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만독불침의 특성으로 구엽독은 이미 내 몸속에서 완전히 소멸하였다.
하지만 일각, 그러니까 15분 정도는 잠자코 앉아 운기조식을 할 생각이었다.
지금 벌써 나댔다가는 내가 만독불침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을 들킬지도 모르니까.
아직 내 능력은 베일에 싸여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나는 화명신공도 숙달할 겸, 조용히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확실히 무명심법과는 차원이 다른 상승 무공이었다.
단전에 내공을 축적하는 메커니즘 자체가 훨씬 난해했지만, 일정 이상의 성취에 오르는 순간 축기의 속도는 훨씬 빨라지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화명신공의 구결을 되뇌며, 들숨과 날숨을 반복했다.
아직 이 무공의 심오한 진리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급할 것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완료했습니다!”
누군가가 해독의 완료를 외쳤다.
만독불침인 나를 제외하면 저놈이 실질적인 1등이다.
우리 생도들 중에서 가장 심후한 내공을 보유하고 있는 인물이 밝혀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조무건!”
목소리의 주인공 그 재수 없는 조무건이었다.
10층이 시작되면서 주입된 기억을 통해 녀석이 범상치 않는 놈인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강한 놈이었다.
“조무건. 역시 혈종의 최고 기대주답게 빠르게 해독을 완료하였구나.”
“아닙니다. 장로님. 아쉽게도 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해독을 완료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온도 차이가 느껴졌다.
나는 의심을 받았고, 조무건은 칭찬을 받았다.
물론 조무건의 목소리에는 불만이 가득 묻어 나왔지만 말이다.
“그런데 장로님, 저도 청이 하나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저도 기준량 두 배의 독으로 추가 시험을 치르고 싶습니다. 물론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겠습니다.”
역시 조무건은 자존심이 잔뜩 상해 있었다.
하긴 이 정도로 빠른 페이스로 해독을 완료하였다면, 내공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할 터.
심지어 놈의 표현대로라면 나는 개뼉다구이니, 그런 나에게 진 조무건의 처지는 말이 아닐 것이다.
이번에도 태무정은 그 요청을 만류했지만, 조무건이 워낙 완고했다.
이미 나에게 허가한 사항을 계속해서 막을 명분도 없었고 말이다.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 괜찮겠느냐?”
“네. 장로님. 제 명예를 찾기 위한 도전입니다.”
먼저 시작한 나보다 더 빠르게 해독을 완료하여 자존심을 세우려는 모양인데, 맘대로 하게 놔둘 순 없었다.
이제는 내게 개뼉다구라는 망언을 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 줄 때였다.
“완료하였습니다.”
결국 나는 내 계획보다 조금 빠르게 재도전의 완료를 선언했다.
“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게 빠르긴 했다.
이 정도로 빠르게 기준량 두 배의 구엽독을 몸 밖으로 몰아내려면, 최소 일급 무사 수준의 내공은 되어야 할 테니까.
생도 수준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사부가 항상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든 고금제일의 재능이 아니라면 말이다.
“같은 종류의 독이라서 좀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태무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분명 내가 성공할 거라 예상했을 테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을 것이다.
조무건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표정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럼 이제 놈에게 빅 엿을 날려야 할 때.
“장로님. 허락해 주신다면, 마지막 도전을 해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 도전이라니, 이번엔 또 무엇이냐!”
“좀 더 난도를 올려 기준량 세 배의 독으로 해 보겠습니다.”
“뭐?”
내 말이 터무니없게 느껴졌는지 태무정은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아직 나와 조무건을 제외한 생도들은 도전을 끝내지도 못한 시점.
지금 내 요청은 사상 초유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물론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겠습니다.”
나는 씨익 웃으며 조무건을 바라보았다.
쫄릴 것이다.
그런데 쫄려도 뒈지진 못할 것이다.
명예를 찾느니 뭐니 하면서 이미 개소리를 늘어놓았으니까.
“제가 운기조식을 하면서 아까 얼핏 듣기로는 조무건 생도도…….”
내 말에 조무건의 얼굴은 실시간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 *
조무건의 온몸에선 땀이 육수처럼 철철 흘렀다.
날씨가 더운 탓도 있었지만, 그것은 아주 작은 이유일 뿐이었다.
그는 지금 엄청난 양의 독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기에 왜 쓰잘데기도 없는 만용을 부려서.
“마…… 말려야 하는 거 아닐까?”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니야?”
이미 모든 생도들의 합불 여부는 가려져 있었다.
천마지로의 두 번째 단계를 통과한 모든 이들의 시선은 조무건에게로 쏠려 있었다.
그는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하며 독을 몰아내는 중이었다.
정확하게는 독을 몰아내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미 너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지금이라도 힘들면 운기조식을 멈추고 의무진의 도움을 받도록 하여라!”
하지만 태무정의 말에도 조무건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혈색이 점점 어두워져 가는 게 독과의 사투에서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본인만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얼굴만 보면 지금 당장 피를 토해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었다.
왈칵!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조무건이 바로 피를 뱉어 냈다.
걸쭉한 피를 토해 낸 뒤에도 입가에서는 피가 계속 줄줄 흘러내렸다.
검정에 가까운 선혈에서는 지독한 악취가 풍겨 왔다. 그리고.
쿠우웅!
