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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7화 (7/292)

7화

[투표가 종료되었습니다.]

[데스 미션에 참가할 플레이어는 이호영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침묵이 감돌았다.

열여섯 명의 사람들.

저마다의 시선과 표정이 묘하다.

동정 어린 눈으로 날 바라보는 이도 있고,

나와의 시선 교환을 애써 외면하는 이도 있다.

어쩌면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호영이 형. 크크큭!”

투표의 결과에 기뻐하는 새끼도 있었다.

“기분 좋아 보인다, 세용아?”

“형, 착각이야! 나 지금 무지 슬프다고!”

표정은 아주 잔치를 벌일 분위기다.

이거 좀 섭섭하네.

주먹으로 대화하면서 정이 꽤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가.

어쨌든 나의 득표수는 총 아홉.

정확히 과반이었다.

과반수가 되는 순간 몇몇 플레이어들은 결국 투표를 포기해 버렸는데, 만약 실시간으로 득표 현황이 공개되지 않았더라면 대부분이 나를 찍었을지도 모르겠다.

“호영 씨! 도대체…… 왜!”

채이설이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녀는 이제야 발견한 모양이었다.

내가 나 자신에게 투표했던 것을.

나는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왜 제가 스스로에게 투표를 했냐고요?”

“……네.”

“한 명이 반드시 데스 미션에 참가해야 하는 것이라면 제가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이타심이나 숭고한 희생정신 따위는 물론 아니었다.

현자의 상태창.

바로 공략집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공략집: 데스 미션에 참가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당신의 미션 클리어 가능성은 매우 컸으며 만족할 만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공략집의 말은 무조건 잘 들어야 한다.

이분 말을 들어서 지금껏 손해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미션 클리어 가능성이 그냥 큰 것도 아니고 ‘매우’ 크다는 것.

그렇다면 도전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위험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곳에서의 보상은 미래의 위험도를 상당히 낮춰 줄 것이라는 판단.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내 말의 의미를 멋대로 해석하고 있었다.

“이호영 씨, 혹시 무임승차에 대한 죄책감 때문입니까?”

서준호가 내게 물었다.

1층 미션에서 내가 김세용과 채이설에게 묻어갔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침 잘됐네.’

데스 미션에서 살아 돌아오면 지금처럼 고문관 취급을 받는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여기서 말을 길게 해 봐야 의미가 없다.

그저 결과로 보여 주면 될 뿐.

그런데 채이설이 갑자기 나서서 격하게 항변했다.

“이호영 씨는 1층에서 누구보다 큰 활약을 해 주었어요! 우리 파티가 1등을 한 것도 다 그 덕분이었다고요! 그렇지 않았나요, 김세용 씨?”

김세용은 이 상황이 재밌는지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네네! 참 대단한 활약이었습죠!”

이 새끼가 진짜.

어쨌든 지금 채이설이 열변을 토해 봐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데스 미션을 진행하는 것은 나로 정해졌고, 이 사실은 결코 번복되지 않을 것이다.

“미안해요, 호영 씨.”

채이설이 나를 보며 고개를 푹 숙인다.

“이설 씨가 미안할 거 없어요. 그리고 아직 미션 내용은 공개되지도 않았는데 미리부터 걱정할 것도.”

“그래도요!”

이곳 분위기는 마치 나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듯했다.

아마 데스 미션의 명칭 자체가 주는 어감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난 고문관 이미지였으니까.

“다시 또 봅시다. 이호영 씨.”

김준성이 나에게 다가와 어깨를 다독였다.

“그러죠.”

나는 혹시 이 녀석이 데스 미션에 자원하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도 했었다.

이미지상으로 김준성은 이곳에서 잘난 리더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니까.

이 녀석이 좀 더 멋있는 선택을 하지 않아 다행이다.

김준성을 필두로 나는 모두의 배웅을 받았다.

마치 제단 위로 올라가는 희생양이 된 기분이다.

하지만 그 양은 잠자코 제물이 되어 줄 생각이 없다.

제단 위에서 깽판 한번 제대로 쳐 볼 생각이다.

[데스 미션을 시작하겠습니다.]

메시지가 들린 순간 배경이 바뀌어 간다.

어느새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나는 낯익은 장소로 인도되었다.

1층 미션이 끝났던 바로 그곳, 코볼트의 부락 한가운데였다.

