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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35화 (35/292)

35화

13대 13의 대치 상황.

탑의 메시지에 우리 모두는 긴장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의도를 품었는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여기서 탑의 뜻대로 우리가 서로 살인을 벌이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보상의 유혹에 빠져 정신을 갉아먹는 행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바로 합의를 합시다.”

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가 말했다.

굳이 뒷말은 필요 없었다.

그들 역시 내 말의 의미를 알고 있을 테니까.

여기서의 키포인트는 신뢰와 불신이다.

그들은 우리를 신뢰할 근거도, 불신할 근거도 없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우린 아직 당신들을 믿을 수 없다!”

아주 당연한 답변이 돌아왔다.

다행이라면, 저들은 적어도 바로 전쟁에 돌입할 것 같지 않다는 것.

하지만 그 순간, 내 옆 시야에서 빌어먹을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손서연이 총구를 상대편 쪽으로 겨눈 것이다.

“야! 이 미친년아. 총 내려!”

나는 재빨리 손서연을 제지했지만, 그녀가 내 말을 들을 턱이 없었다.

손서연의 행동에 상대방은 일제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저들 중에는 역시 원거리 무기를 가진 플레이어도 있었다.

“그딴 식으로 협상을 하겠다 이건가?”

최상두.

상대편 중 최고 레벨의 플레이어가 우리 쪽으로 외쳤다.

직업도 사령관인 걸 보면 저자가 십중팔구 이 그룹의 리더.

손서연 덕분에 지금은 이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리고 그 순간 탑의 메시지가 전해졌다.

[그동안 여러분을 너무 오랫동안 로비에만 모셨습니다.]

[지금 바로 호텔 객실로 이동하겠습니다. 일단은 1인 1실입니다.]

“뭐라고?”

“뜬금없이 객실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와 함께 순식간에 배경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대치 중이던 13명의 상대방과 12명의 동료들은 더 이상 없었다.

심지어 캥수마저 없다.

캥수의 행방에 의문을 갖자마자 현자 상태창은 메시지를 전해 왔다.

[정보: 당신의 펫은 로비에 머물고 있으며, 당신이 원할 때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습니다.]

그런 거였군.

다행히 캥수에 대한 걱정은 기우로 그쳤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은 메시지의 말대로 호텔 객실.

스위트룸의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지만, 그런 건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미니맵을 켰다.

5층 건물.

한 층당 6개의 객실이 있었고, 지금 내가 있는 곳은 303호였다.

다른 플레이어들 역시 각자의 방에 머물고 있는 상황.

합의를 이루기도 전에 이 망할 놈의 탑이 우릴 갈라 버린 것이다.

[각자의 방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지요? 아쉽지만 이 메시지를 받은 플레이어는 방을 옮겨야 할 때입니다.]

[제한 시간 10초. 시간이 경과 할 때까지 다른 방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미친!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 탑의 메시지는 갈수록 악랄해져만 갔다.

제한 시간이 있으니 지금은 말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

[10초]

[9초]

[8초]

...나는 비어 있는 304호를 건너뛰고 305호로 향했다.

미니맵에 따르면 그곳은 상대방의 리더로 보이는 최상두가 있는 방.

이 망할 상황에서 그나마 행운이 작용했다.

아마도 니케의 반지가 부려 준 조화일 것이다.

“또 보네요!”

나는 객실 문을 열고 외쳤다.

최상두는 손에 쥐고 있던 도끼를 들어 올렸다.

“아까 협상을 제안한 그놈이군.”

“초면에 반말은 좀 무례하지 않습니까?”

“딱 봐도 내가 스무 살은 더 많아 보이지 않나?”

체격이 건장하긴 하나, 확실히 연식은 부장님 뻘이었다.

이미 M자형 탈모는 완성된 상태였고.

“좋습니다. 일단은 예우해 드리죠.”

나는 불굴의 검을 인벤토리에 넣으며 싸우러 온 것이 아님을 알렸다.

최상두 역시 그런 나의 모습에 한발 물러서며 치켜든 도끼를 내렸다.

“일단, 이 방에서 협상 이야기를 다시 좀 해 봅시다. 최상두 씨, 당신이 아무래도 그쪽 리더인 거 같으니까 말이죠.”

“단번에 알아보다니 안목이 좋은 친구로군.”

역시 그랬다.

