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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31화 (31/292)

31화

[당신의 두 번째 직업은 조련사입니다.]

메시지를 들은 후 잠시 사고가 정지했다.

내가 막연히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종류의 직업이었으니까.

“조련사라…….”

창, 검, 도, 활, 총, 편, 권…….

직업에 대한 내 머릿속 이미지는 무기나 공격 방식에만 국한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일종의 선입견이기도 했다.

동료들이나 내 직업만 해도 거의 다 이런 쪽이었기에.

이제 내 상태창의 직업란에는 두 개의 직업이 적혀 있다.

검투사 그리고 조련사.

스킬창에는 <몬스터 길들이기>라는 스킬이 추가되었다.

나는 서둘러 직업 정보를 확인했다.

[조련사]

몬스터를 당신의 펫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단, 해당 몬스터를 제압하여 완전한 복종을 이끌어 내야 하며…….

나는 몇 번을 반복하여 내 새로운 직업에 대한 정보를 읽었다.

이제부터 투잡을 뛰게 된 나의 소감은,

……좋다.

사실 꽝이 나올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니케의 반지가 주는 행운 보정 효과는 엄청나게 사기적이었기에.

괜히 신화급 아이템이겠는가.

그럼에도 이것은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정보창을 보니 펫은 나처럼 레벨업을 할 수 있으며, 나의 어떤 명령에도 복종한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선 내 여벌의 목숨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

이미 현자의 상태창에는 공략집이 전송되어 있었다.

[공략집: 7층에는 마침 펫으로 삼기에 적합한 몬스터가 있습니다. 준수한 전투 능력 외에도 순발력과 지구력이 뛰어나 당신의 이동 수단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7층이라면 아주 가까운 미래.

때마침 적합한 녀석이 있다니 뭔가 아귀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아직 6층은 시작도 안 했지만, 벌써부터 그다음 층이 기다려지는 것은 이 탑에 온 뒤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 * *

“하아!”

“뭐 이딴 곳이 다 있냐!”

7층을 가까운 미래라고 생각했던 것은 완전한 내 착각이었다.

6층은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층중에 압도적으로 긴 무대였다.

끝없이 밀려드는 몬스터와의 투쟁.

“호영이 형! 형도 벌써 레벨이 5가 됐네!”

김세용이 내 레벨업에 바로 반응해 주었다.

레벨 5에 ‘벌써’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웃기지만, 나에겐 그야말로 폭렙.

무려 보름 동안 사냥, 사냥, 사냥, 사냥의 연속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세용아, 넌 안 지겹냐?”

“지겹기는! 미치도록 레벨업만 하고 좋잖아!”

“미친놈.”

어쩌면 이놈은 아포칼립스가 체질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나에게 더 이상의 레벨업은 무의미해져 버렸다.

나의 체, 근, 민, 감 스탯은 40으로 맞춰지며 한계 수치에 도달해 버렸으니까.

[능력치가 특이점에 도달하였습니다.]

[수련을 통해 한계를 돌파하기 전까지는 레벨업을 통해 더 이상 스탯을 증가시킬 수 없습니다.]

혹시나 해서 골드를 사용해 보았지만 이 역시 불가능했다.

[골드를 통한 스탯 증가가 한계치에 도달하였습니다.]

스탯 40 이후엔 골드를 쓰는 것도 막혀 버렸다.

‘수련이라.’

그동안 게임 시스템으로 간단하게 성장할 수 있었기에 크게 고려해 본 문제는 아니었다.

지난 소설 빙의 미션 때에도 무공서가 아닌 소설책을 골랐기에 수련을 하기 어려운 형편이기도 했고.

하지만 크게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그 당시에 공략집은 내게 무공서가 아닌 소설책을 추천했으니, 수련에 대한 타개책도 곧 나올 것이 분명했다.

타아앙!

타아아앙!

원 없이 총질하는 이 구역의 미친년이 있었다.

일반 플레이어들과는 다르게 손서연은 스탯이 40을 초과해 버렸다.

아마 이것도 살성의 특권인 듯싶었다.

이렇게 손서연의 능력치만 튀어 버리면 문제가 생긴다.

지금까진 내가 어느 정도 견제를 할 수 있었지만, 나와 능력치가 더 벌어져 버리면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그나저나 이 지겨운 곳도 이젠 좀 끝냈으면 좋겠는데.

타아아앙!

[6층의 모든 몬스터를 섬멸하였습니다.]

[로비로 귀환합니다.]

정말 징하고 징했던 6층 미션도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이번 층에서도 다행히 우리는 전원 생존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이것은 큰 기쁨이자 자부심이었다.

“이 망할 놈의 탑이 요즘은 순한 맛인데요?

