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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20화 (20/292)

20화

재앙 출현까지 남은 시간 57분.

현재 열려 있는 포털 17개.

남은 몬스터를 몽땅 잡아도 이제 포털은 3개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손서연은 나를 보며 냉소를 지었다.

“초조하냐?”

그럴 리가.

오히려 초조해 보이는 것은 손서연이었다.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한숨을 지었다.

그러고는 애써 간절함을 쥐어짜며 물었다.

“제발 이제는 좀 말해 줘 봐. 네가 연 포털이 몇 개였는지.”

이 부분이 관건이긴 했다.

그녀가 연 포털의 개수를 알 수 있다면 4층에 남아 있는 동료들의 수를 대충 추론할 수 있을 테니까.

줄곧 함구했던 손서연이 결국 사실을 말해 주었다.

“5개.”

순순히 말해 주다니, 많이 쫄리긴 한 모양이다.

한편으론 소름이 돋기도 한다.

지금 손서연이 내 안위를 걱정해 주는 건, 반드시 본인 손으로 나를 죽이고 싶다는 의미였기에.

그나저나 5개면 포털을 더럽게도 많이 열었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계산을 했다.

손서연 5개에 내가 1개, 그리고 나머지 11개.

일단은 희망적인 수였다.

나와 손서연을 제외한 11명이 포털을 한 개씩만 열었다면 딱 이 숫자였으니까.

이제 4층에 남아 있는 것은 우리 둘뿐일지도 모른다.

“네놈들이 모두 약속을 지킨 것이라면, 세 명이 남아 있겠군.”

물론 손서연의 계산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녀는 내가 포털 한 개를 연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야, 손서연. 시간 다 돼 가는데 넌 로비로 안 가?”

이젠 제발 기어들어 가라, 좀.

“그건 내가 알아서 한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포털은 대체 어디서 그렇게 연 거냐?”

손서연이 연 탈출 포털은 잉여롭게도 무려 5개.

난 겨우 하나 발견한 포털을 무더기로 발견하다니,

어쩌면 살성에게는 ‘행운’이라는 특전이 주어지는 게 아닌가도 싶었다.

“포털을 남기는 오크들이 한 곳에 몰려 있었다. 우리가 아까 지나온 저곳에.”

손서연이 손가락으로 위치를 가리켰다.

그런데 우리가 지나온 곳이라니.

뭔가 이상했다.

“우리는 저기를 지나친 적이 없는데?”

“그럴 리가 없다. 저기 보이는 모퉁이의 편의점. 분명 우리가 지나온 곳이다.”

그녀는 인벤토리에서 주섬주섬 다이어리를 꺼내 펼쳤다.

뭔가 쎄한 느낌이 든다.

“너 혹시 길치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왠지 말이 되는 거 같은데.

다이어리를 바라보는 눈빛부터가 뭔가 어설프다.

그러고 보니 유난히 활동 반경이 좁았던 것도 수상하고.

나는 절대 시각을 일으켜 그녀가 펼친 다이어리를 응시했다.

깨알같이 적혀 있는 글자들이 확대되어 내 눈앞에 펼쳐진다.

빼곡하게 적혀 있는 정보들.

주변 건물들에 대한 묘사였다.

역시 길치일 확률이 높다.

“솔직히 고백해 봐. 길 잃은 어린 양아.”

그녀의 총구가 나를 향해 올라왔다.

“계속 까불면 죽여 버린다.”

나이도 한참 어려 보이는 게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어쨌든 이쯤에서 손서연과는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

내가 그녀의 사냥을 막는 동안, 동료들도 무사히 로비로 귀환한 것 같으니 이젠 나만의 사냥 타임을 가질 시간이다.

* * *

쑤우우욱!

불굴의 검이 오크의 심장을 꿰뚫으며, 또 한 번 사냥에 성공했다.

이제는 무난하게 3초 컷이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업은 순조로웠다.

“이제 정말 아무도 없나?”

포털이 열렸다는 메시지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손서연도 사냥을 멈추고 내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숨어 있었다.

그냥 모른 척해 주고는 있는데, 언제까지 날 지켜볼지 모르겠다.

이제 남은 시간은 23분.

이마에 반점이 있는 오크를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으니, 내가 열어 둔 포털로 슬슬 돌아가야겠다.

그렇게 사냥을 멈추고 떠나려는 순간.

“어이! 거기!”

손서연이 나를 불러 세웠다.

아까부터 계속 나를 엿보고 있더니만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왜!”

“내가 포털을 열어 둔 곳. 어쩌면 그 주변이 포털을 남기는 오크가 많은 곳일지도 모른다.”

