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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57화 (57/292)

57화

“오늘은 너희들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태무정의 말에 모든 생도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말의 의미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신교의 사람으로 자란 이들 중, 무사가 되고 싶지 않은 이는 없다.

오늘은 생도들이 무사의 길을 걸을지, 아니면 노예의 삶을 살게 될지가 결정되는 날.

“이번 관문을 통과하는 생도들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신교의 상승 무공을 배우게 될 것이며…….”

비록 내가 찐무림인은 아니지만, 가슴에서는 웅심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번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여 노예가 되더라도 어차피 탑으로 돌아가면 그만인 일.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이 상황에 몰입하게 되어 버렸다.

“……하는 것이 모든 신교도들의 숙명! 너희들도 알다시피…….”

태무정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모든 생도들은 숨을 죽였다.

다들 기다리는 내용이 있었다.

다름 아닌 이번 두 번째 관문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의 여부.

천마지로의 진행 방식은 매번 천차만별이었기에 다들 그 내용이 어서 빨리 공개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상!”

하지만 태무정이 연단에서 내려오는 순간까지 모두가 기다리는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다들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천마지로 진행을 보조하던 교관은 또다시 휴식 시간을 알려 왔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연무장에는 짧은 탄식 소리가 이어졌다.

다들 맥이 풀린 것이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

갈증이 올라와 새롭게 배급받은 물을 들이켰다. 그런데.

‘응?’

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분명 물 안에 무언가가 있었다.

절대 감각으로도 미리 캐치하지 못한 무언가가.

사르르르.

몸속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 겪는 일이지만 무엇인지는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독!’

무색무취의 독이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창자가 타오를 것만 같은 뜨끈한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독에 중독되는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만독불침의 특성이 발동됩니다.]

독은 내 안에서 강렬한 저항을 받고 바로 소멸되었다.

9층에서 얻은 기연. 만독불침.

그 어떤 독이라도 나를 해할 수는 없었다.

절묘한 행운이었다.

황급히 다른 생도들의 모습을 살폈다.

역시 태연하게 물을 마시고 있었다.

채이설은 이미 한 병을 다 비워 버렸다.

‘혹시 내 물에만 독이?’

그럴 리가 없었다.

태무정이 주관하고 있는 이번 천마지로에 이런 장난을 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굳이 나에게만 음모를 꾸밀 이유도 없고.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모든 이들이 마시고 있는 물에는 독이 들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독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거나 특정 조건이 갖춰져야 효과가 발생하는 종류일 것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천마지로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을 날로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두 번째 관문의 내용을 이제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공을 일으켜 독을 몰아내라는 것이겠지.

태무정에게 화명신공을 전수받았다고는 하지만 아직 나의 내공은 너무 얕았다.

만독불침 특성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절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순간 손서연이 호리병을 집어 들었다.

- 마시지 마!

이미 다 마신 채이설은 어쩔 수 없지만 손서연은 아직 구제할 길이 있었다.

손서연이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독이 들어 있어!

“뭐?”

- 쉿! 물 안에 독이 들어 있다고! 아직은 효과를 느낄 수 없지만, 곧 나타날 거야.

내가 보낸 텔레파시에 손서연은 표정이 굳으며, 손에 들고 있던 호리병을 내려놓았다.

나를 대살성으로 믿고 있으니, 분명 내 말을 따를 것이다.

날씨가 더럽게 덥다는 것이 문제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손서연의 표정은 썩어만 갔다.

힐끔힐끔 나를 보는 게 정말로 독이 있느냐는 의미였다.

가만히 있어도 온몸을 땀으로 샤워하는 날씨.

하필 오늘 날씨는 더워도 더럽게 더웠다.

“정말이야? 나 이미 반쯤은 마셨는데.”

- 어. 믿어라, 좀.

벌써 반이나 마셨다니.

그래도 그 정도면 괜찮을 것이다.

손서연은 우리 셋 중에선 그래도 마력이 압도적으로 높은 플레이어니까.

생도들이 반응을 보인 것은 약 일각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우웁!?”

“이게 뭐야!”

“혹시 너도 그런 거야?”

다들 고통스러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피리 소리였다.

갑자기 멀리서 웬 피리 소리가 들리나 했는데, 그것이 독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조건이었다.

그 순간 교관 한 명이 연단 위로 올라왔다.

“두 번째 관문은 이제 시작되었다! 이제는 짐작하고 있겠지만 너희들은 모두 독에 중독되어 있는 상태이다. 지금부터 각자의 내공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온 독을 몰아내도록!”

예상했지만 역시 살벌한 미션이었다.

그냥 내공 수준을 테스트하는 것도 아니고, 독에 중독시켜 놓고 그걸 몰아내라니.

독은 무림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이다.

제아무리 절세 고수라 할지라도 독에 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극독인 경우에는 내공으로 몰아내기도 전에 온몸으로 퍼져 버리니까.

다들 고통스러운 몸을 가누며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힘들다고 판단되면 포기를 선언해도 좋다! 탈락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어차피 여기서 떨어질 자질이라면 결코 무사로서 높은 곳까지는 올라가지 못할 테니, 자존심 상할 것도 없을 것이다!”

연단 위에 올라간 교관이 잔인한 말을 쏟아 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맞는 말이었다.

사실 두 번째 관문 정도면 대단한 자질을 요하는 것도 아니다.

방금 전 그 재수 없던 조무건 정도만 해도 어렵지 않게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할 것이다.

