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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5화 (15/292)

15화

공성전에서는 방어를 하는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더군다나 시간 제한은 단 24시간.

저 요새 위의 적들은 하루만 버텨도 승리를 가져갈 것이며, 반대로 우리에겐 절대적으로 가혹한 조건이었다.

“왜 하필 우리가!”

왜 하필 우리가 공격하는 역할을 맡았는지는 나도 모른다.

우리 쪽 전력이 더 강해서?

그게 아니면, 2층 서바이벌 미션에서 우리가 꼼수를 부린 것에 대한 단죄로?

아직 알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어쨌든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처음 보게 될 상대편과 서로 치고 받고 싸워야만 한다.

2층에 이어 3층에서도 살인을 해야만 하는 끔찍한 조건.

“그래도, 부담은 덜할 겁니다. 3층에서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걸 지금 확인했으니까.”

김세용은 베어진 목을 매만지며 신기해했다.

기간제 아이템인 귀환석.

이것의 용도를 모두에게 확인시켜 둘 필요가 있었다.

아직 상대편은 이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모를 터. 아주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이호영 씨. 미리 언질을 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나에게 검을 겨누었던 서준호가 곧바로 검을 거두고는 사과했다.

“미리 언질을 했다면 다들 말렸을 겁니다. 귀환석의 용도에 대한 확신이 없었을 테니.”

“그건, 그랬겠지만…….”

“그리고 서준호 씨가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당신이 나에게 겨눈 그 검에 죽었어도 저 역시 살아났을 겁니다.”

나는 서준호에게 가벼운 미소를 지어 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나를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각오를 보여 줬으니까.

“형! 내가 말했지? 난 형이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한다고.”

김세용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말을 했다.

뻔뻔한 자식.

그래도 마침 잘됐다.

“어, 그래서 말인데 세용아. 부탁 하나만 더 하자.”

“부탁?”

내 말에 김세용이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이미 양손이 목에 가 있는 걸 보니 이번엔 순순히 목숨을 내주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내가 설마 네 목을 또 자르겠냐!”

“정말? 그럼 뭔데!”

“혼자 요새까지 가서 정찰 좀 하고 오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지형이나 상대편 플레이어들의 정보를 알아 두면 좀 더 효과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요새 위에는 몇 명이나 있는지, 상대방의 레벨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어떤 방식으로 요새를 방어하는지. 점거해야 하는 제단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았다.

사실 내가 직접 가면 현자의 상태창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볼 수 있겠지만, 나에 대한 전력은 감추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정찰? 혼자서?”

“그래. 가능하다면 성벽 안쪽까지도 좀 공략해 보고.”

“몇 명 죽이고 와도 돼? 여차하면 다 죽여 버릴 수도 있고. 크크.”

미친놈.

불사의 몸이 되었다고, 헛소리를 해 댄다.

“절대 한 명도 죽여선 안 돼. 그렇게 되면 놈들도 본인이 가진 귀환석의 용도를 알아챌 테니까.”

“아아!”

“누가 리더인지, 그리고 그놈이 무슨 특성을 가졌는지까지만 알아내고 와도 성공이야.”

“상대편의 대가리랑 한번 붙어 보는 건?”

“그게 가능하다면 뭘 더 바라겠냐. 아! 그리고 그냥 거기서 싸우다가 죽어. 한번 죽어 봤으니깐 어렵지 않겠지?”

괜히 싸우다가 후퇴한답시고 이 먼 길을 돌아 내려오면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그냥 깔끔하게 죽어서 귀환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어차피 죽음에 대한 페널티도 없는 것 같으니까.

“뭐야! 결국 또 죽으라는 얘기잖아!”

“내가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한다면서! 설마 귀환석도 있는데 무섭다는 거야?”

“그…… 그건!”

“혹시 또 알아? 이번 3층 미션 끝나고 나면 기여도에 따라서 골드가 지급될지. 내가 너한테 목돈 벌 기회를 주는 거야, 인마.”

그 말에 바로 김세용의 눈알이 굴러가는 게 보인다.

나름 주판을 굴려 보는 게 이미 먹혀들어 갔나 보다. 단순한 놈.

“알겠어. 가! 간다고!”