합리적인 추론이긴 했다.

그녀는 거기서 포털을 5개나 열었으니까.

“그래서?”

“……?”

퉁명스러운 내 대답에 손서연의 입가가 부르르 떨린다.

딴에는 나에게 도움을 주려는 모양인데,

“내 포털은 내가 알아서 한다.”

나는 그녀의 말투를 흉내 내며 대답했다.

포털을 확보해 놓고서 굳이 그녀에게 빚을 질 이유는 없으니까.

“그럼, 나와 같이 가지 않겠다는 말인가?”

“그래.”

나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나만 묻고 싶은 게 있다.”

“뭘?”

“길 좀 묻자.”

결국 이거였군.

어이가 없다.

이런 길치가 서바이벌 미션에서 동료들을 몰살시켰다고?

* * *

로비로의 귀환.

내가 포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가 나를 격하게 반겼다.

“이호영 씨!”

“드디어 돌아왔군요!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했습니다.”

재앙 출현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4분.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였다.

심지어 김세용도 나를 꽤 걱정했던 모양이다.

“호영이 형!”

“왜 인마!”

“형이 싸움은 잘해도 운빨은 좆망인가 보네.”

“문 닫고 들어오는 게 진짜 운빨인 거 모르냐?”

나는 씨익 웃어 주며 사람들의 수부터 셌다.

하나, 둘, 셋…… 열둘.

모두 있었다.

손서연을 포함해서.

길 안 잃고 잘 왔구나. 그나저나 괜한 호의를 베풀었나?

후회도 살짝 되긴 하는데, 일단 빚 하나 만들어 둔 셈이니 잘한 일일 거다.

게임 시스템의 가호를 받는 살성이 길 헤매다 죽는 것은 말도 안 되니까.

멀찌감치 나를 보는 그녀의 표정이 뭔가 묘하다.

“어어! 저기 좀 보세요!”

누군가가 외쳤다.

순간 로비의 상공 위에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홀로그램 속에 비친 장면은 방금 전까지 우리가 있던 폐허의 도시.

도시 상공 하늘에는 웬 거대한 괴물이 나타났다.

“드래곤?”

인간이 상상 속으로 만들어 낸 최강의 생명체.

그 드래곤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어 우리들 눈앞에 나타났다.

“설마 저게 4층의 재앙이었어?”

그 의문의 대답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드래곤이 입에서 쏘아 낸 것은 거대한 불덩어리.

잠시 후 도시는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저곳에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함이 밀려왔다.

지금 하늘을 유영하고 있는 저 드래곤.

과연 레벨은 몇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인간인 우리가 레벨을 끝없이 올린다면 저놈을 사냥하는 게 가능한 것인지도.

물론 말도 안 되는 공상일 뿐일 지도 모른다.

우린 아직 총 한 발에도 벌벌 떠는 나약한 생명체니까.

“호영이 형. 레벨업 했네?”

김세용이 신기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현재 나의 레벨은 여전히 3.

“2에서 3으로 올랐으니 형 엄청 세진 거 아니야?”

비약적인 증가이긴 한데, 한편으론 어이가 없다.

지금 다른 플레이어들은 전부 레벨이 두 자릿수인 판국에.

어쨌든 레벨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존.

이번 4층에서는 전원이 생존했다는 점에서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그 점은 모두가 자축할 만한 것이었다.

“이호영 씨. 이번에도 당신의 제안이 주효했어요. 모두가 이기심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당신이 중심을 잘 잡아 둔 덕에 모두가 살았습니다.”

서준호의 낯간지러운 칭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명도 배신하지 않고 포털을 한 개씩만 열었다는 것.

동료들을 향한 상호 신뢰를 쌓았다는 것은 생존 다음으로 우리가 얻은 소득이었다.

아, 물론 한 명 빼고.

“야, 손서연. 넌 할 말 없어?”

무슨 심각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손서연은 내가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무안 좀 주려고 했더니만.

그리고 그 순간 메시지 알림음이 있었다.

[지금부터 골드 정산을 시작하겠습니다.]

[포털을 연 개수와 사냥의 횟수, 4층에 머문 시간 등을 합산하여 정산금이 지급됩니다.]

분명 이번에도 난 상위권일 것이다.

비록 포털은 한 개밖에 열지 못했지만 나머지 두 영역에선 내가 최고이니까.

[4300골드를 정산받았습니다.]

역시!

어쩌면 손서연이 1등이 아닐까도 싶었지만 그녀의 골드 정산은 3700에 머물렀다.

내가 사냥을 압도적으로 많이 하긴 했나 보다.

