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타아아아앙!
손서연이 조준한 곳은 태무정의 미간이었다.
총성과 함께 태무정의 고개가 살짝 뒤로 젖혀졌다.
지척이었기에 너무 당연하게도 명중이었다.
연무장은 순식간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 태무정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으니까.
더욱 놀라운 점은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인식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타앙!
그리고 곧바로 한 번의 총성이 더 울렸다.
손서연이 과감하게 연사를 시도한 것. 하지만.
파아아앗!
태무정을 향해 날아가던 마력의 탄환은 그의 손짓 한 방에 와해되고 말았다.
역시 초절정 고수를 상대로 한 요행은 한 번으로 끝이었다.
총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태무정은 손서연의 공격 방식을 곧바로 인지한 것이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거리는 좁혀지며 손서연의 모가지는 태무정의 손아귀에 잡히고 말았다.
콜록콜록!
목이 졸린 손서연은 기침과 함께 괴로운 신음성을 뱉어 냈다.
그녀가 이런 상황에 놓인 것 자체가 내게는 신기한 일이었다.
탑에서 그녀는 항상 우세한 포지션에만 있었으니까.
태무정이 조르고 있던 손을 회수하자 손서연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연신 기침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훌륭했다. 그런데 방금 전의 그 공격은 탄지공의 일종인 것이냐?”
태무정의 질문에 손서연은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내 눈에는 딱 봐도 당황한 모습이었다.
나는 즉시 손서연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 말할 수 없다고 해. 괜히 쓸데없는 말 지어내다가 실수하지 말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놀랍다.
손서연의 저런 예의 바른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마치 아바타처럼 내 말을 잘 들은 것도 신기했고.
“그래, 내가 무리한 질문을 한 모양이군. 사과하지. 상대방의 비기(秘技)를 물어본 건 내가 생각해도 큰 실례니까 말이야.”
나쁘지 않은 오해였다.
손서연의 비기.
태무정이 공개적으로 이렇게 못을 박아 버렸으니, 손서연은 총 부분에 대한 해명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다.
태무정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자네를 이 자리에서 탈락시킬 예정이었다네. 내 앞에서 감히 다른 생도와 잡담을 하는 걸 두고 보는 성격이 아니니까. 하지만 두 번의 공격 모두 충분히 훌륭했으니, 기회를 한 번 더 주도록 하지.”
태무정의 말이 끝나자 연무장에는 짧은 탄성이 울렸다.
손서연이 모두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고 말았으니까.
“그리고, 자네의 공격 방식은 아주 흥미로웠네.”
태무정의 말투는 한결 자애롭게 변해 있었다.
엄격하긴 하지만, 나름 쿨한 인물인 것 같다.
“감사합니다. 장로님.”
그렇게 손서연의 테스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다음 순서가 이어졌다.
물론 다음 도전자는 바로 나.
태무정의 앞에 나란히 서 있으니 마치 태산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천마신교의 교주인 사부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개미처럼 미약한 존재에게는 호랑이든 늑대든 그게 그거다.
“덤비거라. 방금 전의 그 아이처럼 기대가 되는구나."
태무정은 정말로 이곳에 모인 모든 생도들을 하나하나 제 손으로 테스트할 모양이었다.
손서연의 선전 덕분에 안 좋은 이미지는 지워졌지만, 이렇게 되면 더욱 부담스러워진다.
어설픈 실력을 보여 줬다가는 비교당할 것이 뻔하니까.
문제는 내가 가진 최고의 절기는 무영추혼검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천마의 무공.
이걸 이 자리에서 펼쳐 보였다가는 혹시 모를 오해를 사게 될지도 모르기에 고민이 되었다.
“뭐 하는 것이냐? 어서 공격하지 않고.”
태무정이 재촉했다.
그의 표정을 보니 정말로 무언가를 기대한 눈빛이었다.
결국 결정을 내렸다.
내가 가진 베스트를 보여 주기로.
무영추혼검은 천마가 최근 완성한 궁극의 검술.
천마의 다른 무공과 결은 유사하겠지만, 공개된 적이 없었다는 점에 걸어 보기로 하였다.
나는 불굴의 검에 마력을 실었다.
눈을 감고 사부의 모습을 떠올렸다.
비록 아직은 반딧불 같은 존재이지만, 엄연히 나는 천마의 후계자. 적어도 천마신교 내에선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공은 미약할지라도 기백만큼은 천마의 후예여야만 한다.
“후우.”
심호흡을 한 번 뱉고는 검을 휘둘렀다.
태무정은 서 있는 자리에서 가볍게 내 일격을 흘려보냈다.
놀랍다.
이 거리에서 손짓 한 번으로 피해 내다니.
하긴 손서연이 쏘아 낸 탄환조차 아무렇지 않게 와해시킬 정도의 실력이니 너무 당연한 일이다.
휘이익!
비록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으나 나의 두 번째 검격은 물 흐르듯 연결되어 곧바로 쏘아져 나갔다.
태무정의 대응과 상관없이 나는 나의 검술을 펼쳐 내면 된다.
검이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다시 한번 내 공격에서 멀어져 있었다.
이 느낌 익숙하다.
사부를 상대로 검술을 펼칠 때도 항상 그랬었다.
“설마 그 한 번으로 날 어찌해 볼 생각이었던 것이냐?”
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물론 그 환청의 주인공은 내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사부의 목소리.
휘이이익!
나의 세 번째 공격은 태무정의 목젖을 향했다.
감히 천마의 검술을 두 번이나 피했어?
사부가 이 장면을 보고 있다면 내 머리통을 쥐어박을 것이다.
휘이이이익!
전광석화처럼 쏘아져 나의 검 끝이 결국 닿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 * *
“이호영이라고 했나?”
