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이호영 씨! 잠깐만요!”
서준호가 강화를 하려던 나를 제지했다.
“왜 그러시죠?”
“확률 보정 아이템도 없이 그냥 하시게요?”
다급하게 외치길래 뭔가 했더니 결국 날 걱정한 것이었다.
고맙긴 한데, 보정 아이템 따윈 없이 갈 생각이다.
공략집에 따르면 가격만 더럽게 비싸고 보정 효과는 미미할 테니까.
더군다나 첫 강화라면 추가 행운이 발동할 터이니 걱정할 일은 전혀 없다.
“전 괜찮습니다. 서준호 씨.”
나는 서준호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는 여전히 날 미친놈 쳐다보듯이 바라보았다.
“간도 크시네요. 그거 레어급 아닙니까?”
“맞아요.”
나는 주저 없이 불굴의 검에 강화석을 올려놓았다.
다들 숨을 죽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침 넘어가는 소리마저 들린다.
스르르.
나는 강화석에 살포시 마력을 불어넣었다.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모든 과정을 진행했다.
결과에 대한 확신이 있었으니까.
강화석이 소멸하며 불굴의 검 주변엔 섬광이 번뜩였다.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떴네요.”
나는 모두를 보며 씨익 웃어 주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내 불굴의 검은 유니크 등급이다.
캥! 캥!
캥수가 갑자기 섀도복싱을 하며 나의 강화 성공을 축하해 주었다.
“정말 성공한 겁니까?”
“이호영 씨!! 축하합니다!”
“같이 구경 좀 해 봅시다!”
동료들은 내 불굴의 검 주위로 몰려들었다.
유니크 등급 무기의 효과가 다들 궁금할 것이다.
레어급만 해도 다른 무기들과는 비교 불가였으니까.
하물며 유니크 급까지 왔으면 말할 것도 없다.
<불굴의 검>
-등급: 유니크
-효과: 공격력 40% 증가
“효과 미쳤네요!”
“레어급이랑은 완전 넘사벽!”
나도 놀랐다.
공격력 증가의 폭이 생각보다 훨씬 컸다.
레어급과 비교해서 기껏해야 몇 퍼센트 오르고 말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그야말로 파격.
“이호영 씨! 혹시 한 번 더 안 가십니까?”
“삘 받았을 때 가야죠!”
“펫에 유니크까지. 우주의 기운이 이호영 씨 쪽으로 다 몰리는 듯.”
어째 다들 나보다 더 흥분한 모습이었다.
사실 나도 궁금하긴 했다.
유니크 위의 보물급이면 과연 어느 정도 효과를 갖고 있을지.
하지만 더 이상 위험을 부담하고 싶진 않았다.
공략집의 말은 내비게이션만큼이나 잘 들어야 한다.
“여기서 스탑입니다.”
“아아!”
몇몇은 나의 결정에 탄식 소리를 내뱉었다.
강화의 끝장을 보고 싶었던 모양인데, 동료들의 욕구를 채워 주려고 소중한 아이템을 날릴 순 없다.
“뭐 아쉬운 대로 이벤트가 하나 더 남아 있긴 합니다만.”
나는 테이아의 갑주를 벗었다.
마치 게임 방송 BJ라도 된 기분이다.
다들 잊고 있었나 본데, 이 갑주의 등급도 무려 레어급.
이런 건 별풍선이라도 받고 보여 줘야 되는 건데.
* * *
유니크 등급의 검에, 유니크 등급의 방어구.
거기에 성장형 펫까지.
이쯤 되면 확신할 수 있다.
다른 구역의 그 어떤 플레이어를 만나도 템빨로는 밀리지 않으리란 것을.
7층 미션을 통해 나는 한발 또 앞서 나가게 된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로비로 복귀하는 플레이어들이 더 많아졌다.
사냥의 목적은 역시 레벨업보다는 강화석을 획득하는 것.
복귀한 김세용은 내 옆에 있는 캥수를 보고는 약간의 경계심을 드러냈다.
“형, 이 괴물 안전한 거 맞아?”
“캥수한테 괴물이라니! 그리고 앞으로 네 스파링 상대가 될 녀석인데.”
“스파링?”
내가 살짝 눈짓을 보내자 캥수는 벌떡 일어나 가드를 올리고는 섀도복싱을 시작했다.
스파링 얘기에 캥수 녀석은 한껏 흥분을 했다.
휙!
휙!
이놈의 펀치에는 절도가 있었다.
그냥 야수의 발길질이 아닌 잘 정련된 무도가의 풍모마저 느껴졌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앞발에 펀치 글러브라도 끼워 주고 싶다.
