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서준호의 도플갱어를 죽인 후 몇 명의 사람들을 더 만났다.
그중엔 플레이어도 있었고 도플갱어도 있었다.
도플갱어를 만나면 가차 없이 죽였고, 플레이어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시켰다.
현재까지의 생존 인원은 총 24명.
플레이어 13명에 도플갱어 11명이다.
나는 빠르게 이동을 하면서도 미니맵을 보며 전체의 상황을 수시로 체크했다.
다행히 사람들은 나의 제안을 충실히 따르며 조금씩 군집을 이루어 가고 있었다.
현재 사람들이 모여 있는 형태는 두 개의 큰 군집.
이제 나는 그중 하나에 접근한 상태였다.
“이호영 씨!”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내게로 집중되었다.
이 군집에 모여 있는 인원은 총 열여섯.
물론 플레이어와 도플갱어가 섞여 있을 것이다.
“제 말을 충실히 이행해 주셨군요. 모두들 감사합니다.”
김준성을 제외하곤 모두가 내 말을 따라 준 셈.
덕분에 희생자는 김준성에게 죽은 둘뿐이었다.
“이호영 씨! 다섯 명의 도플갱어는 정말로 당신이 처리한 것입니까?”
“네.”
김세용, 채이설, 서준호, 송지호, 한태환.
나에게 죽은 다섯 도플갱어의 이름을 읊었다.
자신의 도플갱어가 죽은 이들은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본인이 도플갱어일 것이라는 의심에서 자유로워졌으니까.
물론 내 말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메시지에 따르면 플레이어도 세 명이나 죽었던데, 이호영 씨 당신은 혹시 이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이번에는 안세창이 내게 물었다.
“네. 알고 있어요.”
“혹시 그 플레이어들은 도플갱어에게 죽은 것입니까?”
“아뇨. 죽은 세 명의 플레이어들은 모두 플레이어에게 죽었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후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플레이어, 도플갱어 할 거 없이 모두 경악에 물든 눈빛이다.
이럴 때 도플갱어들을 보면 참 가증스럽기 그지없다.
“아니, 도대체 누가!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었다고요?”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도대체 누굽니까? 모두를 배신한 그 플레이어!”
안세창의 억양이 격해졌다.
“김준성!”
“뭐라고요?”
“플레이어 두 명을 사냥한 것은 김준성입니다. 그리고 김준성은 내 손에 죽었습니다.”
내가 김준성의 이름을 거론하자 사람들은 더욱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는 우리 그룹에서 가장 신망받던 플레이어였으니까.
“믿을 수가 없어요! 그 김준성 씨가 다른 플레이어들을 사냥을 했다니요!”
안세창이 거칠게 항변했다.
그는 1층 미션에서 김준성과 파티를 이루며, 죽을 고비를 함께 넘겼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지금 내가 하는 말보다는 김준성을 더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믿으세요.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사실이니까.”
“이호영 씨! 지금 당신이 플레이어라는 증거도 없잖아! 혹시 당신이 도플갱어 아닙니까?”
타당한 의문이었다.
이곳에서 누군가를 쉽게 믿는다는 것은 절대 금물.
의심을 갖는다는 건 아주 좋은 자세이다.
“물론 그걸 이 자리에서 바로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순간 몸을 슬며시 뒤로 빼며 기회를 엿보는 한 녀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준성의 도플갱어.
내가 플레이어 김준성을 죽인 것이 사실이라면 저놈은 마땅히 도플갱어라는 의미였다.
휘이이익!
나의 낡은 장검이 날아가 녀석의 등을 찔렀다.
그가 괴로운 비명을 통해 냈지만, 깊게 박히진 않았다.
안타깝게도 즉사는 아니다.
놈은 나를 제외하면 이곳에서 가장 능력치가 높은 인물이니까.
“이호영 씨! 이게 무슨 짓입니까!”
몇몇 사람들이 쓰러진 김준성을 향해 달려갔다.
김민석이 가장 앞장섰다.
그 역시 1층에서 김준성과 함께 파티를 이루었던 플레이어.
“조심!”
나는 다급하게 경고했다.
몸을 웅크리며 쓰러져 있던 김준성의 도플갱어는 이미 품 안에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한 명은 보내고 죽을 생각일 것이다.
고개를 든 김준성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잘 가.”
당겼던 활시위가 놓아졌다.
“크아아악!”
나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도플갱어가 쏘아 낸 화살은 김민석의 아랫배에 깊숙이 박혀 버렸다.
마력이 폭발하며 내장이 모두 손상되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별도리가 없다.
