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초코바 세 개를 순식간에 털어 넣은 손서연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표정 관리만큼은 그야말로 월드 클래스라 부르기에도 손색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냐?”
“뭘?”
“네가 살성이라는 걸.”
손서연은 이제 내가 살성임을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피아 게임에서 마피아가 정체 드러내는 거 봤어?”
“하긴 그렇지.”
“알면서 뭘 물어.”
“네가 가진 살성의 권능이 조금은 특이하니까. 지금까지의 네 행적도 그렇고.”
조금 특이하다니.
누가 봐도 아주 많이 특이한 것이다.
내가 정말 살성이라면 말이다.
“괜히 커밍아웃을 해 버렸군.”
“아직 널 완전히 믿는 건 아니지만, 9층에서의 네 계획을 알고 싶다.”
“왜?”
“좋은 참고가 될 테니까.”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이지만, 손서연의 말투는 평소보다 미세하게나마 부드러웠다.
설마 초코바 준 것 때문은 아닌 것 같고, 역시 날 대살성으로 의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살성이라.
그것은 내가 살성이 되었을 때도 얻지 못한 정보였다.
현자의 상태창이 무언가라도 언질을 주면 좋겠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
“날 참고할 필요는 없어. 그저 넌 네 뜻대로 하면 돼.”
“사실 난, 10층을 피의 날로 만드는 일에 찬성하는 쪽이었다. 실제로 9층에선 한 표를 행사할 생각이었고.”
“었다? 과거형이잖아. 그럼 지금은?”
“잘 모르겠다.”
“마음을 바꾼 이유는?”
“네가 반대표를 던질 것 같으니까.”
손서연이 갑자기 이렇게 나오니 당황스럽다.
죽이기 미안해지게.
하지만 손서연은 여전히 폭탄 같은 존재다.
손서연이 행사한 한 표와 상관없이 10층이 피의 날이 되는 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그 경우 손서연은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 분명했다.
“내가 무슨 표를 던지든 그게 중요한가?”
“중요할지도.”
“그건 또 왜?”
“커밍아웃 이후 그동안의 네 행적을 쭉 돌이켜 봤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지.”
얘가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나는 잠자코 손서연의 말을 기다렸다.
“어쩌면 넌 미래의 일부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것은 대살성의 권능일지도 모를 거란 생각까지. 어때? 내 가설이.”
땡.
마음속에선 그렇게 말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긍정도 부정도 할 필요가 없다.
손서연이 그렇게 믿고 있다면 그 나름대로 써먹을 구석이 있을 테니까.
“노코멘트.”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손서연은 제멋대로 결론을 내버렸다.
캐…… 캥…….
내 등 뒤에 있던 캥수는 한 발로 입을 가리며 들켰다는 표정을 짓는다.
손서연이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아주 요망한 펫 같으니라고.
* * *
이번 9층의 미션은 모든 플레이어에게 끔찍하고 잔인한 관문이 될 예정이었다.
현자의 상태창이 보내 준 정보에 따르면 9층은 망자의 장.
탑에서 죽은 플레이어들이 우리들 앞에 나타나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끔찍한 것은 플레이어들의 눈앞에 나타날 망자들이 모두 ‘지인’이라는 것.
많은 플레이어들이 멘탈에서 무너질 공산이 컸다.
혹시라도 가족이나 연인을 만나게 되는 플레이어가 있다면…….
설령 미션을 통과하더라도 후폭풍이 무척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의 정신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것이기에.
지금껏 우리는 ‘모르는 것이 약’이란 생각으로 가족, 친척, 친구들의 생사를 애써 고민하지 않았다.
항상 우리 앞에 놓여 있던 것들은 매 층마다의 험난한 미션과 이를 함께 헤쳐 나갈 같은 구역의 동료들뿐.
보이지 않는 작별은 줄곧 외면하며 잘 지내 왔는데, 이번 9층은 유예된 슬픔을 정산하는 곳이었다.
