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내가 무림에서 처음 캥수를 소환한 것은 무려 보름이 지나고 나서였다.
사실 그동안 캥수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무림에서 내 한 몸 적응하는 것도 빡셌으니까.
캥!
“뭐? 십만대산을 좀 더 산책하고 싶다고?”
캥!
벌건 대낮에 캥수가 십만대산을 뛰어다니는 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었기에 나는 항상 밤에만 녀석을 소환해 냈다.
내가 캥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이렇게 달밤에 가끔씩 산책을 시켜 주는 일 정도였다.
캐…… 캥!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녀석은 탑으로 돌아갈 시간만 되면 항상 시간을 질질 끌곤 한다.
하긴 그동안 혼자 탑에서 지냈을 테니 답답했을 것이다.
“알았어. 자유 시간 딱 이각(30분) 준다. 대신 다른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조심히 해.”
캥!
사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더라도 캥수가 크게 위험에 빠질 일은 없을 것이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나는 캥수에게 언제든 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율권을 부여했으니까.
위험할 것 같으면 즉시 튈 수 있으니 여기선 캥수 팔자가 상팔자였다.
그리고 난 캥수에게 준 30분의 자유 시간이 다음 날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 * *
연무장.
아침 점호가 시작되기 전, 생도들 사이에선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영물?”
“그래! 분명 영물이었어! 산짐승치고는 생김새가 아주 괴이했으니까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생겼기에 그러는데?”
“크기는 사람보다 머리 하나 이상은 더 컸고, 마치 토끼처럼 두 발로 껑충껑충 뛰어다녔어. 그런데 어찌나 빠른지 내 보법으로는 도저히 쫓을 수가 없었다니까!”
말하는 걸 들어 보면 의심의 여지없이 캥수였다.
생각해 보면 무림의 세계관에서 캥수는 충분히 영물로 불릴 만한 녀석이었다.
무림에는 몬스터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캥수는 하는 짓이 딱 사람과 닮아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내가 자유 시간으로 준 30분 동안 캥수가 정말 이곳저곳을 많이 뛰어다니기는 한 모양이다.
캥수를 봤다는 생도들만 세 명.
하지만 이런 소문을 단호하게 일축한 것은 조무건이었다.
“십만대산에 영물이 있을 리가 없지!”
조무건이 이렇게 확신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천마신교가 십만대산에 자리를 잡은 이후에는 영물들의 씨가 말라 버렸으니까.
영물이 가진 내단은 무림인들의 내공을 단번에 대폭 증진시켜 주는 최고의 영약이었기에, 영물들은 감히 천마신교 근처에 얼씬도 할 생각을 못 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어젯밤 그 영물을 봤다는 사람만 나 말고도 두 명이나 더 있다니까!”
“잘못 본 거야. 아니면 단체로 눈이 삐었다든지.”
“하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캥수를 봤다고 주장하는 생도는 가슴을 치며 억울해했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내기를 해 보든가.”
“내기?”
결국 조무건은 몇몇 생도들을 상대로 내기를 제안했다.
“그래. 내기. 자네들 말대로 십만대산 어디엔가 영물이 살고 있다면 다시 나타나게 만들면 되지 않는가? 나는 절대 다시 나타나지 않는 쪽에 걸 생각이고.”
“영물을 만난다는 건 대단한 기연인데, 어찌 다시 나타나게 할 수 있을 거라 장담을 하지?”
“내가 설화초를 구할 수 있으니까!”
조무건이 거만한 표정으로 생도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무건이, 자네에게 설화초가 있다고?”
“그래. 얼마 전 우리 혈종에선 설화초 몇 뿌리를 입수했지. 분명 설화초라면 자네들이 보았다고 주장하는 영물을 유인할 수 있을 거야.”
설화초라 하면, 그 자체로도 값나가는 영약.
설화초의 은은하게 풍기는 향은 수십 리를 간다고 전해지는데, 영물들은 보통 이러한 영약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곤 한다.
이런 영약이야말로 영물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니까.
