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소설 속 주인공인 오윤남.
오윤남이 무한 회귀자라 해서 모든 미래를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매 회차마다 그가 일으키는 나비효과들은 크고 작은 변화들을 일으키기 마련이니까.
특히 이번 회차는 나비효과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펼쳐지게 된다.
오늘 밤이 딱 그러했다.
그가 모르는 미래, 오윤남에게 위기가 찾아올 예정이었다.
[퀘스트: 아카데미 생도 오윤남을 구출하십시오.]
1. 제한 시간: 1시간
2. 위치: 수변 공원
알림 메시지가 울렸고,
역시 퀘스트 내용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수변 공원이면 마침 이 근처군요!”
“그런데 우리가 오윤남을 구출해야 한다고요?”
뜻밖의 퀘스트에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어제와 오늘의 일을 통해 오윤남의 저력을 확인했고, 그런 그가 위기에 빠졌을 정도라면 정말로 심각한 상황일 테니까.
“퀘스트가 그리 녹록지는 않겠군요.”
서준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소설의 스토리는 이 세계관 최고의 실력자가 나타나 오윤남을 구출하게 된다.
묘한 우연들을 겹치게 만든 <니케의 반지>의 효과였다.
하지만, 이젠 오윤남을 우리가 구출해 내야만 한다.
“혹시 어제처럼 던전이라도 생성된 것일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어제와는 메시지의 방식이 너무 다르니까요.”
채이설의 물음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모두가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존재는 몬스터가 아닌 상위급의 헌터라는 것을.
“그렇다면 설마…….”
“각오 단단히들 합시다. 몬스터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니까.”
수변 공원 쪽으로 이동하면서 나는 우리의 전략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무조건 초반 러시가 중요했다.
오윤남의 힘이 팔팔할 때 승부를 보는 것이 승산을 높여 줄 테니까.
“손서연, 연사 가능하지?”
그녀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원거리에서도 강한 선빵을 날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손서연이다.
“대장 노릇 하지 마라. 재수 없으니까.”
역시 손서연은 나에 대한 감정이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러기에 왜 무모하게 골드 내기를 해 가지고선.
그래도 내 제안을 거부하진 않았다.
어차피 단체 퀘스트였기에 우리는 한배를 탄 셈이다.
적일 땐 무섭지만, 동료가 되니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우리는 빠르게 수변 공원에 접근했다.
쌀쌀한 겨울밤이었기에 인적 없는 황량한 공간. 그곳에 오윤남과 세 명의 괴한이 대치 중이었다.
요약하자면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오윤남은 회귀한 뒤, 아카데미의 양아치 몇 명을 참교육시켰는데 하필 양아치 중 한 명이 국내에서 잘나가는 레드문 길드의 외아들이었다는 것.
이에 분노한 레드문의 회장은 오윤남을 절단 낼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고,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고작 세 명으로 오윤남을 위협하는 건가요?”
채이설이 물었다.
저 세 명이 그냥 세 명이 아니다.
레드문의 회장이 직속으로 키우는 오른팔, 왼팔, 가운데 팔까지 다 출동한 것이다.
소설에서 오윤남은 레드문 회장 앞으로 끌려가 반죽음을 당하고,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구원자가 나타나긴 하는데 오늘은 그 전개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니케의 반지가 소설에서처럼 오윤남에게 행운을 물어다 주진 못할 테니까.
“그래도 늦지 않게 도착해서 다행입니다.”
나는 손에 끼워진 니케의 반지를 바라보았다.
소설에서 본 이 아이템의 능력은 정말 사기적이다.
전력의 열세를 만회할 수 있도록 우주의 행운을 모아 빵빵 터트려 주는 장면도 몇 번 있었다.
니케야, 오늘도 도와줄 거지?
일단 첫 번째 행운은, 예상보다 대치 상황이 길어지며 싸움이 벌어지기 전이라는 것.
바로 근처에 있기도 했지만, 우리는 오윤남의 몸이 상하기 전에 퀘스트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의 작전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였다.
우리의 자력으로만 저 세 명의 괴한을 퇴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나저나 이 거리에서도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밸런스가 참 개판인 설정이다.
고작 아카데미 생도 하나 잡아 오라고 이런 고수를 셋이나 보내다니.