놈의 표정을 보니 이미 여유가 있었다.

‘나도 일단은 하는 척이라도 해야겠군.’

나는 바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는 감각을 일으켜 좌우를 살폈다.

손서연 역시 물을 반밖에 마시지 않았기에 조금은 수월해 보였다.

이 녀석도 두 번째 관문은 어찌어찌 통과할 것처럼 보였다.

끝나고 나면 생색이라도 좀 내야겠다.

‘그리고 채이설.’

사실, 채이설은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무림인들과 비교하면 마력이 확연히 떨어지는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녀의 직업이 힐러였다는 것.

표정을 보아하니 그녀는 이미 독의 상당 부분을 몰아낸 모양이었다.

물론 내공으로 몰아낸 것은 아닐 것이다.

치유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테니까.

시간도 어느 정도 지났으니, 이쯤에서 우등생 코스프레를 좀 해 봐야겠다.

“완료했습니다.”

나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귀는 열려 있으니 운기조식을 하면서도 신경이 쓰일 것이다.

독을 해독한 내 속도는 압도적이었으니까.

연단 위 천막 그늘에서 쉬고 있든 태무정의 동공이 확장되는 것이 보인다.

“뭣이?”라고 말하는 듯한 입 모양과 함께.

나에게 화명신공을 가르쳐 놓았으니 어느 정도 기대는 했겠지만 이렇게 빨리 끝낼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생도들 사이를 거닐던 교관이 내게 다가왔다.

“정말 끝낸 것이냐?”

“네. 말끔하게 모든 독을 몰아냈습니다.”

물론 교관은 내 대답을 듣고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방금 네가 마신 독은 구엽독의 일종이다. 완전히 해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운기조식을 멈췄다가는 도리어 더욱 위험해질 것이다.”

“괜찮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모든 독을 다 몰아내었으니까.”

“만약 거짓을 고한 것이라면 엄히 다스릴 것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태무정은 이미 내게 다가와 있었다.

천마지로의 총책임자인 그로선 이 상황에 대한 모든 의구심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을 터.

“정말 해독을 완료한 것이냐?”

“네.”

“그래, 확실히 네 녀석의 호흡 상태를 보니 독을 모두 몰아냈다는 말은 사실인 듯하구나.”

그는 내 옆의 호리병을 살피며 말을 이어 갔다.

“어쩌면 주최 측의 실수로 애당초 기준량 이하의 독이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솔직히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럴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너에게 귀책 사유는 없으니, 이번 관문의 통과를 허하도록 하겠다.”

태무정의 선언으로 나는 가장 먼저 이번 관문을 통과하는 생도가 되었다.

그리고 천마신교의 진짜 무사로 인정받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곤란했다.

“그런데 장로님, 송구하지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장로님께서는 방금 제가 받은 호리병에는 기준량 이하의 독이 들어가 있을 확률이 높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그랬었지.”

나의 내공 수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태무정이기에, 지금 그의 발언은 진심으로 하는 말일 것이다.

“제가 이런 식으로 통과하는 것은 저나 장로님이나 모두 찝찝할 것이라 사료됩니다.”

“그래서?”

“한 번 더 도전하겠습니다. 단, 모든 의혹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기준량 두 배 이상으로 해 주십시오.”

“뭣이? 만약 독의 양이 두 배로 늘어난다면 네가 소모하게 될 내공은 그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사실 두 배든 열 배든 내게는 크게 상관없었다.

만독불침의 특성은 내 몸속에 그 어떤 독이 들어오더라도 완벽한 방어 태세로 저항할 테니까.

적당히 두 배로 부른 이유는 그 이상은 내가 봐도 너무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태무정은 내 제안에 말도 안 된다는 태도를 보였다가 이내 그 생각을 바꾸었다.

“좋다. 너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단, 네 녀석이 시체가 되어 연무장을 빠져나가는 일이 생기더라도 원망하지 말도록 해라.”

“네. 제가 연무장의 지박령이 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네가 또 한 번 성공해 낸다면, 천마지로의 총책임자인 내 재량으로 너에게 천잠의를 하사하도록 하겠다.”

천잠의.

영물인 천잠으로부터 얻은 비단으로 만든 갑옷으로 무게는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방어력은 매우 뛰어난 아이템.

그걸 탑으로 가져간다면 아마 보물급 아이템은 족히 될 것이다.

뜻밖의 득템이 눈앞에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장로님.”

“건방진 녀석! 벌써 성공한 것처럼 이야기하는구나.”

말은 그렇게 해도 태무정의 얼굴을 보니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태무정의 지시에 따라 새로운 호리병이 연무장으로 도착했다.

무색무취의 독이었기에 아직 느낄 수는 없지만, 분명 기준량의 두 배가 되는 독이 들어 있을 것이다.

“받거라.”

태무정은 내게 마지막 기회조차 청하지 않은 채 그것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호리병을 받은 후 조금의 망설임 없이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태무정을 비롯한 모든 교관들이 숨을 죽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일 푼의 긴장감도 느끼지 않았다.

확실히 아까 전보다는 독의 농도가 진했다.

몸속에서는 거대한 열기가 느껴진다.

[만독불침의 특성이 발동되었습니다.]

너무 쉬웠다.

이제 내가 고민해야 할 것은 단 하나.

해독 완료 시점을 언제쯤으로 잡아야 할지.

“그럼 운기조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가부좌를 틀었다.

- 5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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