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김세용이 가져온 정보들은 꽤나 쏠쏠했다.
상대편 플레이어들은 총을 다루는 리더를 포함해서 총 열세 명.
그들의 레벨은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며, 성문은 부숴진 뒤 2초 후에 리셋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성문에서 제단까지의 거리는 대략 6, 70미터라고 했던가?”
“어.”
공성전의 클리어의 조건은 제단의 점거.
상대편은 무슨 생각인지 성벽에서 거센 저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김세용이 단독으로 쳐들어간 이유도 있겠지만, 성벽에 두 명만 배치한다는 것은 공성전의 일반적 특징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었다.
“총이 있으니 누구와 싸우든 자신 있다는 걸까요?”
서준호가 내게 물었다.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죠.”
누가 성문 안으로 쳐들어오든지, 총으로 쏴서 끝낼 수 있다는 확신. 왠지 그런 여유를 가지고 있는 것만 같다.
[남은 시간: 20시간 8분 52초]
“제단을 점거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 공략집이 설명을 해 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지만 직접 부딪혀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다.
“우리 전원이 그 위로 올라가야 하는 건 아마 아닐 겁니다. 어쨌든 그 위에 있는 상대방의 리더를 끌어내리는 것이 우선이겠죠.”
“할 수 있겠죠? 아직 20시간 넘게 남았으니 몇 번은 도전해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하지만 그 질문에 나는 단호히 대답했다.
“기회는 단 한 번입니다. 첫 도전에서 실패하면 두 번은 없습니다.”
상대방이 여유를 보이고 있는 지금이 최적의 기회라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아마 귀환석의 용도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죽음을 불사하고 싸울 수 있는 우리들과는 멘탈 자체가 다르다는 의미.
머릿속으로 전략은 대충 세워 놓았다.
일단은 현질부터 좀.
[칼리아의 가죽옷을 구입하였습니다.]
이걸 사려고 무려 3000골드나 지불했다.
뼈아픈 지출이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이것이 가성비로는 최고의 선택이다.
“그 가죽옷, 지금 사신 거예요?”
“네. 방탄복으로 쓰려고요.”
어쩌면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이템 설명에 따르면 이 가죽옷은 낡은 검에도 쉽게 찢어지는 재질로 만들어졌으니까.
즉, 물리 방어력이 쓰레기라는 의미.
하지만 내 가설이 맞다면 이 아이템은 훌륭한 방탄복이 될 것이다.
“이거, 마력 방어력을 무려 50퍼센트나 증가시켜 주는 아이템입니다.”
나는 자랑하듯이 말했다.
“상대방이 가진 건 총인데요?”
“그 총은 금속으로 된 총알을 발사하는 원리가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설마…….”
“네. 세용이가 맞아 봐서 잘 알겠지만, 그 총은 마력을 주입해서 쏘는 방식이겠죠. 그렇지, 세용아?”
“어? 어어!”
“왜? 갑자기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지금 우리의 운명이 달려 있는 문제란 말이야, 인마!”
내가 닦달하자 그제야 김세용의 목소리가 커진다.
“마력 덩어리 맞아! 아마 맞을 거라고!”
“그럼 됐어.”
나 역시 확신했다.
이런 게임 시스템에서 현대 화기가 웬 말인가.
무조건 마력총이어야만 했다.
무려 3천 골드나 주고 구입한 이 가죽옷. 딱 다섯 번만 마력 충격을 방어해 주는 소모성 아이템이다.
“다시 말하지만, 3층에선 죽어도 죽지 않아요. 그러니 겁내지 말고 싸웁시다.”
“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죽음이 아닌 패배.
다행히 사기는 높았다.
“그럼 출발합시다.”
* * *
우리는 김세용을 길잡이로 내세워 산 비탈길을 올라 마침내 성벽 앞에 당도했다.
김세용의 말대로 두 명의 플레이어가 성벽 위에서 빼꼼 얼굴을 내민다.
“또 본다? 새끼들아! 크크크!”
김세용이 위를 향해 손을 흔들며 성문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는.
퍼어어억!
언제 봐도 호쾌한 김세용의 돌주먹이 성문을 때렸다.