“헐! 이거 몬스터 맞아?”
“몬스터가 아니라 펫이라니까.”
김세용은 캥수를 바라보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휙!
휙!
그러면서 캥수의 코앞까지만 주먹을 날린다.
“한번 붙어 보고 싶기는 한데, 일단은 강화부터. 크크크.”
김세용은 입고 있던 가죽조끼를 벗어 놓았다.
등급이 하급인 것을 보니 이미 한 번 강화에 성공을 한 모양이다.
“세용아, 내 생각엔 차라리 중급짜리 하나 사서 그걸 강화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어차피 넌 무기도 안 살 거라서 골드도 여유 있지 않나?”
“뭘 굳이 그렇게 해! 이거 강화하면 바로 중급으로 되는 건데. 그리고 강화 확률 보정석을 사느라 골드 여유도 별로 없어.”
김세용은 조끼 위에 강화석과 이미 구입해 놓은 보정석을 올려놓았다.
저건 성공해도 불안하고, 실패해도 문제다.
김세용은 중급 수준으론 만족하지 않을 테니까.
녀석은 기대감 가득 찬 얼굴로 강화석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번쩍!
강화석이 소멸되며 조끼 주위에 스파크가 일어났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김세용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아오! 씨파!”
하지만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공략집으로 내가 판단해 본 최고의 가성비는, 자신이 구입할 수 있는 가장 비싼 아이템으로 최초의 강화만 한 번 하는 것. 물론 보정석 없이 말이다.
김세용은 아직 중급 가죽조끼를 살 여력이 있으니 상급 방어구를 얻을 기회가 있다.
아예 강화를 포기하는 것도 좋은 선택지이고 말이다. 물론 그럴 거 같진 않지만.
* * *
7층 미션이 시작된 지도 어느새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로비의 곳곳에서는 곡소리가 났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아까운 아이템들만 터져 나갔다.
통곡의 구간은 중급에서 상급으로의 강화.
최초의 강화가 아니라면 확률이 2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이 극악의 확률을 뚫고서 잘되는 경우는 없었다.
상급도 아닌 중급까지 올 확률 자체도 절반에 못 미쳤으니까.
“형은 유니크도 떴다면서!”
김세용이 나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인생은 될놈될이잖냐.’라는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참았다.
괜히 화만 돋우어 광기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이 7층 미션이 시작되고 나서는 사람들의 이성적 판단이 둔해졌으니까.
“운이야, 운.”
“그러니까 그 운이 왜 형한테만 오냐고!”
정답은 간단하다.
공략집 분석. 그리고 니케의 반지.
“나는 분명 계속 얘기해 줬다. 강화하지 말거나 굳이 하려면 중급 사서 한 번만 하라고.”
“에라이!”
그나저나 손서연이 계속 보이질 않는다.
강화석을 싹싹 긁어모아서 오려는 건지, 로비를 떠난 이래로 단 한 번도 복귀하지 않았다.
그녀의 총이 강화하다가 터지는 걸 한번 보고 싶었는데.
손서연 외에도 신경 쓰이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고용우.
강화 확률을 높여 주는 <수리공 요정의 망치>를 가지고 있으니, 이번 7층에서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가진 플레이어다.
하지만 이상하게 녀석은 아직까지 잠잠하기만 했다.
“용우야, 그거 안 써?”
용우가 요정의 망치를 가지고 있는 건 우리 둘만의 비밀.
아직 어린 녀석이었기에 보호해 주고 싶었다.
“고민이에요.”
“왜? 너무 튈까 봐?”
“……네.”
망치 자체부터가 유니크 아이템.
나처럼 강화로 이득을 본다면 바로 주목을 받을 게 분명했다.
용우는 그 점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그런 것들을 지킬 힘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호기롭게 망치를 빼돌린 기백은 어디 간 거냐?”
“그…… 그건!”
“강화를 권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여기 어른들에게 주눅 들 필요는 전혀 없어. 이 탑은 공평한 곳이야. 레벨을 올리고 활약을 한 만큼 강해지는 곳이지. 손서연이 원래부터 강했다고 생각해?”
“아니요! 5층에서 저도 봤어요. 그 누나가 학창시절에 어떻게 생겼었는지!”
고용우가 내게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뿔테 안경에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었던 손서연을.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탑에서는 노인이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배려해 주지 않아. 너도 마찬가지야. 네 살길은 스스로 찾아야 해.”
일단은 이 정도로만 해 두었다.
이 이상으로 말하면 내가 꼰대가 되어 버리는 것 같아서.
“알겠어요. 형.”
