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보는 탑 공략집-46화 (46/292)

46화

타아아앙!

붕대맨이 지금 이 모습을 보고 있다면 아주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검투사의 자격 무대에 총이라니.

하지만 미션 알림 그 어디에도 ‘검을 사용하여’ 철사자를 섬멸하라는 내용은 나와 있지 않았다.

나는 정해진 룰 안에서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것뿐이다.

콜로세움을 가득 메운 이 광기 어린 관중들을 만족시켜 줄 마음은 단 1도 없다.

타아아앙!

철사자 한 마리는 네 발의 총성이 울린 후 그대로 생을 다하였다.

서준호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모습으로 내 옆에 있었다.

“이호영 씨! 갑자기 그 총은 어디서 난 겁니까?”

“그냥 그렇게 됐어요. 설명은 나중에.”

물론 그 설명은 평행 세계의 또 다른 내가 해 줄 것이다.

만약 내가 생각하는 평행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뭐, 어쩔 수 없는 거고.

타아아앙!

탄환을 내뱉는 손맛이 나쁘지 않았다.

손서연도 이 재미에 난사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철사자들을 무영추혼검으로 상대해도 상관은 없지만, 웬만해선 총질로 끝내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손맛도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어차피 회귀를 하게 되면 살성의 특성이 소멸해 버릴 테니까.

타아아앙!

보이는 것만 같다.

총을 이용한 철사자의 사냥에 관중들의 썩어 가는 표정이.

경기장에 총성이 울려 퍼질 때마다 나를 향한 야유가 울려 퍼졌다.

검투사와 철사자가 몸을 부대끼고 살점과 핏물이 튀는 그런 장면은 결코 나오지 않았다.

타아아앙!

무미건조하면서도 일방적인 학살.

나는 콜로세움을 가득 메운 관중석을 바라보며 가운뎃손가락을 날려 주었다.

내가 날린 빅엿에 야유의 데시벨은 더욱 거세져만 갔다.

아마 지금 붕대맨의 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게 왜 나에게 살성 제안을 해서.

지금 내 목표는 둘이었다.

하나는, 나와 함께 철사자를 사냥하고 있는 검투사들의 전원 생존.

다른 하나는, 이곳 관중들이 원하는 그림을 절대로 만들지 않기.

둘 다 백 퍼센트 가능할 것 같다.

* * *

[미션이 클리어되었습니다.]

열 마리의 철사자 시체가 경기장에 널브러지며 모든 과정이 종료되었다.

[검투사의 자격 갱신에 성공하였습니다.]

[8층이 완료되어 로비로 복귀하겠습니다.]

드디어 끝났다.

결국 나와 서준호는 살아남았다.

문득 다른 동료들의 소식도 궁금해졌다.

몇 명이나 살아남았으며 아직 진행 중인 이들은 잘 해내고 있는지.

안타깝지만, 지금 당장은 확인할 수 없었다.

난 이제 8층을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당신은 로비로 복귀할 수 없습니다.]

[회귀합니다.]

회귀.

소설 속에서나 보던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내가 직접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 탑 자체부터가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스르르르.

짤막한 메시지가 끝나며, 나는 새로운 배경으로 인도되었다.

새로운 대기실.

회귀를 하는 일에 거창한 절차 따윈 없었다.

그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는 8층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당신은 조련사입니다.]

[자격 갱신의 장을 시작하겠습니다.]

50평 남짓의 대기실과 또 다른 조련사 플레이어들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대기실에 있는 주변 인물들이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회귀 이후 내 상태창이 어떻게 변했는지의 여부.

‘역시!’

살성의 특성은 지워졌다.

자연스럽게 저격 스킬도 함께 소멸했다.

살성이 되며 획득한 능력과 상승한 스탯들도 원상 복구되었다.

이 부분은 좀 아쉽다.

넘치는 마력의 느낌이 꽤 좋았는데.

사부가 떼어 낸 초급 검술도 원상 복구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쓸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내게는 심득으로 남은 무영추혼검이 있으니까.

여기까지는 모두 예상했던바.

‘어?’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게 하나 더 있었다.

총.

인벤토리에는 여전히 묵직한 총이 들어 있었다.

시스템의 오류인지, 아니면 일부러 회수하지 않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저격 스킬이 없는 내게 총은 있어 봤자 무용지물이다.

