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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보는 탑 공략집-6화 (6/292)

6화

“혀어엉? 푸하하핫! 형이라고 불러 달라고?”

김세용은 정말 재미있게 웃었다.

내 얼굴에 침까지 튈 정도로.

“웃겨?”

“어. 내가 올해 들어 본 말 중에서 제일 웃겼어.”

그러면서 김세용은 돌연 웃음을 거두고는 나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아마도 날 위협하려는 제스처일 것이다.

지금은 상식이 무너진 종말 상황. 나이 가지고 꼰대짓을 하고 싶진 않지만, 김세용을 이대로 두어선 곤란할 것 같았다.

이제부턴 참교육의 시간이다.

“이봐 검투사,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속한 세계에선 힘 센 놈이 형님이었다고.”

“맞아. 그랬었지.”

맘에 드는 방식은 아니지만, 편리한 방법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런 아포칼립스 상황에서는 더 적합한 논리일지도.

“그럼 확인해 봐야겠군. 누가 형인지를.”

“뭐? 정말 해볼 생각이라고? 푸핫!”

김세용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위협적인 표정을 짓는다.

아마 사회에서 김세용의 저 살벌한 표정을 보았더라면 많이 무서웠을 거다.

하지만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와 봐.”

나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종합 능력치에서는 내가 확실히 앞서 있다.

김세용이 레벨업 포인트를 근력에 몰빵 해 버리는 바람에 이 부분만 조금 열세일 뿐.

여차하면 도중에 현질을 해 버리면 그만이다.

아직 골드는 충분히 있으니까.

“어이 형씨. 비겁하다고 안 할 테니깐 그냥 검 들고 싸워. 어차피 검투사잖아? 크크크.”

김세용이 자신의 주먹을 매만졌다.

스킬 <돌주먹>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돌주먹이 발동될 땐 민첩도 일시적으로 증폭되는 것이 분명하다.

아까 코볼트를 상대할 때 녀석의 스탯 이상의 속도감이 느껴졌으니까.

휘이이잉-

예고 없이 녀석의 주먹이 날아온다.

주먹 하나는 더럽게 크다.

“뒈져 버려!!”

저거에 정통으로 맞으면 정말 골로 갈지도 모르겠다.

* * *

“에잇, 씨파!”

김세용은 쉴 새 없이 욕지거리를 뱉어 냈다.

저도 답답할 것이다.

주먹을 휘두르는 족족 내가 다 피해 냈으니까.

싸움이 근력으로만 되는 게 아닐 텐데, 알 만한 놈이 왜 그랬는지 의문이다.

“트랭크스가 왜 완전체 셀한테 안 됐는지 알아?”

“뭐?”

퍼어어억.

순간 내 주먹이 김세용의 턱주가리를 돌렸다.

놈은 바로 바닥에 대(大)자로 뻗어 버렸다.

“베지터는 진작 알았는데. 멍청한 새끼.”

어차피 이놈 귀엔 내가 하는 말이 뭔지 하나도 안 들릴 것이다.

이미 멘붕일 테니까.

신체 스펙도, 레벨도 훨씬 모자란 나는 김세용을 처절하게 줘 패고 있었다.

“씨파!”

놈은 억울한 듯 허공을 향해 괴성을 질렀다.

목소리가 쌩쌩한 게 아직 한참은 더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내 눈에는 HP도 보이겠다, 이놈을 뼛속까지 탈탈 털어 버릴 생각이었다.

포털을 통과하여 로비로 돌아가면 몸 상태는 자연 수복될 테니까.

“더 해야지?”

사실 검투사인 내가 권법가인 이놈을 상대로 맨손으로 제압할 수 있을지는 살짝 의문이었다.

심지어 이놈에게는 <돌주먹>이라는 스킬도 있었기에.

여차하면 현질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럴 필요는 없었다.

코볼트를 상대하면서 어렴풋이 짐작한 바이지만 스탯의 앞자리가 2로 바뀌는 순간 그 체감은 확 뛰었다.

다시 말해 지금 김세용과 나 사이에는 넘사벽이 존재한다는 것.

“혹시 지금이라도 형이라고 해 볼래?”

“조까!”

김세용이 몸을 일으키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이 자식은 아직 한참은 더 맞아야 한다.

