍한 육질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야 건드는 부위이지만, 조무건에게는 신세계일 것이다.
바삭한 튀김옷과 양념 맛은 너무 사기적이니까.
처음부터 닭다리나 닭날개를 주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자극의 정도를 서서히 높일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일주일 이상 진행될 암살 연습이 내게 정말로 도움이 된다면, 조무건은 최종적으로 닭다리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 * *
조무건을 대상으로 암살 연습을 하며 나는 끊임없이 시나리오를 수정해 나갔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급습을 통한 일격필살.
하지만 나와 매호평의 무공수위를 고려해 봤을 때 단칼에 죽인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무리 기습을 하고 내가 가진 모든 역량을 때려 박는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실력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일.
매호평이 아닌 조무건만 하더라도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예고된 기습이긴 했지만, 조무건은 때때로 놀랄 정도로 잘 막아 낼 정도니까.
“야, 너!”
“왜?”
“나보고 열심히 도와주라며.”
“그래서?”
“그런데 너는 왜 정작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거지?”
조무건이 내게 의문을 표했다.
녀석의 눈에는 그렇게 비춰졌나 보다.
조무건은 내가 자신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하니까.
미안하지만 단단히 잘못 짚었다.
아직은 내가 살짝 아래.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너 너무 몰입하는 거 아니냐?”
“내 사전에 대충이란 건 없다. 꼭 치킨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고.”
“누가 뭐래?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하더니만.”
“제 발 저리기는!”
지금까지 조무건과의 암살 연습은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나보다 강한 상대를 대상으로 반복해서 예행 연습을 해 보는 것. 이는 실수를 줄이고 내게 최적화된 방법을 찾아가는 좋은 방법이었다.
더군다나 조무건은 매번 다양한 반응으로 맞서 주고 있으니 내겐 좋은 경험이 되고 있었다.
정말 양념치킨이 매일 열일을 하고 있다.
조무건은 1일 1닭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전혀 질리지 않는 모양이다.
“오늘 밤에는 실전에 가깝게 연습해 볼 거야. 잘 대비해 봐.”
“어이가 없네.”
“왜.”
“실전에서도 지금처럼 예고 암살을 하려고?”
“그건 아니지만, 어차피 네가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거라. 오늘 시도하는 건 완전히 새로운 방법이거든.”
“멍청한 놈. 새롭다고 알려 준 순간 그건 더 이상 새로운 게 아니다.”
“자신 있냐?”
“당연하지.”
미안하지만 오늘 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이제 캥수를 꺼낼 때가 되었다.
캥수는 내가 가진 최고의 패.
허공에서 갑자기 큼지막한 괴물이 튀어나오는 장면은 제아무리 절정 고수라 해도 당황할 일이다.
내가 노리는 건 그 당황의 순간에 필살의 일격을 가하는 것.
물론 변수는 존재한다.
내가 암살할 매호평은 술에 취해 있을 테니 어떻게 반응을 할지를 알 수가 없다.
결국 비슷한 상황에서 연습해 보는 것이 최선.
예상 가능한 모든 변수는 모두 준비해 둘 생각이었다.
“지금부터 서두르면 근처 마을까진 충분히 당도할 수 있겠군.”
“마을? 왜 갑자기? 우리가 가는 경로에서 많이 벗어날 텐데.”
“오늘 밤 기루에 갈 생각이다.”
“뭐? 어딜 가?”
기루 얘기가 나오자 조무건의 눈빛이 갑자기 빛났다.
이놈도 모처럼 십만대산을 벗어났으니 일탈이 하고 싶어지는 듯했다.
“이호영 너 이 새끼. 그래도 꼴에 풍류를 안다 이거냐?”
“헛소리하지 말고. 오늘 밤 술에 좀 진탕 취해 있어 봐. 암살 연습은 그때 이루어질 테니까.”
“뭐? 신성한 기루에서 왜 그딴 걸 하는데?”
“내가 매호평을 노리는 장소가 바로 기루니까.”
유평이 준 정보에 의하면 매호평은 무공 없이는 살아도 술과 여자가 없이는 못 사는 녀석.
마침 적사문 근처에는 유명한 기루들이 즐비해 있기에 매호평은 최근에도 기루에 다니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술에 취했을 때를 노리는 거로군.”
“그래, 가장 중요한 것은 선빵의 성공 여부니까.”
“선빵! 중요하지. 그런데 난 여전히 의문이다. 네가 왜 이 정도로 어려운 표적을 선택했는지.”
“왜, 불안하냐?”
“불안은 개뿔! 어차피 암살할 때 난 빠져 있을 건데.”
“난 승산 없는 싸움은 안 해. 이거면 대답이 됐냐?”
“아니, 전혀!”
조무건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며칠 같이 다녔다고 내게 동료 의식이 생긴 모양이다.
나름 나를 걱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오늘 밤부터는 실전처럼 해라. 이제 매일 밤 기루에 들릴 생각이니까.”
“그렇다면 이제는 너에게 당당하게 닭날개를 요구하겠다.”
“벌써부터 닭날개라니 양심 무엇? 그건 암살에 성공하고 나서 이야기해야 될 거 같은데.”
“아니! 다른 곳도 아닌 기루에서 놀다가 흥이 깨지는 일! 당연히 닭날개 정도는 줘야 한다고 본다.”
“꼭 먹어 본 것처럼 말을 하는군.”
“꼭 먹어 봐야 알 수 있는 건 아니지!”
저 다부진 표정과 말투.
