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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53화 (53/292)

53화

정파 두 명에 사파와 마교는 각각 세 명씩.

사람들은 어느 소속으로 가는지보다는 누구와 함께 가는지에 더 큰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가장 먼저 선수를 친 건 김세용이었다.

“호영이 형! 나랑 같이 가는 거 맞지? 내가 형의 베스트잖아!”

“그건 금시초문인데?”

“뭐야! 내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매일 캥수랑 스파링을 하는 게 누구 때문인데!”

김세용이 캥수를 걸고넘어졌다.

캥!

캥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김세용은 캥수의 반응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마치 내 옆자리를 떼 놓은 당상 취급하면서 말이다.

“이호영 씨. 우린 같은 검투사라서 서로 통하는 게 있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서준호였다.

“그거야 그렇죠.”

물론 통하는 건 서준호뿐만이 아니어서 문제지만.

그리고 곧바로 고용우가 치고 들어왔다.

“형, 저번에 약속했었잖아요. 기회가 되면 같이 팀 한번 꼭 해 보자고.”

“그래. 그랬었지.”

갑자기 기억이 났다.

용우와는 소설 빙의 미션에서 부쩍 친해지며 그런 약속을 분명히 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나에 대한 러브 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안세창에 이어 서지은까지.

폭발하는 인기에 난감해졌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

내가 마교를 선택한다면, 함께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단 두 명뿐이다.

“이쯤에서 인기남 이호영 씨의 생각을 들어 보고 싶군요.”

다들 내게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나의 간택을 기다리는 눈빛들.

약간은 부담스럽기도 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뭔가요, 그게?”

“제가 10층 미션에서 가길 원하는 곳은 마교입니다. 이 한 자리를 제게 양보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 부탁에 거절하는 이는 없었다.

마교. 다들 이름만 들어도 가기 싫은 곳이라 느낀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또 나와는 함께 하고 싶어 하니 본의 아니게 밸런스 패치가 된 느낌이었다.

“저와 함께하고 싶은 분들이 많은 건 감사한 일이지만, 모두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셔야 할 게 있습니다.”

“뭐를요?”

“분명 메시지는 이번 10층을 [체험]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리고 [생존]이라는 표현도 있었지요.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죽이거나,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이런 종류의 미션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의미는…….”

“네! 위험성이 아주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미션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다만, 자유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어 본인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 경우는 존재할 수 있겠죠. 저의 성향상, 저와 함께하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알아 두셔야 합니다.”

사람들은 바로 내 말에 납득을 했다.

사실 대단한 논리는 아니었지만, 그동안 내가 보여 준 모습이 있었기에 내 말 한마디는 천금 같은 설득력을 지니곤 한다.

내 스스로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이 조금 낯간지럽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 이호영 씨가 함께할 사람을 직접 선택하는 것이 좋을 거 같군요. 위험하다고 해도 다들 거절하진 않을 겁니다.”

사실 염두에 둔 사람이 둘 있었다.

둘 다 내게 적극적으로 러브 콜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지만.

우선 채이설. 그녀는 우리들 중 유일한 힐러로서 위급 상황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플레이어다. 이번 미션은 자유도 높은 모험형인 만큼 채이설이라는 보험을 들어 놓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다음으로는 손서연이었다.

이유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가장 강한 플레이어니까. 한 가지 이유를 더 덧붙이자면 만약 손서연이 다른 플레이어와 팀이라도 이루게 된다면 그 사람이 좀 불쌍해질 거 같았다.

여기서 손서연을 컨트롤할 수 있는 건 내가 유일하니까 말이다.

* * *

약간의 잡음이 있긴 했지만 10층 미션의 문파 배정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정파는 서준호와 안세창.

사파는 김세용과 고용우, 그리고 서지은.

마교는 내가 채이설, 손서연과 함께하게 되었다.

김세용은 살짝 삐친 모양이었다.

내가 제 말을 무시하고 채이설과 손서연을 선택하자 그 뒤로는 내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덩치는 산만 한 놈이 안 어울리게.