그냥 방아쇠를 당겨서 마력 탄환이 발사되는 그런 원리가 아니니까.

당분간 사용할 일은 없겠지만 일단 그냥 보관해 두기로 하였다.

그리고 새롭게 8층 미션을 시작하기 전에 해 두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이제 막 검투사의 미션을 시작하게 될 서준호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살성 한강혁.

내가 없는 그곳에서 한강혁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기에 서준호가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정보를 주었다.

서준호는 분명히 잘 해낼 것이다.

* * *

검투사의 대기실과 비교해서 이곳은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일단 플레이어의 수 자체가 확연히 적었다.

나를 포함해서 조련사는 단 네 명.

검투사 대기실과는 거의 열 배의 차이가 났다.

조련사가 검투사에 비해 희귀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 대기실에 단 네 명만 배정한 또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았다.

그르르릉!

카아앙! 카아앙!

조련사들 옆에는 제각기 펫들이 붙어 있었다.

이 펫들의 존재감은 플레이어 1인분의 몫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캥수도 사이즈가 작은 몬스터는 아니지만, 정말 거대한 녀석 한 마리가 이 대기실에 있었다.

샤크 스파이더.

사이즈는 거의 코끼리 수준.

상어도 거미도 아닌, 해괴망측하게 생긴 괴물 한 마리가 조련사의 통제하에 포식 본능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다른 한 녀석.

카아악!

카아악!

혈랑견이라는 머리가 둘 달린 대형견이었다.

문제는 이놈이 캥수를 향해 노골적인 포식 본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

그르르릉!

대가리 두 개가 동시에 캥수를 노려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물론 캥수도 얌전히 있지만은 않았다.

캥! 캥!

녀석은 특유의 섀도 복싱을 하며 혈랑견과 팽팽한 기 싸움을 펼쳤다.

“캥수야.”

캥!

캥수는 내 한 마디에 주먹을 내리며 숨을 골랐다.

지금 하는 기 싸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현자의 상태창이 내게 준 정보에 따르면, 이 펫들은 결국 서열을 확인할 시간을 갖게 되니까.

“캥수야, 앉아.”

캥!

캥수는 결국 분한 얼굴로 양반다리를 하며 대기실에 앉았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사람과 같은 모습.

“몬스터를 무슨 강아지처럼 길들이시는데요?”

혈랑견의 주인이 내게 처음으로 말을 건넸다.

엄일호.

나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는 험상궂은 얼굴의 사내였다.

“우리 캥수가 주인 말을 잘 듣는 녀석이라 말입니다.”

“몬스터의 야성을 그렇게 꾹꾹 눌러 놓기만 하는 건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글쎄요. 그쪽 펫이야말로 너무 통제가 안 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르르르릉!

혈랑견은 침을 질질 흘리며 캥수 쪽을 어슬렁거렸다.

캥수는 꼿꼿이 앉아 있으면서도 눈싸움에서는 밀리지 않았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일촉즉발의 상황.

카아아앙!

혈랑견은 앉아 있는 캥수의 얼굴에 두 개의 머리를 들이밀며 거친 도발을 감행했다.

야생의 캥수였다면 즉시 혈랑견의 죽빵을 때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캥수야?”

캥!

하지만 캥수는 잘 참았다.

“잘했어.”

아마 저 혈랑견도 끝까지 선을 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상태창을 확인해 보니 엄일호라는 자의 조련 수준이 만만치 않았다.

조련 분야만 놓고 본다면 내가 엄일호에게 스펙이 밀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이제 막 조련사가 된 입장이니.

스르르르.

그리고 그 순간 이 대기실에 홀로그램이 생겨나며 또 다른 중간 관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또 다른 붕대맨.

이 탑의 관리자들은 붕대맨이 콘셉트인 것 같다.

- 환영합니다! 그리고 아주 귀한 분들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붕대맨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를 귀한 분이라 표현한 이유는 특별한 것이 없다.

조련사는 희귀 직업이니까.

여기선 특별히 붕대맨 녀석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는 것이 좋았다.

- 그럼, 지금부터 조련사의 자격 갱신 과정을 설명해 드리죠.

룰은 아주 간단했다.

이곳의 조련사는 단 네 명.

제비뽑기로 펫끼리 대결을 펼친 후 이긴 쪽은 곧바로 자격 갱신.

여기서 지게 되더라도 또 한 번의 기회는 부여된다.

