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보는 탑 공략집-37화 (37/292)

37화

다시 돌아온 로비.

우리들은 전원 생존을 확인하고는 서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도 들었었는데.”

“저는 사실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갑자기 나랑 싸우던 놈이 사라졌기에 망정이지!”

사실 몇몇에겐 아찔한 순간도 찾아왔었다.

최상두가 부하들을 소환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동료들 중 몇 명은 다시 못 볼 뻔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겪어 본 바에 의하면, 이 탑은 비슷한 전력의 그룹을 매치업 시켰을 것이고,

그럼에도 우리가 전원 생존에 성공했다는 것은 천운이 따른 결과였다.

“상대편 그룹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최상두를 포함해 상대방은 그룹원의 절반을 잃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누구도 탐욕을 부리지 않았다면 두 그룹 모두 전원이 생존할 수 있었을 테니까.

지나고 돌이켜 보면 항상 모든 비극은 막을 수도 있는 것들이다.

“그들은 아마도 비슷한 처지의 다른 그룹과 합류를 하게 될 겁니다.”

내가 대답했다.

최상두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1층에서부터 그런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 왔다고 했다.

아마도 우리 그룹이 특별한 케이스일 터.

“매번 느꼈던 사실이지만, 우리가 그룹원을 잘 만난 것 같군요.”

“맞습니다. 지금까지 겪어 온 과정을 생각하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나를 향했다.

“이호영 씨. 이번에도 신세를 졌네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간 갚을 기회가 있어야 할 텐데요.”

안세창으로부터 시작된 나에 대한 감사 퍼레이드.

살짝 오그라들면서 부담스럽지만, 이 정도 대우는 받을 자격이 있다.

실제로 나는 나뿐만 아니라 내 그룹원들의 생존을 위해서도 노력했으니까.

내 동료들이 염치를 아는 사람들이라 보람은 있다.

“만약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처럼 탑에 들어왔다면, 지금쯤 얼마나 생존해 있을까요?”

서준호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고 보면 이 친구가 의문 제기 담당이긴 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선 대답할 수 없었다.

나를 포함해서도 말이다.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그냥 계속해서 살아남읍시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 그 의문의 결과도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었겠지만, 아직 마지막 스테이지는 한참 남았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이 빌어먹을 탑. 몇 층까지 있는지는 알려 주고 시작했어야지.

우리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방금 전 벌어진 이벤트에 대한 회포를 풀었다.

나는 손서연의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다.

그녀가 호텔에서 죽인 플레이어는 둘.

역시 스탯이 상승한 상태였다. 본래도 강했지만, 더욱더 강해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스킬이나 새로운 직업까지는 획득하지 못했다는 것.

만약 그녀가 근접 전투 특성이라도 얻었더라면, 정말 감당이 안 될 뻔했다.

그리고 김세용은 본인의 영웅담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김세용이 죽인 플레이어는 단 한 명.

하지만 오히려 손서연보다 더 큰 것을 획득했다.

이놈의 상태창을 확인해 보니 진짜 좋은 걸 얻긴 했다.

“그 새끼가 갑자기 나한테 다짜고짜 덤벼드는데…….”

김세용은 그룹원들에게 썰을 풀기 시작했다.

그 썰의 결론은 자신의 영웅담, 그리고 자랑질이었다.

“결국엔 그놈이 갖고 있던 <초급 궁술>이라는 스킬을 얻어 버렸지. 크크크.”

김세용은 권법가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근접 전투를 선호하겠지만, 이 궁술도 요긴하게 쓸 일이 있을 것이다.

스킬이란 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니까.

“세용아, 사람 죽여 놓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그놈이 먼저 나한테 덤벼든 거야!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나도 안다.

그런데 너무 티 나게 좋아하니 내가 조금 민망해질 뿐이었다.

“형은? 형도 얻은 게 있을 거 아니야?”

물론 있다.

두 사람을 죽였으니까.

