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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10화 (10/292)

10화

미리 공개된 2층의 미션은 간단했다.

열여섯 명의 플레이어와 우리와 똑같게 생긴 열여섯의 도플갱어가 펼치는 서바이벌 게임.

게임은 도플갱어 전원이 죽을 때까지 진행되며, 얼마나 많은 플레이어가 희생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우리는 플레이어와 도플갱어를 구별할 수 없을 테니까.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는 겁니까? 이호영 씨?”

순간적으로 나에게 집중된 시선들.

나를 보는 눈빛들이 달라졌다.

이래서 힘이란 참 좋은 것이다.

다행히 얘기하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 같다.

“이유는 불문하고, 일단은 저를 믿어 주시기 바랍니다.”

“전적으로요?”

채이설이 나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짓는다.

특별한 언질도 없었는데 바로 바람잡이 노릇을 자처하는 게 역시 마음에 든다.

“네. 전적으로요.”

“빨리 얘기 좀 해 보세요. 우리가 뭘 어떻게 하면 됩니까?”

나는 머릿속을 빠르게 정리했다.

아직은 <현자의 상태창>이 공략집을 보내오기 전.

하지만 미션이 시작되기 전인 지금 전략의 얼개를 짜 놓아야만 했다.

분명 2층에서 우리의 시작 위치는 각각 다를 테니까.

나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30분마다 누군가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필요 이상의 살인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도플갱어일지라도 말이죠.”

“왜죠? 도플갱어가 모두 죽어야 미션이 끝나는 것인데.”

김준성의 반문.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미리 예상했다.

“우리는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요? 무엇을 위한 시간 말입니까?”

“우리 열여섯 명의 플레이어 전원이 한 장소에 모일 수 있는 시간 말입니다.”

“아아!”

적절한 타이밍에 채이설이 추임새를 넣어 주었다.

“2층 미션의 스테이지가 얼마나 넓은지는 아직 모르지만 우리는 반드시 한곳에 모여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다들 동의하십니까?”

내 질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플레이어가 계속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다면, 결말은 뻔한 일.

배틀로얄류의 영화에선 흔한 클리셰다.

“그럼 제가 여기서 중대한 제안 하나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는 모두가 동의해 주셔야 합니다.”

“말씀해 보세요. 뭔지 일단 들어 봅시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까진 내 말에 특별히 거부감은 없다는 의미.

하지만 진짜는 이제부터다.

나는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는 차분히 운을 떼었다.

“저는 매 30분마다 일어나게 될 살인의 횟수가 최소한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안으로…….”

“빨리 말씀하세요!”

내가 뜸을 들이자 서준호가 재촉했다.

급하기는.

“매 30분마다, 오직 저만 적극적으로 살인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결국 어렵게 말을 맺었다.

“뭐라고요??”

이건 결코 쉬운 제안이 아니다.

어떤 오해를 살지도 잘 알고 있으며, 어쩌면 나는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아직은 <현자의 상태창>이 주는 공략집을 받기 전이니까.

당연히 내 제안에 모두가 경악했다.

“이호영 씨! 지금 제정신입니까? 당신만 적극적으로 살인을 하겠다니!”

배틀로얄에서 오직 나만이 능동적인 스탠스를 취하겠다는데 그걸 누가 잠자코 승인하겠는가.

방금 전까지도 나에게서 무언가를 기대했던 눈빛들은 일시에 사그라졌다.

다행이라면 김준성이 내 의견을 일부 지지해 주고 있다는 것.

“이호영 씨의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수동적인 스탠스를 취해야 살인의 횟수가 최소한이 될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 한 명을 정하는 것에는 좀 더 합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하지만 곧바로 나는 못을 박았다.

“합의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이 전략은 가장 강한 사람만이 이행할 수 있는 것이니까.”

내 말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방금 전 펼쳐졌던 트롤 이벤트에서 확실하게 증명된 사실이었기에.

“저는 반드시 30분에 한 명씩 도플갱어라고 생각되는 자들을 찾아서 죽일 겁니다! 만약 제 판단이 틀려 여러분들 중 한 명이 공격을 받는다면. 그땐 적극적으로 자신을 방어하십시오.”

“이호영 씨! 당신 그렇게 마구잡이인 사람이었습니까?!”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어 갔다.