[플레이어가 사망하였습니다.]
[현재 인원 : 플레이어 12, 도플갱어 11]
[30분 내에 새로운 살인 1건을 발생시키십시오.]
그가 도플갱어였음이 밝혀진 순간.
분노한 안세창이 쓰러져있는 김준성의 도플갱어에게로 달려갔다.
“이런 개자식이!!”
쑤우욱!
도플갱어의 등허리에는 검 한 자루가 박혔다.
[도플갱어가 사망하였습니다.]
[현재 인원 : 플레이어 12, 도플갱어 10]
[30분 내에 새로운 살인 1건을 발생시키십시오.]
“씨이이이X!”
안세창은 김준성의 도플갱어를 죽여 놓고선 절규했다.
그는 지금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어 거의 미칠 지경일 것이다.
나에 대한 의심.
김준성에 대한 분노.
방금 죽은 동료에 대한 자책.
비단 안세창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다들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여전히 제가 도플갱어라고 의심하십니까?”
나는 모두를 향해 물었지만, 그 누구도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다들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테니까.
“난 여전히 김준성 씨가 우리를 배신했다고 믿기 어렵습니다.”
안세창은 여전히 격양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한발 물러선 말투였다.
나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는 거두지 못한 것 같지만.
나는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며 절대 후각을 일으켰다.
도플갱어의 냄새들이 강하게 풍겨 온다.
플레이어보다 도플갱어 쪽이 더 우세하다.
이곳의 열네 명 중 도플갱어의 수는 무려 여덟이니까.
이러한 수적 우위를 이용하여 도플갱어들은 플레이어들을 분열시키고자 했다.
“안세창 씨!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혹시 도플갱어가 아닙니까? 이호영 씨를 의심하다니요!”
어이가 없었다.
도플갱어들이 나를 변호하고 나서다니.
안세창보다는 내 쪽에 서는 것이 분열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하긴, 내가 가진 힘은 이곳에서 압도적이니까.
“이호영 씨, 말씀해 보세요! 당신도 안세창이 도플갱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다른 도플갱어들도 바람을 잡으며 안세창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내 손으로 안세창을 죽게 만들고 싶은 모양인데, 뜻대로는 안 될 것이다.
“기다려 봅시다. 다른 여덟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합류하기를.”
애초에 나의 제안은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
나머지 인원들도 드디어 우리의 코앞에서 접근하는 중이었다.
* * *
스물두 명이 드디어 한자리에 모인 순간.
경악의 음성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자신의 도플갱어를 지금에서야 본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거기에 김준성의 소식마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그리고 지금 사람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나와 나의 도플갱어 간의 대화였다.
“속지 마세요. 제가 진짜 이호영입니다.”
둘만 있을 때, 녀석은 진실만을 말하였지만, 지금은 완전 딴판인 모습이었다.
녀석은 나를 도플갱어라고 그럴듯하게 몰아붙이는데 말투마저 나를 쏙 빼닮았다.
사람들의 혼란스러운 표정이 실시간으로 보인다.
이제는 승부수를 띄울 시간.
지금까지 관찰한 바에 의하면 도플갱어의 행동 양식은 다음과 같았다.
1. 도플갱어는 본체의 습성과 성향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으며, 플레이어들을 분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2. 때로는 도플갱어가 플레이어들을 먼저 공격하여 죽이기도 한다.
추가로 한 가지 의문이 있다.
혹시 도플갱어는 도플갱어를 공격할 수 있을까?
나는 그에 대한 대답을 확인해 보며 2층의 대미를 장식할 생각이었다.
“저는 김준성이 죽인 플레이어를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내가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그게 누굽니까!”
“김창식 씨. 그리고 최준희 씨.”
그 말은 여기 있는 두 명이 영락없는 도플갱어임을 의미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 둘에게로 돌아갔다.
“저…… 절대 아니에요! 저놈이 우릴 모함하는 겁니다!”
물론 순순히 실토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재빠르게 김창식의 도플갱어 쪽으로 달려갔다.
불굴의 검이 놈의 심장에 박혔다.
[도플갱어가 사망하였습니다.]
[현재 인원 : 플레이어 12, 도플갱어 9]
[30분 내에 새로운 살인 1건을 발생시키십시오.]
“거봐. 모함 아니잖아.”
이로써 분위기는 나에게 넘어왔다.
나는 최준희의 도플갱어를 바라보며 뚜벅뚜벅 걸어갔다.
의도적으로 조금 천천히.
내가 불굴의 검을 들어 올리자, 최준희도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
녀석도 검에 힘을 빡 준 모습.