[성문의 내구력이 감소하였습니다. (81%)]
김세용의 말대로 성문은 물리적인 벽이 아니었다.
일종의 포털 같은 것.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세용아! 위!”
바위에 가까운 돌덩이들이 김세용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와! 씨!”
다행히 김세용이 가까스로 피했다.
저 돌덩이를 맞아서 죽지는 않겠지만, 상당한 타격은 될 것이다.
“뭐야, 새끼들아! 아까랑은 다르잖아!”
김세용의 성난 외침.
성벽 위의 두 사람은 말없이 활을 들어 올렸다.
나는 지금 현자의 상태창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이 두 녀석 모두 궁수형 플레이어.
이제 적극적으로 성벽 방어에 나설 생각인가 보다.
단 두 명으로 성벽을 방어한다는 건 여전히 이해가 안 가긴 하지만.
김세용이 슬글슬금 뒷걸음을 쳤다.
분명 저 화살은 성문으로 접근하는 자를 향할 것이다.
이럴 때 김준성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우리에겐 더 이상 궁수형 플레이어는 없다.
“나와 봐. 세용아.”
가장 안전한 방법은 내가 직접 나서는 것.
나는 불굴의 검을 세우며 성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초급 검술 Lv.3이 발휘됩니다.]
어차피 물리적인 성문이 아니니, 둔탁한 것으로 칠 필요는 없다.
가장 파괴력이 큰 공격으로 임하면 될 터.
레벨을 3으로 올린 초급 검술의 위력을 선보일 시간이었다.
사아악!
[성문의 내구력이 감소하였습니다. (11%)]
아슬아슬하게 한 방 컷이 아닌 게 좀 아쉽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몸의 감각이 곤두선다.
예상대로 화살 두 발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챙!
챙!
내가 생각해도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두 발 모두를 쳐 냈다.
한 발 정도는 맞을 각오도 했는데.
그럼 이제 신속하게 성문부터 부수자.
사아악!
[성문이 열렸습니다. 성문 리셋까지는 2초 남았습니다.]
성안으로 진입하자 저 멀리 제단이 보인다.
나는 절대 시각을 일으켜 제단 위를 확대해 보았다.
김세용이 말했던 그 총 가진 리더놈. 아니 ‘년’.
어떤 녀석인지 궁금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년이기에 벌써부터 레벨 13을 달성했는지.
“이렇게 어리다고?”
2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외모.
기껏해야 대학교 캠퍼스를 누리고 있을 나이다.
<손서연(살성)>
직업: 암살자
레벨: 13
HP: 100%
MP: 150
체력: 23 근력: 22 민첩: 23 감각: 30
스킬
<저격 Lv.3> <살성의 눈>
보유 골드 : 16000
역시 살성이 맞았다.
다행히 스탯은 내 쪽이 근소하게 우위에 있다.
물론 저 보유 골드를 다 써 버린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일단 넌 나중에!”
우선은 저 성벽 위의 두 녀석부터 처리해야 했다.
여전히 내 동료들은 화살 견제에 막혀 성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였기에.
휘익!
나를 향해 화살이 날아온다.
이번엔 한 발.
나머지 한 놈은 성벽 밖을 견제하느라 정신이 없다.
챙!
아까 두 발을 다 쳐 낸 건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가볍게 성벽 위로 올라갔다.
[초급 검술 Lv.3이 발휘됩니다.]
솔직히 이런 순간이 오면 머뭇거릴 줄 알았다.
이들은 몬스터가 아닌 나와 같은 사람.
심지어 악인인지 선인인지도 알 수 없다.
살인마 김준성을 상대할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
“커어억!”
두 녀석 모두의 옆구리를 찔렀다.
손속에 정을 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이놈들이 죽어 버리면 귀환석을 통해 시작의 위치에서 부활을 할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전략에 문제가 되기 때문.
“살려는 드릴게.”
일단은 두 사람의 활을 인벤토리에 챙겼다.
어차피 궁술 스킬이 없는 한 내겐 필요 없는 아이템이지만, 혹시나 해서.
그렇게 두 사람을 남긴 채 돌아서려던 참이었다.
“차라리 죽여!”
“뭐?”
“우릴 죽이고 가라고!”
죽여 달라고?
이건 좀 의외의 반응이다.
