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저게 유아기의 몬스터라고?”
“말도 안 돼!”
레벨 18의 트윈 헤드 트롤.
결코 꼬마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저 살벌한 표정도 그렇고, 두 발로 서 있는 크기만 해도 거의 2m에 육박할 정도니까.
사실 재앙의 맛보기치고는 좀 과하다 싶은 몬스터였다.
그나마 미션의 클리어 조건은 저놈으로부터 5분간 생존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조차도 빡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다들 상점창에서 포션부터 구입합시다!”
김준성이 재빠르게 외쳤다.
몇몇의 플레이어들은 그 말에 잔뜩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일회용 포션의 가격은 100골드.
구매 여력이 있는 사람도 있는 반면, 이미 빈털터리인 사람들도 있다.
“골드를 다 써 버려서 포션을 살 수가 없어요!”
그러면서 슬금슬금 뒤로 발을 빼는 이들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팀플레이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다행인 사실이 하나 있다면, 이곳에 내가 있다는 것.
나는 방금 전 레벨 12의 몬스터를 격퇴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도 공략법이라는 것은 존재했다.
실행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공략집: 트롤은 경이적인 상처 재생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전투 능력에 비해 레벨이 높은 몬스터이기도 합니다. 현시점에선 목을 베는 것이 유일한 공략법이며, 유아기의 트롤은 모가지가 매우 말랑말랑하니 그곳을 노리십시오.]
크오오오!
트롤은 전열을 정비할 틈도 주지 않고 어느 한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거대한 몸집에 폭력적인 숫자의 레벨. 마치 사해 바다가 갈라지듯 그쪽에 서 있던 플레이어들이 혼비백산하며 도망을 쳤다.
그 자리에 꼿꼿이 남아 있는 플레이어는 레벨 8의 김준성.
그는 당기고 있던 활시위를 놓았다.
휘이이잉-
화살이 전광석화처럼 날아갔다.
제아무리 레벨 차가 있어도 트롤이 이 공격을 피할 도리는 없었다.
화살의 속도에 이미 돌격하고 있던 자신의 속도가 더해져 버렸으니까.
콰아악!
트롤은 양손을 들어 방어해 보지만, 화살촉은 놈의 팔꿈치를 뚫어 버렸다.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김준성이 두 번째 활시위를 당긴다.
그 모습이 꽤 다부져 보이지만, 뭔가 불길한 느낌이 엄습했다.
“김준성 씨, 피해요!”
나는 서둘러 외쳤다.
김준성과 트롤의 거리는 단번에 좁혀질 수 있는 지척이었기에.
나의 외침에 집중력이 흐트러진 김준성은 곧장 활을 내리고는 재빨리 옆으로 굴렀다.
움직임 하나는 놀랍도록 민첩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트롤에게 한 방을 허용했을 것이다.
쿠오오오!
내 예상대로 트롤은 뚫린 팔꿈치의 상처를 즉시 수복하며 김준성이 있던 자리로 달려들어 몽둥이를 내리찍었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빈자리.
트롤의 머리통 두 개가 동시에 움직이며 김준성이 사라진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아마 자신에게 고통을 준 녀석부터 찾아 족칠 생각이겠지.
김준성을 찾은 트롤의 후속 동작에는 조금의 지체함도 없었다.
“다들 조심!”
하지만 트롤 녀석의 타깃은 오직 한 명.
유아기답게 시야가 좁은 건지, 트롤은 김준성만을 보며 달렸고,
퍼어어억!
트롤은 또 한 번의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김세용이 <돌주먹> 스킬을 발휘한 것.
녀석의 주먹질은 트윈 헤드 중 하나의 머리통을 가격했다.
김세용의 솥뚜껑만 한 주먹 크기는 트롤과 비교해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물론 크기만 놓고 본다면 말이다.
“씨이파!”
김세용이 곧바로 비명을 질렀다.
공격을 허용했던 트롤이 아랑곳 않고 거대한 김세용을 번쩍 들어 올린 것.
저 유아기의 트롤 괴물은 김세용이라는 거구를 어린아이 다루듯이 하며,
콰직!
결국 바닥에 내리꽂고 말았다.
“끄아아아!”
김세용이 괴로운 신음을 토해 냈다.
내 눈에 보이는 HP는 21% (부상)
결국 김세용의 상태창엔 상태 이상 메시지마저 뜨고 말았다.