서준호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2층과 3층이 좀 가혹했을 뿐, 4, 5, 6층은 무난히 넘긴 편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없었다면 결과는 상당히 달라졌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느슨해져 있을 때야말로 뒤통수를 맞기 딱 좋을 때다.

[골드 정산을 시작하겠습니다.]

솔직히 6층에서는 가장 많은 정산을 받을 자신이 없었다.

가장 많은 몬스터를 잡은 플레이어는 누가 봐도 손서연이니까.

[12500 골드를 지급받았습니다.]

어.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손서연이 받은 8600골드와 비교해도 차이가 꽤 난다.

시스템의 오류를 잠시 의심해 봤지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순간 손서연과 눈이 마주쳤다.

“왜?”

혹시 본인이 1등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나?

살성에게만 전송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딱 상태창까지만이니까.

“치사한 자식.”

이것이 손서연에게 돌아온 대답이었다.

“왜?”

“너 레벨 조작하고 있는 거 아니냐?”

물론 그건 아니지만 확실해진 사실이 하나 있다.

손서연은 내가 가장 많은 보상을 받은 걸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유력해진 가설 하나 더.

내 1등 정산의 이유는 저레벨에 대한 보정 효과일지도 모른다는 것.

앞으로도 이 설정에 감사해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조작 아닌데?”

내가 여유로운 눈빛을 보내자, 손서연의 미간이 살짝 좁혀진다.

이놈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아포칼립스를 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보다 충분히 강함에도 왠지 모를 초조함이 느껴진다.

나는 7층 미션이 시작될 때까지 두 다리 뻗고 잠이나 자야겠다.

* * *

[이제 곧 7층 미션이 시작됩니다.]

[7층은 강화의 장입니다.]

“강화?”

“게임에서 나오는 그 아이템 강화?”

플레이어들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사행성 게임을 해 본 이들은 알고 있다.

이 강화라는 것이 달콤하면서도 얼마나 위험한지를.

[7층의 몬스터는 죽는 순간 랜덤으로 강화석을 드랍합니다.]

[플레이어들은 강화석을 이용하여 자신의 아이템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단, 강화는 무기나 방어구만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이제 곧 상점창에서는 강화 확률 보정 아이템이 판매될 예정입니다.]

빌어먹을 사행성 요소까지 말이다.

몇몇 남자 플레이어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다들 조심합시다!”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 게임판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포지션은 바로 플레이어라는 것을.

하지만 이 탑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것 같지는 않다.

어떻게든 플레이어들을 벗겨 먹은 뒤 가혹한 8층의 미션으로 등을 밀어낼 것이 분명했다.

“유혹을 이길 자신이 없는 분들은 지금 골드를 소모해 버리는 것도 좋을 거 같군요.”

이번엔 내가 제안을 했다.

6층 미션까지 끝내면서 사람들의 주머니에는 어느 정도 골드가 모인 상태였다.

이제 자신에게 맞는 쓸 만한 아이템을 겨우겨우 구입할 수 있게 된 것.

“그럼, 이호영 씨도 아이템을 구입할 계획인가요?”

“저는 아닙니다.”

나는 불굴의 검과 내가 입고 있는 테이아의 갑주를 가리켰다.

두 가지 모두 레어급의 아이템.

현시점에서 이 이상 등급의 매물은 풀리지도 않았고 지불 능력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화를 피할 이유가 없었다.

니케의 반지가 있는 이상 내가 피박을 쓸 일은 없을 테니까.

“저는 호영 씨 말대로 바로 아이템을 사야겠어요.”

채이설이었다.

잠시 후 그의 손에 들려진 것은 레테의 목걸이.

마력을 대폭 늘려 주는 아이템으로 힐러인 그녀에게는 좋은 선택이었다.

무기나 방어구도 아니니, 7층 내내 강화의 유혹도 없을 것이다.

“와. 이설 씨 행동력 최고인데요?”

“어쩌면 이설 씨가 현명한 것일 지도 모르겠어요.”

다들 채이설의 행동에 수군거리면서도 정작 내 제안을 실천하지는 못했다.

이번 7층에선 강화 자체를 시도하지 않는 것이 이득일 터.

하지만 다들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세용아, 너는 뭐 안 사냐?”

이놈은 딱 생긴 것만 봐도 도박으로 패가망신할 관상이라 더 걱정이 된다.

“형, 내가 사회에 있을 때 말이야, 강화의 신이라고 불렸었거든?”

미친놈.

벌써 강화 생각에 눈이 반쯤은 돌아가 있는 상태였다.

어쩌면 <현자의 상태창>에는 현자의 특성이 붙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비이성적인 눈빛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공통 메시지가 들려올 때마다 다들 무언가에 홀려 가는 느낌.