죽어 버린 그들의 모습을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말이다.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 탑을 설계한 녀석의 면상이 또 한 번 궁금해졌다.
과연 탑의 모든 층을 다 뚫고 올라가면 마지막엔 볼 수 있는 것인지도.
[9층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생각이 정리도 되기 전에 세상은 암흑으로 물들었다.
[9층, 망자의 장을 시작합니다.]
그 이후 메시지의 내용은 공략집의 설명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들은 이곳에서 탑에서 죽은 우리의 지인을 만나게 된다는 것.
아마 지금쯤 나의 동료들도 심각한 멘탈 붕괴에 빠져 있을 것이다.
1. 미션: 9층에 단 하나의 망자도 남아 있지 않게 하시오.
2. 제한 시간: 6시간
3. 실패 시: 재앙의 출현
세상에 다시 밝아졌을 땐 내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살아남은 우리 구역의 여덟 명의 플레이어들은 제각기 다른 위치에서 미션을 수행해야만 한다.
우리를 더욱더 고독하게 만들려는 망할 탑의 계략일 터.
나는 서둘러 미니맵을 활성화시켰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전체 지도에서 상단 가장자리.
중앙에서 시작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초반부터 다른 플레이어들을 살필 여유가 없다.
이곳 망자의 장은 나에게도 정신적으로 버거운 곳이 될 테니까.
“후우.”
긴장감이 몰려 왔다.
고아로 자라 왔기에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정신적인 부담이 조금 덜 할 뿐, 나 역시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일반인일 뿐이다.
여러 가지 얼굴들이 머리를 스치며 보이지 않는 불길함이 엄습했다.
부디 그분만이 내 앞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
[첫 번째 망자가 현신하였습니다.]
9층의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서 굳이 내가 찾아다닐 필요가 없는 모양이다.
바로 내 앞엔 내가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나타났으니까.
[잠시 당신의 기억 일부를 복원하여 재생하겠습니다.]
* * *
초등학교 5학년 교실.
두 남자아이가 내 눈앞에 클로즈업되었다.
“물어내!”
아이답지 않게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사납게 외치는 저 녀석.
우리 반 반장이었던 조재훈이다.
“말했잖아! 내가 한 게 아니라고.”
“이 새끼가 증인이 있는데도 자꾸 거짓말을 하네. 이호영 네가 내 피규어를 밟고 지나가는 걸 본 사람이 있다고 병신아! 성훈아, 그렇지 않냐?”
조재훈의 말에 최성훈은 잔뜩 겁을 먹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역학 관계로 미뤄 봤을 때 서로 한 패거리는 아니고, 최성훈은 단순히 협박에 겁을 먹은 것이다.
조재훈은 우리 반의 최고 권력자였으니까.
“거봐, 이 새끼야! 네가 밟은 거 맞잖아.”
“…….”
이때 난 결단코 조재훈의 피규어를 밟지 않았다.
그리고 녀석이 내게 왜 이러는지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2학기 중간고사 시험에서 1등을 차지했으니까.
줄곧 1등을 해 왔던 조재훈 입장에선 그걸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거지새끼! 하긴 넌 거지새끼니까 물어낼 돈도 없겠네.”
비록 내가 고아이긴 하지만 거지는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구걸을 해 본 적도 없으며, 심지어 1원 한 푼 빌려 본 적도 없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았다.
“난 거지는 아니야.”
“이 새끼가 지금 미쳤어? 이거 안 놔?”
“거지라는 말, 취소하고 사과해.”
“미친 새끼! 너 같은 고아 새끼는 나 같은 부자들이 내는 세금으로 먹고사는 거야. 그러니깐 넌 거지야. 고아원은 거지 소굴이고!”
십수 년 전의 일이지만, 저 말을 듣고 나니 다시 한번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고작 열두 살짜리 꼬마가 내뱉는 말일 뿐인데.
퍼어어억!
그리고 당시의 나 역시 짓밟힌 자존심을 그냥 두고 넘기는 성격은 아니었다.