진짜 단순한 놈이었다.

* * *

김세용은 홀로 요새를 향하여 유유히 걸어갔다.

험한 산비탈을 지나 드디어 마주하게 된 장엄한 성벽.

“뭐 하냐? 새끼들아!”

김세용은 성벽 위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저 위에서는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둘 다 레벨 8.

레벨 9인 본인과는 한 끗 차이지만, 김세용은 동시에 덤벼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뭐야? 여기까지 왔는데 덤비지도 않아?”

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

하다못해 성벽 위에서 돌덩이라도 날릴 줄 알았다.

이렇게 나올 거면 성문이라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던가.

퍼어어엉!

김세용은 성문을 향해 바로 돌주먹을 날렸다.

[성문의 내구력이 감소하였습니다. (81%)]

“오호라! 이거 몇 번만 치면 바로 부숴지겠는데?”

자신감이 치솟았다.

근력에 스탯을 몰빵해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퍼어어엉!

퍼어어엉!

김세용의 속사포가 성문을 세차게 두들겼다.

그리고 마침내 활짝 열린 성문.

[성문이 열렸습니다. 성문 리셋까지는 2초 남았습니다.]

“오호. 이런 식이란 말이지?”

이것도 나름 귀한 정보.

김세용은 성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의 눈이 재빠르게 스캔되기 시작한다.

성벽 뒤에 감추어져 있던 드넓은 전경. 저 앞쪽에는 제단이 보였다.

“플레이어는 대략 열두세 명 쯤 되는 거 같고.”

성벽 위에 두 명. 제단 근처에 열 명가량. 그리고 제단 위에 한 명.

김세용은 제단을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갔다.

“이래도 안 덤벼?”

놀랍게도 아직 아무런 제지도 없었다.

김세용은 그렇게 한참을 걸어 상대방 플레이어들의 무리 앞까지 다가갔다.

대략 15미터 근처까지 다가가니 녀석들에 대한 정보가 눈에 들어온다.

이들의 레벨은 7에서 9 사이.

“응?”

어느 순간 김세용의 시선이 고정된 곳은 제단 위에 고고한 자세로 서 있는 단발의 여인.

그런데 레벨이 좀 이상했다. 그녀의 레벨은 무려 13.

튜토리얼부터 2층까지 똑같은 미션을 수행해 온 것이라면 저건 불가능한 수치였다.

“이름이 손서연? 네년이 여기 대가리구나!”

손서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김세용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손서연은 오른쪽 팔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손에는 무언가가 쥐어져 있다.

“설마 총?”

타아앙!

총성이 울려 퍼졌다.

* * *

“레벨이 13이었다고?”

나는 김세용에게 되물었다.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

2층의 서바이벌 미션에선 레벨업이 불가능했고, 튜토리얼에서의 실질적인 한계 레벨은 4.

그렇다면 1층에서만 레벨을 9나 올렸다는 건데, 데스 미션까지 치렀다고 해도 절대 불가능한 수치다. 몬스터와 플레이어 간의 레벨 차가 많이 나면 경험치를 얻지 못하니까.

“내가 분명히 봤다니깐! 진짜 레벨이 13이었어!”

김세용의 말대로라면 이상한 것이 또 있다.

그녀의 무기가 총이라는 것.

총은 밸런스를 붕괴시켜 버릴 만큼 강한 무기다.

그런 무기를 겨우 3층에서부터 가지고 있다고?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총에 맞았을 때의 느낌이 어땠어?”

“느낌이고 자시고 할 게 있나? 바로 뒈져 버렸는데.”

“어디에 맞았는데.”

“복부였던가?”

이것도 이상한 일이다.

김세용은 피통도 나름 크고 꽤 단단한 녀석이다.

머리통이나 심장도 아닌 복부에 총을 쏴서 단번에 죽인다?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마도 일반적인 총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게임 시스템. 탄창이 아닌 마력을 주입해 발사하는 그런 무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 녀석과 대면하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세용아.”

나는 나긋한 목소리로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왜!!”

“미안한데. 총 한 번만 더 맞고 오자.”

“뭐라고?”

김세용이 사색이 되어 영혼 가출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한다.

