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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56화 (56/292)

56화

“네가 그걸 왜 궁금해하는 것이냐?”

“그냥 궁금해하는 것도 안 됩니까?”

태무정은 나를 보며 정말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눈빛이다.

“안 될 건 없지만, 그럴 이유도 없지 않느냐? 네가 직접 지존을 뵐 것도 아니고.”

“신교의 제자로서 멀찌감치에서나마 지존의 존안을 뵙길 원할 뿐입니다.”

내가 말해 놓고도 참 황당할 지경이었다.

한때 사부와는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먹고 자고 싸는 사이였는데.

“멀찌감치 뵙길 원한다? 그럴 생각이라면 넣어 두거라.”

“왜죠?”

“지존은 무서운 분이시다. 멀리서 누군가 본인을 엿보고 있는 상황 따윈 허용하지 않으실 터. 심지어 그 이유만으로 죽을 수도 있다.”

헐 소리가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지존이 그런 분이셨습니까?”

“그래. 네가 그런 짓을 했다가는 곧바로 이마에 구멍이 뚫릴 것이다.”

이건 뭐 성격파탄자에 사이코패스가 따로 없다.

그냥 멀리서 엿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여 버릴 수도 있다니.

내가 알고 있는 사부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탑에서의 사부는 그냥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괴짜 할아버지였을 뿐이었는데.

태무정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용한 일이었다.

“그렇군요.”

“항상 지존과 관련하여서는 조심하도록 하여라. 지금 그분께선 폐관 수련 중이시니 뵐 일도 없을 테지만.”

“폐관이요?”

“그래.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끊으신 지도 벌써 석 달이 넘었구나.”

그렇다면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사부는 지금 탑에 있을 확률이 높다.

탑은 사부로 하여금 새로운 도전 정신을 고양시킨 곳.

수련을 하기에 그곳보다 더 안성맞춤인 장소는 없다.

내가 10층 미션을 수행하는 동안 사부가 무림으로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건만.

“그리고 우리 둘이 지금 만나고 있는 것. 비밀로 하는 것이 네 신상에 좋을 것이다.”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장로님.”

천마지로를 수행하고 있는 내가 총책임자인 태무정을 만나 무공을 전수받는 것부터가 엄청난 특혜.

소문이라도 잘못 나게 되면 줄을 잘 댄 덕에 천마지로의 관문들을 통과했다는 오해를 받을 것이다.

이는 물론 태무정에게도 곤란한 일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장로님.”

“뭐냐?”

“사실 아까부터 거슬리긴 했습니다만, 지금 문밖에서 기척이 느껴집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두 명이군요.”

나의 절대 감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신호를 보내 왔었다.

당연히 태무정도 알고 있을 거란 생각에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 야심한 시각까지 장원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떠나지 않는 것이 영 신경에 쓰였다.

태무정의 말대로 지금 우리 둘 사이의 회합은 비밀로 해야 하는 것이니까.

“네가 정말로 이 기척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냐?”

짐작한 대로 태무정도 알고 있는 눈치.

“그렇습니다.”

“정말 믿을 수가 없구나! 문밖의 저 둘은 신교에서 일류 무사의 직위를 받은 자들이다. 감히 너 따위가 기척을 느낀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이거늘!”

이제야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다.

저 둘은 태무정의 사람들.

우리의 회합을 방해받지 않도록 경계 세운 자들일 것이다.

“제가 귀가 좀 많이 밝아서 말입니다.”

“이게 귀가 밝다는 말로 설명이 되는 문제이더냐? 일부러 기척을 죽이고 있는 일류 무사의 존재를 고작 신입 무사가 알아챘다는 게!”

태무정은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나의 운기 조식을 도왔으니, 지금 내 내공 수준 정도는 훤히 알고 있다.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한 줌 수준의 내공으로는 이런 일은 절대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 때론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혈도를 풀면서 보여 줬다.

지금도 눈으로 봤으니 그냥 믿으면 되는 것이다.