모래시계의 수련 기간을 부여받은 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펫을 성장시키면 이 역시 자격 갱신.

검투사와 비교한다면 아주 혜자스러운 조건이었다.

물론, 내가 초보 조련사이긴 하나 모래시계 미션까지 가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카아아앙!

카아아아앙!

혈랑견이 난폭하게 짖어 대기 시작했다.

미션의 내용을 듣고 나서 두 개의 대가리 모두 전의에 불타오르는 모양.

엄일호는 혈랑견의 시끄러운 울부짖음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

“켈베! 누가 됐든 그냥 물어서 죽여 버리면 돼!”

이것으로 마음을 확실히 정할 수 있었다.

모래시계 미션으로 누구를 보내 버릴지.

[대진표를 위한 룰렛을 돌립니다.]

나는 내 손가락에 끼워진 니케의 반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런 랜덤 상황에서 니케는 절대 배신하는 법이 없다. 무려 신화급 아이템이니까.

[첫 번째 대진은 캥수와 켈베의 결투입니다.]

조신하게 앉아 있던 캥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섀도 복싱을 하기 시작했다.

* * *

켈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케르베로스에서 이름을 따온 모양이다.

작명 수준 하고는.

“미리 알려 드리는 겁니다만, 우리 켈베가 좀 난폭합니다.”

“그래 보이긴 하네요.”

“그게 그냥 난폭한 수준이 아니라, 상대가 죽을 때까지 물어뜯어 버리거든요. 워낙 호전성이 넘치는 녀석이라. 흐흐.”

물론 주인의 묵인하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 엄일호는 대충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붕대맨은 이번 미션에서 상대의 펫을 죽이면 특별 보상을 약속했으니까.

정말로 저 혈랑견은 우리 캥수를 죽이기 위해 혼신을 다할 것이다.

사이즈는 캥수가 더 크지만, 레벨은 당연히 혈랑견이 우위.

그것이 엄일호가 자신감을 내비치는 이유였다.

[대결을 위해 펫을 소환합니다.]

캥수와 캘베는 메시지와 함께 사라졌다.

두 녀석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붕대맨이 있던 홀로그램 화면.

캥!

그르르렁!

두 마리의 펫은 결투를 앞두고 신경전을 펼쳤다.

켈베의 두 대가리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캥수를 물어 죽이겠다는 포스를 내뿜었다.

성질 하나는 더럽게 사나워 보인다.

[대결을 시작합니다.]

캥수는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앞에 나온 왼손은 가드를, 살짝 처진 오른손은 언제라도 가능하도록 일격필살을 장전해 놓은 상태.

거리를 벌리며 성급하게 들어가지 않는 침착함에, 켈베의 높이에 맞춰 안정적으로 낮춰 놓은 자세까지 모두 합격점이다.

“꽤 재밌는 펫이군요. 지가 사람인 줄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크크크.”

엄일호는 복싱 자세를 잡은 캥수의 모습에 흥미를 보였다.

“실제로 우리 캥수는 사람들과 스파링 하는 것을 좋아하긴 합니다.”

“호오! 재밌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켈베는 저런 이족 보행 몬스터에게 너무 강해요. 순식간에 달려들어 가슴팍을 헤집어 놓은 뒤 목덜미를 잘근잘근 물어 버릴 겁니다. 한번 보실까요? 흐흐.”

크아아아앙!

켈베는 캥수의 가슴팍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앞으로 들이민 쇠꼬챙이 같은 발톱은 웬만한 가드를 다 뚫어 낼 기세.

더 인상적인 것은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힌 켈베의 가공할 순발력이었다.

확실히 엄일호가 자신감을 보일 만도 했다.

퍼어어어억!

하지만 켈베의 그럴듯한 계획은 처절하게 무산되고 말았다.

한껏 벼르고 있던 캥수의 오른손 펀치가 켈베의 한쪽 머리통을 그대로 돌려 버린 것.

“켈베 말입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맷집 하나는 좋아 보이네요?”

나는 엄일호를 보며 씨익 웃어 주었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켈베는 신음성을 뱉어 냈다.

이미 캥수는 모래시계의 방에서 충분히 수련을 마친 상태.

캥수는 나의 무영추혼검을 수없이 상대하며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해져 있었다.

어지간한 레벨 차가 아니고서는 그 어떤 몬스터도 캥수를 이길 수 없다.

- 47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