[7층 미션은 72시간 동안 진행되며, 클리어 조건 없이 로비와 7층을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습니다.]

[강화는 오직 로비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로비의 중간에 포털이 형성되며, 7층의 무대가 막을 올렸다.

* * *

플레이어들에겐 선택지가 있었다.

포털을 통과한 후 사냥을 진행할지, 아니면 그냥 로비에서 휴식을 취할지.

후자를 택한다면, 3일 동안 생존이 보장될 수 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말이다.

튜토리얼부터 7층까지 거쳐 오며 이런 평화로운 상황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무리 쉬운 미션이어도 위험은 항상 존재했고, 때로는 누군가 죽음을 맞기도 했다.

“그런데도 다 나가 버렸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 로비에 남아 있는 것은 나와 채이설 둘뿐.

다들 뭐가 그리 바쁜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 버렸다.

우리 동료들이 이렇게 막무가내일 리가 없는데, 메시지 창에 무슨 홀리는 약이라도 발라 놨나 보다.

“이설 씨는 후회 되진 않나요? 이미 골드를 다 써 버려서 강화가 사실상 어렵게 됐는데.”

“후회라니요. 도박 같은 건 제가 워낙 새가슴이라 못 해요. 히히.”

새가슴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좋은 선택이었다.

“그래도 레벨업은 해야 하니 슬슬 사냥 나가시죠?”

“넵!”

나는 채이설과 마지막으로 포털을 통과했다.

이곳 7층에서 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하나는 공략집이 추천해 준 펫을 업어 오기.

다른 하나는 니케의 효과를 십분 활용하여 내 아이템의 등급을 올리기.

이번 7층을 성공적으로 클리어하고 나면, 나는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훨씬 더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와우!”

포털 밖의 풍경은 또 한 번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치 동물원 사파리에 온 것 같은 느낌.

7층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섬이었으며, 몬스터의 종류에 따라 철조망으로 구획이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다.

나는 채이설과 함께 섬에 나 있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역시 포털 근처가 가장 핫 플레이스군요.”

철조망 안에선 이미 라이칸울프 무리와 플레이어 몇 명이 뒤섞여 싸우고 있었다.

아마도 이들은 수시로 로비와 7층을 오가며 강화를 진행할 것 같다.

퍼어어어억!

김세용의 돌주먹에 라이칸울프가 신음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뱉어 냈다.

붉은 빛이 영롱한 주먹 크기의 돌.

초반부터 페이스가 빠르다.

“떴다! 강화석!”

김세용이 소리를 지르며 철조망 밖으로 뛰쳐나왔다.

바로 로비로 가서 강화를 할 모양이다.

“세용아, 흥분하지 말고.”

“초장부터 운빨이 트이는 거 같아서 말이야. 크크크.”

첫 사냥에 바로 강화석이 나와 버리니 이놈 너무 흥분 모드다.

조금 진정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세용아, 궁금한 게 있는데 하나만 물어보자.”

“어! 뭔데.”

“도대체 뭘 강화하려는 거냐? 너 어차피 맨주먹으로 다니잖아.”

“어?”

멍청한 놈.

반응을 보니, 이놈도 이제야 깨달은 것 같다.

튜토리얼 때 받은 낡은 장검은 인벤토리에 처박아 놓은 채 한참 동안 쓰지도 않은 모양이고, 심지어 방어구 같은 건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는데 왜 이리 강화에 흥분을 하나 궁금하긴 했었다.

“어차피 앞으로도 무기는 안 쓸 거 같고. 적당한 방어구 사서 그거나 강화해서 쓰던가.”

“어? 어!”

“솔직히 내가 진짜 추천하고 싶은 건, 넌 그냥 렙업이나 하라는 거야. 인마.”

물론 방금 얘기는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채이설을 제외하면 다들 진짜로 뭔가에 홀린 느낌이다.

“형! 그럼 나 바로 로비로 간다!”

김세용은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뛰어갔다.

나는 그냥 추천만 했을 뿐이고,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그래도 설마 첫 번째 강화에서 터지진 않겠지.

그나저나 내가 찾고 있는 펫으로 삼을 몬스터. 어떤 놈일지 궁금하다.

공략집이 대놓고 제시해 줬으면 편했을 텐데 이번엔 좀 불친절했다.

아마도 바로 옆 철조망 속의 라이칸울프는 아닌 것 같다.

공략집이 묘사한 바에 따르면 이 녀석보다는 덩치가 좀 더 커야 한다.

그래야 내가 타고 다닐 수 있으니까.

일단은 좀 더 앞으로 나아가면서 찾아봐야겠다.

- 3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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