그래도 그 상황에서 트롤에게 달려든 용기 하나는 칭찬해 줘야겠다.
트롤이란 괴물은 레벨에 비해 전투력이 낮을 거라고 했던가?
공략집의 기준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 가공할 근력만큼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채이설은 곧바로 김세용을 향해 치유 지원 스킬을 날렸다.
이미 한 차례 합을 맞춰 본 경험이 있었기에, 둘 사이엔 통하는 게 있었다.
김세용은 HP가 회복되자마자 재빨리 몸을 굴리며 자리를 벗어나는 모습이었다.
휘이이잉!
또 한 발의 화살이 지체 없이 트롤을 향해 날아간다.
이번에도 김준성의 공격.
콰악!
이번엔 이마에 명중했다.
하지만 놈은 잠시 움찔하며 괴로워할 뿐, 결국엔 양손으로 이마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며 포효했다.
쿠오오오!
진짜 미친 능력이다.
유아기의 괴물이 이 정도면 성체는 과연 어느 정도일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이 타이밍에서 내가 나서지 않는다면 분명 희생자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
“이설 씨, 후방 지원 부탁합니다!”
결국 난 트롤을 향해 달려들었다.
내가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 * *
[초급 검술이 발휘됩니다.]
내 불굴의 검이 유려한 곡선을 뽐내며 춤을 추었다.
트윈 헤드 트롤의 몸체엔 수 개의 직선이 그어지며 핏물이 튀었다.
물론 효과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붉게 그어진 직선은 실시간으로 아물어 가며 나를 비웃는 것처럼 보일 정도니까.
‘진짜 괴물!’
이렇게 몇 차례의 공방전을 주고받으며, 불리해지고 있는 것은 내 쪽이었다.
나는 놈의 방망이질에 수도 없이 얻어맞았고, 채이설의 치유 지원도 이제 한계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호영 씨. 이제 힐은 한 번밖에 못해 드려요!”
이미 알고 있었다.
채이설의 MP 상태는 수시로 확인했다.
내 생명과도 직결된 일이었기에.
안타깝게도 이 상황에서 포션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포션 뚜껑을 따고 입에 털어 넣을 동안 저놈이 기다려 줄 리도 만무한 일이니까.
“후우!”
여전히 5분이 지나려면 시간이 많이 남은 상태였으니, 결국 나는 승부수를 걸어야만 했다.
저 괴물의 유일한 약점은 모가지라고 했던가?
문제는 트윈 헤드이니 모가지도 두 개라는 것이다.
현재의 내 실력으로 두 개를 동시에 잘라 버리는 것은 절대 무리였다.
결국 내 목표는 모가지를 딱 하나만 따내고, 살아남는 것.
숨이라도 붙어 있다면 채이설은 마지막 남은 마력을 쥐어 짜며 나에게 힐을 걸어 주겠지.
일단은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결국 나는 처음으로 트윈 헤드 트롤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모가지를 썰어 내려면 최대한 거리를 좁혀야만 했다.
공략집은 놈의 모가지가 말랑말랑하다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표현일 터.
[초급 검술이 발휘됩니다.]
불굴의 검에는 깊은 마력이 깃들며, 공중에서 재빠르게 호선이 그려졌다.
휘익!
극도의 각성 상태에 빠진 나는 처음으로 검술의 더 높은 경지를 본 것만 같았다.
무슨 조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순간적으로 한 단계 높은 검격이 내 손끝에서 뿜어져 나왔다.
절겅!
경쾌하게 들려오는 절단의 사운드.
트롤의 모가지 하나가 추락했다.
일단 됐다.
그리고 곧바로 성난 트롤의 손아귀 힘이 내 몸통 전체에 전해져 왔다.
아마 김세용이 그랬던 것처럼 내동댕이쳐지겠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머릿속에 암전이 일어났다.
후두부에 충격을 받은 나는 바로 기절을 해 버린 것이다.
* * *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3이 되었습니다.]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런 메시지를 들었다.
혹시 나는 죽은 것인가?
솔직히 말하면 내 계획은 살짝 어그러져 버렸다.
트롤의 모가지 하나를 따낸 후, 녀석의 과격한 공격을 받을 것까지는 예상했다.
내 계산 범위는 김세용이 당했던 딱 그 정도.