* * *

[잠시 부락을 떠나 있던 코볼트 족장은 부족의 몰살에 매우 분개하고 있습니다. 코볼트 족장에 맞서 싸움의 종지부를 찍으십시오.]

[미션 클리어 조건: 코볼트 족장의 죽음]

곧바로 시작된 데스 미션.

미션을 듣고 나서 일단은 안도할 수 있었다.

아무리 족장이라지만 코볼트는 익숙한 상대였으니까.

[저 멀리서 코볼트 족장이 달려오고 있습니다.]

순간 강력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아마도 코볼트 족장이 발산하고 있는 기운일 터.

나는 서둘러 현자의 상태창을 불러왔다.

[공략집: 코볼트 족장은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이며 레벨은 12입니다. 족장이 이곳에 당도하기 전에 독이 묻은 검을 준비하십시오. 족장과의 싸움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그의 눈이 붉게 물드는 때입니다. 하지만 그땐 15%의 HP만 남았을 뿐이니 최대한 근접전을 피하며 사냥에 임하십시오.]

아주 친절하기 그지없다.

나는 서둘러 인벤토리에서 열매 하나를 꺼냈다.

비상시를 대비해 몇 개 채취해 두기를 잘했다.

언제 또 사용할지 기약이 없었는데, 이렇게 바로 사용하게 된다.

손에 힘을 주니 열매가 마치 토마토처럼 으깨졌다.

진득한 과즙이 흘러나오며 검 위에 뚝뚝 떨어진다.

나는 왼손으로 검 날 전체를 훑으며 과즙을 발라 주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보기엔 그냥 탐스러운 열매일 뿐인데, 이게 코볼트에게는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다니.

“후우.”

나는 심호흡을 내쉬고는 전투를 준비했다.

데스 미션인 만큼 떨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승리를 확신했다.

현재 나의 레벨은 2.

하지만 내 실질적인 스펙은 분명 레벨 10을 훨씬 상회할 것이다.

거기에 독이 잔뜩 묻어 있는 검과 든든한 골드.

무엇보다 적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까지 알고 있으니 질 이유는 없다.

공략집이 내게 데스 미션을 추천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게 계산이 서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더 편안해졌다.

쿠오오오오!

굉음과 함께 강력한 살기가 느껴진다.

코볼트 족장이 나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확실히 일반적인 코볼트와는 외양에서부터 큰 차이가 난다.

사이즈는 머리 하나가 더 크며, 현란한 장식이 붙어 있는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양손엔 나름 예리해 보이는 칼을 들었다.

“몬스터가 병장기를?”

처음 접하는 광경에 당황도 살짝 되지만 겁먹을 이유는 전혀 없다.

이미 나는 초급 검술의 레벨을 2로 높인 상태.

순수 근력이라면 모를까, 저런 미물을 상대로 검술에서 밀릴 것 같지는 않다.

[초급 검술이 발휘됩니다.]

나는 돌진하는 녀석과의 거리를 순간적으로 좁히며 스텝을 밟았다.

레벨 1 때와 달라진 것은 단순히 검의 운용만이 아니었다.

발놀림도 체감이 될 만큼 경쾌해졌다.

이제 족장과의 거리는 그야말로 지척.

서로 교차 되는 순간, 나는 몸을 잔뜩 낮춰 족장의 다리를 노리며 지나쳤다.

슈욱-

설령 다리를 온전히 베지 못해도 상관없다.

작은 생채기만 내더라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셈이다.

내 검에는 코볼트에 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독이 묻어 있으니까.

케엑!

족장이 짧은 비명을 뱉어 냈다.

비록 깊게 베진 못했지만 이만하면 성공이다.

이제 족장의 몸에는 서서히 독이 퍼질 것이며, 점점 놈의 움직임은 둔화될 수밖에 없다.

내 일격에 분노한 족장이 양손에 든 장검을 마구 휘둘러 댔다.

비록 검술 자체는 조악하나 무지막지한 파워가 느껴진다.

채애앵!

검을 세워 놈의 공격을 막아 내는 데, 어깨까지 그 충격이 전해졌다.

채애앵!

팔이 저려 온다. 지이잉 하는 느낌과 함께.

근력이 조금만 더 낮았더라면 이 충격에 검을 놓쳤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괜히 보스 몬스터가 아니다.

근력에 강점이 있는 놈을 상대로 강대강의 승부는 무모한 짓.

