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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29화 (29/292)

29화

오크 대학살은 시작되었다.

내 불굴의 검에 이 못생긴 괴물들의 사지가 갈려 나간다.

“혀…… 형!”

고용우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왜?”

“무슨 오크에 한 맺힌 사람 같아요!”

오크에 한이 맺힌 게 아니다.

보상에 눈이 먼 것이지.

[히든 미션이 생성되었습니다.]

드디어 메시지가 떴다.

오직 나만 볼 수 있는.

[소설 세계의 개연성을 완성하십시오.]

1. 달성 조건: 은밀하게 던전 공략의 공적 1위를 달성하시오.

2. 보상: 미공개

나와 요정 놈들 간의 은밀한 맹약이 맺어지면서 나만의 미션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조건이 살짝 까다롭다.

먼저, 내 활약이 은밀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인공 오윤남을 포함하여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나의 큰 활약을 알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소설의 스토리를 훼손해 버리게 되니까.

여기에 한 가지 더 어려운 점이 있는데, 바로 던전 클리어의 최고 공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오윤남을 제친다는 게 쉽지 않다.

이놈은 미래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능력치 면에서 나를 훨씬 상회하니까 말이다.

<초급 검술 Lv.3가 발휘됩니다.>

케에에에엑!

또다시 오크의 사지가 잘려 나갔다.

내가 생각해도 사냥 페이스가 빠르긴 한데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오윤남은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잡을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나는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그것도 아주 은밀하게.

“호영이 형! 대단해요!”

내가 생각해도 오늘의 나는 대단하다.

그건 이 던전도 인정하는 바이다.

[당신의 현재 공적치는 1위입니다.]

하지만 이 위치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오윤남이 보스를 잡아 버리는 순간, 순위는 뒤집어질지도 모른다.

휘이이익!

허공에 사선을 긋자 핏물이 튀어 올랐다.

오크 녀석은 비명도 못 지른 채 바닥에 풀썩 쓰려졌다.

이제 오크 정도는 너무 싱겁기만 하다.

그렇게 조금은 안이해졌을 무렵.

[보스 몬스터가 사냥되었습니다.]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

“뭐?”

[당신의 현재 공적치는 2위입니다.]

오윤남 이 자식이 벌써 보스를 잡아 버렸다.

“형! 던전 클리어됐다는데요?”

“나도 들었어, 인마.”

하지만 우리의 던전 실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에너지로 인해 던전이 폭주하였습니다.]

[던전 클리어가 취소되었습니다.]

[더욱 강력한 몬스터가 생성되기 시작합니다.]

소설 속의 그 전개가 드디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이 던전의 폭주를 시작으로 다른 곳에 있는 2개의 던전도 동시에 폭주를 일으키게 된다.

원래의 전개대로라면 개별적인 폭주지만, 이제 역사가 바뀌었다.

“형! 이게 무슨 일이죠?”

“뭐긴 뭐야! 네가 들은 대로지!”

[3개의 던전이 통합되었습니다.]

이제부턴 새로운 역사를 작성해야 할 때이다.

아무도 모르게.

“용우야, 이제부터 각자도생하자.”

“네?”

“북동쪽으로 가서 오윤남을 찾아. 그놈과 함께라면 안전할 거야. 난 이제부터 할 일이 좀 있어서.”

고용우의 탐색 스킬이라면, 위험한 몬스터들을 피해 오윤남이 있는 북동쪽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포털을 찾아 다른 던전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여기서 오윤남과 계속 경쟁한다면 공적 1위를 달성할 확률은 거의 제로.

통합된 다른 던전으로 이동하여 그곳의 보스 몬스터를 처리한다면 순위를 다시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용우야, 조심해라.”

“형도요! 솔직히 형이랑 계속 함께하고 싶긴 한데, 제가 낄 수 없는 일이겠죠?”

“어, 미안하지만.”

시간이 없다.

통합된 다른 던전이라고 해서 경쟁자가 만만한 게 아니다.

손서연.

하필 그 망할 것이 그곳에 있으니까.

* * *

지금부터는 나만이 알고 있는 미래가 펼쳐진 무대.

던전들이 연결되는 포털 위치는 요정 놈들이 미리 알려 줬기에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포털을 통과하였습니다.]

이곳은 손서연과 채이설이 속한 9조 생도들이 공략하고 있는 던전.

지금까지와는 이질적인 매캐한 공기가 폐로 들어오며 호흡을 괴롭혔다.

“후우.”

이 냄새의 정체는 독(毒)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이곳에 출몰하는 몬스터는 독을 품고 있는 녀석들.

