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미궁?
미궁이란 건 이 소설 전체에 걸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설정이었다.
주인공 오윤남 역시 이 미궁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가 무한 회귀를 반복하면서도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장소.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이곳은 작가가 만든 장소가 아니라는 것.
순간 소름이 밀려왔다.
“형! 형도 메시지 봤죠?”
“어.”
“처음이에요! 제가 탐색 스킬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찾아낸 건! 그리고…….”
옆에서 고용우가 흥분하며 떠들기 시작했다.
계산에 전혀 없던 사건이 내 앞에서 펼쳐지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분명한 건 이 미궁이란 걸 건너뛰더라도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거라는 것이다.
미궁을 발견한 이 상황은 그야말로 이레귤러라고 할 수 있으니까.
안전빵을 노린다면, 그냥 지나쳐야겠지만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밀려왔다.
이 미궁은 누가 만들었으며, 존재의 목적은 무언인가?
많은 의문들이 내 안에서 요동쳤다.
이미 마음속에서 결론은 내려졌다.
“용우야. 결정해. 날 따라올지 아니면 여기서 기다릴지.”
“형! 참고로 이거는 제가 발견한 건데요?”
역시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탐험가란 직업을 달고 여기서 빠지는 건 말이 안 된다.
“조심해. 이곳에 뭐가 있을지는 짐작도 안 되니까.”
“네!”
소설에서는 단 한 번도 서술하지 않은 미지의 장소.
우리는 주저 없이 포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미궁에 입장하였습니다.]
[길을 잃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일단 메시지를 들으니 안심은 됐다.
고용우의 탐색 스킬과 내 절대 감각이 있다면 이곳에서 헤맬 일은 없을 테니까.
내 절대 감각도 드디어 무언가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뭔가 다른 종류의 힘을 가진 생명체.
몬스터와는 확연히 달랐다.
“가 보자. 저 멀리 누군가가 있어!”
“네!”
이 정도의 기운을 풍겨 내는 존재라면 분명 우리가 이곳으로 들어온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겁나지는 않아?”
“살짝요. 그래도 궁금한 건 더 못 참죠.”
이 게임 시스템이 우리에게 부여한 이 빌어먹을 모험심은 위험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든 것만 같다.
나와 고용우는 각자의 스킬을 발휘하며 미궁 깊은 곳까지 걸어 들어갔다.
* * *
“역시 휴먼이로군.”
“겁도 없이 여길 들어오다니!”
“그냥 기억을 삭제시킨 다음에 쫓아내 버리자.”
미궁의 끝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이족 보행의 괴생물체였다.
인간과 거주 형태가 비슷했으며 심지어 인간의 언어를 할 수 있는 이종족.
머릿수는 일곱이고 키도 내 허리 정도밖에 오지 않는 게 꼭 백설공주에 나오는 일곱 난쟁이들 같은 모습이었다.
<젬바젬바>
종족: 요정
레벨: 134
HP: 100%
MP: 680
체력: 255 근력: 234 민첩: 216 감각: 288
스킬
<제작> <수리> <리모델링>
뭐야 이게!
일곱 명 중 한 녀석의 정보를 스캔해 봤는데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말도 안 나오는 능력치에 놀랐고, 이런 녀석이 요정이라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요정이라 하면 드레스 계열의 옷을 입고 날아다니는 팅커벨 같은 이미지가 아니었던가.
“혹시 저희가 이곳에 온 게 실례되는 일이었습니까?”
나는 정중하게 물었다.
이 녀석들이 나쁜 마음이라도 먹는다면 나와 고용우는 저항 한번 못 한 채 바로 저승행일 테니까.
“어! 많이 실례되는 일이야. 네 녀석의 기억을 부분적으로 삭제하는 게 꽤 골치 아픈 일이거든.”
이들의 반응으로 보건대 일단은 안심해도 괜찮을 것 같다.
우리의 침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해칠 의도는 전혀 없어 보이니까.
그렇게 마음을 놓으려던 순간 엄청난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젬바젬바! 잠깐만! 여기 이 두 놈 모두 등장인물이 아니야.”
