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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60화 (60/292)

60화

캥수는 약발을 받는 차원이 달랐다.

이 녀석은 설화초를 거의 만년설삼 급으로 흡수해 버린 것이다.

캐애애앵!

괴성의 포스도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웬만한 하급 몬스터들은 캥수의 괴성만 듣고도 전의를 상실해 버릴지도 모른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마력의 양만 놓고 본다면 이젠 캥수가 나를 훌쩍 뛰어넘어 버렸다.

녀석에게 설화초를 양보한 게 효율성만 놓고 보면 아주 훌륭한 결정이었던 셈이다.

“캥수야?”

캥!

“앞으로도 말 잘 들어야 한다?”

캐앵!

나는 굳이 확인을 해 봤다.

이놈이 힘 좀 세졌다고 말 안 들으면 골치 아파질 테니까.

좀 황당할 발상이긴 하지만 녀석에게 내공심법을 가르쳐야 할 필요성도 더욱 커졌다.

몸 안에 존재하는 이 기운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데에는 심법만 한 게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녀석이 딱 봐도 공부할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

캥! 캥!

캥수 녀석은 갑자기 섀도 복싱을 하기 시작했다.

주체할 수 없는 기운을 본인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지금 앞발에 실리는 마력의 밀도가 장난이 아니다.

이제는 세용이를 상대로도 스파링에서 우위를 노려볼 전력이 된 것 같다.

기술이 딸려서 그렇지, 파괴력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캥수가 압도할 것이다.

“캥수야. 나한테 뭐 좀 배워 보지 않을래?”

캐앵?

캥수가 눈을 치켜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놈 눈빛이 반항적으로 보이는 것은 내 기분 탓인지 진짜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 * *

다음 날, 연무장에 나타난 조무건은 거의 나라를 잃은 표정이었다.

그 잘나가는 집안에서의 입지가 말이 아닐 것이다.

독에 중독되어 사경을 헤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 한 번의 대형 사고를 쳐 버렸으니까.

내기에 걸었던 판돈도 작지 않으니 꽤나 애를 먹을 것이다.

연무장에 모인 생도들은 다들 어젯밤 있었던 일들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빅뉴스이긴 했다.

십만대산에 영물이 출현한 것은 몇백 년 만의 일이었기에.

“영물이 그런 식으로 나타날 줄을 누가 알았겠어!”

“맞아! 그 영물이 나타나기 전엔 아무도 기척을 느끼지 못했잖아!”

“빠르기는 또 얼마나 빠른데! 도저히 쫓아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니깐!”

조무건은 그저 옆에서 한숨만 푹푹 내쉴 뿐이었다.

“그런데 무건이의 설화초는 정말로 찾을 도리가 없는 건가?”

내기도 내기인데 설화초도 관심사였다.

지금은 영약이 극히 귀해진 시대.

돈이 있어도 영약을 구할 수 없는 판국에 쌩으로 설화초를 날려 버렸으니 다들 자기 소유인 양 아까운 것이다.

아무래도 이젠 내가 나서야 할 때인 것 같다.

호구는 끝까지 벗겨 먹어야 제 맛이니까.

“찾을 수 있는 방법? 물론 있지!”

“뭐?”

다들 내 말에 고개를 돌렸다.

천마지로의 주류에 해당하는 이들은 나를 바짝 경계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이곳에서 듣보잡이 아니었다.

천마지로의 두 번째 관문을 압도적인 모습으로 통과하며 나는 모두에게 주목을 받고 있었다.

내가 아웃사이더를 자처하고 있을 뿐, 마음먹기에 따라서 나는 언제든지 주류로 편입할 수 있었다.

“듣자 하니 어젯밤 영물에게 설화초를 빼앗긴 모양인데 찾을 수 있는 방법, 당연히 있어.”

“그게 뭔데!”

다들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장면은 마치 데자뷔 같았다.

탑에서도 그랬다.

로우 레벨 탓에 은근히 무시를 받아 오다가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 그 날 일이 떠올랐다.