내 기습 주먹에 복부를 맞은 조재훈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나보다 한 뼘 이상은 큰 거구였지만, 힘이 가득 실린 펀치를 정통으로 맞고 멀쩡할 재간은 없었다.
나의 심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쓰러진 놈의 위로 올라타 얼굴을 사정없이 패기 시작했다.
놈의 코에선 피가 터져 올랐다.
초딩 싸움에서 승리의 징표인 코피를 보았지만, 난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녀석이 욕보인 나와 내 터전을 위한 응징을 계속했다.
화면이 바뀌었다.
교무실엔 원장 어머니가 조재훈의 엄마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한참을 온갖 모욕을 들으면서 원장 어머니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퍼억!
결국 그녀는 들고 있던 샤넬백을 원장 어머니의 얼굴에 휘둘렀다.
얼굴을 맞은 원장 어머니의 한쪽 뺨이 붉게 부풀어 오르자 내 눈시울도 함께 붉어졌다.
어린 나의 두 주먹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세상에 분노했고, 잠깐의 분노를 참지 못해 원장 어머니를 욕보이게 한 나 자신에 또 한 번 분노했다.
교문을 나온 나는 원장 어머니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갔다.
고아원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이 날따라 더 길고 길게 느껴졌다.
어쩌면 원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원장 어머니의 회초리일지도 모른다.
학교에서의 비행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분이셨으니까.
하지만 뒤를 돌아보며 원장 어머니가 내게 하신 말씀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잘했다. 호영아.”
잘했다……라니.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분은 내가 느낀 아픔에 더 아파 했던 것이다.
* * *
“……원장 어머니.”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났다는 것은 결국 이 탑에서 생을 다하였다는 의미.
혈육이 없는 나로선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을 보고 만 것이다.
[망자의 혼이 탑을 떠돌고 있습니다.]
[망자를 죽였던 몬스터를 처단하여 망자의 혼을 자유롭게 하십시오.]
이미 각오는 하였지만,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접하게 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원장 어머니와 함께 내 눈앞에 어슬렁거리는 것은 고작 레벨 1의 외뿔라쿤.
그녀는 튜토리얼에서 사망한 것이었다.
이미 죽어 버렸기에 대화를 할 수도, 피부를 만져 볼 수도 없다.
그저 반투명화된 그녀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카아아앙!
외뿔라쿤이 내게 달려들었다.
이제는 한주먹 거리조차 되지 않는 잡몹.
이놈을 베어 버린다면 원장 어머니의 혼은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는 영영 볼 수 없게 된다.
이놈을 베지 않고 살려 두어 조금이나마 더 내 눈에 원장 어머니의 얼굴을 담아 둘 수도 있었지만.
휘이이익!
내 불굴의 검은 주저 없이 외뿔라쿤의 모가지를 베어 버렸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9층의 제한 시간은 6시간.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선 떠돌고 있는 모든 망자들을 시간 내에 원래 가야 할 곳으로 보내야만 했다
얼마나 많은 망자들이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6시간의 제약은 부족할지도 모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망자의 얼굴을 보고 멘탈이 나간 플레이어들이 존재할 테니까.
난 그들의 몫까지 대신할 생각이었다.
“원장 어머니, 당신의 몫까지 살아가며 이 빌어먹을 탑의 끝을 보고야 말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원장 어머니의 반투명한 혼은 사르르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웃고 있었던 것 같다.
그냥 내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두 번째 망자가 현신하였습니다.]
역시, 한 명으로 끝날 거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제부터는 속도를 좀 더 내 볼 생각이다.
재생되는 기억의 장면들도 휙휙 넘겨 버릴 것이다.
빨리 내 몫을 끝내고, 멘탈이 갈려 있을 동료들을 찾아 지원 사격을 펼쳐야겠다.
이곳 9층에선 미션뿐만이 아니라, 평화로운 10층을 위한 작업도 해 두어야만 하니까.
- 50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