민첩 스탯은 5가 상승했고, 김세용과 마찬가지로 스킬도 획득했다.

스킬명은 텔레파시.

최상두가 자신의 부하들을 통제하는 용도로 사용한 스킬이다.

그 사실을 동료들에게 이야기해 주니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이 스킬은 시전자의 역량에 따라 그룹 전체의 전력을 획기적으로 상승시켜 줄 테니까.

“하지만, 이 텔레파시를 모든 그룹원들에게 쓸 수 있는 건 아니더군요.”

스킬 열람으로 확인을 해 보니 텔레파시를 사용하기 위해선 선행 작업이 필요했다.

스킬을 시전할 플레이어를 미리 등록해 놓아야 하는 것.

게다가 현재로선 그 인원이 5명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다섯 명을 등록해 놓을까 합니다. 물론 등록을 할 때엔 동의를 구하고 진행하겠습니다.”

나는 그룹원들 앞에서 조심스럽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다.

텔레파시는 쌍방향이 아닌 일방향 소통 방법. 자칫 잘못하면 동료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에 살짝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염려는 완벽한 기우였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쏟아져 나온 것.

“동의하고 말 게 뭐가 있겠습니까? 무조건 감사히 받아들여야죠!”

“저요! 등록 당하고 싶습니다!”

내가 미리 염두에 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 사람들의 표정은 부디 자기를 간택해 달라는 눈빛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공략집을 활용하여 신기에 가까운 통찰력을 보여 주었고, 이들은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상황.

그래서 이들은 나와 원거리에서도 소통을 하길 원했다.

그것이 일방향적인 것일지라도 말이다.

“다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도 조금은 편하게 양해를 구할 수 있겠군요.”

내가 가장 먼저 지목한 것은 역시 김세용.

일단 편하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녀석이고, 종합 능력치도 뛰어나 웬만한 것들은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번에 원거리 공격 스킬도 얻었기에 범용성은 더욱 커졌다.

살짝 아쉬운 점은 지능캐가 아니라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김세용은 나의 원픽이었다.

다음은 채이설.

우리 그룹원 중 유일하게 힐러이기에 광범위한 활약이 필요한 존재이다.

더군다나 두뇌 회전도 빨라 유사시엔 리더가 되기에도 적임.

“감사해요, 호영 씨!”

“아닙니다. 제가 감사할 일이죠.”

나에 대한 채이설의 전적인 지지는 큰 플러스 요인이었다.

서준호도 빼놓을 수 없었다.

전투 능력은 김세용보다 떨어지지만, 문무를 겸비한 밸런스 플레이어이니까.

아마 내가 없었다면 우리 그룹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고용우.

“용우야, 너를 등록해 두려고 하는데 괜찮겠어?”

“네? 저를요?”

용우 녀석은 예상하지도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이 녀석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미성년 플레이어에 대한 배려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용우가 가진 탐색 스킬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5층 미션에서 요정들의 미궁을 발견했던 것도 전적으로 용우의 공.

녀석의 스킬은 또 요긴하게 쓰일 날이 있을 것이다.

고용우까지 다들 흔쾌히 수락을 했는데, 마지막 한 녀석이 문제였다.

“텔레파시? 당연히 거절하겠다.”

역시 손서연이라면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이유는?”

“네 명령에 따를 생각이 없으니까.”

“그래, 알겠어. 해명할 생각도, 강요할 생각도 없으니까.”

손서연의 능력치는 나를 포함한 우리 중에서도 최상이지만, 어차피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어차피 플랜 B는 생각해 두었다.

“하지만, 정중하게 텔레파시를 보내겠다고 약속하면 받아들이도록 하지.”

이건 예상 밖의 전개.

손서연이 이렇게 한발 물러서는 것도 보게 된다.

“정중하게 보내 드리죠.”

취소하기 전에 빨리 등록해 두어야겠다.

사실 손서연을 픽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피의 날> 때문.

살성인 그녀의 존재는 우리에겐 시한폭탄이다.