휘이이익!
놈의 검이 움직였다.
최준희의 타깃은 내가 아니다.
칼끝이 향한 건 녀석의 바로 옆에 있는 임지혜.
이로써 본인 스스로 도플갱어임을 커밍아웃하게 된 셈이다.
챙!
임지혜를 죽이려 한 녀석의 공격은 나로 인해 바로 저지되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서억!
내 공격에 최준희의 왼쪽 팔이 잘려 나갔다.
서억!
곧바로 오른쪽 팔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최준희의 눈엔 광기가 서려 있었다.
나는 나의 도플갱어를 보며 말했다.
“마무리는 네가.”
내 도플갱어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이 반응을 보니 확실히 알 것 같다.
도플갱어는 절대로 도플갱어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뭐 해? 마무리하지 않고.”
“크크크크.”
웃어?
궁지에 몰리니 녀석도 미쳐 가는 모양이다.
[도플갱어가 사망하였습니다.]
[현재 인원 : 플레이어 12, 도플갱어 8]
[30분 내에 새로운 살인 1건을 발생시키십시오.]
결국 최준희를 처리한 것은 안세창이었다.
“오해해서 미안해요. 이호영 씨.”
이제 남은 도플갱어는 여덟.
나의 도플갱어까지 공개된 이상, 놈들은 이제 절박한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가장 강한 내 도플갱어마저 정리된다면 나머지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이니까.
“죽어랏!”
궁지에 몰리자 놈들이 하나둘씩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내가 그린 최상의 시나리오다.
내가 가진 스킬은 철저히 감추면서 도플갱어 놈들을 몰살시키는 것.
김준성, 그 망할 새끼만 아니었다면 더없이 완벽했을 이번 2층 미션이었다.
허망하게 죽어 버린 세 명의 플레이어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몫까지 싸워 주는 것이겠지.
그렇게 난 분노의 칼춤을 췄다.
* * *
[2층 미션이 종료되었습니다.]
[로비로 귀환합니다.]
2층에선 네 명이 죽고 열두 명이 살아남았다.
그나마 선방이라고 생각하곤 있지만, 처음 스물네 명으로 시작한 것과 비교한다면 이제 겨우 절반이 남은 상황.
다른 구역의 상황은 어떨까?
어쩌면 다른 곳들에선 끔찍한 결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공략집을 가진 사람도 없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살성의 길을 걸었을 테니.
성공적으로 살성 도전에 성공한 플레이어도 있을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만 본다면 2층 미션은 성공적이었다.
감각 스탯에서 ‘최초의 칭호’를 얻으며 절대 감각 스킬을 획득하였으니까.
문득 궁금해진 사실이 있었다.
체력, 근력, 민첩 쪽에서 최초의 칭호를 얻은 자들도 존재할 터. 그들은 얼마나 강할지.
[활약도에 따른 골드 정산이 시작됩니다.]
활약도라.
나의 원맨쇼였으니, 보상은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마침 골드도 앵꼬가 난 상태라 아주 시기적절한 보상이다.
[12,500 골드를 지급받았습니다.]
역시 2층도 대박이다.
순식간에 다시 골드가 풍족해졌다.
나는 현자의 상태창을 불러와 다른 동료들의 보상 상황도 살폈다.
혹시 나 혼자 독식한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동료들에게도 보상은 내려졌다.
모두가 나의 전략을 충실히 이행해 주었으니, 이 부분이 반영된 것이다.
조금 미안한 감도 있었다.
보상 골드에서 차이가 나도 너무 많이 났으니까.
“와아! 저한테도 골드가 들어오네요!”
“저도요!”
“전 완전히 마음 비우고 있었는데!”
고작 몇백 골드로 저렇게들 좋아했다.
“이호영 씨는 얼마나 받은 겁니까?”
서준호의 질문에 채이설이 바로 제지한다.
“에이, 그런 건 물어보면 안 되죠! 선수끼리 왜들 이래요.”
“아니, 채이설 씨는 무슨 이호영 씨 대변인입니까? 당신은 궁금하지 않아요?”
“안 궁금한데요?”
“참나! 이호영 씨. 그럼 이것만 말해 보시죠. 혹시 3000골드도 넘습니까?”
서준호도 참 끈질긴 면이 있었다.
그나저나 3000이라니 통도 작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비단 서준호뿐만이 아니었다.
“이호영 씨! 설마 서준호 씨 말대로 3000골드도 넘는 겁니까?”
“말씀해 주시죠! 업입니까, 다운입니까?”
뭐, 이 정도는 이야기해 줘도 될 것 같다.
“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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