어차피 장기전으로 갈 생각이었으니, 거리를 좀 벌릴 필요가 있겠다.

시간은 무조건 나의 편이니 이길 수밖에 없는 승부다.

* * *

승기를 잡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예상대로 족장의 움직임은 점점 느려졌다.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독의 기운이 슬슬 효과를 내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더욱더 유리해졌다.

여전히 내가 힘에서는 열세였지만, 거리를 벌린 상태에서 깔짝깔짝 작은 공격만을 넣으니 족장은 잔뜩 약이 오른 모습이었다.

저 성난 표정은 마치 나와 싸울 때의 김세용의 얼굴을 보는 것만 같다.

점점 느려지는 저 움직임도 묘하게 비슷하다.

아, 갑자기 이입되려고 하네.

나를 배웅했던 녀석의 마지막 면상이 떠오른다.

이제는 좀 더 과감하게 공격을 해도 될 것 같다.

슈우우욱!

깊게 파고들어 족장의 가슴을 찔렀다.

녀석은 괴로운 비명과 함께 검붉은 피를 토해 냈다.

치명타.

족장과 싸움을 시작한 이후 가장 큰 공격이 성공을 거두었다.

순간 붉게 충혈된 족장의 두 눈이 나를 쏘아보았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나는 본능적으로 백스텝을 밟았다.

현자의 상태창이 경고했던 그 순간이 찾아왔으니까.

쿠오오오오!

족장이 엄청난 살기를 뿜으며 검을 휘둘렀다.

분위기만 달라진 것 아니었다.

훨씬 더 빠르고 강해졌다.

분명 독이 더 퍼져 나갔을 타이밍이지만, 놈은 마지막을 불태우고 있는 느낌이었다.

공략집에 따르면 족장이 광폭해지는 시기의 HP는 15%.

독의 기운을 감안하면 실시간으로도 HP는 계속 줄어들고 있을 것이다.

나는 좀 더 거리를 벌렸다.

가장 위험한 순간인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 싸움의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의미.

침착하게 기다리고 기다리며 마지막 한 방만을 노리면 된다.

서두를 이유는 전혀 없다.

빈틈이 오기만을 기다리자.

[초급 검술이 발휘됩니다.]

찰나의 빈틈.

그 순간 나는 승부수를 띄웠다.

나는 놈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 검 끝으로 족장의 목젖을 노렸다.

족장의 눈이 더욱더 붉어진다.

아마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나 보다.

크오오오오!

순간 옆구리가 뜨끈하다.

족장이 베어 들어온 검에 옆구리가 베였다.

예상도 못 한 반격이었다.

족장이 이 거리에서 이런 날카로움을 발휘할 줄이야.

아마도 내 옆구리에선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고 있을 것이다.

조심하라는 공략집의 경고가 이 정도 수준일 줄은 미처 몰랐다.

쑤욱-

하지만 나의 검 끝은 결국 족장의 목을 찔렀다.

질긴 가죽을 관통하는 느낌이 손에 전해져 왔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살았다.

레벨업의 순간엔 모든 HP가 100%로 복구되니까.

밀려오려 했던 어지럼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뜨끈했던 옆구리의 감각은 더할 나위 없이 최상이다.

[플레이어의 레벨을 재조정합니다.]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미친!”

하마터면 요단강을 구경할 뻔했다.

자신 있게 데스 미션에 임했건만 이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줄은 미처 몰랐다.

[데스 미션을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코볼트 족장 소유의 <불굴의 검>을 획득하였습니다.]

족장 녀석이 들고 있던 검이 보상 아이템이라고?

어쨌든 보상을 획득했다.

이걸 얻으려고 그 생쇼를 했으니 마땅히 좋은 것이어야만 한다.

불굴의 검에 손을 가져다 대려고 하니 아이템의 정보가 보였다.

<불굴의 검>

- 등급: 레어

- 효과: 공격력 +15%

튜토리얼 때 받은 낡은 장검에서는 뜨지도 않던 정보가 보였다.

심지어 등급은 레어.

아이템 등급의 위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효과는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

매 일격마다 15%의 추가 공격력이 누적된다는 것은 현시점에서는 충분히 사기적인 수준.

자. 그럼 이제 레벨업 스탯을 찍고, 다시 로비로 귀환할 시간이다.

- 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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