맺집도 나름 좋아 보이니 원 없이 때릴 수 있어 더 좋다.

* * *

로비로 다시 돌아왔을 땐, 오직 채이설뿐이었다.

역시 우리 파티가 1층 미션을 가장 빠르게 통과했다는 의미.

“아니, 두 분은 왜…….”

채이설이 우릴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와 김세용은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내가 놈을 부축하는 중이었다.

난 이놈을 딱 죽지 않을 만큼만 팼으니까.

예상대로 포털을 통과하니 상처도 없어지고, 피부색이 돌아왔다.

“우리 둘. 친해졌어요. 그렇지 않냐, 세용아?”

나는 김세용의 눈을 바라보았다.

놈이 바로 시선을 피하는 걸 보니 제대로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 틀림없다.

진짜 잔인하게 패긴 했다.

내 안의 악마를 보았을 정도로.

“세용아 왜 대답을 안 해? 형만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채이설 앞이라 그런지 상당히 머뭇거리는 게 느껴졌다.

저 포털 너머에선 몇 번이고 연습했던 그 말.

“어……. 형.”

난 놈을 향해 씨익 웃어 주었다.

김세용이라고 뭐 별수 있겠는가.

목숨보다 자존심이 중할 리는 없는데.

“형이라고요? 지금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채이설은 본인의 귀를 의심했다.

채이설이 먼저 포털을 통과한 것은 불과 15분 전.

그사이에 이런 변화가 일어나기엔 김세용의 캐릭터가 너무 강하긴 했다.

“잘 들으신 거 맞고요. 세용이가 이설 씨에게도 해 줄 말이 하나 있다던데.”

그러면서 나는 김세용의 어깨를 다독였다.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 보인다.

그 떨림은 눈 밑까지 파르르 밀려왔다.

지금 이놈 표정, 나름 재밌다.

마치 교수형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 같다고나 할까.

“뭐 해 세용아.”

쫘악!

내가 녀석의 등짝을 치자 김세용은 화들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누나!”

순간 채이설의 입이 떡 벌어졌다.

* * *

1층 미션이 시작되기 전 우리 구역의 총인원은 스물넷.

하지만 1층 미션이 종료되었을 때의 수는 처음과 같지 않았다.

[모든 파티의 1층 미션이 종료되었습니다.]

[총 6개의 파티가 생환하였습니다.]

8개의 파티 중 제한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못한 파티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결말을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 결국 그 여섯 명은…….”

대기실에는 깊은 한숨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비단 그 여섯 명뿐만 아니다.

미션을 클리어 한 6개의 파티도 모두 완전체로 생환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파티만 비정상적으로 수월했을 뿐,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상당히 고전을 했다.

그 과정에서 동료들을 잃은 파티도 있었다.

총 열여섯.

우리 구역에서 1층 미션을 통과한 인원이었다.

“1층부터 이렇게 어렵다면 다음 관문은……!”

“이 게임. 결국 모두가 죽어야 끝나 버리는 건 아닐까요?”

비관적인 기운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엄습했다.

그럴 만도 하다.

방금 전까지 함께 있던 4분의 1의 사람들이 죽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제정신으로 버티긴 어려울 것이다.

혼란스러운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

“자자! 다들 힘냅시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먼저 간 동료들의 몫까지 잘 해내야죠!”

김준성이었다.

이곳 로비에서 가장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인물.

“맞아요. 다들 낙심하지 좀 맙시다! 끝까지 버티고 버텨서 이 빌어먹을 게임을 기획한 놈의 면상을 한번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엔 서준호.

김준성, 김세용과 함께 레벨 8에 도달하며 가장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인물이다.

역시 고레벨이 괜히 고레벨이 아니다.

이런 절망적인 게임 시스템 속에서도 멘탈을 제대로 붙잡고 있다.

“그런데 혹시 이번엔 골드를 전혀 주지 않는 걸까요? 튜토리얼 후에는 보상이 있었는데.”

누군가의 의문 제기와 함께 메시지가 들려 왔다.

[1층 미션에 대한 정산을 시작하겠습니다.]

[전원 생존한 파티와 가장 먼저 1층을 클리어한 파티엔 각각 1000 골드를 지급합니다.]

