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천마지로의 네 번째 시험 과목은 암살.
표적이 정해지자 모든 생도들은 정보 수집에 바로 돌입했다.
가장 확실한 정보는 현장 주변에서 직접 얻는 것이겠지만, 다들 십만대산을 떠나기 전에 대략적인 아웃라인 정도는 잡아 놓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현자의 상태창은 아직까지도 별다른 메시지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은 내 스스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표적은 적사문의 매호평.
일단은 신교 내에 존재하는 정보 상인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나에게는 집안 배경도 인맥도 전혀 없으니까.
물론 정보 상점을 이용할 돈도 없긴 하다.
“적사문의 매호평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내가 찾은 곳은 만류재라는 곳이었다.
신교 내에 존재하는 정보 상점 중 가장 규모가 크며 보안도 철저한 곳. 물론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든다.
나를 맞이한 것은 만류재의 주인인 유평.
문전박대를 당하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주인장이 직접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돈은 충분히 가지고 왔는가? 딱 봐도 빈털터리 냄새가 나는데.”
“역시 정보 상인답게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사실 땡전 한 푼 없습니다.”
“아주 뻔뻔한 친구로군. 이렇게 나오면 곤란한데.”
“표정은 전혀 안 곤란하신 거 같습니다만?”
일단은 세게 나갔다.
물론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다.
현시점에서 나는 가장 핫한 인물 중 하나니까.
“소문대로 재미난 녀석이군.”
“제 소문이 여기까지 났나 봅니다?”
“다 알면서 뭘 새삼스럽게.”
“……사실 뭐 그렇긴 하죠.”
유평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를 만나고 싶었을 테니까.
“참고로 만류재는 신교 내에서도 가장 비싸게 정보를 파는 곳이야.”
“알고 있습니다. 또한 정보를 가장 후하게 구입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당신이 직접 나온 걸 보면 만류재 쪽에서도 제게 원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내 대답에 유평은 폭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합격.”
“화끈하시군요.”
“굳이 질질 끌 거 있나? 네놈이 내 맘에 쏙 드는 이야기를 해 준다면 바로 거래는 이루어질 거야.”
유평이 원하는 것은 정보의 교환이었다.
다름 아닌 나 이호영에 대한 정보.
그로선 일종의 투자인 셈이다.
나의 미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질 테니까.
‘내가 가진 제일 비싼 정보는…….’
역시 탑에 관한 것.
지금 사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며, 등선 직전의 수준에 이르러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이 정보의 가격은 돈으로 매길 수도 없는 수준. 너무 허황돼서 정보로써의 가치가 없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먼저 하나만 물어보지. 자네, 혹시 만독불침인가?”
“네. 맞습니다.”
“이런, 이렇게 허무하게 대답해 줄 거라곤 생각 안 했는데.”
“당신께서 직접 나를 맞이한 답례라고 해 두죠. 원하신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사실 그럴 생각이었다네.”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이야기인데 정말로 확인할 거라고는.
유평은 작은 약병 하나를 소매에서 꺼냈다.
진짜 준비성 하나는 대단했다.
“자네가 정말로 만독불침이라면 마셔 보게. 이건 설산독일세. 한 방울만 있어도 웬만한 일류고수들도 보내 버릴 수 있는 극독이지. 참고로 아주 비싼 거야.”
어이없는 상황이지만, 정보 상인이라면 응당 확인해 보아야 할 절차였다.
내 말만 믿고 [이호영은 만독불침이다]라는 정보를 등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니까.
이 사소한 정보를 위해 설산독을 거침없이 사용하는 것만 보아도 만류재가 일류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네, 주십시오.”
나는 설산독을 바로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만독불침이 아니라면 바로 내장 기관이 없어질 정도의 극독.
[만독불침 특성이 발휘됩니다.]
몸속에선 열불이 느껴졌지만, 곧바로 해독은 완료되었다.
유평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었군. 보답으로 자네에게 정보 하나를 주지. 내가 알고 있는 한, 자네는 최연소 만독불침일세.”