“왜지?”
“이렇게 되면 어차피 우린 저 미친년한테 죽을 테니까!”
미친년이라…….
설명을 안 들어도 누군지는 바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저 멀리 제단 위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흑발의 여자.
그 순간 그녀의 팔이 올라온다.
설마 이 거리에서?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타앙!
총성과 함께 아랫배가 뜨끈해졌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쏴 버렸다.
이건 대응하고 자시고 할 게 없다.
현재 수준에선 쏘면 그냥 맞는 수밖에.
“하아!”
김세용의 증언은 사실이었다.
총에 맞았다기보다는 무언가에 더럽게 세게 맞은 느낌.
심지어 칼리아의 가죽옷을 입고 있는데도 그렇다.
마력 방어력 50% 증가라는 옵션도 무색해질 만큼 아팠다.
“어쨌든 마력탄은 맞네.”
총알의 실체는 없었다.
나는 서둘러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맞은 곳에 충격이 올라오며 호흡이 거칠어진다.
새삼 김세용의 정신력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방어구 없이 오늘 이걸 무려 세 방이나 맞고 왔으니까.
빼꼼히 고개만 내밀어 손서연을 바라보니 그녀의 마력이 줄어들어 있었다.
현재의 마력은 140.
마력탄 한 방에 소모되는 마력이 10이다.
앞으로 열 네발을 더 쏠 수 있다는 의미.
“아직 마력 회복템은 구하지 못했을 거야.”
나와 같은 등급의 상점창을 이용했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일단은 내 동료들이 성안으로 합류한 후 함께 접근을 해야 한다.
저 여자도 마력탄의 사용에 제한이 있는 만큼 펑펑 쏴 대진 못할 테니까.
퍼어어엉!
그 순간 성문이 부숴지는 소리가 들렸다.
* * *
우리는 상대편 플레이어들이 몰려 있는 제단을 향해 뚜벅뚜벅 접근했다.
여전히 손서연은 총을 쏘지 않고 우리를 바라만 보았다.
사람은 열두 명. 총알은 열네 발.
머리가 복잡할 것이다.
총을 맞고도 이렇게 난 태연하게 걸어가고 있으니까.
심지어 내 레벨은 2.
과연 그녀는 나를 요주의 인물로 찍었을까?
타앙!
그 대답은 No였다.
결국 그녀의 총구는 안세창을 향했다.
우리 팀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 중 하나.
“허업!”
괴롭게 토해 내는 신음 소리.
곧바로 채이설의 힐 지원이 들어갔다.
안세창은 순간적으로 빈사(瀕死)에 빠졌던 터라 완전히 회복되진 못하였다.
진짜 사기적인 파괴력이다.
안세창의 레벨은 9.
정상적인 과정을 거쳤다면 거의 한계 수준의 레벨임에도 총 한 방에 맥을 못 춘다.
“쫄 거 없습니다. 계속 전진!”
우리는 힐러의 존재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은 채 유유히 걸어갔다.
여기서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 그런 믿음으로 우리는 처음 다짐한 전사의 심장을 그대로 유지했다.
타앙!
또 한 번 총성이 울렸다.
이번에는 서준호.
그 역시 레벨9의 플레이어다.
“우우웁!”
고레벨들의 수난 시대.
어쩌면 몇 명은 저 총을 맞고 죽을 것이다.
지금은 대열을 갖춰 상대편을 향하여 이동하고 있지만, 곧바로 난전이 펼쳐질 게 분명하다.
결국엔 채이설이 모두를 커버할 순 없다는 의미.
하지만 다들 죽는 것 정도는 이미 각오했다.
김세용은 좋은 경험이라고도 얘기했고.
거리가 좁혀지자 손서연의 얼굴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흑색 단발에 창백한 피부. 무표정한 얼굴.
하필 미인이다.
웬만한 대학에서 과톱 정도는 충분히 할 만큼.
“가!”
그녀의 짤막한 한 마디.
제단 근처에 몰려 있던 플레이어들이 우리를 향해 우르르 달려들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난전이 펼쳐지면, 손서연의 총에 대비하기가 더 어려워질 터.
힐러 역시 노출될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
“가즈아!”
죽음도 불사할 수 있는 용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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