조무건이 제안한 내기는 바로 성사되었다.
천마지로의 고됨을 달래 줄 심심풀이 땅콩 같은 것이었다.
“기한은 사흘로 하지. 앞으로 매일 밤 한 시진(2시간) 동안 자네들이 그 영물을 보았다는 곳 근처에 설화초를 심어 둘 생각이네. 만약 사흘 동안 감감무소식이면 내가 이기는 것이고, 혹시라도 그 영물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면 자네들이 이기는 것으로 하지.”
“좋아! 받아들이지!”
이들의 내기에 내 귀가 팔랑거렸다.
어쩌면 조무건을 털어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 * *
“그러니까 어젯밤 여기쯤이었다는 거지?”
캥!
캥수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오늘 밤 녀석들이 이곳에 나타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차피 여긴 수련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니 상관없었다.
나는 여기서 태무정에게 전수받은 화명신공의 구결이나 외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럼 캥수 넌 잠시 탑에 가 있어.”
내 말에 캥수는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캐앵 캐앵 캐앵!
이놈이 이제 탑이라면 질색을 한다.
어두운 밤이지만 촉촉하게 젖은 캥수의 눈망울을 볼 수 있었다.
펫 주제에 이젠 메소드 연기까지 한다.
“네가 여기 있으면 곤란해. 아직 너는 기척을 감추는 일에는 미숙하니까.”
내 말이 끝나자마자 캥수는 나무 뒤에 찰싹 달라붙어 엄폐를 하는데,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언제 시간 내서 캥수에게 내공심법이라도 가르치며 몸의 기운을 다스리는 훈련이라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캥수야, 시키는 대로 해! 만약 오늘 밤 놈들이 나타나면 다시 소환해 줄 테니까.”
캐애앵!
“자꾸 이렇게 떼쓰면 무림에 있는 동안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캐앵!
내가 협박을 하자 캥수는 잔뜩 삐쳤는지 뒤도 안 돌아보고 탑으로 돌아가 버렸다.
캥수가 돌아가고 나니 주변은 더없이 적막했다.
나는 자리를 잡고 가부좌를 틀었다.
화명신공의 구결을 외며 대기의 기운을 들이마셨다.
정순한 기운이 코를 타고 몸속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수련을 시작한 지 이각(3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
내 절대 감각을 곤두세우는 향이 있었다.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은 없었지만, 오늘 아침 생도들이 묘사했던 그 느낌이었다.
‘설화초!’
조무건의 일행이 이곳으로 오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운이 좋았다.
이 드넓은 십만대산에서 바로 만나게 되다니.
나는 숨을 죽이며 녀석들이 이곳에 가까이 접근하기만을 기다렸다.
놈들이 떠드는 목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이쯤이었어. 어제 그 영물이 나타난 곳이.”
“그럼 이제 설화초가 들어 있는 그 목함 좀 열어 봐. 우리도 구경 좀 하게.”
타악!
잠시 후 적막을 깨는 목함 여는 소리와 함께 설화초의 냄새가 코끝을 바로 자극했다.
설화초가 세상 밖으로 나오자 그 진한 향이 주변에 진동했다.
향이 수십 리를 간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진짜 향이 장난이 아니네! 어제 그 영물이 주변에 있기만 한다면 반드시 냄새를 맡을 수 있겠어!”
“자, 그럼 이제 내기는 시작된 것이야. 하루 한 시진 씩 사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내가 이기는 것. 알지?”
조무건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잠시 후 비통해질 녀석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좋아. 그럼 이제 조용히 운기행공이나 하면서 영물을 기다려 보자고!”
내기를 건 일행들은 짐을 풀어놓고는 수련을 시작했다.
설화초의 향이 점점 더 강하게 퍼져 간다.
나는 이것을 캥수에게 먹일 생각이었다.
내가 먹지 않을 이유는 단 하나.
이미 동급의 영약인 백년설삼을 태무정으로부터 받아 섭취했기 때문이었다.