분위기로 보아하니 조무건은 물러설 거 같지 않았다.
하긴 어차피 지금쯤 보상을 줄 때가 되긴 했다.
“좋다. 닭날개를 걸지.”
“그럼 나도 암살에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
조무건과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치킨으로 대동단결.
치느님이 괜히 치느님이 아닌가 보다.
* * *
춘화루.
조무건의 방에서는 교태 섞인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녀석은 혼자서 기생 둘을 옆에 끼고 신나게 노는 중인데, 이미 얼큰하게 취해 혓바닥은 꼬부라져 있었고 예고 암살 따위는 머릿속에 있지도 않은 것 같았다.
‘오늘부터라도 와 보길 잘했군.’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현장에 와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암살을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수정하고 때로는 기각했던 일들이 이곳에 와 보니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지금 조무건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창호지로 발라져 있는 미닫이문 하나.
이렇게 술과 기생들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바로 뛰어 들어가 녀석의 가슴에 검을 꽂는 일을 수없이 상상했었다.
‘하지만 힘들겠어.’
상대는 나를 상회하는 무공의 고수.
처음엔 살짝 놀랄 수도 있겠지만, 곧바로 취기를 몰아낸 후 내게 반격할 것이다.
선공을 성공시키지 못한 상황에서의 암살은 절대 금물.
기생들, 그리고 기루 곳곳에 근무를 서고 있는 소속 무사들의 존재도 영 마음에 걸렸다.
‘암기를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아쉽게도, 내 암기술로는 역효과를 낼 것이 분명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는 매호평에게 최대한 접근하여 검으로 승부를 보아야만 했다.
“와하하! 조쿠나!”
방 안에서 들려오는 조무건의 목소리는 정말로 신나 보였다.
도대체 그동안 어떻게 참았냐.
신교 내에선 모범생 코스프레를 하느라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최고의 명문 가문에서 태어나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을 테니까.
“난 잠시 소피 좀 보고 올 터이니 다른 데 가면 안 된다!”
“공자님도 참! 우리가 가긴 어딜 간다고. 어서 다녀오셔요.”
방 안에 들어간 조무건이 처음으로 밖에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 역시 내가 염두에 둔 암살 타이밍 후보.
변소에서 볼일을 보는 녀석의 등에 불굴의 검을 꽂으며 선공을 날리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다.
일단은 시도해 볼 만했다.
만약 내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긴다면 수정하면 그만이다.
나는 숨을 죽이며 조무건을 따라갔다.
조무건은 술에 잔뜩 취해 있는지 거리를 벌린 채 따라가는 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매호평도 다르지 않을 터.’
그 녀석은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신다고 하니, 분명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조무건과 나의 거리는 지척.
여전히 녀석은 모르고 있었다.
휘이이익!
나는 칼집을 빼지 않은 채로 조무건의 등을 후려갈겼다.
“아아아악!”
이런 비명 소리조차 내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쯤 이 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기루 소속 무사들이 있을지 모른다.
‘역시.’
절대 청각을 타고 기루 이곳저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젠 결정타를 먹여야 할 때.
“아아아아악!”
조무건은 비명을 한 번 더 질렀다.
고통에 의한 비명이 아니다.
그저 녀석 앞에 캥수가 나타났을 뿐.
그러고 보니 조무건으로선 놀라움이 두 배로 클지도 모르겠다.
둘은 서로 구면이니까. 그리고.
퍼어어어어억!
캥수의 회심의 펀치가 조무건의 안면을 강타했다.
힘 조절을 하라 했는데, 캥수가 흥분을 했는지 허리를 돌리며 풀 스윙을 날려 버린 것이다.
“캥수야, 워! 워!”
캥수가 연타를 날리려는 걸 겨우 말렸다.
조무건은 눈에 초점이 없는 게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
어쨌든 성공이다.
캥!
이것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조무건 급의 수준으로는 캥수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멘붕에 빠진다는 것.
그렇다면 매호평은 어떨까.
* * *
“이런 개 같은 새끼!”
조무건은 깨어나자마자 내 얼굴을 보고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마 두 가지 점에서 나에게 단단히 화가 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예행 연습이었음에도 제대로 얼굴을 가격한 점.
“말했었잖아. 오늘 예행 연습은 실전 같을 거라고.”
“이 망할 새끼야!”
두 번째는, 조무건의 설화초를 강탈해 간 캥수가 나와 함께 갑자기 등장한 점.
“혹시 너도 어제 본 거야?”
“이런 개 같은 새끼야! 네놈이 불러낸 거잖아!”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어젯밤 일은 똑똑히 기억이 난다고! 갑자기 공중에서 그 영물, 아니 괴물이 튀어나왔단 말이다!”
“그 말, 신교에 가서도 한번 똑같이 떠들어 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분명 미친놈으로 취급할 것이다.
내가 자신 있게 캥수 카드를 꺼내 들 수 있었던 이유.
조무건이 유일한 목격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매호평은 죽을 테니까.
“너 이 새끼! 도대체 정체가 뭐야!”
“내 정체? 그건 중요하지 않아.”
“아니, 중요해! 난 그걸 다 밝혀낼 생각이고!”
“밝혀낼 때 밝혀내더라도 일단 배부터 채워야 하지 않겠냐? 벌써 밥때가 지났는데.”
“미친! 지금 먹을 게 넘어가게 생겼냐?”
“특별히 오늘은 닭날개로 준비했어.”
“뭐?”
보인다.
지금 조무건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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