“오오!”

“역시 보상이 있었어!”

사람이란 때론 이렇게 단순한 존재일 수 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온갖 비관적인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이 골드 보상 소식에 표정이 밝아졌다.

결국 골드 보상도 이 빌어먹을 게임의 일부일 뿐인데.

어쨌든 우리 파티는 2000 골드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1등을 한 파티는 어디입니까?”

자연스러운 의문이었다.

튜토리얼의 1등이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면 이번엔 1등을 밝혀내는 것이 가능하다.

두 번째로 대기실에 도착한 파티는 1등의 존재를 바로 알 수 있으니까.

“저희입니다.”

나는 곧바로 자진 납세를 했다.

2등으로 1층을 마친 김준성의 입술이 실룩이는 것을 보았기에.

“그쪽 파티가 1등이었다고요?”

의아한 눈빛들이 몇몇 보인다.

이 반응의 의미는 뭘까.

설마 나 때문에?

내가 진짜 고문관에 구멍으로 비춰진 모양이긴 하다.

“뭐, 운이 좋았죠. 팀원을 잘 만난 것도 있고.”

내가 김세용과 채이설을 가리키자 그제야 다들 납득하는 것 같았다.

김세용은 현재 최고 레벨인 8, 채이설도 여성 플레이어로는 유일하게 레벨 7을 달성한 인물이니까.

“그나저나 이호영 씨, 당신의 레벨은 뭔가 신기하네요.”

서준호가 내 머리 위의 숫자를 가리켰다.

현재 내 레벨은 2.

그마저도 막판에 레벨업을 한 결과가 이것이다.

“제 레벨에 흥미라도 생기시나 봅니다?”

“네. 1층 미션을 1등으로 통과해 놓고서도 고작 레벨업을 그것밖에 하지 못했잖습니까.”

“그건 저 자신도 의문이군요.”

의도치 않게 얕보이는 상황만 살짝 거슬릴 뿐, 저레벨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그만들 합시다. 안 그래도 이호영 씨는 레벨 때문에 많이 속상할 텐데.”

김준성이 이쯤에서 이야기를 멈춰 주었다.

순간 몇몇 플레이어들의 시샘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내가 1층 미션 보상으로 받은 2000 골드 때문일 터.

아마 이들은 나를 무임승차자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 메시지는 다시 시작되었다.

[이 구역의 1층 생존율은 평균 이하입니다.]

[분발하라는 의미에서 이제부터 페널티 미션을 적용하겠습니다.]

“뭐라고?”

“페널티 미션?”

어이없는 논리였다.

생존율이 낮다는 이유로 페널티를 주겠다니.

사회 복지 제도랑은 아주 딴판으로 흘러간다.

[지금부터 데스 미션을 수행할 플레이어 한 명을 선정하겠습니다.]

[마음속으로 후보 한 명을 선택해 주십시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플레이어가 데스 미션을 수행하게 됩니다.]

[제한 시간: 5분]

[※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 시엔 자동으로 본인에게 투표가 이루어집니다.]

잔인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동료를 지목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사지에 몰리게 되는 최악의 게임.

“뭐 이딴 게 다 있어! 젠장!”

하소연을 해 봐도 소용없다.

결국엔 모두가 누군가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저기 봐 봐!”

누군가가 내 머리 위를 가리켰다.

나 역시 볼 수 있었다.

나에게 행사된 한 표를.

심지어 누가 나를 지목했는지도 표시되어 있었다.

서준호.

“이거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기명 투표라는 얘기는 없었잖아!”

순간 서준호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이호영 씨. 결국엔 선택을 해야만 하는 거니까.”

나는 그저 말없이 웃어 주었다.

제한 시간 5분이 다가올수록 내 머리 위의 숫자들이 올라간다.

아마 여러 이유들이 복합되어 있을 것이다.

능력도 없이 1등 보상을 받은 것에 대한 질투.

내가 1층 미션에서 무임승차를 했을 것이라는 오해.

그리고 기명 투표에서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기도 할 것이다.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가장 낮아 민망할 일이 없을 테니까.

“호영이 형, 미안해.”

김세용이 나를 보며 기분 좋게 웃는다.

결국 이 새끼도 나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

의리 없이.

- 7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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