직업은 사령관에 지배라는 스킬도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주목할 점은, 지배 외에도 스킬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럼 얘기가 쉽겠군요.”

“하지만 이호영 당신은 그쪽 그룹의 리더라고 하기엔 좀 부족해 보이는데 말이야?”

이 반응의 이유는 알고 있다.

“내 레벨이 영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지.”

이 시점에서 한 자릿수의 레벨은 어지간한 고문관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

지금 내가 딱 그렇게 비춰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내 능력을 살짝 드러내는 것 외에는 없다.

시간이 부족하다. 지금 다른 방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그럼 잠시 실례 좀.”

“뭐?”

콰아아아앙!

나는 앞에 놓여 있는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쩌어억!

테이블은 그대로 중앙에 균열이 가며 반으로 갈라져 버렸다.

중심을 잃은 테이블은 쿵 하고 무너지며 나와 최상두 사이의 길을 열어 주었다.

내가 생각해도 좀 유치한 연출이긴 하나, 시각 효과는 확실했다.

최상두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껄껄 웃었다.

“힘자랑은 잘 봤네. 깜짝 놀랐어. 나는 그 정도까지는 못할 거 같거든.”

“제가 힘센 거 하나로 우리 그룹에서 발언권이 꽤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지. 난 자네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어. 그런 건 분위기로 느껴지는 것이니 말이야.”

이 반응, 허세인지 진심인지는 모르겠으나 크게 중요하진 않았다.

내게 중요한 것은 협상을 내가 원하는 쪽으로 끌고 가는 것.

이자의 반응에 따라서는 협박도 해 볼 생각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그 어떤 충돌도 일어나지 않도록 당신의 그룹 전체에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우린 모두가 흩어져 있는 상황인데.”

“최상두 씨. 당신에겐 재밌는 스킬이 있지 않습니까? 텔레파시.”

순간,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상두의 안면이 살짝 떨렸다.

그래도 이 정도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다니 아주 훌륭하다.

풍기는 이미지만 보면 탑 밖에서 군 장성급은 했을 것 같은 느낌.

“네가 그걸 어떻게!”

“저에게도 신기한 능력이란 게 있습니다. 당신처럼 말이죠.”

나는 최상두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탐나요. 당신의 텔레파시 스킬.”

“뭐?”

“혹시 또 모르죠. 내가 여기서 당신을 죽이면 그게 내 것이 될지.”

“재밌는 농담을 하는군.”

“시간 끌지 맙시다. 만약 얘기가 더 길어질 것 같으면, 당신이 전쟁을 원하는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만약 내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셈인가?”

“어쩔 수 없죠. 당신의 그룹은 리더를 잘못 만난 죄로 몰살당하는 수밖에.”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약간의 진심도 포함된 말이었다.

만약 우리 그룹 중 누구 하나라도 죽는 일이 벌어진다면, 철저하게 복수를 할 생각이니까.

나는 최상두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최상두는 다가오는 나를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날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가는군. 나 역시 평화주의자야.”

“그럼, 지금 당장 당신의 그룹 모두에게 전하세요. 우리 두 그룹 사이에 전쟁은 없는 거라고.”

“좋아. 일단은 받아들이지. 단 조건부야. 우리 그룹은 아직 자네 쪽을 신뢰할 수 없으니까.”

최상두는 곧바로 본인 그룹 전체에게 텔레파시를 전송했다.

리더끼리 합의를 보았으니, 일단은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고 대기하는 것으로 말이다.

물론 그는 단서도 달아 두었다.

언제든지 태세 전환의 준비도 해 두도록.

솔직히 저 스킬은 탐난다.

“그런데 자네 그룹에 총 가진 여자 말일세, 상당히 위험해 보이던데 괜찮겠나? 솔직히 난 그녀가 리더일 거라 생각했는데.”

합리적인 추측이다.

손서연은 우리 중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니까.

“걘 그냥 왕따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룹엔 사실 리더란 게 존재하지 않아요. 1층에서부터 쭈욱 민주적으로 지내 왔으니까.”

“1층에서부터라고?”

내 말에 최상두가 놀란 반응을 보였다.

이 반응의 이유도 대충 짐작은 된다.

다른 그룹들은 매 층마다 많은 동료들을 잃으며 새로운 그룹과의 결합을 계속 반복해 왔을 테니까.