“만약 저를 제외한 누군가가 여러분을 공격한다면, 그것은 플레이어가 아닌 도플갱어일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도 역시 적극적으로 자신을 방어하십시오!”

“이봐요! 이호영 씨!!!”

“우리 모두가 한자리에 모일 때까지입니다! 그때까지 전 반드시 30분에 한 명씩 죽일 겁니다.”

내게는 그럴 능력이 있다.

그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

지금은 욕을 먹더라도 강하게 나가야 한다.

이 미친 상황을 최소한의 피해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으니까.

현자의 상태창은 분명 내게 도플갱어를 구별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줄 것이다.

* * *

[2층 미션이 시작됩니다.]

[30분 내에 1건 이상의 살인을 발생시키십시오.]

[현재 인원: 플레이어 16, 도플갱어 16]

[남은 시간: 30분]

결국 우리 모두는 2층으로 이동되었다.

내 제안에 합의가 이루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창 떠들썩한 와중에 예고 없이 순간이동이 일어나 버렸으니까.

역시 예상대로 우리 모두는 흩어진 채로 미션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미니맵도 주어졌다.

미니맵 곳곳에 서른두 개의 점이 찍혀 있는 것을 보니, 현재 인원의 위치를 계속 실시간으로 알려 줄 모양인가 보다.

“부디, 다들 광기에 사로잡히지 말기만을.”

최선의 상황은 내가 모든 도플갱어들을 정리하기 전까지, 다른 플레이어들이 최대한 수동적으로 버티는 일.

도플갱어의 선제공격에 죽는 플레이어들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그것까지는 통제할 수는 없다.

[공략집이 전송되었습니다.]

나는 서둘러 <현자의 상태창>을 열람했다.

평소보다 길게 작성되어 있는 공략집.

그것은 나에게 무려 두 가지의 선택지를 제시했다.

#1

여기에 가장 쉬운 길이 있습니다.

바로 당신이 살성(殺星)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모든 플레이어를 당신의 손으로 죽이십시오!

플레이어를 죽일 때마다 당신의 스탯은 비약적으로 높아질 것이며, 운이 좋다면 당신은 살성의 칭호를 새기게 될 것입니다.

살성이 된다는 건 이 게임에서 마지막까지 생존할 수 있는 최고의 치트키입니다.

“살성?”

공략집은 살성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진 언급하진 않았지만, 뭔가 느낌은 왔다.

게임 초반부에 엄청난 부스터를 달고 뛰게 될 것이라는 것.

70억 지구인 중 누군가는 살성이 될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미친놈들이 정말 많으니까.

하지만 이 선택지는 기각이다.

“아직은 인간답게 살고 싶어.”

아무리 지금이 아포칼립스라 할지라도 괴물이 되는 건 사절.

나는 바로 두 번째 선택지로 눈을 돌렸다.

어려운 길이라 할지라도 부디 정상적인 방법이길 바라며.

#2

현자의 상태창을 통해서도 플레이어와 도플갱어를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유일한 방법은 <절대 감각> 스킬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완벽한 구별을 보장하진 못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스킬의 획득 방법은 감각에 대한 ‘최초의 업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절대 감각?”

두 번째 선택지에 대한 설명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아무래도 이 공략집은 첫 번째 방법을 추천하는 뉘앙스.

스킬을 획득하는 방법 정도는 친절하게 알려 줄 만도 한데 단서가 너무 부실했다.

“최초의 업적이라…….”

나는 단어의 뜻을 곱씹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공략집이 현재 내 상황에서 불가능한 선택지를 주지는 않았으리라는 것.

그렇다면 떠오르는 방법 하나 있는데, 막상 실행하려니 망설여졌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고민하는 순간에도 제한 시간은 흐르고 있다.

[보유 골드를 모두 소모하여 감각을 대폭 상승시킵니다.]

결국 내가 가진 모든 골드를 털어 넣었다.

현시점에서 내 감각 스탯은 21.

거기에 19를 추가하여 결국 40이 되었다.

<이호영>

직업: 검투사

레벨: 2

HP: 100%

MP: 15

체력: 24 근력: 24 민첩: 24 감각: 40

스킬

<초급 검술 Lv.2> <현자의 상태창>

보유 골드: 0

내가 노리는 것은 <감각> 스탯에서 최초의 업적.