“방법은 간단해.”

“그러니깐 그게 뭐냐고!”

“그 영물을 잡아 오면 되잖아!”

내 말에 다들 뻥진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는데 역시나 하는 반응.

“그게 말이 돼?”

“이미 유인은 성공했잖아. 한 번 했던 걸 두 번이라고 못할까?”

나는 조무건을 보며 씨익 웃었다.

녀석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썩은 표정으로 이 상황을 방관하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영물이 괜히 영물이 아니잖아? 생각보다 더 빠르다는 걸 확인했으니 대비를 확실하게 해야지. 설화초도 두어 군데 심어 놓고 말이야.”

내 말에 조무건의 옆에 있던 주평이 물었다.

“그런데 그 영물이 설화초를 가지고 다닐 리도 없잖아? 이미 먹었을 텐데!”

“먹었으면 더 좋지.”

“뭐라고? 왜!”

“영물이 영약을 섭취할 때엔 사람이랑은 흡수율 자체가 달라. 아마 설화초를 만년설삼급으로 흡수했을 걸? 그리고 몸속에 쌓인 마력은 내단에 고스란히 남아 있겠지. 그리고 또…….”

“아아!”

내가 썰을 풀기 시작하자 생도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사실 나의 생생한 경험담이 녹아 있으니 이야기는 그럴듯했고, 생도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젠 조무건의 결정만 남은 상황이었다.

남은 설화초를 투자해서 미끼로 쓰느냐, 아니면 아까운 설화초 한 뿌리를 그냥 날려 버리느냐.

물론 답은 정해져 있었다.

조무건으로서는 못 먹어도 고일 것이다.

* * *

천마지로의 세 번째 관문 일정이 공개되었다.

생각보다 빠른 진행이었다.

조금은 더 수련할 시간이 주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부터 마신서고의 3층을 전면 개방하도록 하겠다. 기한은 단 나흘. 익힐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익히도록 하여라! 단 필사는 엄히 금하며 적발될 시에는 그 자리에서 즉결 처분하도록 하겠다.”

교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생도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비록 나흘이긴 하지만 마신서고에 입장할 생각에 다들 마음이 들뜬 것이다.

마신서고는 각 층별로 테마가 정해져 있다.

3층의 테마는 보법.

그렇다면 천마지로의 세 번째 관문도 어떤 내용일지는 대략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한 층 전체를 전면 개방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파격이었다.

이 3층에는 보법에 관한 천마신교의 모든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까 말이다.

노예들도 익힐 수 있는 최하급 보법부터 신교의 교주도 익히는 최상위의 보법까지 보법에 관한 모든 서적들이 망라되어 있는 곳. 그런 곳을 우리 생도들이 나흘 동안은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호영 씨! 10층에서 마교를 선택한 일. 정말 잘한 것이었네요.”

채이설도 잔뜩 흥분한 모양이었다.

“아직까진 그래 보이는군요.”

설령 세 번째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소득이 작진 않을 것이다.

마신서고에서 익힌 무공은 머릿속에 계속 남을 테고, 그것은 우리가 탑에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테니까.

우리는 교관의 안내에 따라 마신서고의 3층으로 이동했다.

천마신교의 마신서고는 황실의 서고를 능가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직접 와 보니 전혀 과장됨이 아니었다.

이곳 3층은 보법에 대한 무공서만 있을 뿐인데도,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물론 규모가 큰 만큼 쓰레기 수준의 무공서도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귀한 것은 어딜 가나 극히 일부분이니까.

이제부턴 선택이 아주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호영 씨가 추천 좀 해 주시겠어요?”

채이설도 막막하긴 마찬가지.

그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내게 조언을 구했다.

“글쎄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이곳 무림은 처음입니다만?”

“에이, 그래도 호영 씨의 선택은 항상 옳았잖아요.”

하긴, 무림뿐만 아니라 탑도 내겐 처음이긴 했다.

언제나 나의 선택을 옳게 만들어 준 것은 현자의 상태창이 내게 보내 주던 공략집.