참 쓸모없는 정보였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 볼 수 있을 거 같군요. 이제 우리는 상호 신뢰를 쌓은 것 같으니.”
“크크크. 마음에 드는군. 나는 방금 이호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가치를 상향 조정하였다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로 말입니까?”
“자네가 요구했던 적사문과 동급으로.”
“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유평이 나를 대면한 것은 고작 몇 분. 하지만 화끈하게도 이자는 나에 대한 가치를 높여 주며 이야기를 쉽게 만들어 주었다.
이제 나는 나에 대한 간단한 정보만으로도 적사문의 매호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뭘 그리 놀라나?”
“조금 의외라서.”
“나도 의외야. 자네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도 이런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으니까. 대신 조건이 있네.”
“들어 보겠습니다.”
“천마지로의 모든 관문이 끝날 때까지, 신비주의를 유지해 주게.”
“겨우 그걸로 되겠습니까?”
“되고도 넘치지. 그 정도면 사실 나에게는 많이 남는 장사니까. 이미 자네에 대한 문의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면 믿겠는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이미 나는 천마지로를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
베일에 가려진 나에 대해 다들 궁금해할 거라 생각했다.
“좋습니다. 받아들이죠.”
“먼저 자네에게 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 있는데, 검술은 도대체 누구에게 배운 것인가?”
유평은 시작부터 정곡을 찔러 왔다.
뒤늦게 생각해 보니, 내가 많이 밑지는 장사.
이 정보. 천마신교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핵폭탄급이다.
하지만 이미 거래는 성사되었으니 두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무림에 평생 있을 것도 아니고.
“알려는 드리지만, 믿으실지 모르겠군요.”
“무슨 대답이든 믿어 보지. 설마 자네 스승이 무림맹주라는 얘기만 안 한다면 말이야.”
“다행히 무림맹주는 아닙니다.”
“그럼 누군가?”
“대답하기 전에 저도 조건 하나 달겠습니다.”
“들어 보지.”
“향후 반년 동안 이 정보는 팔지 말아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니 더 궁금해지는군. 좋네. 받아들이지.”
“감사합니다.”
“이제 말해 보게. 도대체 누군가? 자네의 스승.”
“무림맹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천마신교의 지존입니다.”
“뭐?”
* * *
매호평.
적사문 문주의 적장자로 나이는 서른둘.
무공 수위는 내공 일 갑자이며, 도(刀)를 즐겨 쓰고 여색을 밝히며…….
만류재는 내 생각보다 더 많은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다.
과연 신교 내 최고의 정보 상점이라 불릴 만했다.
매호평이 술과 여색을 밝힌다는 건, 내겐 플러스 요인.
9.87 퍼센트라는 암살 성공 확률은 이러한 점들이 계산된 결과겠지만, 이 약점을 더 파고든다면 성공 확률은 훨씬 더 올라갈 것이다.
이제 따로 현장에서 얻을 건 그가 기루에 출몰하는 대체적인 시각과 요즘 어울리는 무리들.
유평이 워낙 세세하게 정보를 제공해 주었기에, 정보 수집에 쓰려고 했던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세이브한 시간은 무공 수련에 투자할 생각이었다.
정확히는 암살 연습.
자다가도 똑같은 동작이 나올 수 있도록 반복해야만 했다.
암살 기회는 단 한 번이며, 상대의 능력치는 나를 훨씬 더 상회하니까.
“망할 녀석 같으니라고! 꼭 나를 끝까지 데려갈 셈이냐?”
조무건은 끊임없이 투덜댔다.
“잔말 말고 계속 마차나 몰아.”
“적당한 인부는 내가 구해 줄 수 있다는 데도! 돈도 충분히 사례할 것이라 했고!”
“다시 한번 말해 주지. 마차나 몰아. 난 너와 함께 끝까지 갈 거니까.”
“이런 망할 자식!”
조무건은 짐꾼 주제에 말이 너무 많았다.
내가 이 녀석을 데려가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암살 연습.
조무건은 나의 연습 도구가 되어 주어야만 했다.