* * *

오늘의 점심 배식은 만두였다.

천마지로에 참가 중인 신입 무사들은 연무장의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만두를 먹으며 잠깐의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모여 있는 무리들의 면면 보면 역시 끼리끼리였다.

잘나가는 종파 출신들은 이미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으며, 그 부류에 속하지 못한 이들은 뒤이어 각종 2부 리그, 3부 리그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소외된 무리는 바로 세 명. 당연히 나, 손서연, 채이설이었다.

탑 출신의 다른 플레이어들은 이미 다 나가떨어진 상태였기에 우리 셋이 뭉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너, 정말로 무명심법이냐?”

손서연이 딱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렇다니깐. 몇 번을 묻는 거냐.”

“불쌍하군.”

10층을 시작한 뒤 손서연의 상태창에 나타난 새로운 스킬은 정운심법.

당연히 무명심법보다는 상승의 무공이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지만 말이다.

채이설이 얻은 것은 청도심법.

이 또한 손서연과 비슷한 수준의 심법이었다.

어젯밤 태무정을 만나고 오지 않았다면 정말 억울할 뻔했다.

나 혼자만 무명심법이라니.

무명심법은 이곳 무림 세계관에서는 저잣거리의 왈패들도 익힐 정도 심법으로 최하위의 무공이었으니, 나에게 부여된 설정이 제일 쓰레기인 셈이었다.

항상 행운만을 불러온다는 니케의 직무 유기를 원망할 뻔.

“이설 씨는 내공이 잘 쌓여 가고 있나요?”

이미 상태창을 훔쳐봤기에 알고는 있었다.

내공을 쌓는 일이 채이설에겐 만만치 않다는 걸.

채이설의 마력은 10층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물론 수련을 시작한 지는 며칠 되지 않았을 뿐이지만, 비교 대상이 손서연이니 그 차이가 확 느껴졌다.

손서연의 마력은 이미 기존보다 15퍼센트가량은 늘어나 있는 상태.

“처음이니까, 서두르지 않으려고요. 어차피 무림에서 얻게 된 스킬은 탑에 가서도 계속 쓸 수 있는 거잖아요?”

역시 채이설은 긍정적이었다.

9층에서 겪은 아픔도 어느 정도는 씻어 낸 듯 보였다.

물론 내가 그녀의 마음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네. 이설 씨는 잘 해낼 수 있을 겁니다.”

“고마워요. 호영 씨도요.”

순간 손서연의 입술이 삐죽거렸다.

우리가 자기만 소외시켰다고 느끼는 건가.

“손서연, 너도 잘할 수 있어.”

“됐어!”

얘가 귀신같이 알고 있다.

내가 영혼 없이 말했다는 것을.

“너는 정운심법이라며? 설정은 나보다 훨씬 낫잖아.”

“노예나 돼 버려라.”

저주를 퍼붓는 걸 보니 확실히 삐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손서연 말대로 정말 노예가 되어 버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제 곧 다가올 천마지로의 두 번째 단계.

이걸 통과하지 못하면 영락없이 노예행이다.

천마신교가 정말 살벌한 부분이, 무사로 키워질 자질이 없다고 판단되면 즉시 버리는 카드가 되어 버린다는 것.

이는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철칙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의 귀를 간지럽히는 목소리가 있었다.

혈종 출신의 조무건.

출신으로 따지자면 1부 리그에서도 상위 클래스에 족히 들어간다.

“별 근본도 없는 개뼉다구들끼리 잘들 노는군.”

물론 조무건이 언급한 그 개뼉다구는 우리 셋을 말하는 것이었다.

무명심법이니, 정운심법이니 떠들고 있는 것이 우스웠을 것이다.

그는 명문 종파의 자제였고, 어렸을 적부터 온갖 상승 무공들을 배웠을 테니까.

그 옆에 있던 녀석도 한마디를 더 보탰다.

“어쩌다 이 천마신교에 어중이떠중이들까지 다 들어온 건지 원. 십만대산 밖에서 굴러먹던 놈들까지 신교로 들이는 게 문제라니깐.”