40이라는 숫자는 사실 애매하였지만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30분마다 한 명씩 죽이겠다는 공언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최초로 감각 스탯이 40에 도달하였습니다.]

[절대 감각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어?”

하지만 살다 보면 과감한 결정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시각이 매우 예민해졌습니다. 훨씬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청각이 매우 예민해졌습니다. 작은 속삭임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후각이…….]

[미각이…….]

[촉각이…….]

절대 감각.

내 스킬창이 좀 더 풍성해졌다.

이제부터는 새롭게 얻은 스킬을 활용하여 도플갱어를 구별해 내야만 한다.

* * *

제한 시간 30분은 그리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다.

2층 스테이지의 넓이 때문.

미니맵으로 탐색한 상대를 닥치는 대로 죽이자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나는 도플갱어만을 구별해 내야 하는 입장이었다.

“처음 만나는 상대가 도플갱어여야 할 텐데.”

만약 플레이어를 만나게 된다면 다시 또 빠르게 이동을 해야 한다.

그것은 시간적으로 부담스러운 일.

그리고 한 가지 변수가 또 있다.

아직은 <절대 감각> 스킬이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스킬을 통해 도플갱어를 어떻게 찾아낼 수 있는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일단 누군가를 만나 봐야 해결될 문제.

도플갱어가 아닌 플레이어라면 생각보다 탐색은 더 길어질지도 모른다.

“5시 방향. 200미터!”

미니맵에 절대 시각이 더해지니, 생각보다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김세용.

나는 재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정말 똑같았다.

생긴 것도, 걸음걸이도, 특유의 표정 하나하나도.

“세용아!”

“……혀 ……형!”

그래, 이 타이밍에선 바로 꼬리를 내려야 마땅하다.

나는 반드시 30분 내에 한 명을 죽이겠다고 공언을 했으니까.

“혹시 도플갱어냐?”

“형! 무섭게 왜 그래! 나야, 나라고!”

완전 마피아 게임이 따로 없다.

김세용이 이렇게 설설 기니까 괜히 더 괴롭히고 싶어졌다.

“네가 김세용이라는 걸 증명해 봐. 딱 10초 주지.”

“나이 스물일곱! 물안개파 행동대장! 형이랑 이설 누나랑 같이 파티도 했었잖아!”

녀석이 다급하게 자신에 대한 정보를 쏟아 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설 씨에게 누나라는 호칭도 붙였다.

김세용의 캐릭터를 고려하면 개연성은 충분하다.

위험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난 놈이니까.

“이제 5초 남았어.”

5초라는 말에 김세용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해 갔다.

“형! 나라고!”

진짜 절박한 표정.

심지어 김세용을 죽도록 팰 때도 이런 표정은 보지 못했다.

“재밌어.”

휘이이익!

불굴의 검이 김세용의 머리통을 반으로 갈랐다,

놈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모가지에서는 피 분수가 콸콸 솟아오른다.

[도플갱어가 사망하였습니다.]

[현재 인원: 플레이어 16, 도플갱어 15]

순간 소름이 돋는다.

머뭇거림 없이 칼을 휘두른 나의 과감한 행동에.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김세용을 연기했던 도플갱어의 리얼함에.

“역시 냄새였군.”

도플갱어의 몸에선 미세한 기운이 새어 나왔다.

다행히 절대 후각이 이를 캐치해 냈다.

만약 후각를 방해하는 다른 요인이 있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첫 번째 턴을 경험해 보니 이제야 감이 왔다.

도플갱어를 구별하는 방법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은 큰 소득.

소름 돋을 정도로 사실적인 도플갱어를 경험한 것도 행운이었다.

[30분 내에 새로운 살인 1건을 발생시키십시오.]

마지막으로 게임의 룰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살인 직후엔 새로운 30분의 턴이 시작된다.

시간을 세이브 하기 위해선 살인 전에 반드시 다음 행동에 대한 계획을 세워 놓을 필요할 것 같다.

“일단은 가장 가까운 곳부터.”

나는 다시 미니맵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플레이어가 사망하였습니다.]

[현재 인원: 플레이어 15, 도플갱어 15]

[30분 내에 새로운 살인 1건을 발생시키십시오.]

- 1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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