사실 김세용이 이렇게 나오면 좀 곤란했다.

9층의 히든 피스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캥수에게 보상을 줄 수 없게 되니까.

캥!

캥수는 혼자 쫄래쫄래 김세용을 향해 걸어갔다.

“뭐야, 인마! 꺼져!”

김세용은 나에게 삐친 걸 캥수에게 화풀이를 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캥수가 아니다.

캐캥!

캥수는 주먹으로 김세용을 툭툭 건드리며 장난을 쳤다.

일단 김세용을 달래 놔야 스파링도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세용아, 그냥 한번 좀 받아 줘라. 어차피 10층 미션이 짧을 것 같지도 않은데.”

“아, 결국 그런 거였네! 10층이 길 거 같으니까 여자를 둘이나 선택한 거였어. 의리도 없이.”

“미친놈.”

손서연을 여자로 보다니, 예전에 손서연에게 죽기 직전까지 맞은 걸 벌써 잊은 모양이다.

“나 캥수랑 스파링 안 할 거야.”

“한 판에 200골드.”

“정말?”

줏대 없는 놈.

이렇게 태세 전환이 빠를 줄은 몰랐다.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놈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세용아, 원 없이 하자. 당분간 캥수도 너도 스파링을 할 일은 없을 테니까.”

현자의 상태창이 준 정보에 따르면, 이번 무림행은 꽤 길어질 예정이다.

지금까지 거쳐 온 그 어떤 미션들보다도.

하지만 피의 날이 아닌 게 어디냐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이번 무림행은 모든 플레이어가 또 한 번의 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도 하였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의 무영추혼검을 보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형! 그 말 무르기 없기야. 오늘 완전 뽕을 뽑고야 만다!”

캥!

캥수도 김세용만큼이나 잔뜩 신이 났다.

둘은 이미 자세를 잡고 스파링에 돌입했다.

나도 이렇게 한가하게 있을 때가 아니다.

무림으로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검을 다듬어 놔야 할 것 같다.

* * *

[10층을 시작합니다.]

이번 미션은 타차원 체험.

무대의 스케일이 이전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세상 자체가 10층이 될 테니까.

[무림으로 이동합니다.]

세상이 잠깐 번쩍이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우리의 행색은 아주 달라져 있었다.

나, 채이설, 손서연. 모두 검은색 무복을 입은 모습.

널찍한 연무장에서 우리는 줄을 맞춰 서 있었다.

서로의 낯선 모습에 우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림 미션을 위해 필요한 기억을 주입합니다.]

그래, 이런 게 필요했다.

새로운 세상에 아무런 정보도 없이 뚝 떨어뜨려 놓는 것은 너무 막막하니까.

잠시 후, 약간의 두통이 찾아왔다.

수많은 정보들이 몰려와 뇌를 흔들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기억 주입이 완료되었습니다.]

우리 셋은 동시에 깊은 호흡을 뱉어 냈다.

약간의 메스꺼움이 있었으나 곧 새로운 기억에 익숙해지며 그런 고통은 사라졌다.

우리 셋은 천마신교의 생도.

오늘부터 생도들은 [천마지로]라 불리는 기나긴 시험을 치르게 된다.

이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모두 우리와 같은 처지였다.

“무림인들과 플레이어들이 섞여 있군.”

손서연이 말했다.

사실 무림인과 플레이어 간의 구별은 어렵지 않았다.

플레이어는 탑에서처럼 이름과 레벨이 머리 위에 표시되어 있었으니까.

저들은 다른 구역에서 온 플레이어들.

물론 여기서 대놓고 그런 티를 내는 일은 곤란했다.

우리는 지금 일종의 역할 놀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부터 천마지로를 시작하겠다!”

연무장의 단상에서 들려온 음성이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태무정.

이번 천마지로의 총 책임자이자, 천마신교의 열두 장로 중 하나이다.