냄새를 맡는 것이 괴롭긴 하지만 난 절대 후각을 가지고 있으니, 보스 몬스터를 찾는 게 더 수월할 것 같단 생각은 든다.

그나저나 진짜 지독한 냄새. 그중에 유별나게 강력한 냄새를 풍기는 곳이 있었다.

바로 저곳! 아마도 보스 몬스터일 것이다.

타아아앙!

총성이 울렸다.

뒤이어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이건 오크 같은 종류의 몬스터가 내는 소리가 아니다.

지구의 동물로 따지자면 갑각류의 곤충 같은 느낌?

타아아앙!

또다시 총성.

손서연, 이 녀석도 살육전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몬스터의 비명 소리와 함께 매캐한 냄새는 더욱더 강해졌다.

아마 몬스터의 몸체가 터져 버리며 독(毒)을 뿜어내는 것 같았다.

일단 총성이 울리는 곳을 향하여 빠르게 이동했다.

지금 손서연의 이동 방향도 보스가 있는 곳과 절묘하게 같았으니까.

“야!”

거리를 좁히며 황급히 손서연을 불러 세웠다.

“어?”

녀석이 나를 귀신 보듯 바라보았다.

내가 여기서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사냥은 잘 돼 가냐?”

“뭐야, 너.”

놀란 반응은 그걸로 끝이었다.

표정은 벌써 무미건조하게 변해 간다.

진짜 특이한 녀석이다.

“리액션 한번 더럽게 재미없네.”

“너 뭐냐고 물었잖아.”

“던전에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 포털로 던전 몇 개가 연결된 거 같아.”

솔직하게 말해 주었더니 손서연은 아주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랬군. 이곳에는 던전 폭주가 일어나 버렸다. 전갈 놈들이 갑자기 독을 뿜어내기 시작했어.”

곤충처럼 생긴 몬스터가 아닐까 추측했는데 역시 그랬었다.

그나저나 손서연의 페이스를 좀 늦출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독을 품은 몬스터를 원거리에서 총으로 저격한다는 건 너무 편리한 방식.

까딱하다가는 손서연에게 마저 공적 순위에서 밀릴지도 모른다.

“혹시 내가 있던 던전으로 가 볼 생각은 없냐? 거긴 오크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

“없다.”

이 얄미운 자식은 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왜? 가다가 길 잃을까 봐?”

“그만해라. 대가리 벌집으로 만들어 버리기 전에.”

손서연의 눈동자가 무려 1초나 흔들렸다.

평소 이 녀석의 감정 변화 폭을 생각하면 놀라운 결과.

역시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니까 쉽게 흥분한다.

작전의 절반은 성공했다.

“그럼 절대 날 따라오지 마라.”

“미친놈.”

이를 앙다문 것이 느껴진다.

아마 날 따라올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보스가 있는 방향을 향해 먼저 발을 내딛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손서연은 보스에 대한 파악도 못 했을 테니까.

“간다!”

난 손서연을 보며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떠나 버렸다.

* * *

<초급 검술 Lv.3가 발휘됩니다.>

휘이익!

검격을 펼쳐 나가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스콜피온의 공격력 때문이 아니다.

이놈들의 몸체를 가르고 나면 어김없이 독물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걸 온몸으로 맞으면 <상태 이상>에 걸리게 된다.

서걱!

일단 다리를 자른 후.

쑤우우욱!

조심스럽게 검을 밀어 넣는 것이 최선.

이미 스콜피온은 생을 다한 채 푸욱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검을 빼낼 때도 조심해야 한다.

자칫 확 잡아 빼기라도 하면 검에 묻은 독물이 튀거나 몸체의 독이 빠져나올 수 있다.

“후우.”

그렇게 나는 한 땀 한 땀 공을 들이며 스콜피온들을 사냥해 나갔다.

생각해 보면 오크 사냥이 진짜 쉬웠던 것이었다.

타아아아앙!

저 멀리서 손서연이 내뿜는 총성이 들린다.

그 녀석에겐 스콜피온은 상성이 아주 좋은 사냥감이다.

방어력이 낮아 원거리에서도 쏘는 것도 큰 효과를 발휘한다.

[당신의 현재 공적치는 3위입니다.]

망할.

결국 손서연에게도 역전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크게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결국 이 던전의 보스를 상대하는 건 내가 될 테고, 2위 탈환까지는 어렵지 않을 테니까.

문제는 이미 하나의 보스를 잡아 버린 오윤남이다.

* * *

이 던전에서 나는 은밀하게 활약할 수 있었다.