대충은 알아들은 것 같다.
어쨌든 난 이 아이에게 강화를 권하지 않았다.
받아들인 것은 좀 다른 모양이지만.
“형들! 누나들! 저도 이제 강화합니다!”
잠시 후 로비 중앙에서 고용우가 외쳤다.
* * *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오오오!”
“미쳤다! 단 한 번에!”
“용우가 이걸 해내네!”
곡소리만 울리던 로비에 오랜만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고용우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해 주던 조언을 그대로 기억해 놓았다가 실천한 것이다.
가진 골드를 탈탈 털어 중급 아이템을 구입한 뒤 바로 상급 아이템으로 만들기.
요정의 망치가 있으니 한 번 정도는 더 강화를 해도 될 것 같은데 그것은 본인이 고사했다.
“그래, 잘 생각했다. 확실한 게 아니라면 도전하지 않는 것도 좋은 선택이지.”
유니크 아이템을 두 개나 만든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번 7층에선 가만히 있는 것이 이득일 수 있다.
이미 사람들의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형! 손 좀 내밀어 봐.”
“왜 인마!”
“강화하기 전에 형 손 좀 만지려고.”
“내 손은 왜!”
“왜긴 왜겠어! 형의 운빨 좀 받으려는 거지.”
김세용이 솥뚜껑 같은 손을 내게 내미는데 뭔가 소름이 돋는다.
차마 거절할 수 없어 녀석의 손을 잡아 주었는데, 거칠고 딱딱한 감촉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너, 남은 돈으로는 중급은 못 살 테고.”
“어쩔 수 없잖아. 하급이라도 사서 손해 본 거 만회해야지.”
애초에 살 수 있었던 것을, 이젠 도박에 성공해야 손에 넣을 수 있는 상황.
비단 김세용뿐만 아니었다.
우리 로비에 있는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비슷한 처지에 있었다.
“이번엔 제발 좀!!”
김세용은 간절함을 담아 강화를 진행해 나갔다.
최초의 강화 때엔 행운 보정이 있으니 확률은 절반을 넘을 것이다.
물론 꽝의 확률도 상당하다는 의미지만.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흐아아아아아!”
김세용은 감격에 겨워 소리를 질렀다.
이젠 중급이 된 방어구를 껴안고 미치도록 기뻐했다.
“쯧쯧.”
엄밀하게 결과만 놓고 본다면 손해다.
애초에 그의 수중엔 중급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는 골드가 있었으니까.
그나마 마지막에 만회를 했기에 망정이지, 이번에도 터졌으면 현타만 심하게 올 뻔했다.
김세용을 시작으로 다른 플레이어들 역시 마지막 강화를 진행했다.
성공과 실패가 번갈아 가며 일어났다.
안도의 한숨과 탄식의 비명이 뒤섞이며 7층 무대도 거의 막을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나타난 건 손서연.
거의 72시간 만의 재회였다.
다들 숨을 죽이고 손서연의 행보에 시선을 돌렸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사냥을 진행했다는 건 강화석을 쓸어 왔다는 의미니까.
“야, 도대체 강화를 얼마나 하려고!”
하지만 손서연은 내 말을 무시하고는 로비 중앙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손서연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무심 그 자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구든지, 남은 강화석이 있거든 내게 팔아라.”
“뭐?”
“값은 후하게 쳐줄 것이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오자마자 강화석을 팔라니.
“손서연! 너 설마…….”
72시간 가까이 로비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던 이유.
강화석을 쓸어 담았다기보다는…….
“너 설마 하나도 못 구한 거냐?”
내 물음에 손서연은 대답하지 못하였다.
역시 그랬던 것이다.
“다시 제안하겠다. 혹시 남은 강화석이 있는 사람은 내게 팔아라.”
내가 몬스터를 사냥하며 얻은 강화석은 셋.
두 개를 사용하고 한 개가 남았다.
하지만 이걸 손서연에게 내줄 생각은 죽어도 없다.
지금도 사기적인 그녀의 총이 더 강해지도록 내버려 두는 건 곤란하니까.
“강화석. 혹시 얼마에 사 갈 거냐?”
내 물음에 손서연이 지체 없이 대답했다.
“2만 골드!”
이렇게 급하게 지르는 걸 보면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생각보다 후하네.”
“그럼 팔아라.”
“없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내 말에 손서연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72시간이 경과하였습니다.]
[7층에 존재하는 모든 강화석이 소멸됩니다.]
손서연이 내쉬는 분노의 한숨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어쨌든 7층의 미션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유니크 아이템 둘에 펫 한 마리.
내게는 무척 유익했던 7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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