매호평과 비교한다면 무공 수위가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며, 순순히 내 연습 상대가 되어 줄지도 미지수지만, 이놈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조무건이 나의 호송대가 되는 바람에 팔자에 없는 마차를 타 보는 것도 좋았고 말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더는 힘들어서 못 가겠어.”
“참나, 누가 들으면 네가 마차를 끄는 줄 알겠네. 좋다! 어차피 해도 지고 있으니 이쯤에서 야영을 해야겠어.”
“쳇! 꼴에 상관 행세하기는.”
이미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기에, 오늘 중으로 산을 넘는 것은 무리.
우리는 짐을 풀고 야영 준비를 했다.
정확히는 나 혼자서.
“어이 짐꾼, 넌 뭐 하냐?”
“짐꾸우우운?”
“그래. 짐꾼. 빨리 와서 좀 거들어라.”
“내 임무는 널 호송하는 것. 딱 거기까지다.”
듣자 하니 지금부터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의미.
하긴, 워낙 귀하게 자라신 몸이라 제 손으로 밥이나 해 봤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녀석에게 만고의 진리를 가르쳐 줄 때다.
일하지 않는 놈은 먹을 자격도 없다는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나는 준비해 온 가재도구와 재료들을 꺼내 손질을 시작했다.
지금은 내가 무척 기대했던 시간이었다.
이곳 무림은 탑의 10층이면서도 탑이 아니기도 한 다른 차원.
탑에서는 봉쇄되었던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들이 자연스럽게 폭발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으뜸은 역시 식욕이었다.
그동안 가장 그리웠던 음식은 양념치킨.
조금 유난스러울 수도 있지만, 나는 양념치킨과 가장 유사한 맛을 낼 수 있는 재료들을 애써서 공수해 왔다.
거기엔 만류재의 도움이 컸다.
나에 대한 자잘한 정보들을 판 대가로 유평은 정성껏 재료 준비를 도와준 것.
‘그런데 과연 이게 될까?’
자취 경력이 꽤 되었기에 요리에는 어느 정도 자신 있었지만, 재료가 지구의 것과는 다소 이질적이었기에 확신은 없었다.
부글부글-
연향이라는 무림 곡식에서 추출해 낸 기름이 냄비 안에서 끓기 시작했다.
일단 비주얼 자체는 지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믿고 맡기는 수밖에.
나는 튀김옷을 적당히 입힌 치킨 조각들을 연향 기름에 투하했다.
치이이익-
역시 믿음은 배반하지 않았다.
사운드도 현재까진 매우 성공적.
정겨운 소리가 귀를 간질이며 혀끝에서 조건 반사를 이끌어 냈다.
“도대체 뭐 하는 것이냐?”
조무건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녀석도 호기심이 동한 모양인데, 굳이 반응할 이유는 없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노릇노릇 익어 가는 치킨 조각들의 향연.
“흐음.”
기름에서 건져 낸 녀석들은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풍겨 왔다.
하지만 아직은 일렀다.
중요한 단계가 하나 남았으니까.
나는 양념치킨의 신봉자. 무조건 양념이 후라이드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주의였다.
“도대체 이 괴상한 음식은 무엇이냔 말이다!”
이미 밥때가 지났기에 조무건 역시 식욕이 폭발한 상태.
나는 녀석의 말을 가볍게 무시해 주고는 미리 준비된 붉은 양념을 튀김 옷 위에 적당히 발라 접시에 놓았다.
마무리로 땅콩가루와 통깨까지 뿌려 주니 그럴듯한 양념치킨이 완성되었다.
‘이런 건 사진으로 남겨 놔야 하는데.’
치킨 성애자이면서도 내가 직접 해 보는 것은 처음.
기대되는 마음으로 치킨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물론 첫 스타트는 닭다리로 시작해야 제맛이다.
바사삭!
입 안에서 터져 나오는 그리운 사운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제 내 말은 무시하기로 한 것이냐? 그게 도대체 뭐냐고 몇 번을 물었다!”
뭐긴 뭐겠냐.
네게 치킨은 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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