피의 날이 언제 어떤 형식으로 진행될지 알 수 없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대비는 다 해 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 * *

이미 예고된 8층의 미션은 ‘자격의 갱신’.

아직 미션 시작까지는 시간이 남았기에 다들 수련에 여념이 없었다.

자격을 갱신하지 못한 플레이어는 사망할 것이라는 사전 정보 때문에 우리들은 초긴장 상태였다.

내 직업은 검투사와 조련사.

겸업의 이점을 누리고 있는 만큼 자격 갱신의 난이도 또한 두 배는 높을 것이다.

현자의 상태창이 8층에 대한 공략집을 미리 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깜깜무소식.

일단은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미리 정보를 흘려주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까.

캥!

캥수는 계속 무언가를 나에게 조르고 있었다.

“김세용이랑 스파링을 또 해 보고 싶다고?”

캥!

캥수는 격하게 고개를 상하로 흔들었다.

이놈은 나보다 김세용과 싸우는 것을 훨씬 더 선호했다.

나랑 싸우면 너무 일방적인 것도 있었지만, 캥수는 정석적인 주먹 대결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선 우리 중 유일한 권법가인 김세용이 안성맞춤.

“세용아, 캥수 소원 좀 들어줘라. 어차피 너도 수련해야 하잖아.”

“아 놔! 귀찮은데!”

“자꾸 네가 그렇게 튕기니까 캥수가 너한테 더 빠져드는 거라고, 인마!”

“제발 그런 플래그 좀 세우지 말라고!”

김세용은 투덜대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결국 둘 간의 두 번째 스파링은 성사되었다.

이놈이 그래도 요샌 내 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듣는다.

“스파링 붙이려면 파이트머니라도 좀 주든가.”

“3분 안에 눕히면 500골드 줄게.”

“정말?”

김세용이 갑자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첫 번째 스파링에서 김세용이 캥수를 눕히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3분.

그땐 몬스터 특유의 복싱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해 조금 살짝 고전도 했었다.

“대신, 3분 넘게 걸리면 나중에 캥수랑 스파링 한 번 더.”

“콜!”

김세용은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나도 확신할 수 있다.

이번에 김세용은 절대 캥수를 3분 안에 못 눕힌다.

“캥수 드루와!”

김세용의 마음은 이미 500골드를 따 놓은 상태.

캥수를 유인하는 손짓에서도 여유가 느껴진다.

곧 생각이 많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휘이이익!

휘이이익!

시작과 동시에 김세용과 캥수의 주먹이 교차하여 날아갔다.

상대의 펀치를 허용하더라도 자신의 펀치는 바로 꽂아 넣겠다는 둘의 의지가 모두 느껴진다.

퍼어어억!

이번 이벤트를 통해 캥수가 달라진 점은 근력이 무려 10이나 증가했다는 것.

이제 둘의 근력은 거의 동급이다.

“캥수, 너 이 새끼 뭐야!”

김세용에게는 미안하지만, 앞으로 캥수랑 계속 스파링을 할 일이 많아질 것 같다.

무한 스파링의 늪에 온 걸 환영한다, 세용아.

* * *

8층 미션 시작까지는 이제 10분 전.

현자의 상태창은 그제야 공략집을 보내왔다.

요즘 들어 메시지 전송 빈도수가 높아졌기에 진즉 오지 않을까 기대도 했었는데, 이놈이 아주 사람 애간장을 녹인다. 나랑 밀당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서둘러 메시지를 확인했다.

[정보: 8층 미션은 ‘자격의 갱신’입니다. 당신은 자격 갱신 시험장에서 같은 직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들과 교류도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경쟁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수시로 현자의 상태창을 확인하며 경쟁에 유리한 행동을 취하십시오.]

아직은 막연한 정보.

하지만 확실한 사실이 있다.

8층 미션에서도 역시 현자의 상태창을 통해 이득을 볼 게 있을 것이라는 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 38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