쿰이라는 녀석이 우리를 보며 다급히 소리쳤다.
등장인물.
이 세상을 소설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단어이다.
“어? 그러네!”
“심지어 이놈 말이야…….”
이번엔 쿰이 딱 나를 지목하며 말을 이어 갔다.
“이놈이 이야기의 큰 줄기를 바꾸어 버렸어! 오윤남에게 별의별 말을 다 해 버렸다고!”
순간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 요정 놈들이 하는 말의 맥락을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고용우는 나를 보며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이들은 소설 속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 녀석들은 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기억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
“너! 너만 잠깐 우리 좀 보자!”
결국 고용우만 남겨 둔 채 나는 이 일곱 놈들의 소굴로 끌려갔다.
나를 삥 둘러싼 모습이 마치 청문회장에 온 기분이다.
젬바젬바라는 녀석이 가장 먼저 내게 물었다.
“너, 정체가 뭐냐? 등장인물도 아니잖아!”
내 기억을 읽을 순 있지만,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까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결국 솔직히 말하는 쪽을 택했다.
다른 설명 가능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알고 계신 것처럼 저는 이 세계관의 등장인물이 아닙니다. 당신들처럼 말이죠.”
“이 자식 봐라?”
결국 이 요정 놈들도 인정한 셈이다.
본인들도 등장인물이 아니란 것을.
“저는 이 세상의 이야기를 읽은 독자입니다.”
“혹시 눈 떠 보니 소설 속이었다. 뭐 이런 거냐?”
“비슷합니다.”
“이걸 믿어? 말어?”
쿰이 들고 있던 망치를 빙빙 돌리며 나를 위협했다.
그래 봐야 내가 더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내가 독자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
“이놈이 하는 말, 신빙성 있어 보이지 않냐? 소설 줄거리를 다 아니까 오윤남한테 천기누설을 할 수 있는 거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이놈들끼리 잠시 쑥덕쑥덕거리더니 결론을 냈다.
내 말을 믿어 주기로.
그런데 이놈들, 탑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탑에 종속된 놈들이라면 바로 탑 이야기부터 했을 테니까.
이제는 내가 질문을 해야 할 때다.
“그러는 당신들은 정체가 뭡니까?”
“우리? 빌어먹을 작가 놈 때문에 개고생하시는 분들이라고 해 두지.”
“그게 무슨 의미죠? 저처럼 독자는 아니라는 뜻 같은데 말입니다.”
“독자? 우리가?”
순간, 일곱 요정들은 세상에서 가장 썩은 표정을 지었다.
젬바젬바가 내게 한 걸음 다가와 말했다.
“이런 쓰레기 소설에 독자라는 신성한 이름을 붙이지 말자.”
“일단, 쓰레기라는 말에는 동감합니다.”
이건 내 진심이었다.
공략집의 추천만 아니었다면 차마 1챕터도 넘길 수 없는 쓰레기.
읽는 내내 항마력의 부족을 절감한 바 있다.
이젠 그 소설이 나에겐 또 다른 공략집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 쓰레기. 우린 이 쓰레기 소설의 설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 투입된 요정 수리공들이지.”
삼류 양판소답게 이 소설엔 회수되지 않은 떡밥들과 설정 공백이 무수히 많다.
어떤 방법으로 설정 공백을 수리한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정 놈들이 이 던전에 미궁을 만들어 놓은 이유는 짐작이 되었다.
오늘 3개의 던전이 동시에 던전 폭주를 일으키기 때문.
작가는 그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 버렸으니까 말이다.
내가 그 점을 지적하자 젬바젬바가 맞장구를 쳤다.
“이 자식 봐라? 진짜 꼼꼼하게 본 모양인데?”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요. 저도 괴로웠습니다.”
“괴로운 거 인정!”
갑자기 분위기는 이 소설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되어 버렸다.
이 요정 놈들은 나를 따로 불러낸 목적조차 잊은 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그때 리액션만 좀 쳐 줬을 뿐이고.
“뭐, 얘기는 잘 들었는데 이젠 그만 나가 줘야겠어.”
“그냥 나가라고요?”