결국 조무건은 혼절을 하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재수 없는 놈이긴 해도 독기나 정신력 하나는 인정해 줘야겠다.
하긴 그 정도 깜냥은 되니까, 혈종의 최고 기대주라는 평가도 받았겠지만.
“어서 의무실로!”
명줄도 질긴 모양이었다.
웬만해서는 이미 황천길 구경을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으니까.
“이호영, 너는 잠시 나 좀 보자꾸나.”
태무정의 표정이 더없이 심각했다.
* * *
천잠의.
결국 태무정이 내게 약속했던 보상을 건네받았다.
손으로 들어 보니 무게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몸을 보호하는 능력은 여타 보물급 아이템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으니 놀랍기만 하였다.
이번 10층 무림행에선 이미 많은 것을 얻었다.
꾸준히 나의 마력을 쌓을 수 있는 화명신공을 배웠으며, 앞으로 내 몸을 든든하게 보호해 줄 천잠의까지.
문제는 지금 태무정의 표정이었다.
흐뭇해하거나 뿌듯해하는 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한 장짜리 보고서.
태무정은 보고서와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심각한 기운을 집무실에 내뿜었다.
무슨 내용일지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 대한 뒷조사 정도는 할지도 모를 거라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도 그 동안 알려진 행적이 거의 없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너무 완벽한 공백이라 인위적인 느낌마저 드는데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인위적.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실제로 내게 주입된 무림 속의 기억들은 모두 만들어진 가짜일 뿐이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장로님.”
“그렇게 시치미를 뗄 건 없다네. 설마 내가 자네를 여기서 죽이기라도 하겠는가?”
태무정은 내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굳이 반응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애당초 자네는 의문투성이였지. 천마지로의 첫 관문에서 펼쳤던 검술도 뭔가 범상치 않았고, 내 침소에 방문했을 때 보여 준 능력들도 마찬가지였어. 그럼에도 여기까지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네. 자네가 만약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이라면 이런 일도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니까.”
“…….”
“그런데 이번 일은 뭔가 선을 많이 넘은 느낌이야. 그 보잘 것 없는 내공으로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을 해 버렸거든. 그럼 이쯤에서 자네의 생각을 한번 들어 보고 싶군.”
조무건을 엿 먹일 생각에 확실히 내가 무리한 감도 있었다.
이젠 어쩔 수 없이 사부를 팔아야 할 때가 왔다.
다른 이유로는 태무정을 납득시킬 수 없을 테니까.
“솔직히 밝히겠습니다.”
“그래, 말해 보게.”
“저는 지존의 제자입니다.”
“그래, 자네는 지존의 제자였군. 뭐? 누구의 제자라고?”
태무정은 마시고 있던 차를 거의 뿜어 버릴 뻔했다.
표정도 아주 재밌었다.
이런 초절정의 고수에게도 천마라는 존재는 확실히 격이 다르긴 한가 보다.
이번 10층을 통해 사부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천마신교의 교주님이신 지존의 제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미친 녀석! 네가 감히 그분을 거론하다니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제가 어찌 감히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팔겠습니까?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존께서 폐관을 마치시게 되면 그것을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나는 사부에게 무공을 배운 후 회귀해 버렸기에, 그는 분명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부의 제자라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
무혼추영검.
사부가 그 누구에게도 전수한 적 없는 최종절기는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비록 내가 펼칠 수 있는 수준은 아주 비루하지만.
“간사한 녀석이구나!”
“저는 진실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아니, 너는 지존께서 폐관에 들어가신 점을 이용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어!”
태무정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아니, 이 정도면 내 예상보다 훨씬 신사적인 반응이었다.
그의 입장에서 내 말은 황당무계하면서도 최악질의 거짓말일 테니까.
“장로님께서 저를 믿지 못하시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제가 탄로 날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습니다. 비록 지존께서 폐관에 들어가셨다고는 하나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니까요.”
“……흐음!”
내 말에 태무정도 조금은 흥분을 가라앉히는 모습이었다.
사실 거짓말이라기엔 너무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천마의 후예라니.
대외적으로 사부는 아직 정식 후계자를 공표한 적이 없었다.
실제로 회귀 전의 나를 제외하고는 후계자 지정을 한 적도 없고.
“지금부터 너는 내 질문에 완벽한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네. 장로님.”
태무정이 내게 물어본 것은 사부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사부의 최측근이 아니라면 절대 답할 수 없는 것들.
물론, 나의 답변은 모범 답안 그 자체였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나만큼 오래 사부와 단 둘이 지낸 인물은 전 무림을 뒤져 봐도 없을 테니까.
“……네. 지존께선 저의 검술을 보시고선 쓰레기라고 자주 표현하셨습니다. 본인을 고금제일의 재능이라 칭하면서 말이죠. 장로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그것이 지존 특유의 화법이죠. 그리고 또…….”
사실 태무정보다는 내가 사부에 대해 훨씬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보아하니 사부는 신교 내에서 이미지 관리를 꽤나 한 모양인데 나는 그의 민낯을 제대로 알고 있다.
“……흐음! 자네의 말이 사실이긴 하지.”
그럼에도 태무정은 내가 천마의 후예라는 것을 끝까지 인정하진 않았다.
앞으로 나를 유심히 주시하겠다는 말만 반복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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