나는 손서연에게 작전을 개시하도록 했다.
“저 셋은 모두 고수야. 이미 우리의 기척은 들켰을 테니 사정거리다 싶으면 바로 쏴 버려.”
“명령하지 마. 그건 내가 알아서 해.”
이런 싸가지.
이런 상황에서도 도무지 져 주는 법이 없다.
타앙!
타앙!
타앙!
미친! 이렇게 바로 쏠 거면서.
적막함 속에 세 번의 총성이 울렸다.
손서연이 나름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저 괴한들이 이 기습에 큰 타격을 입을 거라고는 기대되지 않는다.
일단 거리가 너무 멀어 파괴력이 떨어지고, 저들은 우리보다 훨씬 격이 높은 고수니까.
소설에선 오윤남조차도 맥없이 끌려가야 했을 정도로 저놈들은 강하다. 그런데.
“어?”
예상 못 한 수확이 있는 것 같다.
세 발 중 한 발에서 나름 크리티컬이 터진 모양이다.
오윤남은 곧바로 부상을 입은 한 명에게 궁니르를 던졌다.
소설에선 오윤남의 투창이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저 신화급 무기가 내는 굉음이 이 먼 곳까지 들리는 것만 같았다.
* * *
“쥐새끼 같은 놈들!”
우리의 등장에 괴한들은 살짝 난처한 모양이었다.
딴에는 오윤남을 조용히 처리할 생각이었을 테니까.
선제공격과 더불어 요행 부린 것 몇 가지도 조금은 먹혀들어 간 것 같다.
저들은 아직 우릴 완벽히 제압하지 못했으며, 오윤남은 여전히 건재했다.
휘이이이잉!
오윤남이 쏘아 낸 궁니르가 또다시 괴한의 복부를 찔렀다.
치명적이진 않지만, 야금야금 상대의 체력을 갉아먹기엔 충분했다.
아무리 우리가 허접해 보여도 인원이 무려 열세 명이다.
한 명씩 덤빈다면 한 방 컷으로 당하겠지만,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이곳에 온 게 아니다.
“힐!”
후방의 채이설은 끊임없이 부상자를 치유했고,
타아아앙!
상대가 작은 빈틈이라도 보이면 손서연의 총구는 어김없이 불을 뿜었다.
“아오! 진짜 저 총잡이 년을!”
하지만 그들도 쉽사리 손서연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더 강력한 윤남의 궁니르는 항상 빈틈이 생기기만을 엿보고 있었으니까.
현격한 전력의 열세가 있었지만, 우리는 조직력과 템빨로 잘 맞서고 있었다.
이젠 저 괴한들의 멘탈을 흔들어 놓을 때다.
“검은 양복 아저씨들! 레드문에서 나온 거 다 알고 있습니다.”
“뭐?”
내 말에 세 명의 괴한들은 순간 움찔했다.
어차피 이들은 오윤남을 레드문 회장의 앞에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내가 미리 본인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아주 거슬릴 것이다.
“누구냐 넌!”
“글쎄요. 제가 누굴까요?”
나는 씨익 웃었다.
일부러 뜸을 들이며 침묵을 이어 갔다.
눈짓으로는 손서연에게 신호를 보냈다.
바보가 아니라면 이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된다.
타앙!
타아아아앙!
총의 파괴력이 현격히 강해지는 근거리 공격.
게다가 방심하고 있었으니 충격이 작지 않을 것이다.
“아악!”
손서연이 타깃을 잘 설정했다.
내 눈에도 이놈이 가장 약해 보였다.
연사로 한 놈을 집중해서 팬 건 좋은 선택이었다.
휘이이이이잉!
그리고 오윤남의 궁니르는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허어어업!”
또다시 터진 크리티컬.
니케의 반지가 가져다준 행운인지는 모르겠으나 괴한 한 명이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비록 쪽수가 많긴 했지만 완벽한 언더독의 반란.
순식간에 상황은 2대 14의 싸움이 되었다.
세 명이 두 명이 됐다는 것은 단순히 33퍼센트의 전력 손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싸움에서는 기세가 중요한 법이니까.