일선에서는 약 칠 년 전에 물러나 은거 중이지만, 격년으로 열리는 천마지로에는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항상 그랬듯이, 천마지로의 시작은 쭉정이들부터 걸러 내는 것! 만약 어설픈 각오로 임하는 생도들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손을 들어 자진 탈락을 추천하는 바이다. 본격적으로 신교의 무공을 배우게 된다면 죽기 전엔 자유의 몸이 될 수 없을 테니까.”

태무정은 살벌한 기세로 우리 생도들을 겁박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한번 마교인은 영원한 마교인, 그 누구도 제 발로 십만대산을 걸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없군. 좋다! 그럼 내가 직접 쭉정이들을 찾아내는 수밖에. 시간이 없으니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태무정이 천마지로의 총책임을 맡은 이후, 그가 일일이 모든 생도들을 테스트하는 것은 일종의 통과의례가 되었다.

지금 천마지로에 도전하는 생도들은 총 이백스물 네 명.

1번 명찰을 차고 있던 무사부터 태무정의 앞에 섰다.

“전력을 다해 공격해라.”

“네. 장로님.”

무사는 가볍게 묵례를 취했다.

휘이이익!

그리고는 갑자기 검을 빼 들어 기습을 감행했다.

전광석화처럼 펼쳐진 검격.

하지만 그의 검 끝은 이미 태무정의 두 손가락에 잡혀 있었다.

검을 잡은 그의 한 팔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퍼어어억!

그리고 그는 태무정의 일장에 가슴을 맞고는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테스트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호기롭게 기습을 펼친 것은 칭찬해 주지. 하지만 그다음은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군.”

태무정의 턱짓에 1번 무사는 험상궂은 교관의 손에 끌려나갔다.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는 그의 애원에도 태무정은 다음 번호를 호명했다.

그 모습을 보며 손서연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여기서 탈락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잠시 노예 생활 좀 하다가 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그녀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천마지로의 세 번째 단계 이전에 탈락하는 생도들은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무사가 아닌 노예로 분류된다.

비굴하긴 하지만 노예로 산다면, 안전은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10층의 클리어 조건은 어디까지나 일정 기간의 [생존]이기에.

“그래서 탈락하고 노예 체험이나 하려고?”

“글쎄.”

그 순간 두 번째 생도도 태무정의 공격 한 방에 그대로 쓰러졌다.

이미 눈가에 초점이 없는 것이 탈락이 확정된 듯했다.

그런데 태무정의 시선이 뭔가 이상하다.

마치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느낌.

“너희 둘!”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겁도 없이 수다를 떨다니. 도전 순서를 바꿔 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수백의 눈동자가 동시에 우리를 향했다.

그들의 눈빛엔 연민과 비웃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좋지 않은 모양새로 첫 관문에 도전하게 되었으니, 난도는 더욱 올라갔을 것이다.

우리 둘에 대한 태무정의 통과 기준은 더욱 엄격해졌을 테니까.

“이름!”

“손서연입니다.”

먼저 도전하게 된 손서연이 태무정의 앞에 섰다.

“손서연이라. 좋은 이름이군. 하지만 앞으로 넌 그 이름을 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 말은 즉 그녀는 곧 노예가 될 것이란 것.

태무정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손서연은 선공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나는 바로 그녀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 그냥, 총으로 갈겨!

그 말에 손서연이 미친놈 보듯 날 바라보았다.

이곳 무림은 총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관.

총을 꺼낸 후의 뒷감당을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 걱정 말고 갈겨. 이곳 무림 사람들은 총의 형체를 볼 수 없으니까.

이것은 현자의 상태창이 방금 전 내게 준 정보.

“어서 공격하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 설마 내게 선공을 양보하겠다는 뜻인 게냐?”

“아닙니다!”

손서연은 즉시 인벤토리에서 총을 꺼냈다.

역시 태무정은 여전히 총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타아아앙!

잠시 후, 연무장에는 총성이 울려 퍼졌다.

- 5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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