“호영이 형! 역시 이번엔 골드 좀 짭짤하게 만진 거야?”

김세용 이놈은 항상 내 골드에 관심이 많았다.

사실 골드 말고도 김세용에게 모든 것의 기준은 바로 나였다.

나와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힘이나 위치를 가늠하고 있는 거 같은데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았다.

미안하지만, 너랑 나랑은 클래스가 다르다.

“말도 마라. 완전 허탕이야!”

“왜! 4층에 제일 오래 머물렀잖아.”

“몰라. 막판에 가서야 포털을 겨우 열은 게 마이너스 요인인가? 암튼 나 개털임.”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김세용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놈은 이번에도 정산받은 골드를 근력에 투자했다.

저놈도 근력 하나는 조만간 한계 스탯에 도달할 것 같다.

사실 내가 지금 두 영역에서 딱 그런 처지다.

근력과 감각. 40을 찍고 나니 더는 상승시키는 게 불가능했다.

레벨업 포인트뿐만 아니라 골드도 먹히지 않는다.

한계 수치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풀릴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모두 플레이들이 한계 스탯에 도달하고 나면 남는 것은 스킬빨과 템빨. 결국 손서연을 상대로는 승산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 보유 골드가 20000이 넘어가며 한 등급 더 높은 상점 창을 열람할 수 있었다.

내가 찾는 것은 스킬업 아이템이었다.

레벨이 3으로 오른 초급 검술도 물론 현시점에선 사기적으로 훌륭했지만, 어디까지나 초급은 초급일 뿐. 나에겐 더 높은 경지가 필요했다.

손서연은 언제 내 뒤를 칠지 모르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레벨 4의 초급 검술이나 중급 검술과 관련된 스킬업 아이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응?”

그런데 재미난 아이템 하나가 눈에 띈다.

하딘의 반지.

직업 칸에 슬롯을 하나 더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이 있었다.

사행성 넘치게도 직업은 랜덤 부여.

거기에 가격은 무려 20000골드.

전 재산을 다 털면 살 수 있겠지만, 너무 큰 도박이었다.

“탐나기는 하는데, 그냥 운빨을 믿고 지르기는…….”

게다가 지금 골드를 쟁여 두고 있는 것은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

일단은 보류해 두어야겠다.

다른 동료들은 이번에 얻은 골드로 저마다 쇼핑 중이었다.

부족한 피통을 보강하는 이들도 있었고, 스킬 수준을 끌어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저들의 성장을 눈으로 확인하니 괜히 내 마음이 흐뭇해졌다.

내 눈 앞에서 숫자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게, 마치 육성 게임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5층 미션 시작까지는 이제 24시간 남았습니다.]

[그럼 잠시 로비의 배경을 바꾸어 보겠습니다.]

알림음이 끝나자, 로비에 변화가 일어났다.

공간이 넓어지고 곳곳에 책장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뜬금없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물론 이곳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5층 미션이 시작되기 전까지 여러분의 로비는 도서관이 되었습니다.]

도서관.

충분히 그렇게 부를 만했다.

길게 펼쳐진 책장에 빼곡하게 꽂혀 있는 로비의 모습은 영락없는 도서관이었다.

[지금부터 책을 고를 수 있습니다.]

[제한 권수는 단 1권. 책의 내용은 절대 발설할 수 없으며, 기회는 한 번뿐이니 신중하게 선택하십시오.]

[이곳의 모든 책은 5층 미션이 시작되면서 사라집니다.]

“…….”

“뭐야! 설명은 이걸로 끝이야?”

더 이상의 메시지는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직감하고 있는 한 가지.

절대 허투루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다들 책장 앞으로 우르르 달려들었다.

도서를 검색할 수 있는 컴퓨터는 없지만, 책장 위에는 카테고리 란이 있어 원하는 종류의 도서를 읽을 수 있도록 안배되어 있었다.

분류는 다양했다.

역사, 의학, 검술, 창술, 권법, 궁술, 암살, 독공, 혼령술…….

심지어 소설책도 있었다.

다들 신속하게 책장 앞에 자리를 잡았다.

카테고리의 선택 기준은 확실했다.

이 게임 시스템에서 부여받은 자신의 직업. 그것 외에 다른 것을 고려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었다.

그리고 그 의미 없는 짓을 할 예정인 단 한 사람.

바로 나였다.

[공략집: 소설 카테고리 쪽으로 가서 ‘SSS급 회귀자의 기연 싹쓸이’를 고르십시오.]

뭐야.

지금 이 상황에서 한가롭게 소설이나 읽으라고?

- 2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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