그 이유가 조금 안타깝기는 하다.

소설의 원래 스토리대로 이 던전 속의 다른 생도들은 이미 죽어 버렸으니까.

생도들은 스콜피온의 독에 너무나도 쉽게 당해 버렸다.

던전 폭주가 일어나기 전, 이곳은 흔하고흔한 E급 던전이었지만, 독의 등장은 판도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이설 씨는 잘 해내고 있을까?”

채이설은 손서연과 함께 9조에 배정되며 이 던전 속으로 들어왔다.

일단 이 던전의 콘셉트를 보고 나니 안심은 된다.

스콜피온은 독만 빼면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몬스터.

힐러인 채이설은 치유 능력이 있으니 독에 중독되어도 쉽게 <상태 이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던전 폭주가 일어났음에도 상성상 그녀에게 대단히 어렵지 않은 곳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스콜피온 킹.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였다.

“더럽게 크네.”

전갈 보스의 크기는 무려 코끼리만 하였다.

아마 엄청난 양의 독을 품고 있을 거란 짐작도 가능했다.

근접전을 펼쳐야만 하는 나에겐 상성이 좋지 않은 녀석이다.

추르르릅!

놈에게선 아낌없이 독물이 쏟아져 나왔다.

졸개 전갈 놈들과는 확실히 클라스가 다르다.

나는 불굴의 검으로 마력을 일으키며 나를 향해 튀어오는 독물들을 막아 냈다.

추르르릅!

그러자 바로 이어지는 보스 놈의 2차 공격.

저놈이 가진 독물의 양과 내 마력의 양을 빠르게 가늠해 보았다.

“내가 져.”

물량으로 맞불을 놓으면 왠지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놈과의 거리를 벌렸다.

조금만 거리가 붙어도 녀석의 마르지 않는 독물 공격이 펼쳐질 테니까.

그리고 아직 저 보스 몬스터의 전력은 다 드러나지도 않았다.

순간적으로 내뿜을 수 있는 독물의 양은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게 되자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타아아아앙!

멀리서 손서연이 일으키는 총성이 들려왔다.

하여간 엄청 성가신 녀석이다.

손서연이 스콜피온 킹을 발견이라도 하게 되면 곤란해진다.

원거리 저격을 감안하면 거리 따윈 상당 부분 무의미해져 버릴 수 있다.

“후우.”

승부를 걸어야 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최대한 신속하게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

이곳을 거쳐 또 다른 던전까지 이동하려면 지체할 시간이 없다.

사실 확실한 방법이 있기는 하다.

퍼펙트 실드.

서브 퀘스트를 클리어하며 얻은 일회용 아이템.

그 어떤 공격이든 1회에 한해서는 완벽한 방어를 가능하게 해 주기에, 스콜피온 킹의 독물 공격도 가뿐히 무력화시켜 줄 것이다.

여기서 쓰기엔 조금 아깝긴 하지만 더 큰 것을 위해서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결정을 내렸으니 신속한 실행만이 남았다.

<초급 검술 Lv.3이 발휘됩니다.>

나는 스콜피온 킹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혔다.

단번에 녀석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두 동강 낼 계획이었다.

추르르르르릅!

역시.

엄청난 독물이 폭포수처럼 밀려왔다.

저런 무식한 공격에 맞는다면 그대로 몸이 녹아 버릴지도 모르겠다.

<퍼펙트 실드를 사용합니다.>

<상대의 모든 공격을 무력화시킵니다.>

순간 내 몸 주변에 황금빛 기류가 감돌며 퍼펙트 실드가 생성되었다.

밀려드는 독물의 폭포가 실드에 막혀 사르르 소멸되어 버렸다.

일회성이지만 그 효과는 가히 사기적이다.

그리고 이제는 반격의 찬스.

녀석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기에 빈틈을 너무나도 크게 노출했다.

나는 몸을 숙여 녀석의 뱃가죽 아래쪽을 파고들었다.

사아아악!

여덟 개의 다리 사이를 통과하며 녀석의 배에 직선을 그었다.

뱃가죽이 벗겨지는 소리는 경쾌하기만 했다.

제아무리 보스라고 해도 전갈은 전갈. 내구력은 형편없었다.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였습니다.]

[당신의 현재 공적치는 2위입니다.]

내심 1위까지 기대했는데, 역시 오윤남 녀석이 만만치 않았다.

“징한 놈.”

하지만 내겐 아직 1개의 포털이 더 남아 있었다.

역전의 가능성은 차고도 넘친다.

- 30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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