지금 이 순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략집의 분량이 너무 많아 주요 정보들만 인출합니다.]

TMI는 나 역시 사절하는 바.

역시 마음에 든다.

[마신서고의 3층에 있는 모든 서적들에 별점을 부여하겠습니다.]

[별점 외에 다른 정보는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좀 아쉽긴 했다.

무공서들에 대한 한줄평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별점 부여가 완료되었습니다.]

벌써?

그럼 이제부터는 바쁘게 움직이며, 책 선정에 들어가야겠다.

일단은 채이설에게 적절한 도서부터 추천해 줘야겠지.

“이설 씨, 같이 걸으면서 볼까요?”

“네!”

말이 끝나자마자 채이설이 내게 밀착했다.

현실에서는 해 본 적도 없는 도서관 데이트를 채이설과 이런 식으로 하게 되었다.

나는 채이설과 서고를 거닐며, 서적들의 별점들을 스캔했다.

역시 가장 높은 빈도로 존재하는 것은 별 반 개짜리.

간혹 가다가 별 두 개 혹은 세 개까지 존재했는데, 네 개 이상은 한참을 거닐어도 찾기가 힘들었다.

분명 별 세 개가 만점은 아닐 터인데.

“호영 씨. 그런데 책 내용은 안 훑어보시나요?”

채이설이 처음으로 의문을 표했다.

그녀는 현실 세계에서 독서가 취미라고 하였는데, 나의 책 고르는 방식이 이상해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뭐, 제목만 봐도 느낌은 오는 거니까요.”

“그렇군요! 역시!”

“이게 좋겠네요.”

내 눈을 사로잡는 도서가 하나 있었다.

월하지보.

물론 제목이 아닌 별점 때문이었다.

무려 별 세 개 반짜리.

서고를 거닐면서 본 최고 점수였다.

“월하지보요?”

“네. 제목이 이설 씨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달빛 아래에서의 산책이라. 뭔가 무공서 느낌은 아닌 거 같기도 한데, 호영 씨가 추천해 준 것이니 역시 이걸 선택하는 것이 맞겠죠?”

“네. 읽어 보시고 영 아니다 싶으면 다른 걸로 갈아타세요. 시간은 나흘이나 있으니까.”

“필사가 안 된다는 점이 너무 아쉽네요. 사실 저 학창 시절에는 필기의 여왕이라고 불리었는데. 히히. 그냥 달달 외우는 수밖에 없겠어요.”

채이설의 학구열은 소설 빙의 미션 때부터 알아봤는데 무림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책을 달달 외워 버리겠다니, 이게 좋은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본인 스타일이라면 굳이 말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수련 열심히 하세요. 그럼 저도 이제는 선택을 하러…….”

“저기, 호영 씨!”

“네.”

“매번 고마워요!”

채이설이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아포칼립스 상황만 아니라면 아마 이런 미소에 설렜을 것이다.

어쩌면 혼자만의 착각에 빠졌을지도 모르고.

어쨌든, 이젠 내가 수련할 서적을 찾으러 나서야겠다.

“야!”

그때 나를 부른 것은 손서연이었다.

그녀가 나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서고를 배회하고 있는 건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에게 볼일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짐작했는데, 역시.

“왜?”

“나도 좀 도와줘라.”

“뭘?”

“도서 추천. 책 고르는 것이 너무 어렵다.”

“야, 나라고 뭐 다를 게 있겠냐?”

“넌 대살성이니까 옳은 선택을 할 확률이 높겠지. 지금까지도 항상 그랬잖아.”

손서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날 대살성이라 확신을 하는 것 같다.

이러다가 아니라는 것이 들통 나면 정말 난리가 날 텐데.

그나저나 문득 궁금해졌다.

탑의 다른 구역에는 진짜 대살성이 존재할 터. 그 녀석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인지.

탑을 계속 오르다 보면 언젠가는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와.”

내 책을 찾으면서 적당한 걸로 하나 손서연에게 던져 줘야겠다.

- 6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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