“그래, 살려 주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우린 그냥 네놈의 기억만 지운 채로 쫓아낼 생각이니까.”
안 될 말이다.
그럼 지금까지 떠든 수다가 의미 없어지는 거니까.
소설의 주인공 오윤남은 이런 상황에서는 뭐라도 하나는 받아 내며 기연을 싹쓸이해 갔다.
비록 쓰레기 소설이지만 내가 주인공에게 확실하게 배운 점이다.
“설정 공백을 수리한다고 하셨는데, 방법은 찾으셨습니까?”
“그걸 찾았으면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겠냐?”
그럴 줄 알았다.
대화를 하면서 느낀 건데 이놈들 힘만 세지, 머리는 텅 비어 있다.
공백을 제대로 메울 리가 없다. 그러니 작가를 욕할 자격도 없고.
“동시에 폭주를 일으키는 3개의 던전 말입니다, 본래부터 하나의 던전이었다는 설정으로 수리하는 건 어떻습니까?”
“뭐?”
“3개의 던전들을 포털로 이으며 하나로 만드는 것이죠. 그럼 생뚱맞게 3개가 동시에 폭주를 일으켰던 이유도 자연스러워지잖아요.”
“오오! 이놈 봐라?”
참 단순한 놈들이다.
별것도 아닌 의견에도 감탄을 해 주니 고마울 따름.
“그렇게 되면 주인공은 스토리를 훼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3개의 던전을 동시에 클리어해 버리는 것이죠.”
“그럴듯해. 그런데 네놈 말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어. 그렇게 던전의 규모가 커져 버리면 던전 클리어 보상도 함께 커져야 하거든.”
“쿰의 말이 맞아! 그건 우리도 건드릴 수 없는 인과율이지.”
주인공이 작위적인 큰 보상을 받아 버리면 스토리가 꼬인다는 걸 걱정하는 것이다.
뭘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주인공이 꼭 보상을 받으라는 법은 없다.
“그 보상, 제가 받으면 문제는 가볍게 해결될 거 같은데요?”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내가 던전 클리어의 주인공이 되면 자연스럽게 보상은 내 차지가 된다.
이제부턴 설득의 시간이다.
본래는 주인공 오윤남이 가장 잘하는 것이지만, 이빨을 터는 것이라면 나도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내가 현실 세계에서 괜히 영업직으로 근무한 게 아니다.
* * *
요정들의 손짓 한 방에 나와 고용우는 미궁 밖으로 빠져나왔다.
능력치로 보면 괴물보다도 더 괴물 같은 요정 놈들.
약속대로 기억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오늘이 지나면 난 이 소설에서 사라질 것이란 말이 결정적이었다.
“형! 무슨 말이 그렇게 길었어요? 혹시 고문이라도 당한 건 아니죠?”
“그런 건 아닌데 좀 허무하지 않냐? 결국 소득 없이 나와 버렸잖아. 아! 시간 아까워!”
일단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어린 용우에겐 미안하지만,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던전 클리어 보상으로 어떤 걸 안배해 놨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형, 솔직히 말하면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에요. 히히.”
“뭐?”
“이거요.”
고용우가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아까 전 쿰이라는 요정 놈이 들고 있던 망치.
미친 놈! 간덩이가 부은 게 틀림없다.
“야! 설마 슬쩍해 온 거야?”
“형만 데리고 다들 사라지길래요. 이 아이템 정보 좀 보실래요?”
고용우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수리공 요정의 망치>
-등급: 유니크
-효과: 손상된 아이템을 수리할 수 있으며 아이템 강화 시에는 확률을 높여 준다.
-쿨 타임: 24시간
“야! 너!”
“크크크. 필요하실 땐 언제든지 빌려 쓰셔도 됩니다.”
아직 나도 획득하지 못한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
이로써 고용우에 대한 미안함은 덜어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어리고 여린 놈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면이 있을 줄이야.
“잘했다, 인마!”
나는 진심으로 기특한 마음으로 용우 녀석의 등을 두드렸다.
이젠 내 차례다.
이 던전, 클리어만 하면 어마어마한 게 주어지는 보물 던전이 되어 버렸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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