내 피통이 김세용보다는 크니까 사실 그것도 사실 많이 잡아 준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받은 충격은 그 이상이었고, 나는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혼란스러운 지금 이 순간, 어떤 목소리들이 들려 왔다.
그리고 난 눈을 번쩍 떴다.
“이호영 씨!”
많은 눈동자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모두가 익숙한 얼굴이다.
김준성의 손에는 포션 병이 들려져 있는데 아마도 저걸 마시고 정신을 차린 듯싶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나는 누워 있는 상태로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되긴요! 이호영 씨 덕분에 우리가 모두 무사한 거죠!”
김준성이 내가 정신을 잃은 동안의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모가지 하나를 잃은 트윈 헤드 트롤은 나에게 회심의 공격을 발휘한 직후 레벨이 18에서 9로 다운되었다고 했다.
참 단순한 설정이었다. 원 헤드에 레벨 9씩이라니.
미션 클리어 조건인 5분 버티기는 더 이상 무의미한 일이 되어 버렸다.
레벨 9정도의 몬스터는 플레이어 몇 명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수준이니까.
“이호영 씨, 당신은 혹시 힘을 숨기고 있던 겁니까?”
서준호의 물음에 나는 단호히 대답했다.
“그런 적 없어요.”
나의 고유 특성까지 밝힐 생각은 없지만, 힘을 숨긴 적도 없었다.
모두가 나의 레벨만을 보고 제멋대로 판단했을 뿐이다.
“레벨 2의 플레이어가 레벨 18짜리 몬스터의 목을 베어 내다니. 이거 못 본 사람한테 말해 주면 아무도 안 믿을 거예요!”
이런 부분에선 나의 레벨 설정이 조금 성가시긴 했다.
“그냥,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로 해 둡시다.”
일단은 이 정도로 얼버무렸다.
이 상황에서 죽다 살아난 사람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리도 없었으니까.
“어쨌든 이호영 씨 덕분에 살았습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호영 씨에게 고백 하나 하겠습니다.”
뜬금없이 서준호가 나에게 고백을 한단다.
“뭡니까?”
“그동안 이호영 씨를 무시했습니다.”
그 정도는 고백 같은 거 안 해도 알 수 있다.
여기 나를 무시했던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아주 놀라운 고백이군요.”
“사과드리죠. 데스 미션에서 당신을 지목했던 것도 포함해서.”
데스 미션이라는 말이 언급되자 많은 사람들이 순간 시선을 피했다.
고개를 푹 숙여 버리는 이들도 있다.
당연히 미안할 것이다.
“데스 미션 건은, 나중에 빚들 갚을 생각하시고요.”
따지고 보면 방금 전 일도 빚은 빚이다.
내가 팔자에도 없는 정의의 사도 흉내만 안 냈으면 이 중 몇 명은 황천길 행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지금은 일단 2층 미션에 대해 고민부터 좀 해 봅시다.”
나는 주제를 환기시켰다.
진짜 시급한 일은 2층에서 펼쳐질 서바이벌 미션이었다.
플레이어와 플레이어의 도플갱어들이 펼치게 될 죽음의 배틀 로얄.
우리의 목표는 당연히 플레이어의 희생 없이 도플갱어만을 전멸시키며 2층 미션을 클리어하는 일이다.
“우리는 플레이어와 도플갱어를 서로 구별할 수 있을까요?”
“도플갱어도 플레이어인 척할 것이 분명할 텐데.”
“2층 미션이 시작되면 성급히 믿는 것도 불신하는 것도 모두 위험한 일이 될 겁니다.”
잔인한 미션이었다.
30분마다 반드시 한 번 이상의 살인이 벌어져야 한다는 것.
누군가가 죽지 않으면 모두가 죽을 것이다.
레벨 40짜리 성체 트롤은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진짜 재앙일 테니까.
“플레이어끼리는 서로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식을 정해 놓는 것은 어떨까요?”
서준호의 제안.
나는 즉시 반박했다.
“도플갱어는 플레이어의 모든 기억을 공유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걸 정해 놔 봐야 의미 없는 일입니다. 다만…….”
“다만? 뭡니까?”
“모두들 이번 2층에선 저를 믿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빚진 거 갚는 셈 치고 말입니다.”
나는 모두에게 제안했다.
내 생각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먹혀들어 갈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 10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