정말 안하무인 같은 놈들이었다.

코앞에서 우리가 듣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태도.

평생 눈치 보지 않고 살아왔을 테니, 이런 것들이 몸에 배어 있었다.

물론 이 상황을 그냥 넘길 손서연이 아니었다.

“너희 둘! 뒈지고 싶은 것이냐?”

손서연은 지금 설정에 상당히 몰입하고 있었다.

미천한 출신으로 놀림을 당하자 진심으로 빡친 것이다.

“뭐?”

그 말을 들은 조무건이 한 손으로 본인의 귀를 후벼 팠다.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의심하는 중인가 본데, 잘 들은 게 맞다.

손서연은 먹던 만두를 살포시 내려놓고, 그 둘에게 걸어갔다.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말뼉다구 같은 새끼들이 귓구멍에 순대를 쳐 박았나, 뭘 또 물어봐?”

욕 한번 찰졌다.

21세기의 욕은 난생처음 들어 봤을 테니 조무건에겐 분명 신선한 충격일 터.

이미 표정은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이거 진짜 미친년 아니야? 희한한 잔재주 하나 부리는 게 다인 주제에.”

“잔재주?”

손서연이 조무건의 머리에 총구를 겨냥했다.

성격상 지금 바로 방아쇠를 당겨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었다.

“됐어. 거기까지만 해. 시원하게 욕 한번 했으니까.”

결국 내가 나섰다.

손서연의 총은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모르고 있었다면 당했겠지만, 천마지로의 생도들 중 손서연의 공격 방식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태무정의 고개를 살짝 젖히게 만든 건 그야말로 충격적인 일이었으니까.

지금 손서연이 검지를 까닥거리려는 순간 조무건의 검은 더 빨리 움직일 것이다.

아쉽지만, 내가 볼 때 두 사람의 격차는 꽤 난다.

아직은 어쩔 수 없다.

무림은 처음이니까.

“이런 말을 듣고도 그냥 참으라는 것이냐?”

“천마지로 중이잖아. 이놈들을 엿 먹일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거야.”

“아니, 이럴 때 참으면 호구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 생각이다. 푸핫.”

조무건이 손서연의 말을 흉내 내며 비웃었다.

방아쇠에 걸린 그녀의 손가락에 힘이 빡 들어갔다.

손서연은 정말 한바탕할 것처럼 보였다.

조무건은 그런 우리를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엿을 먹이겠다느니, 참지 않겠다느니.

출신 성분이 미천한 우리에게 이런 말까지 들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조무건은 손서연이 겨눈 총구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이번 관문이 끝나고 나면 널 나의 직속 노예로 만들어 주지.”

“미친놈.”

“왜? 설마 네년이 다음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동안 신입 무사들에게 천마지로의 두 번째 관문은 통곡의 벽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탈락을 하는 생도들은 영원히 신교 내에서 노예로 살아야 한다.

반면 세 번째 단계에 진입하는 순간엔 계속해서 무사의 길을 걸을 수 있다.

두 번째 관문이 인생의 분기점이 되는 셈이다.

이는 출신 성분의 여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철칙이었다.

신교의 절대적 진리는 강자생존이니까.

“널 노예로 삼아 매일 밤 내 처소로 부를 생각이야. 어때? 좋지 않아?”

조무건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 참아! 여기서 사고 쳤다가는 정말로 저놈 말대로 되는 수가 있으니까!

당장에라도 손서연이 사고를 칠 것 같았기에 텔레파시를 보냈다.

사람을 옆에 두고 텔레파시를 보내는 게 묘한 모양새이긴 했지만, 말보다는 텔레파시가 훨씬 빠르다.

- 그리고 태무정 장로가 오고 있어. 이제 곧 모습을 드러낼 거야.

태무정이 왔다는 건 오늘이 아주 중요한 날이란 걸 의미했다.

천마지로의 두 번째 관문.

바로 오늘인가 보다.

- 57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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