“아저씨들 괜찮으시겠어요? 레드문의 박용석 회장님 말입니다. 성격 엄청 급하신 거로 알고 있는데, 꽤 오래 기다리고 계시겠네요?”
“이런 쥐새끼 같은 놈을!”
나는 또다시 녀석들의 멘탈을 건드렸다.
놈들로 하여금 생각이 많아지게 할수록 우리에게 유리하다.
오윤남은 무한 회귀를 통해 수천 년의 심득을 지닌 먼치킨.
분명 그는 이 정도 상황에서는 돌파구를 찾아낼 것이다.
오늘의 내 역할은 오윤남이 활약할 수 있도록 길만 살짝 닦아 놓는 것으로 족하다.
* * *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아슬아슬했다.
제한 시간이었던 한 시간 안에 퀘스트를 겨우 끝낼 수 있었다.
믿기지 않지만 우리는 이 세계관의 고수 세 명을 바닥에 눕히는 데 성공했다.
물론 오윤남의 역할이 가장 크긴 했지만, 다들 잘해 주었다.
투덜대면서도 내 지시를 잘 따라 준 손서연부터, 후방에서 동료들을 보살핀 채이설까지.
“이호영, 넌 뭐 했냐?”
손서연이 뜬금없이 쿠사리를 주었다.
내가 오늘 얼마나 열심히 입을 털었는데 뭐 했냐니.
이건 알면서 일부러 나에게 면박을 주는 거다.
“그래 알았어. 어쨌든 오늘 수고했다, 손서연.”
“갑자기 왜 이래.”
“그런데 여기서 생도 기숙사는 혼자서 찾아갈 수 있지?”
손서연이 은근히 이런 거에 자격지심이 있다.
분명 제대로 열 받았을 것이다.
“죽여 버린다.”
역시. 나의 승리다.
그리고 말은 이렇게 해도 손서연의 길눈으로는 절대로 혼자서 못 찾아간다.
수변 공원에서 아카데미까지 갈림길만 네 개. 게다가 컴컴한 밤이라는 걸 고려하면 해 뜰 때까지도 절대 못 돌아갈 것이다.
결국엔 어차피 졸졸 따라오게 되어 있다.
* * *
그리고 오늘 밤은 약속의 시간이었다.
오윤남과의 독대.
그에게 무한 회귀의 저주를 풀 수 있는 퍼즐 한 조각을 건네야 할 때였다.
“어떻게 알았지? 오늘 일 말이다.”
“살려 줬는데 고맙다는 인사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오윤남이 나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 일은 그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레드문 같은 대형 길드에서 이런 지저분한 일을 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조심해라. 레드문의 박용석은 이렇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니까.”
탑 5층을 클리어한 이후의 오윤남이 문득 걱정이 됐다.
니케의 반지를 내가 가져 버렸으니 그에게는 더 이상 행운의 가호가 없을 것이다.
“고맙다. 오늘 일. 그리고 한 가지만 물어보자.”
“뭘.”
“너도 혹시 회귀자냐?”
오윤남으로선 충분히 품을 수 있는 의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미래를 알고 있다는 암시를 여러 번 주기도 했으니까.
“회귀자는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난 회귀자보다 더한 존재니까.”
“뭐?”
난 소설을 읽었으니, 회귀자보다 세상의 판을 더 넓게 볼 수 있다.
오윤남 역시 내 손아귀 위에서 놀고 있을 뿐이다.
“약속한 하루가 지났으니 알려 주지. 네가 무한 회귀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나야 할 사람과 거쳐 가야 할 장소.”
“말해!”
나의 등장은 소설의 스토리를 상당 부분 바꾸어 놓을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어떤 식으로든 엄청난 나비효과를 일으킬 테니까.
어쨌든 오늘 생성되어야 할 퀘스트는 예정대로 일어났으니, 이제 정보 하나 정도는 풀어도 괜찮을 거 같다.
그리고 내심 한 가지 기대되는 점도 있다.
소설에도 서술된 바 있는 오윤남의 행동 방식.
오윤남은 좋은 걸 받으면 무조건 그 이상의 것을 베푼다.
이놈은 초반부터 기연을 싹쓸이하면서 좋은 아이템은 다 가져갔으며, 그 중엔 분명 내가 쓸 만한 것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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