연달아 비슷한 급의 영약을 먹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이다.
내가 먹는다면 화초의 정기를 오 할도 흡수하지 못할 공산이 컸으니, 차라리 캥수를 키워 볼 생각이었다.
[펫을 소환합니다.]
스르르르.
캥수가 내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전만 해도 삐친 채로 탑으로 돌아갔는데, 캥수의 표정은 이미 신나 보였다.
“쉿!”
여기서 캥수가 소리라도 냈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 있었기에 나는 캥수의 입을 틀어막았다.
눈치 빠른 녀석은 모양으로만 외쳤다.
캥!
다행히 조무건 일행들은 운기행공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에 소환된 캥수의 기운을 바로 감지해 내지는 못했다.
나는 캥수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조무건 일행이 지금 수련 중인 것은 아주 좋은 타이밍이었다.
한번 시작한 운기행공은 중간에 바로 끊기 어려운 일이니까.
캥수가 잽싸게 달려가 설화초를 낚아챈다 해도 즉각적으로 반응하긴 어려울 것이다.
캥수는 살금살금 거리를 좁혀 나갔다. 그리고는.
“작전 개시!”
내 신호가 떨어지자 캥수는 세상 신난 표정으로 산비탈을 콩콩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진짜 빠르다.
천마지로의 생도 수준으로는 절대 캥수를 잡지 못할 것이다.
콩! 콩!
캥수는 순식간에 설화초를 심어 놓은 곳까지 접근했다. 그리고는.
쑤욱!
설화초를 단번에 캐내었다.
“여…… 영물!”
“어제 그거!”
운기행공을 하다가 당황한 생도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캥수를 발견했을 땐 이미 때는 늦었다.
캥수는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으니까.
“봐 봐! 내 말이 맞잖아! 정말로 영물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 조무건 입장에선 자신의 말이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안 돼! 설화초!!”
조무건이 소리를 지르며 캥수를 쫓기 시작했다.
그 고고하기만 목소리에서는 처음으로 절박함이 묻어 나왔다.
설화초가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다.
가문에서 어렵게 구입한 것이라고 하니 이걸 잃어버린다면 상황이 참 재밌어질 것이다.
“거기 서라고!!”
캥수에게 소리를 지르는 조무건의 목소리가 십만대산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캥수를 잡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
아무리 조무건의 내공이 심후하다고는 하나, 밤길 그것도 산길을 달려 캥수를 쫓을 수는 없었다.
그냥 한밤중의 개고생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다.
* * *
“캥수야, 세상에 나 같은 주인은 없을 거야.”
나는 캥수의 눈앞에 설화초를 대고 흔들었다.
캥?
캥수가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내가 이걸 자기에게 먹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 모양이다.
“아! 해 봐.”
캥?
역시 그랬다.
영약을 먹는 건 펫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테니까.
“사양 말고 먹어.”
물론 흡수는 내가 도울 생각이었다.
캥수 녀석은 정말로 사양하지 않고 입을 크게 벌렸다.
분명 맛있어 보이는 향도 아닌데 캥수도 몸에 좋은 걸 본능적으로 아는 모양이다.
뜸 들이면 괜히 아까울 것 같아 바로 캥수의 입 속에 설화초를 욱여넣었다.
우걱우걱!
캥수는 설화초를 잘근잘근 씹었다.
나는 캥수의 등 뒤로 가 녀석의 몸에 손을 얹었다.
거대한 마력의 소용돌이가 느껴진다.
나는 캥수의 몸속에 화명신공을 불어 넣었다.
비록 내 화명신공은 아직 걸음마 단계도 되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 도움은 될 것이다.
그런데 ……응?
뭔가 이상하다.
설화초가 아무리 영약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캥수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 강렬했다.
거의 만년설삼 급이라고 해야 하나?
캐애애앵!
캥수도 그걸 느끼고 있는지 괴로운 신음성을 뱉어 냈다.
내공 흡수율이 장난이 아니다.
어쩌면 이런 영약들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60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