오늘 벌써 두 번이나 죽었는데, 또 죽으러 가라는 말이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형! 그런데 내가 또 가면 저놈들이 귀환석의 용도를 알아채진 않을까?”

“아니.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겠지만, 진짜로 실험해 볼 배짱은 없을 거야. 어쩌면 너만의 전용 특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까지 해서 꼭 나를 보내야 해?”

“어.”

“형이 사람이야?”

“그래서 서두에 미안하다는 말을 했잖아? 네가 알아내 줘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어.”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나는 총 맞을 때의 느낌 좀 알아 와 봐.”

“총 맞으면 바로 뒈져 버리는데 느낌은 무슨!”

“너무 가까이에서 맞았잖아. 거리가 멀면 좀 다를 수도 있어.”

내 단호함에 김세용의 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또 뭔데!”

“두 번째로는, 즉사를 피하게 되면 바로 포션을 들이켜. 그리고 나서 기다려 봐. 두 번째 총알이 언제 또 날아오는지.”

“두 방이나 맞으라고?”

이건 반드시 얻어 내야 하는 중요 정보였다.

그 녀석이 총으로 연사를 할 수 있는지. 아니면 다음 발사까지는 딜레이가 있는지.

“그리고 만약에 상황이 허락하면 그 제단 위에도 한번 올라가 봐.”

솔직히 이건 내가 생각해도 불가능한 미션이다.

그냥 혹시나 해서 시켜 본 것.

얘기를 들어 보니까 그 제단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

“그거까지 성공하면 보상은!”

“100골드 준다.”

“콜!”

좋은 동기 부여다.

이놈은 아마 근력 스탯 올릴 생각에 최선을 다할 테니까.

* * *

레벨 13이라.

김세용이 떠난 뒤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결론은 하나였다.

살성.

그녀는 살성의 길에 도전하여 성공한 것이 틀림없었다.

내 짐작이 맞다면, 그녀는 2층에서 본인과 함께 게임을 시작했던 플레이어들을 모조리 죽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동료들은 2층 미션이 끝난 후 새롭게 만난 플레이어들일 터.

그럼에도 김세용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그 그룹에서 이미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보통 상대가 아니야.”

“보통 상대가 아니라니요?”

내 혼잣말을 들은 채이설이 다가왔다.

“상대편 그룹의 리더 말입니다.”

“아, 총을 가졌다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호영 씨 뒤에서 항시 힐 대기하고 있을게요.”

말만 들어도 든든했다.

그녀에게 골드를 투자해 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건은 손서연이 가진 총의 위력과 연사의 가능 여부.

그것에 따라서 공성전의 난이도가 결정될 것이다.

물론 문제는 더 있다.

총을 제외하더라도 그녀의 능력치가 아직 미지수이고, 다른 플레이어들 역시 어떤 전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김세용을 몇 번 더 보내 봐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형!”

등 뒤에서 김세용이 나타났다.

또 죽은 것이다.

오늘만 벌써 세 번째.

“세용아, 성공한 거야?”

“일단 골드부터.”

김세용이 나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이 자식이 뒤지려고.

“3초 준다. 3…….”

“알았어! 말할게! 말한다고!”

김세용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멀리서 맞으니깐 확실히 위력이 다르더라고!”

“느낌은?”

“내가 살면서 총을 맞아 본 적은 없지만, 이건 뭐랄까, 총이라기보다 그냥 엄청 세게 처맞은 느낌? 물론 미쳐 버릴 정도로 아팠어!”

역시 그랬다.

일종의 마나탄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두 번째 총알은?

“내가 미리 준비한 포션을 들이킨 다음에 바로 제단을 향해 조금씩 걸어갔거든.”

“그래서?”

“그런데도 총성이 안 울리는 거야. 그래서 제단을 향해 냅다 달려들려고 하는데, 타앙! 하는 소리를 듣고 바로 여기로 귀환한 거지. 그게 한 5초 정도 됐던가?”

5초라.

그렇다면 연사는 아니라는 의미였다.

변수가 존재하겠지만, 일단은 5초 딜레이를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짜야 할 것 같다.

이만하면 김세용은 할 만큼은 했다.

“옛다, 100원.”

이제는 결전의 순간이다.

- 1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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