“네, 장로님.”
“자네는 출신이 어디인가?”
“지금은 없어진 흑살에서 키워졌습니다.”
“흑살이라…….”
흑살은 천마신교의 일곱 지파 중 하나인 살종(殺宗)에서 오래전 갈라져 나온 군소 지류.
심지어 본단이 있는 십만대산에서도 이천 리 밖에 떨어져 있는 작은 지류였기에 신교 내에서도 이 이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머릿속에 주입된 정보에 따르면 나는 흑살의 후예였다.
아주 편리한 설정이었던 것이, 이곳은 점조직으로만 미약하게 명맥을 이어 온 집단.
거기다가 이미 오래전부터 버려진 패로 취급받을 정도로 신교 내에서도 관심 밖의 존재였다.
굳이 이러쿵저러쿵 내 출신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설정이라는 것.
“내가 자네의 출신을 물어본 이유를 혹시 짐작하는가?”
물론이다.
분명 태무정은 나의 무영추혼검에서 천마의 향기를 느꼈을 것이다.
당연히 나의 출신이 궁금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펼친 것이 어떤 검술이며, 누구로부터 사사받았는지 물어볼 것이라 예상했다.
그에 대한 대답도 준비해 두었고.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럴 테지.”
태무정은 잠시 말없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만 보았다.
살짝 불안한 마음도 들었으나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천마.
사부의 말에 따르면 신교 내에선 거의 신적인 존재다.
보잘것없는 나에게서 천마의 향기를 느꼈다면, 그것은 곧 불경으로 취급받을 일.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니, 그 질문은 넣어 두도록 하겠네.”
역시 그랬다.
나의 검술과 천마와의 접점을 연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신교의 지존인 천마의 검술은 오직 차기 지존만이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이니까.
태무정은 흐뭇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합격일세. 자네는 다른 의미로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해 주었군.”
“감사합니다. 장로님.”
결국 나 역시 첫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다.
나의 검은 태무정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지만, 그것은 애당초 이곳의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손서연의 총 같이 예외적인 케이스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다행히 채이설까지 태무정의 테스트를 넘어서며, 총 일흔넷의 생도들이 ‘천마지로’에 본격적으로 임하게 되었다.
* * *
탑의 10층. 무림.
시작하자마자 신선한 충격이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1단계 관문에서 바로 탈락해 버렸다.
탈락한 그들은 이제 신교 내에서 노예 생활을 하며 로비로의 귀환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신교 무사들의 무공 수위였다.
비록 생도의 신분으로 ‘천마지로’에 입하고 있지만, 그들은 웬만한 상위 플레이어들을 능가하는 강자였다.
특히 몇몇은 나보다도 훨씬 강했다.
물론 검술에 대한 이해도는 나를 따라올 수 없지만, 심후한 내공의 차이는 검술의 격차를 넘어 버리고도 남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신교 내에서 촉망받는 후기지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각종 영약의 도움으로 내공을 증진시켰을 테니까.
아마 그들은 천마지로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며, 천마의 후계자 자리에 도전하게 될지도 모른다.
천마지로의 본격적인 여정은 두 번째 날부터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 일흔네 명의 생도들은 연무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하였다.
생도들은 각자가 익힌 내공심법에 따라 몸의 기를 순환시켰으며, 연무장에는 일흔넷의 소우주가 만들어졌다.
나 역시 새롭게 주입된 기억 속에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내공 심법을 운용했다.
탑에서는 마력이라 일컫는 내공이 부족한 나에게는 매우 유용한 수련이었다.
무영추혼검을 높은 경기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높은 수준의 마력이 필요하니까.
예전에 사부가 해 준 말이 떠올랐다.
- 탑과 맺은 맹약으로 인해 너에게 내공심법을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깝구나. 너의 쓰레기 같은 내공으로는 제대로 된 무영추혼검을 펼칠 수가 없으니.
10층이 피의 날이 아닌, 무림 미션이 된 것은 마치 나를 위해 안배된 무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공심법의 구결이 내 머릿속에 저절로 각인되어 있으니 이제는 수련만 열심히 하면 된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여 내 몸속의 기운들을 끊임없이 순환시켰다.
“이런 쓰레기 같은.”
코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부?
이건 분명 사부의 말투였다.
나는 운기조식을 멈추고는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떴다.
어쩌면 정말 사부일지도 모른다.
천마가 천마신교 내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
“초식은 훌륭하나 내공은 그야말로 쓰레기로군. 어제도 문득 느꼈다만, 이토록 불균형한 녀석을 보았나! 혹시 내공을 축적하기에 불리한 신체를 타고난 것이냐?”
태무정.
오늘도 연무장에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내 앞에 쭈그려 앉아 내 몸 구석구석을 만지고 더듬었다.
사부가 아니어서 안 그래도 실망스러운데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좋지 않은 기분을 그대로 표현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내공을 쌓기에 좋은 몸으로 보이는데 이상한 일이로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게 물었다.
“네가 익힌 내공심법은 무엇이냐?”
“무명심법입니다.”
“무명심법? 신교에서 키우는 개도 안 배운다는 그 쓰레기 심법을 어찌하여 네가 익히고 있는 것이냐?”
내가 익힌 심법이 무명심법인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설정이 그러하니까.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저절로 주입된 내 기억 속에 절세 무공이라도 들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사실 무명심법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탑에서는 레벨업 외에는 마력을 획득하는 방법이 없었는데, 내공심법을 알게 된 이상 이제는 수련만으로도 마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
그걸 알 턱이 없는 태무정의 생각은 많이 달랐지만 말이다.
- 너, 오늘 밤 내 침소로 잠깐 와 줘야겠다.
태무정이 내게 은밀히 보낸 전음이었다.
- 55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