우리 그룹의 생존률이 사기적으로 높은 것일 뿐이다.

“믿기지 않는군! 1층에서부터 자네 그룹이 쭈욱 이어져 왔다고?”

“우리가 그동안 최우선 가치로 정한 것은 성장보다는 모두의 생존이니까요.”

“놀라워.”

“그리고 저는 당신과 같은 리더가 아닌 이유로, 손서연을 완전히 통제할 순 없습니다. 만약 그 미친년이 사고를 일으킨다면 우리 역시 그녀를 공격하겠다고 약속드리죠.”

손서연은 우리의 유일한 아킬레스건.

따라서 나는 확실히 약속해 두었다.

“그런 불안 요소를 감안하면, 우리 쪽에 너무 불리한 협상인데 말이야.”

“어쩔 수 없죠. 제가 당신의 목줄을 죄고 있으니까요.”

“하하하. 자네가 내 목줄을?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군. 레벨도 낮으면서.”

최상두는 날 상대로 애써 자신감을 드러내려 하였지만, 눈치가 빠른 자이니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내가 표시하고 있는 레벨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시간이 경과 되었습니다. 이 메시지를 받은 플레이어는 즉시 방을 옮기도록 합니다.]

[한 방의 정원은 2명이며, 한 번 들어간 방에는 다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번에도 제한 시간은 10초입니다.]

내가 계속 최상두와 함께 있는 것이 베스트겠지만, 이젠 헤어질 수밖에 없다.

부디 현재의 평형 상태가 계속 유지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 * *

현재 나는 403호에 홀로 있었다.

미니맵에 확인된 점은 26개.

아직은 모두가 무사했다.

최상두가 보낸 텔레파시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최상두의 그룹원뿐만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나의 동료들도 함께 들었을 테니까.

문제는 손서연이다.

그녀가 최상두의 그룹원과 한 방에 있게 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

현재 나는 4층, 그녀는 5층에 있으니 다음번, 혹은 다다음 번에는 직접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전까지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 혹시 지금 이 문을 열고 나가는 것도 가능한가?

나는 출입문의 문고리를 돌렸다.

[지금은 퇴장할 수 없습니다.]

역시.

다음번의 이동 메시지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미니맵을 주시하며 상황을 파악하는 것.

내 모든 걱정이 손서연을 향하고 있을 때, 의외의 곳에서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미니맵을 보니 바로 옆방의 두 개의 점 중 하나가 소멸하고 말았다.

그 방에 남은 다른 한 사람은 김세용.

“설마 김세용이?!”

그리고 그 순간 메시지가 들려왔다.

[이 메시지를 들은 플레이어는 즉시 방을 옮기십시오.]

[제한 시간: 10초]

혹시 사망자가 발생하게 되면 누군가는 방을 옮겨야 하는 건가?

어쨌든 다음번에 향할 나의 목적지는 명확하다.

손서연 이전에 김세용부터 만나야 한다.

김세용은 현재의 방에 머물렀기에 나는 바로 그 방문을 열어젖혔다.

쓰러져 있는 시체 앞에 서 있는 김세용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김세용, 설마 네가 그런 거야?”

“형!”

“미친 자식! 너 때문에 협상이 바로 깨져 버렸잖아!”

“협상을 깬 건 내가 아니야! 허공에서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들렸어. 당장 우리를 공격하라는!”

“뭐?”

최상두가 나와 헤어지자마자 바로 마음을 바꿨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김세용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정말이야! 형! 나 못 믿어?”

만약 김세용의 말이 사실이라면 다른 방에서도 지금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은 있다.

나는 곧바로 미니맵을 주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엔 손서연이 있는 방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손서연이 한 명을 해치워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현자의 상태창이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 그 의도가 불분명한 뜬금포의 내용이다.

[정보: 살성은 다른 사람의 살인 행적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눈>이 있습니다.]

<살성의 눈>이란 스킬을 말하는 것이다.

스킬명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기능이 있는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현자의 상태창이 이런 정보를?

그 순간 어느 한 장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손서연이 최상두의 그룹을 향해 갑자기 총구를 들이밀었던 그 장면.

“설마!”

손서연은 <살성의 눈>을 통해 무언가를 본 것이다.

“최상두의 살인 행적?”

뭔가 알 것 같았다.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 3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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